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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7

    그렇게 루크가 도망치듯 차와 과자를 준비하러 자리를 비우자, 남은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숨막힐 듯한 침묵이었다.

     

    “…….”

    “…….”

     

    아직은 서로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기 때문일까, 헬레나는 그 침묵이 굉장히 불편하다고 여겼다.

    평소대로 무슨 말을 해보려 해도, 무슨 말로 물꼬를 터야 할 지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

    차라리 이곳이 아카데미나 자신의 방이었다면 뭐라고 할 얘기라도 있었을 텐데, 헬레나가 보기에 이곳은 대부분 알 수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루드 역시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시루드의 경우에는 헬레나처럼 가만히 앉아서 루크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궁금한 것이 있는 마법사의 행동은 너무나도 예측하기 쉬웠다.

     

    시루드는 루크의 방에서 이것저것 살피기 시작했다.

    테이블의 서랍을 열어보고, 창문을 열어보고, 침대를 눌러보고…….

    마치 보물찾기라도하는 듯 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그런 시루드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초대받은 입장이라지만, 지금 시루드의 행동은 무례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자아이가 사용하는 방이 아닌가, 저렇게 아무런 서랍이나 막 함부로 열어버리는 건 정말로 무례한 행동이다!

     

    헬레나는 그 즉시 벌떡 일어나 시루드를 제지하며 말했다.

     

    “저기, 뭘 그렇게 찾는 것처럼 살펴보는 거야?”

    “아니, 정말로 아무것도 없나 해서.”

    “없다니, 뭐가?”

    “아까 내가 말했던 거.”

     

    아까 시루드가 말했던 것이라 하면 박제된 시체, 위험한 약물, 그리고 금지된 마도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헬레나는 시루드가 도대체 루크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게 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판단의 근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게 정말로 루크의 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헬레나가 그렇게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시루드를 바라보자, 시루드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헬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헬레나, 아까 전에 루크가 그런 거 전혀 없다고 대답한 적 있어?”

    “그건…….”

     

    시루드의 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던 헬레나는 문득, 루크가 ‘대답’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대답하지 않고 말도 안된다는 듯이 태연하게 웃다가 간식과 차로 손님맞이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웠을 뿐, 그런게 없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여자아이의 방을 막 살펴봐도 되는지에 대한 답은 되지 않는다.

    그것도 루크의 방을!

     

    헬레나는 표정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게 뭐? 그거랑 여자애 방을 뒤지는게 무슨 연관이 돼?”

     

    시루드는 그런 헬레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루크가 부정하지 않았다는 건, 어딘가엔 분명히 그게 있다는 얘기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어딘가에 있다니?”

    “루크는 말이지, 절대로 거짓말을 못해.”

    “거짓말을 못해?”

     

    루크가 거짓말을 못한다니?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연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여우 같은 여자애가, 고작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크가 말했어, 마법사는 거짓말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마법을 잘 못 쓰게 된대. 서클에도 별로 안 좋고.”

    “뭐?”

     

    서클을 지닌 마법사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루크가 항상 강조하던 규칙이었다.

    만약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서클을 다루고 싶다면 그 규칙만큼은 반드시 지키라고 루크는 당부하곤 했다.

    그리고 시루드는 그 규칙이 루크 자신에게 특히나 엄중하게 적용되는 것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았다.

    루크는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아이였으니까.

     

    게다가 시루드는 모르지만, 루크의 본질 그 자체가 바로 ‘서클’이었기 때문에 루크는 설사 하고 싶다고 해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헬레나에게 시루드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방금 전에는 도망쳤잖아? 루크는 분명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싫었던 거야. 숨기려고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될 테니까.”

    “그, 그게 그렇게 돼?”

     

    시루드가 펼친 놀라운 논리에 헬레나는 당황했다.

     

    시루드는 루크가 부정하지 않았으니, 뭔가를 해부한 박제나 위험한 독약, 그리고 금지된 마도서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살펴보는 거지.”

    “그, 그래도 옷장을 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거기 뭐가 들어 있을 지도 모르고……!”

