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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6

    <306 – 고인물은 큰 그림을 그려요>

     

    싸울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아닌 조나에게 힘을 쓴 시점에서 안라게의 사도의 패배는 이미 정해졌다.

    잠복마나독이 듬뿍 담긴 승무원들을 연료로 사용하는 만큼 중독스택은 계속 올라간다.

    하물며 두 번이나 듬뿍 대량으로 연료를 흡수했으니 풀스택은 이미 확정이다.

     

    <잠복종료>

    <마나마비독 일제개방>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마나의 분출이 가로막혔다.

    조나의 공격을 저지할 수 없게 된 로우는 순식간에 강철가시에 가슴을 관통 당했다.

    체내에 파고든 강철가시는 그대로 혈액 내의 철분을 모조리 흡수하며 피의 색깔마저 변질시켰다.

     

    “컥.”

     

    승무원 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맹위를 떨치던 안라게의 사도의 최후는 실로 허무하게 찾아왔다.

     

    “어떻게… 이 모든 걸 예상할 수 있었지…?”

    “무인도경매 크루즈선에서 히든보스 안라게의 사도가 등장하는 건 고정요소였거든요!”

    “고정요소… 변치 않는 불변의 운명… 내 욕망을 읽어내었단 말인가…?”

    “정보가 있고 파해법도 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보상도 잔뜩 주는데!”

    “쿨럭… 내 욕망을 부추기고자 일부로 틈을 만들어내었단 말인가…”

     

    선상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가 크루즈선 내에서 <활동범위>를 넓힐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사장이 새긴 금제에 의해 언제까지고 지령을 지키고자 한정된 구역 내에서 하염없이 다른 자아들에 짓눌린 채 시간만 허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선을 넘은 덕분에 강한 자아들이 차츰 수면 위로 부상했다.

     

    “무인도 경매에서 탈락자를 조절하여 배로 돌려보낸 것도… 내 다른 자아들이 힘을 소진하며 나를 둘러싼 구속이 헐거워지도록 만든 것도… 그들의 상황이 나를 해방시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것마저도…”

     

    당했다.

    자신은 처음부터 자신의 허리춤에 머리가 닿기나 할지 의심스러운 작은 아이에게 놀아났을 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고 부추긴다.

    이 아이의 재능은 가히 천부적이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가장 위험한 괴물.

    그 <이사장>에 비견될 정도로.

     

    “아가씨. 굳이 이런 것의 마지막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부디 사살명령을.”

    “아니에요! 모처럼 히든보스도 잡았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 대화 정도는 나눌 수도 있죠. 숨 끊어지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더 없어요?”

     

    친절하게 재촉하는 오크노디에게 이것만큼은 묻고 싶었다.

     

    “네 계획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문제요?”

    “승무원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다는 것이지…”

    “아항!”

    “두렵지도 않은가? 그 많은 사람이 네 결정 하나만으로 죽게 된 것이.”

     

    난전 도중에 제물들을 구출하였던 메이드들과 암살자 즈앙.

    세 사람의 도움으로 풀려났던 학생들이 파괴된 로비 너머에서 흠칫하며 엿듣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미처 감추지 못한 그림자가 발치에 드리워 시야 한 편에 닿았을 텐데.

    그런데도 오크노디는 싱긋 웃었다.

    가식을 떨거나 얼버무리지도 않고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크루즈선에 탄 승무원은 어차피 다 죄인인걸요! 아니더라도 어차피 엑스트라 NPC라서 죽든 말든 메인시나리오는 달라지지 않아요!”

    “큭. 크흐흐흐. 재단은 말도 안 되는 괴물을 또 하나 키우고 있었는가… 메인시나리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미래를 가리키는 건지는 몰라도 사람 천 명이 죽는 정도로는 눈 하나 깜빡 않을 정도로 아주 끔찍한 미래라는 건 알겠어.”

    “으으음~ 어땠더라? 엑스트라라면 확실히 좀 많이 죽기는 하죠?”

    “너는 마족계약자보다 더한 악마다. 언젠가 그 이명대로 다크프린세스의 본색을 드러내어 차기마왕의 자리를 노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 오만함이야말로 너의 실수였다.

    로우의 눈이 환하게 빛나며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거대한 계약마법진을 띄워 올렸다.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 발동하는 사후마법진.

