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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6

   콰앙, 쾅!

     

   백염의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지의 짙은 안개가 백염에 의해 순간 흩어질 만큼.

   크라슈는 신의 사자들을 휘몰아쳤다.

     

   하지만 크라슈도 마냥 밝은 상황은 아니었다.

     

   신의 사자들은 자신을 유지하는 일종의 코어가 존재한다.

   그들을 끝장내려면 이 코어를 박살 내야 하는데 문제는 이 코어의 위치가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확실하게 끝장을 내지 않으면 놈들은 몸이 불타거나 베여도 얼마 후 바로 복구한다.

     

   신들이 죽으며 남긴 이 안개는 신의 사자들에게도 무한히 힘을 공급해 주는 장소인 만큼.

   그들에게는 복구의 제약이 없었다.

     

   한 마리, 한 마리씩이라면 큰 위협이 되지 않고, 금방 처리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놈들의 수였다.

     

   아서가 성검의 개안을 시작하고 난 이후.

   놈들은 계속해서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성검을 개안하는 데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성지에 채워진 안개다.

   성검이 개안을 마치는 순간 성지에 깃든 안개는 전부 사라져 없어질 것이고, 그건 곧 신의 사자들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그들은 성지의 안개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일을 신의 사자들이 용납할 리 없었다.

   그러니 놈들도 필사적으로 크라슈와 아서를 집중 공격해 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의 사자들의 대군에 맞서 크라슈는 홀로 백염을 휘둘렀다.

     

   아서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성검의 개안을 마칠 수 있도록.

   단 한 마리도 제단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콰아앙, 쾅!

     

   백염의 폭발음이 쉴새 없이 계속해서 몰아쳤다.

   신의 사자를 베어 가른 검이 또 다음 신의 사자를 향해 뻗어졌다.

     

   사방에 가득찬 신의 사자들이 크라슈를 향해 무기를 뻗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에도 불사하고, 크라슈를 죽이고자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렀다.

     

   한 번의 공격을 막아 내어도 수십 개의 공격이 몰아쳐 온다.

   크라슈는 용왕족의 육체를 믿고 터프하게 공격을 몇 번이고 받아 내었다.

     

   그러나 아무리 용왕족의 육체라 한들 피해는 계속해서 쌓여 나갔다.

     

   크라슈의 육체에 꾸준하게 상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우라를 흡수한다 해도 육체가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까드득-

     

   그러나 크라슈는 이를 부서질 듯이 부딪치며 악착같이 버텨 내었다.

   제단 쪽에서 성검에게서 흘러나오던 빛이 더더욱 강해졌다.

     

   아서의 개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크라슈의 얼굴에 하얀 비늘이 돋아났다.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며 크라슈는 신의 사자를 베고, 공격받아 내었다.

     

   하지만 빛이 거세짐에 따라 신의 사자들도 점점 더 급해졌다.

   놈들에게 있어서 죽음이 임박하고 있는 때였기 때문이다.

     

   저 멀리 크라슈의 시야가 닿는 곳에서 신의 사자들이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의 사자들이 서로의 코어를 뽑아 한 녀석에게 코어를 밀어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저놈들이 무언가 준비하고 있단 걸 알아도 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뿌득- 뿌드드득!

     

   다른 신의 사자들의 코어를 삼켜낸 신의 사자의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새하얀 유령 같은 꼴이었던 신의 사자였으나 놈의 몸에서 대뜸 뼈가 만들어지고, 살이 돋아났다.

     

   곧이어 크라슈는 놈에게서 쏟아 나오는 강렬한 신기의 힘을 느꼈다.

   크라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신의 사자 놈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자신들이 그동안 담아둔 신기를 합쳐 모조 신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오늘 하루도 채 유지 되지 못할 모조 신이지만.

   오늘 하루를 위해 싸울 수 있다면 충분했다.

     

   “이 정신병자 놈들이!”

     

   모조 신의 붉은 빛의 눈동자와 크라슈가 마주쳤다.

   모조 신의 뼈에 붙은 살점은 채 완성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신의 사자들이 아무리 뭉친다 한들 저 정도가 한계였다.

