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06

     죽음은 인간의 완성이다.

     그리고 무능왕,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죽었다.

     그 시신 중 머리만 남은 흔적이 테르시안 제국의 끝에 이르러, 백은을 잘 개어 만든 벽돌 속에 파묻혀 비석이 되었다.

     말이 비석이지, 그냥 투박하게 생긴 벽돌이다.

     성벽을 새로 짓거나 할 때 아래에서부터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 올릴 때나 쓸 법한 그런 형태다.

     안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었던 것이 있다는,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벽돌일 뿐.

     내부에 있는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들과 똑같이 자연의 흐름대로 흘러간다면 그대로 썩어 문드러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는 그저 안에서 악취만 흘러나오는 그런 이상하고 기이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기이한 묘비가 되겠지.

     호기심에 만지려는 이들에게는 풍문으로서 ‘이거 만지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보다 못한 놈’이라고 전하면 절대로 만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진짜 만지려고 한다?

     그러면 그건 그냥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만도 못한 자다.

     그런 인간에게 비석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거나 말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무런 문구도 제대로 쓰여있지 않은 묘비.

     묘비인지도 모를 그냥 평범한 돌덩이.

     안에 백은이야 함께 잘 섞여 있지만, 모래와 자갈과 함께 뒤섞여 굳은 백은을 얻겠다고 금광처럼 곡괭이질을 할 인간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곳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잠들었다는 건 그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는 마지막 최후의 순간 빼고 전부 기억하겠지.’

     역사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최후를 제국력 100년 1월 1일로 기록할 것이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죽여버리려고 암살을 시도했으나, 그 암살 시도를 미리 알아차린 조력자의 도움으로 암살을 저지하고 살아남았다.

     그 뒤에 적힐 내용은 상상의 자유.

     

     지금쯤 지브롤터 후작성에서는 이 조력자를 누구로 둘지, 암살 시도에 역으로 죽였다고 정리할지, 아니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내밀었더니 무능왕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정리할지 등등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아침.

     새벽 해가 떠올랐을 때, 백성들에게 뭐라고 공표할 것인가.

     단순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었다’라고 말해버린다면, 그건 그냥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20살 성인이 되자마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패륜에 의한 왕위 계승.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패륜적 왕위 계승에 대하여 옹호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다들 ‘무능왕이 죽어야지 나라가 산다’라고 말하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런 왕을 진짜로 성인이 되자마자 죽여버리고 왕위에 오른 여왕을 진심으로 쉽게 따르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대책은-

     ‘알아서 하겠지.’

     나리아의 몫이다.

     나리아를 돕는 이들과 나리아의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몫이며, 그 선택을 우리 지브롤터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지브롤터를 어떠한 식으로 이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리아라면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이다.

     나리아 본인이 엄청난 정치력을 성인이 되자마자 발휘하든, 아니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무능왕의 죽음을 꾸며내든.

     막말로 그냥 ‘무능왕이 술 먹고 지브롤터 후작성에 들어와서 샤를로트 후작 부인을 희롱하려고 하다가 아버지에게 죽었다’라고 공언해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장 그럴싸한 말이기도 해.’

     아버지에 의한 무능왕 제거.

     지브롤터의 수호자가 노스트럼이 더 이상 망가지는 걸 두고 보지 못한 나머지, 기어이 국왕을 갈아치워버린 대사건.

     역사에는 분명 전례가 없는 상황으로서 최초로 기록되겠지만, 그마저도 어쩌면 나중에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리아가 낳은 누군가가 또 시간을 되감기 한다면?’

     나리아의 자식이 자라서 20살이 지났을 때.

     그리고 본인이 10살로 되감기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존재에게 자기 권능을 넘겨준다면?

     가령 60세 노인이 된 누아르 지브롤터를 회귀시켜 준다거나 해버린다면, 역사는 또다시 바뀌게 될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고, 나는 현재에 충실할 뿐이야.’

     그런 걱정은 지금 할 건 아니다.

     염려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우리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잠깐, 눈 좀 붙일까.’

     멀리 백은공장까지 와서 할 일은 다 했다.

     백은이 양생 되어 굳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이고, 시간 끝에서 뜬 눈으로 조금 오래 지내는 바람에 피로가 쌓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죽이고 묻었다’라는 사실 자체로 나는 이미 진한 탈력감을 느끼고 있다.

     숙면이 필요하다.

     깊은 잠이.

     

     잠에서 깨어나면, 나머지는 이제 그녀를 향해 달려가 외치기만 하면 된다.

     

     이제.

     모든 게 끝이라고.

     # # #

     째ㅡ액, 짹.

     익숙하면서도 낯선 새의 지저귐 소리.

     

     나는 따스한 햇볕과 함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앗.”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란 걸까.

     아니면 몰래 뭔가를 준비하려고 하던 사이, 내가 깨어나는 바람에 놀란 걸까.

     “아스타시아?”

     “들켰다, 헤헤.”

     내 방.

     “좋은 아침이에요!”

     아스타시아가 메이드복을 입은 채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기억나지 않으세요?”

     “마지막 기억이 뭔가 말씀드리기 곤란하기는 한데….”

     “부우우.”

     아스타시아가 볼을 크게 부풀리며 칭얼거린다.

     “저랑 어른의 계단에 함께 오르기로 했던 날,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시나요?”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그날이죠.”