    죽음이 이미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의 영혼을 힘을 하사한 마족에게 바치는 계약이 이행될 때가 되었다.

    앞으로 자신을 억겁토록 괴롭힐 당사자인 악마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생전의 원수를 갚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에 보고 들은 오크노디의 실체에 대한 정보를 영혼에 담았다.

     

    “이걸로 세계에는 네 실체에 대해 아는 마족이 하나 탄생하였다. 그가 거느린 다른 마족계약자들은 나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그걸 왜 저한테 알려줘요?”

    “두려움에 떨라고.”

    “우와. 너무 무섭다!”

    “하. 어이없을 정도로 두려워하는 일말의 기색조차도 느껴지지 않는군.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생명과 영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힘겹게 들어 올려 오크노디의 뒤를 가리켰다.

     

    “너의 ‘친구’들이 네 실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그들을 믿었기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었지만 저들도 너를 믿을 수 있을까?”

     

    이야기를 엿듣던 일동이 크게 움찔하였다.

    로우는 마지막 떠나는 길에 적어도 하나는 통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오크노디의 친구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이 폭로한 이야기에 대해서.

    그들이 모르는 오크노디의 실체에 대해서.

    작고 귀여운 아이의 탈을 쓴 다크프린세스의 진정한 위험성에 대해서.

    재단의 수석장학생이 바라보는 자칭 ‘메인시나리오’가 불러올 결과에 대해서.

     

    “괜찮아요!”

     

    오크노디는 그저 확신하였다.

     

    “호감작만 잘하면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두고 보지. 네 확신이 이길지, 내 확신이 이길지. 내 숨은 오늘 이 자리에서 끊어지지만… 우리의 확신은 먼 미래에 결판이 내어지리라. 이것이… 타락의 신의 사도가 내리는 인간의 천성, 소질Anlage을 폭로하는 권능. 오크노디, 너를 향한 저주다.”

     

    오크노디는 단검을 들어 가슴을 푹 찌르는 것으로 대답했다.

     

    “길어요! 유언은 300자 미만으로 짧고 간단하게. 게임 국룰은 지키셔야죠!”

     

    큭큭. 미친년.

    그 오만함이 끝을 맞이할 날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구나.

    사도 로우의 혼이 머나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그릇을 찾지 못한 자아들이 절규를 지르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 *

     

     

    [히든보스 안라게의 사도를 처치했습니다.]

    [기여도보너스로 경험치 효율이 5배 상승합니다.]

    [막타보너스로 경험치 효율이 3배 상승합니다.]

    [히든보스보너스로 경험치 효율이 2배 상승합니다.]

    [심리예측 경험치+300]

    [행동예측 경험치+300]

    […]

    [공포유발 경험치+150]

    [작전수립 경험치+150]

    […]

    [조종술 경험치+90]

    [마나제어술 경험치+90]

    […]

    [완벽 경험치+30]

    [무서운아이 경험치+30]

     

    [도전과제 <히든보스 안라게의 사도 처치>를 달성했습니다.]

    [칭호 <히든 슬레이어>를 습득합니다.]

    [칭호 보유효과로 히든보스를 상대로 모든 기능 보정치가 10% 상승합니다.]

    [칭호달성 보너스로 100만 포인트를 습득합니다.]

     

    오오. 역시 꿈이 아닌 현실로 극복한 이벤트라 그런지 보상이 장난이 아니게 많다.

    이걸로 나도 부자야!

    신이 나서 에이프릴의 손을 잡고 빙빙 도는데 평소랑은 다른 색깔의 창이 떠올랐다.

     

    [타락의 신 안라게가 당신의 존재를 인지합니다.]

    [“너 작고 하찮은 피조물아. 나의 사도를 거두어간 대가로 네게서… 오? 오오오? 무어냐, 그 말도 안 되는 소질은! 너, 당장 나의 사도가 되어라. 그리하면 모든 죄를 사하여주겠다!”]

    [안라게가 당신에게 사도계약을 제안합니다.]

     

    하?

    사도계약이라니, 할 리가 없잖아!

    조금 큰 힘을 준다고 꼬드겨봤자 실제로는 이거 하면 안 돼 저거 하면 안 돼 요거 시켰으니까 해줘 저거 갖고 싶으니까 가져와.

