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6

       

       

       

       

       

       306화. 가장 낮은 곳에서 ( 2 )

       

       

       

       

       

       “이게 누구야. 요즘 그 유명한 흑염용왕의 주인 아니신가.”

       

       “아. 예…”

       

       데모닉이 활짝 웃으며 한스를 반겼다. 한스의 기억 중에서 데모닉이 이토록 즐겁게 웃으며 자신을 맞이한 적이 없었다.

       

       한스가 떨떠름하게 웃으며 데모닉을 바라봤다. 

       

       “요즘 거리에서 자네 소문 듣는 낙으로 살고 있네. 뭐였지? 저번에는 의수에 붕대 대신 쇠사슬을 차고 안대로 한쪽 눈을 가렸다던가?”

       

       “그! 그건 만신전에서 다른 봉인구를 시험하다가 폭주해서…”

       

       “덕분에 요즘 어린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자네를 따라 한쪽 손에 붕대나 쇠사슬을 두르는 게 유행이라고 하던데. 하하하! 유행의 선두 주자가 된 기분이 어떠신가? 흑염용왕의 주인이시여?”

       

       데모닉의 놀림에 한스가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데모닉이 케니스의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한 대 때렸을 것이다…

       

       “까드득…저를 그냥 놀리려고 부른 건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기분 탓인지 오른손에 봉인된 용왕이 울부짖는듯 하다.

       

       “이거야 원. 농담도 못 하겠군.”

       

       데모닉이 고개를 흔들고는 한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까맣고 동그란 구체.

       한스와 이스칼이 크라켄을 사냥하고 가져온 흑색의 구체다.

       

       “이건…”

       

       “이스칼이 가져온 구체일세. 말한 대로 악마의 기운이 강하게 서려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아 이것저것 조사를 해봤네만…”

       

       “결과가 나왔습니까?”

       

       “나왔지. 나왔는데 그 결과가 참 이상하기 짝이 없단 말이지.”

       

       데모닉이 손바닥 안에서 흑색 구체를 빙글빙글 굴렸다. 단 하나의 색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흑색의 구체는 보는 이를 꺼림칙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이 구체는 악마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거라네.”

       

       “찌꺼기… 라고 말씀하신다면 악마의 똥이나 오줌, 뭐 그런 겁니까?”

       

       한스의 얼빠진 대답에 데모닉이 인상을 찌푸렸다. 사도가 된 지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이렇게나 교양이 부족해서야.

       

       데모닉은 속으로 한스의 교육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아. 악마가 먹는 게 어디 있다고 똥이나 오줌을 싸겠나. 이건 그러니까… 그래. 악마의 부산물이라고 불러도 되겠군. 악마에게서 뼈와 근육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로 만들었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말인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군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한스는 단박에 이해할 수 없었다.

       데모닉이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톡톡 두들겼다. 적당한 비유를 떠올리느라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음…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배설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어떤 끔찍한 존재가 무수한 숫자의 악마를 잡아먹고 배출한 찌꺼기. 추정하건대 최소 천 이상의 악마를 먹고 나온 것이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도로서 여러 지식이 부족한 한스라도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악마를 먹을 수 있는 건 같은 악마밖에 없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악마는 배설물을 배출하지 않아. 존재 자체가 부정한 것들이기 때문이지.”

       

       “…? 그러면 이 구체는 도대체 뭡니까? 악마를 먹을 수 있는 건 악마뿐인데, 악마는 배설물을 만들지 않는다니…”

       

       “그 부분이 아주 미칠 노릇이라는 거지. 어쩌면 악마가 아닐 수도 있기는 하지만…”

       

       데모닉이 크게 한숨을 쉬며 구체를 내려놓았다. 삿된 기운을 줄기줄기 흘리는 구체가 요사한 빛을 발한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구슬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거야. 일주일 동안 우리가 확보한 구슬만 해도 스무 개가 넘어가네.”

       

       “보통 일이 아니군요. 악마를 먹는 녀석이 선한 것일 리는 없을 텐데.”