     아스타시아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어른의 계단을 오르기로 한 날이요.”

     “아스타시아, 지금 제가 머리가 조금 복잡해서 그런데….”

     “사실은 하루도 안 지났답니다.”

     “…….”

     “오늘이 그날이라고요. 현재, 자정으로부터 약 10시간 정도 지난 시각. 늦잠 자셨네요, 백작님!”

     “…….”

     순간, 나는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아스타시아.”

     “네.”

     “이쪽으로 잠깐 와주시겠습니까?”

     내 부름에 응답한 아스타시아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그대로 아스타시아를 당겨 내 품에 안았다. 

     “…제법 긴 꿈을 꿨던 것 같습니다.”

     “어, 얼마나 길었는데요?”

     “글쎄요. 꿈이 현실처럼 생생하기도 했는데, 일단 아스타시아를 보니까 일단 안정됩니다.”

     나는 아스타시아를 안은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었습니다.”

     “…….”

     “역사는 그를 가장 무능한 왕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의 뒤를 이어받은 나리아가 무엇을 하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보다 더 잘할 것이기에.”

     “만일,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래도요?”

     아스타시아가 진지하게 묻는다.

     “그걸 걱정하시는 거 아녜요? 혹시나 나리아가 노스트럼을 기어이 멸망시킬까봐.”

     “나리아라면 잘 해낼 겁니다. 노스트럼에서 앞에서 헤아리는 게 빠를 정도로 역대급 영웅적인 군왕은 아니지만, 평범한 범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능왕보다는 훨씬 잘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거, 쉽지 않을걸요?”

     아스타시아가 내 볼을 좌우로 꾹꾹 누르며 헤실거린다.

     “나리아 여왕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달려가서 구해주고 그러실 거잖아요.”

     “도의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하기야 하겠지만, 항상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정말로?”

     “…아예 위기를 겪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다면, 그게 제일 좋겠죠.”

     “정말로 나리아가 위기를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합스베르크 황제 폐하를 상대로?”

     “…….”

     그레이 지브롤터는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무작정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의 편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하자면….”

     “오히려 저는 합스베르크 황제의 편에 가깝습니다. 그도 그럴 게, 당신의 남자니까.”

     나는 아스타시아의 편이다.

     그리고 아스타시아는 제국의 황녀다.

     “제국의 황녀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제국과 왕국이 격돌할 경우, 다툼에서 멀찍이 발을 빼도 욕을 먹을 텐데 나리아 여왕을 도울 수는 없죠.”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동생들이 노스트럼을 돕기로 결정하더라도?”

     “정치적으로 가족이 서로 다른 지도자를 따르는 바람에, 혈연 사이에 정치적 분쟁이 일어난 건 생각보다 흔한 사례입니다.”

     “그렇게 두지 않을 거 아녜요?”

     “당신의 선택입니다, 아스타시아.”

     나는 아스타시아의 손을 잡아들었다.

     “당신이 모든 걸 내던지고 둘이서 조용한 숲으로 들어가서 살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이 나리아 여왕을 돕기를 바란다면, 기꺼이 당신만 제국에서 빼내어 노스트럼 왕국의 수호자가 되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대륙에 평화가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제 몫을 다하겠습니다.”

     “어떻게요?”

     “지브롤터는 협곡을 지배하고 있고, 왕국과 제국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기에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이점과 힘을 가지고 있죠.”

     아스타시아의 손등에 입맞춤하며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아스타시아 당신이 바란다면, 가장 쉬운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쉬운 길.”

     “미래는 미래의 우리가 해결할 거라고 믿고, 미래의 가능성에 모든 걸 맡긴 채 지금의 승리를 만끽하는 것.”

     무능왕이라는, 노스트럼 최악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었으니, 이제 왕국과 제국은 지금과 같은 분쟁을 이어나갈 겁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최소한 서로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들끼리 대화와 타협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 같이, 계약서를 눈앞에서 찢어버리고 물건만 챙긴 채 대금은 지급하지 않는 그런 짓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겁니다.”

     “…불안해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든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 불안감은 여느 부모에게나 다 똑같겠죠.”

     나는 몸을 일으킨 뒤, 아스타시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결혼합시다, 공주.”

     “…….”

     “그레이 지브롤터는 목숨을 걸고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당신만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흠.”

     아스타시아가 내 답변에 피식 웃었다.

     “승낙은 할 건데, 으음, 으으음…!”

     “왜 그러십니까?”

     “아뇨. 뭔가, 건방져서요.”

     아스타시아가 내 볼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당신은 당신이 어떤 멘트로 고백하든, 제가 받아줄 거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내가 아스타시아의 부탁을 거절한 적은 있어도, 아스타시아가 나의 부탁을 거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좋아요. 그 대신, 약속 하나 해요.”

     아스타시아가 내 손을 잡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예.”

     미래는 미래의 일.

     나는 아스타시아와 조용히, 맹세의 입맞춤을 나눴다.

     “사랑합니다, 공주님.”

     그 입술은 꿈과도 같이 달콤했다.

     

     마치, 꿈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금까지 매국명가 간신천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트)

    속인 건 아니구요
    1부 완결도 아닙니다

    스포일러하자면

    그냥 소제목이 에필로그일 뿐입니다

    매국명가 간신천재는 360화 완결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