    신의 심부름꾼 노릇이나 주구장창 하는 사도직업 따위, 가질까보냐?

     

    [사도계약을 거절합니다.]

    [“괘씸한 녀석. 아무리 대단한 재능이 있다고 한들 일개 필멸자 주제에 감히, 감히…?”]

    [안라게가 다른 신의 시선을 감지하고 화들짝 놀랍니다.]

    [안라게가 두려움에 질려 다급히 달아납니다.]

     

    “?”

     

    신에게 한 번 눈에 띄면 제안을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귀찮게 구는 건 마찬가지다.

    보상은 크지만 성가시게 시달리는 반대급부는 각오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예상 외로 깔끔하게 물러났다.

    용사를 구해줘서 유일신 소페미아가 도움을 주기라도 한 걸까?

    주류 24신격 중 하나인 타락의 신 안라게가 순순히 물러날 정도면 역시 유일신 소페미아가 맞겠지.

    겸사겸사 다 구해서 다행이야!

     

    “윽.”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괜찮아요. 너무 용량이 큰 마법을 사용해서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니까.”

     

    혈마법에는 실은 약간의 제약이 있다.

    모기를 조종하려면 암흑마나를 듬뿍 머금은 내 피를 먼저 빨려서 모기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제약이다.

    승무원 이천 명을 부지런히 중독 시키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빨린 내 피도 만만치 않다.

     

    ‘안라게의 사도가 원작게임에서처럼 멍청해서 다행이야!’

     

    정면대결로 싸우면 말도 안 되게 강하지만 한 몸을 여럿이서 공유하는 탓에 다른 속성의 이질적인 마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안라게의 사도.

    너무 강하기에 작고 미약한 힘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로우의 인격은 잠복마나독을 발현시키기에 최적화된 얼간이였다.

     

    “저 괴물을 저렇게나 간단히 해치우다니…”

     

    용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지만.

    그거야 용사도 근력올인능지바보니까 그렇겠지?

    뭐, 원래는 이렇게까지 쉬운 공략은 아니다.

    승무원들에게 모두 마비독을 주입시키기 위해 암흑마나를 듬뿍 탄 술을 먹여야 한다.

    모두가 술을 마시게 하려면 크루즈선 내의 경매장에서 잭팟 이벤트를 발동시켜야 하는데 운빨로 잭팟 내기가 어디 쉽던가?

    난 네가 사기를 칠 걸 알고 있다, 라고 말하듯이 눈을 부라리는 카지노경비들과 딜러를 속여서 잭팟을 터뜨려야 한다.

    술과 마비독의 준비는 물론.

    술에 독을 타려면 추가로 관련자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친 뒤에는 선상반란을 일으켜줄 동료가 없으면 승무원 NPC나 무인도경매에 참여한 다른 NPC를 포섭해서 반란을 일으켜야 하니 수고로움이 배로 커진다.

    결과적으로 공략법을 알더라도 아주아주 성가시고 긴 연계퀘스트를 거쳐야 하는 성가신 존재가 바로 히든보스 되시겠다.

    그래도 애가 능지가 멍청해서 다행이지, 머리까지 똑똑했으면 고인물인 나라도 공략포기였겠지!

     

    ‘그럼 음료에 희석되는 독까지 계산해서 더 많은 피를 주입시키고 잠복독을 발현하는 순간에 소비되는 마나량도 훨씬 더 커졌겠지만.’

     

    애초에 2년차나 3년차 방학에나 나올 이벤트를 1학년에 클리어하느라 힘든 것이지, 그때가 되거든 보통은 이렇게 어지러움을 느끼지도 않고 가볍게 깬다.

    그래도 온몸 비틀어가며 1학년에 무리해서 깬 보람이 있는 보상이다.

    기능경험치 잔뜩 올라, 포인트 많이 줘, 히든보스 특효보정도 있어.

    게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아군을 살렸으니 호감도도 대폭 늘어나잖아?

     

    [무서운아이 디버프 발동]

    [많은 학생들이 안라게의 사도를 물리치기 위해 승무원 천 명의 죽음을 담보로 한 당신의 무자비한 계획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많은 학생들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조직원들의 복종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아.”

     

    근데 이건 몰랐네.

    다들 날 보는 눈이 어색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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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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