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6

       그 명령을 들었을 때, 집사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드디어 마음을 정리하신 겁니까?”

       “응? 원더스타인 단장님? 어어, 뭐. 그냥……. 중요한 일도 많은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수 없잖아.”

       “사소한 것이라……. 그것 보세요.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런 소리는 하지도 마. 어쨌든 난 고백까지 해봤다고!”

       “포기하시는 겁니까?”

       “안 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애초에 내가 사람 사귀는 데 미숙했던 것 같아. 삼촌에게 배신당한 것 때문에 빠르게 누구에게 마음을 주고 싶어 했던 것도 있고…….”

         

       아나이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비행성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나 문뜩 뭔가 떠올랐는지 집사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원더스타인 단장님을 꺼렸던 거야?”

       “꺼렸다뇨. 저는 그저 잘 안 될 거 같다고 말씀드린 것뿐인데요.”

       “왜? 신분 때문에?”

       “흠, 그것도 있지만, 그의 인상이 그랬습니다.”

       “인상?”

         

       바텔은 잠시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가 대답했다.

         

       “그가 아가씨와 닮은 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단장님과 내가? 어떤 점에서?”

       “두 분 모두 세상을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인님이 자주 그렇듯 게임판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상회의 회장이고, 그분은 무대를 준비하는 마술사니까.”

         

       아니이스의 단순명쾌한 설명에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상을 대하는 게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그거 할아범이 나한테 자주 쓰던 비유 아니야?”

       “아가씨는 오랫동안 저택에 갇혀 지내면서, 편지와 장부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이상한 게 아니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떠돌이로 세상을 유랑했던 그가 그러는 것은 역시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 그랬던 걸까요?”

       “모르지. 그분도 나처럼 집안에 갇혀서 게임이나 하고 전 세계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했을지도?”

       “하핫, 설마 그럴 리가요.”

       “논리상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건데? 닮은 꼴이라며?”

       “동족에 대해서는 주인님처럼 끌림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꺼림칙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요. 원더스타인 단장님은 주인님의 행동이 자신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서 꺼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나이스는 괜히 질문했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이 노인네가 가끔 그렇듯 별 두서없는 논리로 삶의 지혜나 통찰력 비슷한 것을 버무려 놓은 헛소리였다.

         

       “3개월 전, 비행선에서 저희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응. 당신이 또 아무렇게나 넘겨짚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어.”

       “정말입니까? 어휴, 저는 진심으로……아니, 됐습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어쨌든 아가씨는 비행선에 오를 때, 고민하고 계셨죠. 자신이 너무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한 남자에게 좋다고 달려들었던 것은 아닌가, 현실적인 상황이나 신분 차이도 고려하지 않고 쉽게 사랑을 입에 담았던 것은 아닌가…….”

       “그렇게까지 내 속내를 밝히지는 않았는데? 또, 넘겨짚은 거 아냐?”

       “어쨌든 맞죠?”

       “흥. 그래. 맞아. 그래서 그게 왜?”

         

       바텔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가라앉히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상회로 돌아온 저는 아가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자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대해 전혀 다른 답을 내놓더군요. 아직도 원더스타인 단장님을 좋아한다고, 그분의 답을 기다릴 거라고.”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내가 할아범과 대화를 나눈 것은 비행선 위에서잖아. 그리고 도플갱어의 복제가 시작된 것은 비행선 타기 직전인데…….”

       “아뇨. 아가씨의 고민은 이번 여행의 막바지부터 시작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런 고민은 눈을 씻어봐도 찾아볼 수 없었죠.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입니다만, 아마 도플갱어는 특정 시점의 기억까지 모두 복사하고, 그 직후, 도플갱어를 만든 사람이 덧씌운 ‘명령’을 동기로 삼아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즉, 그 당시 기억으로 명확히 자리 잡지 않은 부유하는 ‘생각’이나 ‘고민’ 같은 것은 복제되지 않고 명령에 덮어져서 사라지는 거죠.”

         

       집사가 제시한 단서는 작은 것이었지만 확실히 찔러볼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와 오랫동안 붙어 다녔던 그만이 느낄 수 있었던 위화감이었고, 수십 년 동안 한 가문을 빈틈없이 꾸려온 사람다운 통찰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 개인만 이해할 수 있는 근거일 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정도는 못 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마워.”

         

       아나이스는 그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좋았다. 그는 그녀에게 매달려 볼 희망을 던져 주었다.

         

       “이번에는 아무렇게나 넘겨짚는 소리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군요.”

       “아……그러게. 믿음에는 확률이 크게 필요 없나 봐.”

         

       바텔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주면서도 한 가지 꺼림칙함에 대해서는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그는 그녀의 말대로 집사로서 살아온 세월 때문에 그런지 아무리 사소한 실마리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버릇이 있었다.

