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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7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 살펴본바, 아니나 다를까 화단은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옥상 바닥이 차갑고 딱딱해서 따뜻한 곳을 찾아온 것일까?

        

       교실로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볕이 좋은 곳에 뚫린 창문이었고, 당연히 그 창문 아래 있는 화단도 햇볕을 받기 좋은 곳이었다.

        

       거기에 흙도 부드러웠고.

        

       그리폰이 보기에 햇볕을 쬐기 최적의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고양이입니까?”

        

       그리고 그 꼴을 본 나는 차마 그 말을 참지 못했다.

        

       어…… 아니지. 말을 해놓고 보니까 꽤 그럴싸한 말이긴 했다. 일단 얼굴이랑 상체는 맹금류의 것이긴 했지만 뒷부분은 사자였으니까. 그리고 사자도 고양잇과잖아. 사자가 식빵 굽는 자세로 앉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말을 들은 그리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제야 그리폰 앞에 메이드복을 입고 뛰어나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뭐, 그건 됐다. 지금 당장은 이 일이 더 급하니까.

        

       그리폰이 뭐 대단한 사고를 쳤다고 하긴 조금 그렇지만, 지금 걔가 앉아있는 곳은 화단이었다. 당연히 그리폰의 그 거대한 몸이 다 들어가기에는 좁았다. 화단 모서리를 따라서 그곳이 화단임을 표시하는 작은 벽돌담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일부가 그리폰의 몸에 눌려서 무너진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리폰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음…… 이 정도면 그래도 우리가 물어줄 수는 있을 텐데.”

        

       옆에 따라온 앨리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폰이 계속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 법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조금씩이라도 지속해서 피해를 주게 된다면……”

        

       “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폰이 가축을 도둑질하는 것을 옆에서 같이 겪은 앨리스였기에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애완동물이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종종 있잖아. 사람 목숨이나 재산권에 큰 피해가 가지 않으면 이 정도는 너무 뭐라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건 애완동물들이 일으키는 사건이 너무 크지 않으니 괜찮은 겁니다.”

        

       개나 고양이가 사람을 물어 죽여버리지 않는 이상 그 둘이 벌이는 사건들은 소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간 고양이 때문에 차에 흠집이 난 사람들은 뒷목을 잡고 싶겠지만, 그것과 똑같은 짓을 그리폰이 했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동물이 한 짓으로 치고 넘어갈 수 없게 되리라.

        

       “……흠.”

        

       다시 엄한 눈으로 그리폰을 쏘아보는 나를,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 쟤를 꽤 생각해주고 있구나?”

        

       “예?”

        

       그게 무슨 소리냐는 감정을 한껏 담아 앨리스를 봤더니, 앨리스는 입가에 생글생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쟤가 거부당할까 봐 걱정되는 거잖아. 그래서 실수할 때마다 엄하게 구는 거고.”

        

       내가 앨리스와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던 그리폰이, 앨리스의 말을 듣고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너무 그렇게 부정할 건 없잖아? 그리고 얘도 이제 여기서 살기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어. 네가 말했잖아. 나이도 어린것 같다고. 똑똑해서 몇 번 말한 건 다 알아듣고, 덕분에 처음 왔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얌전해졌잖아? 조금 더 시간을 주는 건 어때?”

        

       앨리스의 말을 듣고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얘가 어떻게 이런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건 그만둬주지 않겠어?”

        

       “…….”

        

       앨리스의 불평은 일단 무시하고, 나는 시선을 돌려서 그리폰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잘못하고도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이었지만, 확실히 앨리스의 말도 맞다. 멋대로 나가서 가축을 집어먹은 사건 때문에 내가 한 소리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먹이 주는 사람들이 더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말을 알아들은 것 같기도.

        

       “그보다, 주변을 조금 봐주셨으면 하는데요.”

        

       내가 앨리스를 바라보던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든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폰을 딱히 무서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맹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야기 속에서도 사납게 묘사되긴 했지만 실제로 사람을 잡아먹은 적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리폰이 대중 앞에 나타날 때마다 나를 등에 태운 채였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친숙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그리폰을 두렵게 대하라고 하는 쪽이 더 이상했다.

        

       “봐, 사람들도 별로 안 무서워하잖아. 그리폰도 딱히 공격할 것 같은 모습은 아니고. 조금은 마음을 놓는 편이 좋지 않겠어?”

        

       “…….”

        

       나는 다시 그리폰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앨리스의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하긴, 그렇게 고고한 척 해도 내용물은 친구 없는 찐따였으니까. 만약 친구가 있다고 하면 나 같은 ‘인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리폰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만약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것 같은 장소가 있다면, 그 안에 있는 것을 함부로 밟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가축들이건, 꽃이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일구어진 곳일 테니까요.”

        

       “…….”

        

       “그리고 그런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동등한 관계로 있고 싶다면 당신도 저를 존중하도록 하세요.”

        

       “…….”

        

       내 말을 들은 그리폰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아.”

        

       몰려든 관중들 사이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따지자면 감탄하는 소리였다.

        

       그리폰은 보란 듯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혹시 내가 한 말에 삐져서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마치 나의 말을 확실하게 이행하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엄청나게 귀찮다는 듯 천천히 움직여서 옆으로 한 발짝 나온 그리폰은, 그대로 바닥에 다시 앉아버렸다.

        

       아니, 거긴 사람 지나다니라고 만든 길인데.

        

       그리폰이 앉는다고 길이 완전히 막혀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그 옆을 지나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 그래도 화단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낫지만.

        

       나는 그리폰이 몸을 일으킨 자리를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꽃이 죄다 옆으로 누워버렸다. 날카로운 발톱이 땅을 헤집어버린 탓에 다시 심는 것보다는 화단을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쪽이 나아 보일 정도였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리폰 쪽을 바라보았더니, 그리폰은 내 눈을 슬쩍 피했다.

        

       그래도 잘못한 건 알고 있네.

        

       훈육을 위해서 먹이를 조금 줄이는 편이 나을까.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황녀님?”

        

       조심스럽게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

        

       내가 정중한 태도로 대답하자, 아카데미의 교장 에이브러햄 윈터필드는 내 쪽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시선은 그리폰 쪽을 향하고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 훌륭한 모습이군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경외감이 담겨있었다.

        

       부서진 화단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인지라, 나는 슬쩍 몸을 움직여 교장과 화단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나의 그런 행동을 알아차린 모양이었지만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한동안 말없이 그리폰을 올려다보던 교장은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리다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제가, 혹시……?”

        

       본인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민망한지, 그 말은 차마 완성되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나왔다.

        

       “…….”

        

       그 들어 올린 손을 나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리폰을 보니, 그리폰도 똑같이 그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리폰은 대놓고 싫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당당하게 등에 태워놓고, 나이 든 남자의 손길은 싫어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리폰의 그 표정을 보고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괜찮습니다. 착한 애니까요.”

        

       “……!”

        

       그리폰의 고개가 내 쪽으로 휙 돌아왔다.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을 보니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를 원망하는 눈길을 무시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사람을 참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사람의 손길 정도는 쉽게 받아주죠.”

        

       “하지만 조금 전 보인 반응은……”

        

       “사람을 워낙 좋아하니까요.”

        

       “그렇습니까?”

        

       조금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교장은 나의 말을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교장을 봤다가, 다시 나를 보는 그리폰.

        

       나는 그런 그리폰을 엄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도망가기만 해봐라. 다음에는 보육원 애들을 단체로 끌고 올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완성되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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