       

       “그렇지. 거기에 짐승이나 마수가 이 구슬을 먹으면 아주 악랄하게 변하더군. 크기나 힘이 세지는 건 당연하고, 포악하고 교활한 사냥꾼처럼 변하지.”

       

       “크라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군요.”

       

       “하아. 이 구슬이 요즘 악마가 줄어든 것과 관계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도무지 그 이상으로 조사가 안 되더군.”

       

       심각성을 깨달은 한스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악마는 동족 포식을 통해 힘을 키워간다.

       

       구슬 하나당 대략 천 마리의 악마를 먹었다고 가정해도, 흑색 구슬은 최소 스무 개 이상.

       아무지 낮게 잡아도 2만 마리 이상의 악마를 먹은 괴물이 있다는 소리였다.

       

       “……도대체 어떤 끔찍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가늠도 할 수 없군요.”

       

       “그래서 내가 자네만 조용히 부른 거라네.”

       

       데모닉이 낮은 눈빛으로 한스를 바라봤다. 

       

       “언젠가 자네와 케니스, 그리고 다른 사도들은 이 소름 끼치는 괴물과 마주하여 대륙의 명운을 걸고 싸우게 되겠지. 물론 나도 싸울 테지만.”

       

       한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팔라딘 데모닉도 아니었고, 한 딸의 아버지인 데모닉도 아니었다.

       

       “자네에게 목숨을 걸고 케니스를 지켜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내가 그리 말하지 않아도, 자네는 그리할 사람이니까.”

       

       “…”

       

       “느낌이 좋지 않아. 머지않아 큰 재앙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네. 지금의 고요한 정적은, 태풍이 오기 전에 주어진 짧은 유예처럼 느껴지는군.”

       

       데모닉은 낮게 중얼거리며 제 목에 걸린 로켓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사슬처럼 차갑고 무거운 감촉.

       평생을 사랑했고, 평생을 사랑할 그녀의 존재. 

       

       “부디 후회 없이 행동하게.”

       

       진심이 담긴 데모닉의 짧은 조언.

       

       신실한 팔라딘도, 한 딸의 아버지도 아닌. 

       그저 남자로서의 진심이었다.

       

       “신의 말씀대로, 사랑할 시간은 항상 부족한 법이니까.”

       

       지난한 세월 동안의 후회로 얼룩진 데모닉의 말에, 한스는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예.”

       

       그저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

       

       

       

       배가 고프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도 전에, 가장 먼저 공복이라는 것을 배웠다.

       

       온몸이 뒤틀리고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치는, 뭐라도 먹을 것을 달라 외치는 끔찍한 굶주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먹었다. 

       

       입 안에 들어온 존재를 미친 듯이 먹어 치우고, 먹었고, 계속해서 먹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복은 계속해서 ‘그것’을 괴롭혔다.

       

       괴롭다.

       배고프다. 짜증 난다.

       

       슬프고 화나고 미워서 죽이고 싶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그것’의 정신에 휘몰아쳤다. 질척거리는 오물 같은 감정이 끝도 없이 쌓여간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

       더, 더 먹고 싶다.

       

       가장 먼저 자각한 것은 굶주림.

       그다음으로 느낀 것은 분노.

       이후의 것은 식탐.

       

       아주 단순한 탐욕이 그것의 몸을 이끌었다. 저 위,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는 지금 먹는 것보다 훨씬 달콤한 것들이 가득할 것이다.

       

       먹고 싶다.

       배고프다.

       

       식탐과 탐욕을 원동력으로 몸을 움직인다. 뚜드드득- 하고 얇은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동시에 ‘그것’의 몸에서 작은 은빛 펜던트가 부서졌다. 펜던트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물론 ‘그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코 앞에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조만만 더 가면 달콤한 것들이 가득한 곳이다!

       

       있은 힘껏 몸을 움직여 비좁은 틈을 기어오른다.

