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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6

        

         따닥, 치직…!

         

         운전석에 앉은 근육질 남자가 능숙하게 손가락을 튕기자, 직접 닿은 것 같지도 아닐진대 신기하게도 네모난 기름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더니 곧이어 불꽃까지 제멋대로 붙는다.

         

         더블 스냅(Double Snap)이란 라이터 트릭의 한 종류이다.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걸 일부러 양손을 모두 사용해 즐기는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장난.

         

         과연 이번 의뢰에서 차량 담당 겸 전투 보조를 도맡은 이다운 손 기술이랄까, 별로 큰 소음을 동반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나름 눈요기도 되는 묘기이기에 평소라면 구태여 제지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의자를 다 들어내서 널찍한 공간이 확보된 뒷자리에 두 다리 쭉 뻗은 채로 편히 앉아 휴대용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던 마리나는, 안타깝게도 모두를 위해 한 마디 해야만 했다.

         

         담배라도 한 개비 피우면서 진정하고 싶은 초조한 마음은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장 아닌 건 아닌 거다. 있는 그대로도 이미 충분히 어려운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바보짓이지 않나?

         

         “정 피우고 싶으면 내려서 펴 이 덩치야. 그러다 저기 멀대 옷이나 몸에 담배 냄새라도 배면 기껏 잠입해봤자 30분도 채 안 지나서 발각 당할 걸?”

         

         “하… 기억력도 남다르다는 년이 그놈의 별명 붙이는 꼬라지 하고는 정말…. 뭐, 고급 경매장에서 접객 일하는 애들은 너무 잘나서 담배도 안 핀대??”

         

         “아니, 대신 걔들은 무조건 즉효성 탈취제 같은 걸 들고 다니겠지. 반면에 우리 멀대는 다른 장비도 챙기기 바쁜 와중이니까 그런 자잘한 걸 챙길 여유가 없을 거고.”

         

         “……씨발.”

         

         ‘어때, 차이가 확 나겠지?’하는 의미를 가득한 부연 설명을 듣자마자,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덩치’가 얼른 담배 끄트머리를 잘라내 버렸다.

         

         장초의 나머지 부분이라도 살려내는 그 비범한 결단력은 존중받을 만했으나.

         

         애당초 그런 걸 즐기는 흡연자도 아니오, 냄새가 가신 시점에서 다시 크라이테리아의 경비 구조에 놓친 점은 없나 조사하기 시작한 마리나는 남자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지 못했다.

         

         도주로 확보 및 힘쓰는 일 담당은 덩치, 현재 밖에서 심각한 얼굴로 전화하느라 바쁜 현장 잠입 요원 겸 이 팀을 꾸린 임시 리더는 멀대.

         

         원래도 무의식적으로 정붙이는 걸 경계해서 멋대로 붙이는 임시 별명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게 마리나의 버릇이었지만 이번 건은 특히나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록 이전 단계의 적대 공작, 생산 라인에 문제를 일으켜서 납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고, 근로 의욕이 없던 직원들을 포섭해 파업을 유도하는 것 등등.

         앞선 작전이 줄줄이 성공하면서 간신히 목표가 회사를 포기하고 개인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고는 해도 무려 기업 간의 사활을 건 분쟁 의뢰였으니까.

         

         그래도, 거의 몇 달에 걸쳐 차분히 시간을 두고 진행한 암중 모략은 상대가 백기를 들며 얼마 전에 끝났다.

         

         이제 남은 존나게 큰 문제라면… 졸지에 멀쩡한 회사를 말아먹게 된 타겟이 어지간히 화났는지, 정작 회수해야 했던 기술을 협상도 안 하고 엉뚱한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홀라당 포장해서 넘겨버렸다는 거?

         

         덕분에 자체적으로 훔쳐내던가, 아니면 아예 자기가 망할 경매에 쓸 현금을 준비할 때까지만 시간을 좀 끌어달라며 의뢰인이 곧장 후속 임무를 맡긴 건 이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좀 질척질척해지는 걸 느낀 몇몇은 굳이 애프터케어를 하는 대신 잽싸게 자기가 일한 몫만 챙겨서 나갔고, 잔류한 건 기존에 조사한 자료도 그대로 남아있겠다 드는 수고에 비해 괜찮은 성공 보수를 갈라먹으려는 네 명이었는데….

         

         쾅—!

         

         “이런 썅!! 다리우스 새끼는 못 오는 거 확정이다! 병신이 최단 거리로 오다가 무슨 플라자 근처에서 불심 검문에 걸려가지고 내일까지 유치장 신세란다! 씨부레… 요크셔 캐피탈의 그 늙은이는 왜 갑자기 변덕을 쳐부려서 예고도 없이 일정을 앞당겨가지고…!”