         

       가짜 아나이스가 그에게 보여주었던 자료에 따르면, 부두교는 오래전부터 이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아나이스 베르그송의 육체를 분석하라는 부두교 ‘교주’라는 자의 명령은 3년 전에 나왔다고 했다. 그것은 피에르에게 부두교가 손을 뻗은 시기와 일치했다. 동시에 아나이스의 아버지인 제랄 베르그송이 ‘사고’로 죽은 직후이기도 했다. 그 절묘한 타이밍. 어쩌면……어쩌면 그녀의 아버지는 사고가 아니라 그들의 손에 살해됐을지도 몰랐다.

         

       “아, 맞다. 저녁 식사 배급 시간이네. 식당 가서 먹고 올게.”

         

       아나이스는 종업원 앞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나다가, 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래?”

       “아닙니다. 그저……우리 저택에 주인님 같은 하녀가 있었다면 당장 짐 싸서 내보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아, 예, 예. 죄송합니다. 배부르게 자란 귀족 아가씨라서.”

         

       바텔은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는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이런 얘기를 그녀에게 전하는 것은 아직 일렀다.

         

       배관실을 빠져나가던 아나이스는 입구에서 막 안으로 들어오던 칼슨과 마주쳤다. 그는 이곳에서 ‘때밀이 영감’으로 통하는 노인으로 집사가 군인이었던 시절 전우이기도 했다. 그들이 이곳에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배려 덕분이었다.

         

       “퇴근하시는 길이세요?”

         

       그는 무심한 눈으로 그녀를 한 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울었군.”

       “네? 아, 아하하, 조금…….”

       “다행이군. 어제까지 보다는 표정이 나아 보여서.”

       “제, 제가 어땠는데요?”

       “하도 끙끙 앓는 것 같아서 보고 있으면 술맛 떨어졌지. 오늘도 그러고 있으면 내쫓을까 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툭 던지고는 그녀를 멀뚱히 바라봤다. 길을 비키라는 제스처인 듯했다. 아나이스는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마침 직원 식사 시간이 시작됐는지 그곳으로 향하는 종업원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 아냐! 너 오늘 식사 당번이잖아!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아앗, 그, 그랬나요?”

         

       주방을 담당하는 소모의 질책에 아나이스는 쩔쩔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 그녀를 산속에서 관찰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두건을 쓰고 그림자 속에 숨어서 주방 소모에게 허리를 연신 숙이고 있는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찾았군.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그는 이왕이면 이대로 안으로 잠입해 그녀를 납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작 계집 하나.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을 노려보는 한 시선을 느끼고는 금방 그 생각을 접었다. 배관실 앞에 목에 수건 하나 두르고 서서 날카롭게 눈을 빛내는 노인은 노련한 군인의 냄새를 풍겼다. 자신은 애초에 탐색에 특화된 마도사지 싸움은 전문이 아니었다.

         

       “일단 물러갔다가 지원팀을 부른다.”

         

       부두교의 마도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림자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미처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커다란 무언가가 나무 위에서 내려와 그를 덮쳤다.

         

       “크왕!”

         

       짐승의 울음소리. 날카로운 발톱이 달빛에 번쩍였다. 마도사는 놈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전에 세상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리통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짐승’이 있는 것 같군.”

         

       칼슨은 저 멀리 흔들리는 숲속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배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나이스를 감시하던 자는 제거됐다. 놈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알아보러 가진 않았다. 거기서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냐, 감자 포대 둘 주방으로!”

       “넷! 알겠습니다!”

         

       녹색 머리카락의 종업원은 정신없이 창고와 주방 사이를 뛰어다녔다. 친구가 모시는 사람이라길래 이렇게 눈이 갈 때는 지켜주겠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자신의 활동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크르르, 좋았어.”

         

       방금 마도사를 습격해 죽인 짐승이 몸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는 유창한 인간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는 혹시나 마도사가 자신의 기습을 피해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기회를 봤다가 공격했다. 자신의 존재는 절대 부두교 측에 들키면 안 된다. 일단 공식적으로 자신은 원더랜드에 특공대로 갔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부교주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갔던 원더랜드에서 그는 교주를 만났다. 그는 거기서 한 번 죽은 목숨이었다. 하지만 그분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에게 임무을 내려주었다.

         

       ‘제가 없는 동안 간부들이 재밌는 일들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그, 그렇습니다.’

       ‘그중 일부는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 제가 무얼 하면 됩니까?’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이세요. 다만, 다음에 만날 때는 저를 위한 선물을 가져와야 할 겁니다.’

         

       간부들이 제멋대로 벌인 일 중에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란 역시 베르그송 자작을 도플갱어로 대체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원래 교단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는 부교주가 순전히 자작이 교주의 관심을 끄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그녀에게 심술을 부린 거라는 이야기를 그녀의 측근을 통해 전해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교주님께 그녀를 데려가는 건가……아니, 내 힘으로 감시를 피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은데. 괜한 욕심 부리지 말고 역시 교주님을 여기로 모셔와야겠군. 하여간 그분께 드릴 선물은 준비됐다!”

         

       원더스타인의 심복이라 자처하는 벤 설리반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아나이스를 내려다보며 입가의 피를 닦고 몸을 일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나이스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바탕을 까는 작업이 길었습니다.
    200화나 지난 시점에서 캐릭터를 상기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부연설명이 많았네요.
    다음화부터는 조금 속도를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