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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6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바빠지는 것이다.

        

       나는 바쁜 것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었지만, 이곳을 가득 채운 귀족들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잠들어있을 나에 대한 기억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말을 섞는 것은 최대한 짧게 하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손님에게 서빙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곳에는 귀족이 아닌 손님들도 꽤 있었다. 평민 반 아이들의 부모나 형제자매들. 아카데미 측의 엄격한 신분 검사를 이겨내고 들어온 사람들이니 일반적인 평민과 같은 사람 취급할 수는 없겠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그런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일부 귀족들은 내가 굳이 말을 걸지 않고 지나가자 노골적으로 안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진상이 낱낱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상황만 보면 ‘황제’의 야욕을 막아내고 그 뒤에 다른 황제가 자리에 오른 상황이다. 고위 귀족들은 황제파이건 아니건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느 쪽을 지지해줄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사실 나, 앨리스와 함께 있었던 귀족가 아이들— 그러니까 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당장 거의 반란에 가까운 반발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존 황제를 끌어내린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 외국 세력이 관계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제국의 위신이 대놓고 흔들린 상황.

        

       그런 상황에서 윈터필드가 군을 제대로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린드버러가 입을 꾹 다물고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면, 내 곁에 크로우필드의 유일한 후계자가 붙어있지 않았다면…… 제국 귀족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게다가 내가 타고 온 그리폰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그 황제와 힘으로 맞붙고 그리폰을 타고 개선한 나라는 존재와 말을 섞는 것이 좀 꺼려진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

        

       “후우…….”

        

       어느 부유한 평민을 상대한 뒤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평민들도 내가 황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대부분은 나를 조금 두려워했지만, ‘대상인’인 데다가 자기 딸이 나와 나름대로 면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평민은 조금 끈덕졌다.

        

       “베이커 가도 조금 대단하네.”

        

       겨우 대화를 끝마치고 돌아온 나를 보며 앨리스가 조금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가기 전에는 앨리스가 잡혀서 한참 대화를 하는 중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저 사람, 애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계산적으로 저 자리에 앉은 모양이다. 일부러 차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는 속도도 조절해서 앨리스나 내가 주변을 지나갈 때를 기다려 주문한 것 같다.

        

       “릴리랑은 조금 이미지가 다른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업가니까요. 속으로는 두렵게 느껴도 종종 그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기회를 잡는 법입니다.”

        

       “저게 두려워하는 표정이라고?”

        

       앨리스는 다시 한번 릴리 베이커의 아버지 쪽을 보았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부인과 앉아 티타임을 즐기는 그 모습에는 두려움의 ‘ㄷ’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선천적으로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평민이면서도 저기까지 올라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베이커 양의 성격은 모친에게 물려받았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베이커 부인은 연신 이쪽을 보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기 남편이 예의범절을 지나치게 어긴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왜 말이 바뀌는데.”

        

       앨리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깨를 으쓱이는 나를 보며 조금은 안심했단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아까 나한테 ‘입기 싫으면 입지 않아도 좋다’라고 했던 것은 역시 조금은 빈말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나라도 자매가 학교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않으면 걱정했을 것 같긴 해. 게다가 정작 본인은 제대로 즐기고 있으니 괜히 눈치 보이겠지.

        

       ……아까 괜히 정색했다.

        

       손님들과 대화하면서 조금 주의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그런대로 꽤 즐거웠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일해야 하는 것은 조금 성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나는 시간에 이렇게 친한 사람과 떠드는 게 즐거웠고, 정말로 ‘학교 축제’에 와 있는 기분이라 즐거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는 않았으니까.

        

       고등학생 때 축제야 뭐 그냥 학교 가는 날에 수업이 조금 빠지는 날이었고, 대학생 때는…… 음, 내가 술을 별로 안 좋아해서. 학과 내에서는 아싸로 유명하기도 했고.

        

       연예인에 관심도 없어서 초대 가수가 여는 콘서트 비슷한 곳에도 가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뭐, 지금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헥…… 소, 손님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앨리스와 내가 대화하고 있으려니, 미아도 은근슬쩍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미아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메이드복을 입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지금 이건 아르바이트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뭣하긴 하지만.