       

       그리고ㅡ

       

       텅-!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저 위에, 조금만 더 올라가면 아주 달콤한 것들이 가득한데! 뭔지 모를 것이 아주 단단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다.

       

       뚜드드득-! 뚜득!

       

       분노와 허탈함에 미쳐서 한참이나 난동을 부렸지만, 앞을 막은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금 몰려오는 공복에 결국 원래 있던 곳, 가장 낮고 어두운 곳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프다.

       화가 난다.

       

       ‘그것’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자각할 수 있었다. 공복을 통해 자아를 깨우친 이후로, 자신의 몸을 이토록 열심히 움직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다음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자각한다.

       

       좁고, 어둡다.

       낮고 추운 곳이다.

       

       저 위는 따뜻하고 밝고, 맛있는 것이 많다.

       

       입에 들어온 것을 으적으적 씹으며 생각했다. 이건 맛이 없다. 질척하고 끈적거린다.

       

       저 위로 가고 싶다.

       

       ‘그것’은 식탐을 제외한, 또 다른 욕구를 품었다. 먹는 것 이외에 또 다른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강해져야 한다. 저 단단한 것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진보의 순간이다. 하나의 자아가 스스로 걸음을 옮기며 더 나은 존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것이 설령, 다른 모든 존재의 파멸로 향하는 걸음일지라도 말이다.

       

       

       

       ***

       

       

       

       “…도대체 뭐지?”

       

       케넬름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사람 없는 혼잣말이었지만, 너무 답답한 까닭에 이렇게 홀로 자문해 본다.

       

       “도대체 저게 뭔지 알 수가 없네.”

       

       허공에 둥둥 떠오른 거울 너머로 심연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심연의 곳곳에는 깨진 유리처럼 금이 간 균열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 숫자는 얼추 세어도 수백 개.

       심연과 지상의 경계가 얇아지고 있음을 감안해도 너무 많았다.

       

       균열은 케넬름도 알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균열 너머에 있는 뭔지 모를 것.

       

       균열은 차원과 차원 사이에 난 상처다. 본래라면 튼튼하게 있어야 할 차원을 억지로 찢고 벌려서 만들어 낸 통로.

       

       말하자면 차원 사이에 끼어있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균열로 자꾸 악마들이 빨려 들어간다? 그것도 한 번에 수천에서 수만 마리의 악마가?

       

       ‘분명 뭔가 있어.’

       

       케넬름은 여러 가정을 떠올렸다.

       

       그중 가장 그럴듯한 것은, 심연과 지상의 사이에 발생한 균열에 간섭한 악마가 마구잡이로 동족 포식을 하고 있을 가능성.

       

       그나마 이것이 가장 현실성 있어 보였다.

       

       만약 이게 아니라면… 균열 자체에 뭔가 있다는 뜻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케넬름이 고개를 저었다. 차원과 차원 사이에서 가해지는 압력은 그 어떤 생명체도 견딜 수 없다. 단순히 눌려 터지는 수준이 아니라, 그 압력에 영혼까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말 만약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존재가 차원의 틈에 자리 잡아 악마를 포식하고 있는 거라면…

       

       “…”

       

       케넬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예상한 것은 심연과 지상의 경계가 얇아지며 균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었지, 차원의 틈에 도사리는 정체 모를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짧게 한탄한 케넬름은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한숨이나 쉬며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마땅한 그녀의 신을 맞이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알리고 대비하기 위해.

       

       그녀는 움직였다. 준비하고 대처한다. 그리하여 살아남는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

       

       나팔을 영원토록 불어대는 나팔수가 되는 것을,

       그녀는 기꺼이 자처했기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무언가…!! 스펙업은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핑크머리 사제 루엘과 몇몇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솔직히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것저것 너무 욕심을 부린 탓에…!! 작가의 가랑이가 찢어지는 그런 상황…!! 그렇기에 다른 인물들의 비중…!! 정말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크으윽…!! 일단 작가가 최대한 노력하며…!! 재밌는 글을 쓰겠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