         

         “……그래?”

         

         정정한다. 이제는 세 명밖에 안 남은 모양이다.

         

         다리우스… 방금 막 마리나가 새로운 별명 ‘띨띨이’를 속으로 붙인 그는 본디 멀대와 함께 경매장 내부로 숨어들기로 했던 팀원.

         

         다른 말로, 그가 빠진다는 건 안 그래도 부랴부랴 급하게 채비를 갖춘 상황에 오롯이 멀대 혼자서 진입해야 한다는 것. 안에서 호흡을 맞출 동료도 없이 생으로 절도를 감행하기엔 좀… 여러모로 부담됐다.

         

         더군다나 본 경매에 들어간 다음엔 관리하는 전속 경비가 붙으니, 사실상 기회는 알프레드 노인이 보관함 째로 들고 다니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온 지금뿐.

         

         남은 시간도 촉박하고, 감수하는 위험 부담도 크고, 여하간 긍정적으로 볼 점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기에.

         마리나는 가볍게 보통 이런 자리에 모였을 때 누군가 먼저 선뜻 꺼내기 어려워하는 말을 내던졌다.

         

         “그럼 이 후속 의뢰는 실패했다고 보고하고 여기서 끝? 해산하는 걸로?”

         

         아무한테도 크게 떠든 적은 없지만, 불과 몇 달 전에 행운이 겹쳐 어마어마한 입막음 비용 및 보수를 에나마 코퍼레이션으로부터 수령한 그녀의 지갑 사정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여유로웠다.

         

         당시 가장 큰 파이를 잘라 가져야 했던 천재 해커 팀원이 갑자기 사라진 탓에 겨우 둘이서 그 막대한 크레딧을 갈라먹었는데…… 솔직히 이후로 한동안은 웬만한 의뢰가 용돈벌이는커녕 푼돈으로 보여서 망가진 경제 감각을 되돌리느라 좀 고생했다.

         

         “아냐아냐, 제복 자체는 두 벌이 있으니까. 둘 중 한 명만 같이 갈아입고 따라와주면…….”

         

         “사이즈가 맞나…?”

         “내가? 이 머리 모양으로? 멀대가 참, 농담도.”

         

         아무리 현대 의복이 대부분 기장이 잘 늘어난다 한들 옷에는 핏(Fit)이란 개념이 있는 법.

         

         덩치는 단추를 잠그면 가슴털이 다 드러날 것 같은 모양새를 상상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마리나는 여전히 볼륨감 넘치는 아프로 헤어스타일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어느 모로 봐도 개성이 넘쳐서 도저히 누군가에게 경매장 소속이라 우길 수 없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어느 부서 소속이냐고 안 붙잡히면 다행이지.

         

         “……시발, 그래도 간다. 나 혼자라도. 안 될 것 같으면 그대로 빠져나오면 될 거 아냐.”

         

         “마음대로 해~ 어차피 들어가는 건 넌데. 대신에 문제가 생기면 후퇴가 좀 어려울 수 있다는 건 감안해?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지만 안에 있는 건 멀대 혼자니까.”

         

         돈이 많이 궁했는지, 리스크를 거의 독박 쓰는 한이 있더라도 강행하겠다는 그의 말에 마리나는 따로 토 달지 않고 수긍했다.

         

         왜냐고? 임시 팀이라 해도 리더를 맡은 사람의 말이기에 순순히 따른 것도 있었지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첫째, 업계인에게는 야매 기술자라 자기 비하하는 마리나여도 존재하는 툴을 인공지능 이상의 극한으로 활용하는 한 일이 꼬여도 자기 책임으로 실패할 리는 없다 확신했기 때문이며.

         

         거기에 대망의 두번째 이유는… 최근 재미를 보고 있는 외부 프로그램의 성능 심화 테스트를 겸해서?

         

         덩치가 운전하는 차가 조심스럽게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사이, 그리고 바로 옆에서 멀대가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고 있는 와중, 그녀는 조용히 ‘그라운드 제로’를 비롯해 즐겨 쓰는 스크립트 툴들을 켰다.

         

         그야 기업이 아니라 민간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이라지만, 정품 백신 소프트웨어 주제에 무슨 해괴한 해킹 툴과 같이 써도 그 흔한 경고 문구조차 하나 안 뜬다.

         사용자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행위만 아니라면 당사자가 불법을 저지르던 말던 개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쿨하게.

         

         또한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으로 요 특이한 백신은 돈 값을 아주, 그러니까 눈치 안 보고 아주아주 존나 확실하게 해준다는 게 좋다고 할까.