        

       “그야 우리 같은 귀족가 아가씨들한테 서빙 받을 기회는 앞으로도 몇 번 없을 테니까. 그리고 자기 딸이나 아들이 있는 곳이니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추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어?”

        

       실제로도 자기 딸을 지명하거나, 서빙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아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다들 즐겁게 웃는 얼굴이었다.

        

       귀족가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족으로 자란다. 그런 이야기만 들으면 가족 간의 정은 없는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렇게 즐겁게 웃는 사람들을 직접 보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

        

       정작 여기 있는 우리 세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은 오늘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사건 이후로 미아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미아만 아니었다면 그 사건을 발판으로 삼아서 뭔가 일을 터뜨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미아는 이야기하기 꺼리겠지만, 혹시 모르니 나중에 제대로 들어보기로 하자. 혹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고.

        

       “……그, 그건 그렇고, 애들이 만든 음식이 꽤 맛있어. 아무래도 카페에서 만든 것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지만.”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앨리스가 조금 억지로 말을 돌렸다.

        

       “그야 맛있을 수밖에요. 제가 가지고 온 벨부르 식 레시피를 이용한 메뉴니까요.”

        

       그리고 그런 앨리스를 구원해준 사람은 근처에 있던 미아나 내가 아니라,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샤를로트였다.

        

       마침, 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말로 ‘마침’ 지나가던 것일까? 샤를로트는 내가 본 귀족과 왕족을 모두 포함해서 보아도 그런 쪽으로 머리가 상당히 잘 돌아가는 편이니, 일부러 타이밍을 맞췄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함께 아이들 결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도와달라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죠.”

        

       내 질문에 샤를로트는 턱을 살짝 치켜들며 당당한 자세로 말했다.

        

       “제국 분들은 아무래도 요리에 소질이 없으니까요.”

        

       그건 반만 맞는 소리다.

        

       아제르나 제국은 영국을 모티브로 한 나라였고, 당연히 영국처럼 ‘티타임’도 존재한다.

        

       실제 영국도 티타임의 존재 덕분에 다과만큼은 확실하게 발달했다는 말을 들으니, 이런 쪽에서 일방적으로 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파르페는 벨부르 디저트이긴 하지만.

        

       “……너는 요리를 할 줄 알아서 하는 말이야?”

        

       그렇다.

        

       귀족이나 왕족이 직접 요리할 일은 거의 없다. 아예 몰락해서 평민처럼 살아야 하지 않는 한 아마 평생.

        

       “…….”

        

       앨리스의 말에 샤를로트는 아주 잠깐 할 말을 잃은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뭐, 레시피를 제가 전달해야 했으니 적어도 지금은 할 줄 알고 있죠.”

        

       “…….”

        

       샤를로트의 말에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굳이 더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을 건가요? 저기서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황족이라고 해서 일을 하지 않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요?”

        

       “우리도 다시 일하러 가려고 했거든.”

        

       사실 나는 조금 더 놀고 싶었는데.

        

       하지만 샤를로트의 말도 맞다. 우리가 일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반쯤 노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누군 일하고 누군 놀고 있으면 불만은 반드시 생긴다.

        

       “쉴 만큼 쉬었으니—”

        

       하지만 앨리스가 나에게 일하러 가자고 하기 전에,

        

       “화, 황녀님.”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 이가 있었다.

        

       같은 반의 남자애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일 시키러 온 건 아닌 모양이다.

        

       하얗게 질렸으면서도 반쯤은 감탄한 것 같은, 조금 이상한 표정.

        

       “무슨 일이시죠?”

        

       남자애의 얼굴은 우리 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내 쪽을 더 향해 있었기에 내가 대표로 대답했다.

        

       “저, 저쪽을 봐주시겠습니까?”

        

       남자애가 가리킨 곳은 우리가 등지고 서 있는 창문 쪽.

        

       “……아.”

        

       남자애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곳에는—

        

       ……1층 창문 바로 바깥쪽에서 앉아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리폰이 있었다.

        

       잠깐, 창문 바깥쪽에는 분명 고급 생화들이 심어진 화단이 있을 텐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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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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