   그러나 완성되지 못한 모조 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모조 신이 크라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몰아쳐 온 바람의 칼날이 제단을 향했다.

     

   크라슈는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신의 사자들을 뿌리치며 도약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각!

     

   바람의 칼날에 휘말린 신의 사자들이 찢겨나갔다.

   같은 편이라 한들 예외 없이 찢어 나간 바람의 칼날이 아서가 있는 제단에 닿기 직전.

     

   그 앞을 크라슈가 막아섰다.

     

   카가가가가가가강!

     

   크라슈의 우뢰성에 바람의 칼날이 부딪쳤다.

   하지만 우뢰성으로는 전부 막지 못했던 만큼 크라슈의 육체가 바람의 칼날에 이리저리 찢겨나갔다.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근육이 찢기고, 뼈가 일부 드러났다.

     

   크라슈가 너덜거리는 팔로 주머니를 뒤져 열었다.

   그러고는 구비 해둔 급속 치료 영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치이이이익!

     

   크라슈의 몸에서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연금술의 대가 달링이 만들어준 영약답게 고통이 있긴 하나 치료 능력으로서는 탁월했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이야. 두 번째부터는 효과도 반감될뿐더러 부작용이 더 심해.」

     

   단,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한계인 영약이다.

   크라슈도 그것을 잘 알기에 한 번뿐인 기회를 썼음을 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쓸 타이밍도 없었다.

     

   이미 모조 신이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놈은 공격할 때마다 스스로 깎는 듯이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앞으로 몇 번.

   조금 전 공격을 받아 내야 할까.

     

   알 수는 없었지만, 크라슈는 차분히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럼 몇 번이고 받아 내 주마.”

     

   천살성의 힘을 받은 그의 눈동자가 거센 붉은빛으로 빛났다.

     

     

   * * *

     

     

   성지의 제단에 오고 난 뒤.

   아서는 오직 성검의 개안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중간중간 크라슈가 전투하는 소리가 들렸긴 하나.

   아서는 그를 믿기로 했다.

     

   성검의 개안을 서두를수록 정복의 백기사가 사람을 죽이는 걸 줄일 수 있다.

     

   물론 그 뒤에 있을 나머지 세 기사를 떠올린다면 결국 세상은 멸망에 다다르겠지만.

   적어도 당장에 문제를 해결하고 며칠을 벌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아서는 서서히 개안을 마쳐 가는 성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검을보다 빠르게 개안하기 위해 아서는 자신의 힘까지 소비하고 있었다.

     

   성검의 개안을 마친다면 분명 정복의 백기사를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검의 개안은 사실상 일회 기회에 가깝다.

     

   과연, 이다음에 나타날 세기사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상대할 수 없겠지.’

     

   아서는 알고 있다.

   이미 이 세계에 기운 멸망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세계는 반드시 멸망한다.

   멸망이 확실시된 세계를 지키고자 자신이 필사적일 필요가 있을까.

     

   그날도 그러했다.

   수많은 것들이 어긋나 세계가 멸망을 향해 나아가던 그 날.

     

   아서는 생각했다.

     

   이번 세계는 끝났다.

   회귀만이 답이다.

     

   몇 번의 회귀를 겪으며 일종에 아서에게 생긴 강박증이었다.

   멸망이 목전에 다가오기 시작하면 무조건 회귀부터 찾으려는 강박증.

     

   어차피 끝날 세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회귀하자.

     

   그 결심을 하고, 그녀가 세계를 끝마치려던 때였다.

     

   「그딴 썩은 결심 당장 집어치워.」

     

   아서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자 찾은 자기 연인인 크라슈가 있었다.

     

   크라슈는 여러 가지가 마모된 인물이었다.

     

   발하임에서 재능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는 죄로 버려졌다시피 했고.

   그것이 낙인이 되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남들에게 날 선 태도를 몇 번이고 취하던 그이지만.

   어느 날, 블랙 후드를 얻은 기점으로 그는 바뀌었다.

     

   세계 침식을 나아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얻게 되는 각종 저주.

     

   그 저주를 스스로 받아 냄은 물론.

   가문의 비밀 서고에서 찾아내었다며 가져온 비술 극혈침독을 통해 세계 침식의 힘마저 다뤘다.