         

         사용자 정보 자동 암호화라든가, 안전한 우회 접속 라인 탐색 및 설정이라든가, 네트워크 쪽에서 보내는 트래커 교란 등등 단독으로 놓고 봐도 상당한 편의성 기능들을 줄줄이 제공하는데. 심지어 그런 프로텍션이 공격자의 입장이 되어 나가는데도 그대로 따라온다니까요?

         

         …이건 진짜 어떻게 봐도 단순한 예방 접종(Vaccination)이라기 보단 전장에 두르고 나가는 하이엔드 컴뱃 아머나 나노 슈트가 아닐런지?

         

         “흐흠~♪”

         

         물론 마리나는 이걸 어디 소문 내기는커녕 그 흔한 고객의 소리(VoC; Voice of Customer)조차 넣지 않았다.

         

         정보의 가치는 팔아 치울 때도 쏠쏠하지만, 그로 인해 확연한 격차가 있을 때 가장 높은 법이다.

         

         또 구독료가 비싼 만큼 개나 소나 쓰기는 어렵겠으나 자신도 엄연한 해커일진대 일하기 뒤지게 팍팍한 세상이 오는 건 조금이라도 늦춰야 하지 않겠나?

         

         겸사겸사 그 전까지 가능하면 달콤한 꿀도 좀 빨면서!

         

         그 증거로 이것 좀 보라.

         

         크라이테리아 경매사가 어느 회사에 설비를 맡겼고, 어떤 장비 모델을 쓰는지 미리 다 조사해서 맞춤형 툴을 뽑아 놨다고는 해도. 대기업으로 분류될까 말까 하는 유명한 회사의 방어를 해커 팀도 아니고 자기 혼자서 헤집어놓고 있는 게 실화야?

         

         이러다가 용병 평가에 거품이 껴서 몸값이 더 올라가는 건 아닌가 몰라~

         

         “오케이, 방금 막 유령 사원으로 등록 완료했어 멀대 씨. 관등 성명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자재팀의 제퍼슨이라고 말해. 적어도 10초는 너끈히 벌 수 있을 테니까.”

         

         – 알았다. 계속 주변 모니터링도 해줘. 난 메인 홀로 들어갈만한 적당한 핑계를 찾아보지. –

         

         약간 잡음이 섞인 남자의 말을 흘려 넘기며 마리나는 역할 수행에 집중했고.

         

         이어진 잠입 과정은 순탄 그 자체.

         정신없는 타이밍을 노리고 들어오긴 했어도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정말 잘 풀렸다.

         

         그게 정확히 언제까지 지속되었냐 하면… 멀대 리더가 메인 홀에 도달해서 내부 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까지.

         

         – …씨발. 잠깐만, 홀에 기업 인사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 미친 경호 드로이드가 몇 대야? –

         

         “아, 아하하…… 그럴 수도 있지. 기업 애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 조금만 맴돌다 빠지겠어. 진짜 한순간만 빈틈이 보이면 바꿔 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래…! –

         

         그녀가 세상 어색한 맞장구를 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제 버릇 어디 안 간다고, 이전 의뢰가 끝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경쟁 기업들에게 기술 데이터의 행방이 붕 떴다는 정보를 팔아 넘긴 게 뒤늦게 기억났기 때문이리라.

         

         당시엔 정말 영락없이 의뢰가 다 끝난 줄 알고 추가로 용돈벌이를 했던 건데 이런 식으로 업보가 돌아와서 발목을 붙잡을 줄이야.

         

         안타깝다… 그렇지만 애매하게 시도하다 현행범으로 붙들리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포기할 이유가 생긴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마리나는 미련이 철철 흐르는 멀대의 신경전을 구경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욕심부리다 실패하는 건 자기책임.

         게다가 매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쪽은 여차하면 그대로 차 빼서 도망가면 그만이다. 지켜야 할 상도덕이나 의리가 있기는 해도 그게 같이 뒤진다는 건 아니니 덩치도 동의할 거다. 아마도.

         

         아무튼 이 작전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덩치와 자신 둘이 남아있는 차량 쪽이 임시 사령부이니, 여기 위험이 닥치려면 어지간한 불행이 연달아 일어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계산 하에 여유를 부리고 있던 건데.

         

         저기 권력자들 한복판에서 입맛 다시고 있는 현장 요원보다도 이쪽 사람들에게 먼저 위기가 닥치는 경우의 수가 딱 한 가지 존재했으니.

         

         그건 바로 다름이 아니라 해커 대 해커 싸움에서 온갖 최신 툴에 최첨단 백신으로 무장한 마리나 본인이 눈치도 못 챈 사이에 개쳐발렸을 경우가 되시겠다.

         

         이미 모든 게 들켰다면 도망치기 쉬운 멀리 있는 쪽부터 잡으러 오는 게 상식 아니겠나?

         

         [ 안녕, 마리나. 혹시 또 뭐 훔치러 왔어?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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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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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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