     

    게다가 만약에 저러다가 속옷 서랍이라도 열어버리게 되면 꽤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로 시루드가 말한 그 이상하고도 위험한 물건들이 나오기라도 하면 대체 어쩌겠단 말인가?

    헬레나는 너무 끔찍한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개구리 해부한 건 더더욱.

     

    “으음……. 역시 그런가?”

     

    헬레나가 계속해서 만류하자, 시루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자신이 여기서 더 뒤진다고 해 봤자 뭔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아마 루크가 숨기려고 했다면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숨겼을 테니까.

     

    ‘휴우…….’

    드디어 시루드가 무례한 행동을 멈추자, 헬레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루드의 주장이 맞든 틀리든, 방을 들쑤시지 않으면 자신이 배를 뒤집어 깐 개구리 같은 건 보게 될 일은 전혀 없을 테니까.

     

    시루드는 그렇게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평범해서 의외네, 저렇게 귀여운 인형도 있고.”

    “……그러게.”

     

    인형을 언급하는 시루드에 의해, 헬레나는 침대 위에 놓인 두개의 인형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예전에 루크가 생일 선물로 받았던 작은 곰인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엄청 큰 고양이 마법사 인형이었다.

    그리고 엄청 큰 고양이 인형은 매직 테마파크의 인기 마스코트, 매직키티 인형이었다.

    ‘루크도 커다란 인형을 좋아하는구나…….’

     

    설마 루크도 잘 때 자신처럼 저 인형을 껴안고 자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인테리어용으로 둔 걸까?

     

    어느 쪽이든, ‘고양이 모습을 한 마법사인형’이라는 점에서는 매직키티 그 자체가 너무나 루크와 닮아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스웠다.

    의외로 루크도 아이 같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헬레나의 시선은 그렇게 커다란 매직키티 인형에 고정되고 말았다.

    그런 헬레나를 곁에서 바라보던 시루드가 물었다.

     

    “저기, 헬레나. 혹시 너도 인형 좋아해?”

     

    그러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헬레나.

     

    “아, 아아아, 아니? 나, 나는 매직키티 같은 인형들 별로 안 좋아하는데?”

     

    헬레나는 시루드에게 어린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시루드는 마치 루크처럼 어른스러운 느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얼떨결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응? 혹시 저게 매직키티? 그게 이름이야?”

     

    ‘아차!’

     

    인형을 좋아하는 헬레나의 입장에서는 그 인형을 ‘매직키티’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남자아이의 시선에서 보면 저 인형은 그냥 큰 인형일 뿐이지, 그 캐릭터의 이름이 ‘매직키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놓고 굉장히 자세히 아는 것 같은 기묘한 모순에 시루드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정말로 안 좋아해?”

    “……사실, 인형 좋아해…….”

    “하하하! 그래?”

     

    시루드는 그런 헬레나의 새로운 모습에 어딘가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시루드는 헬레나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당했을 뿐, 그 아이의 사생활이나 취미에 대한 것은 잘 몰랐으니까.

     

    헬레나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대체 루크는 언제 오는걸까?

     

    -…….

     

    그 때, 헬레나의 귓가에 기묘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헬레나는 그것이 시루드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쏘아붙였다.

     

    “야. 시루드, 놀리지 마!”

    “응? 내가 뭘?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방금 네가 나 인형 좋아한다고 놀리는 노래 부른 거 아니었어?”

    “내가?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헬레나는 고개를 들어 침대를 보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인형의 모습이 살짝 틀어져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시루드와 헬레나는 순간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헬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시루드. 혹시 네가 인형 만졌어?”

     

    시루드 역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만진 적 없어.”

    “……아까 노래 부른 것도 네가 아니었고?”

    “……말했잖아. 부른 적 없다니까.”

    “그럼…….”

     

    헬레나는 떠오르는 단 한가지 생각에 몸을 굳히고 말았다.

     

    “서, 설마. 고스트?”

     

    헬레나의 울음기 섞인 걱정에, 시루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솔직히 가능성은 있어…….”

     

    원래 인간이 지내는 건물엔 고스트가 잘 들어오지 않지만, 루크는 이 집으로 이사를 한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했다.