     

   그 과정에서 세계 침식의 광증과 저주로 인해 자신을 끊임없이 갉아 먹으면서도.

   크라슈는 악착같이 버티며 아서의 곁에 우뚝 섰다.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서가 그에게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은 말이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멸망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그를 보며.

   아서는 자신을 보는 기분을 느끼고, 결국 그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된 것과 세계의 멸망을 별개의 이야기였다.

     

   회귀를 반복하며 아서의 정신력은 계속해서 갉아 먹혔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멸망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 쳤음에도 실패했으니.

   그녀의 정신이 온전한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에게는 한가지 방어 장치가 생겨났다.

     

   어차피 회귀하게 된다면 모두 다시 만나게 될 이들이다.

   그들의 죽음 하나하나에 슬퍼하지 말고, 그들을 두고 회귀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

     

   그리고 그건 연인이 되었던 크라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시간선이 실패한다면 다음 회귀에서 그와 다시 연인이 되면 된다.

     

   오히려 다음 회귀 때라면 더 그에게 잘해줄 수 있음은 물론.

   엉망이었던 크라슈의 삶을 자신이 도울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서 개인의 관점이었다.

     

   「다음 회귀에서는 내 삶을 구해주겠다고? 웃기지 마.」

     

   회귀를 결심한 아서는 마지막 작별하고자 크라슈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서의 이야기를 들은 크라슈는 아서를 향해 거세게 비난했다.

     

   「나는 나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 과거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모든 것이야. 그런데 그걸 회귀해서 해결해 주겠다고? 그딴 걸 내가 고마워할 거 같아?」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난 그저.」

     

   아서는 당혹스러워했다.

   크라슈가 이렇게나 화를 낼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번 세계선에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뿐이었는데.

   왜 갑자기 그와 싸우게 됐는지 아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크라슈의 눈이 차갑게 아서를 바라보았다.

     

   「아서, 넌 정말로 날 사랑하기는 했던 거냐?」

   「당연히!」

     

   욱한 아서가 외치자 크라슈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넌 네가 회귀하고 떠나간 이후의 세계는 어떤지 생각해 봤냐?」

     

   그 질문을 듣고, 아서는 순간 몸이 굳었다.

     

   자신이 회귀하고 떠나간 이후의 세계.

     

   회귀를 하는 것에 급급했던 아서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회귀하는 당사자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서는 자신이 떠나간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다.

     

   그녀에게 펼쳐지는 것은 초기화된 다른 세계일 뿐.

   그곳에 이전 세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크라슈에게는 어떨까.

     

   「난 네가 회귀를 내게 말해준 그 날부터 생각했다.」

     

   아서가 회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생각이 도달한 끝은 간단한 결론을 내놓았다.

     

   아서가 회귀와 함께 사라지거나.

   혹은 회귀를 한 후 껍데기일 뿐인 아서가 남거나.

     

   「지금 네가 내게 하는 말은 나보고 이 세상에 혼자 남아 살아가라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크라슈에게 아서의 발언은 사실상 자살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녀는 이 시간선에서 영원히 사라질 테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부디 아서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가서 그녀가 결국 세계를 막지 못하고 회귀했다면.

   크라슈는 기꺼이 그녀를 보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고, 지킬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은 세계에서 그녀가 회귀를 결심한 순간.

   크라슈는 그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아서, 네게는 수많은 회귀 중 하나일 뿐인 이 세계도 내게는 단 한 번뿐인 세계다.」

     

   크라슈는 아서를 설득하고자 했다.

     

   회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게 아닌.

   모두와 그리고 자신과 함께 이 세상을 지켜보자고.

   간곡히 그녀에게 말하였다.

     

   아서는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있었다.

     

   어쩌면 이건 그녀도 내심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저, 자신이 세계를 구하면 된다는 명분으로 했던 일들을 위해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의도적으로 멀리했을 뿐.

     

   다른 이들에게 한 번뿐인 세계인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서슴없이 여러 일들을 행했다.

     

   그러나 지금 크라슈는 그런 그녀의 이기심을 파헤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 파헤침이 어떤 결과를 낼지 크라슈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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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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