    보통은 인간에게 병과 피로, 악몽등의 해악을 끼치는 고스트를 루크가 보고 가만히 두었을 리가 없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스트도 연구한다고 어디에 잡아 두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히익!”

     

    헬레나는 기겁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여러가지 이유로, 고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나 고스트에 기겁을 하지 않는 여자아이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미묘한 혐오감은 마치 사람들이 벌레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떡해! 나 고스트 너무 싫어!”

     

    헬레나가 온몸으로 혐오감을 내비치며 유난을 떨며 외쳤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에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시루드의 말에, 헬레나는 벌써 구원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정말? 혹시 너 지팡이나 악령 퇴치 스프레이 같은 거 갖고 있어?”

    “아니.”

    “뭐!”

     

    헬레나가 흥분해 외치자, 시루드는 귀를 살짝 막았다.

     

    “어떻게? 고스트는 마법이 아니면 잡을 수도 없는 걸!”

     

    “그야 난 서클 마법사니까…….”

    “아……?”

     

    시루드가 서클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이미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지 않았던가.

    헬레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뒤늦게 자세를 바로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그럼 문제없네.”

    “그래.”

     

    하지만 그 순간.

     

    -탁.

     

    “꺄아아악!”

    “빛이 갑자기 꺼졌어……?”

     

    돌연 방에 찾아온 어둠에 시루드와 헬레나는 크게 놀라며 당황했다.

    사실 창 밖은 아직 낮이라 커튼 너머로 비치는 빛 덕에 그렇게까지 어두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갑자기 이유없이 불이 꺼지는 상황은 전혀 상정하지 않았기에.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지, 진정해! 고, 고스트가 한 건 아닐 거야……. 아마도…….”

     

    헬레나는 거의 울면서 시루드에게 달라붙기 시작했고, 시루드는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런 헬레나를 달래고 있었다.

    고스트의 행동이라기엔 마법사인 시루드 자신이 전혀 느낄 수 없었으니까.

     

    -뚜르르르르…….

     

    그리고 그 때, 시루드의 휴대폰이 울린다.

     

    “전화……? 지금 이 상황에?”

    “설마, 발신자표시제한이야? 어떡해……!”

     

    헬레나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고스트가 출몰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지역에선 발신자번호표시제한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주의해야했다.

    악령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저주가 걸리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이거, 내 생각보다 큰 악령일지도…….’

     

    시루드는 긴장상태로 전화기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전화를 꺼내보니, 발신자는 루크였다.

     

    “루크한테 온 전화인데.”

    “하아, 뭐야……. 고스트가 아니었잖아.”

     

    안도한 한숨을 쉬는 헬레나를 뒤로하고, 시루드는 전화를 받았다.

     

    -아, 시루드. 미안하다, 지금 잠깐 마나가 나간 것 같구나. 많이 놀랐느냐?

     

    “진짜 깜짝 놀랐잖아. 하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하하하. 그게, 이게 숲에서 끌어오는 마나가 있고 발전소에서 끌어오는 마나가 있는데, 발전소쪽의 마나가 과도한 사용으로 잠시 차단되었다. 예전에 내가 마나를 너무 많이 써서 마력세가 너무 많이 부과된 적이 있어서 예르나가 마력 차단기를 설치해 두었거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내 금방 복구시킬 테니…….

     

    “그래? 알겠어. 얼른 와.”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응.”

     

    -뚝.

     

    그렇게 루크와의 전화를 마친 후, 시루드는 한층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헬레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지? 별 거 아니래.”

    “휴우……. 다행…….”

     

    하지만 헬레나가 안도하는 것도 잠시.

    헬레나는 전보다 더욱 하얘진 표정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시, 시루드……. 저기…….”

    “어?”

     

    그러자 시루드의 안색도 헬레나 못지않게 하얘지고 만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루크의 휴대폰이었기 때문이다.

     

     

     

    “저기, 루크의 휴대폰이 여기에 있는데 루크한테 전화가 온 거면…….”

    “방금 내가 받은 전화는……?”

     

     

    “…….”

    “…….”

    헬레나와 시루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처음의 침묵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의 집이 아니라 귀신의 집이었네!

    악령이 깃들어 있기는 했으니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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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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