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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7

       곰들은 겨울잠을 잔다. 그들은 겨울의 가혹한 추위를 견딜 정도로 강인하지만, 그들이 먹잇감으로 삼는 동물들은 그들만큼 튼튼하지 못하다. 그래서 곰은 한파가 치닫기 전에 주변 생태계를 휩쓸어 배를 잔뜩 채운 후에 깊은 굴속으로 들어가 봄이 되기 전까지 나오지 않는다.

         

       제국은 보통 곰에 비유되곤 했다. 그것은 그들의 땅에 정말로 곰이 많이 살고 있기도 했고, 키예프 황실의 문장이 곰인 것도 있었지만, 그곳 주민들의 약탈 행위를 빗대어 표현하는 의미도 있었다.

         

       키예프는 전통적으로 사냥과 목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목 민족들의 땅이었다. 그들은 겨울이 다가올 때쯤이면 수확이 끝난 주변 나라를 습격해 식량을 약탈했다. 몇 번 그들을 토벌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드넓은 혹한의 땅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곰들을 박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키예프 사람들이 자주 입에 담는 ‘지난해의 일은 지난해의 일’이라는 관용어는 그들의 뒤끝 없음과 호방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치장되곤 했지만, 사실 약탈이 일상화된 사회와 지역 간의 극단적인 단절을 요구하는 겨울의 혹독한 환경이 만나 입에 붙어버린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지역적 특수성은 오늘날 상당히 옅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곰은 동면하지 않았다. 제국 전역에 깔린, 그리고 지금도 깔리고 있는 철도는 얼어붙은 키예프의 겨울에 뜨거운 피를 흐르게 했다. 먼 동쪽 끝의 휴즈 만과 서쪽 끝의 흑해를 잇는 대륙횡단철도의 철로에는 눈송이 한 점 잠시 머무를 틈도 없이 증기를 내뿜는 철마들이 끊임없이 질주했다.

         

       이러한 교통망의 발달을 따라 시장이 형성되고 인구의 유입이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기차역 주변의 경우, 기존의 포구나 장터와 비교해서 그 발전의 규모가 남달랐다. 기차는 비행선과 비교해서 속도가 느리고, 배와 비교해서 운송량에서 뒤졌지만, 다른 두 교통수단을 압도하는 장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접근성이었다.

         

       기차는 마차보다 압도적인 물량의 물자와 인원을 도시 바로 한복판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한 유통의 ‘밀도’와 ‘편의성’은 거대한 공터를 요구하는 항구나 공항이 가질 수 없는 장점이었다. 기차역 근처는 소도시라고 해도 대도시 번화가 수준의 유동 인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 설치된 공연장은 적어도 크기만큼은 대도시의 것에 뒤지지 않았다.

         

       현재 ‘원더스타인의 괴물 서커스’가 사흘째 공연하고 있는 천막 극장도 무려 1,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서커스 그랑프리에서 벌써 2개의 별을 딴 그곳은 매번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고, 덕분에 3일 내내 모든 회차의 공연에서 만석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곡예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 명 한 명이 강렬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의 캐릭터를 부각하는 대본과 연출 또한 인상적이었다.

         

       살가죽을 벗고, 근육을 뜯어내고, 장기를 다 쏟아내고 뼈만 빠져나와 유쾌한 척 구는 해골 광대. 지네, 나방, 바퀴 같은 징그러운 벌레를 몸속에 키우고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뱉고 삼키는 미라. 그리고 살아있는 생물을 거미줄에 꽁꽁 묶어 놓고 체액을 빨아먹는 요사한 분위기의 거미 여인까지.

         

       그렇게 3명의 괴물 곡예사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 무대는 가장 흉포한 적혈귀를 앞두고, 단, 1명, 아니, 3명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 악명높은 살인 병원의 수감동에서 탈출한 후! 무려 33건의 살인을 저질렀지만! ‘살인범을 셋 중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다’라는 엉터리 판결 덕분에! 간신히 사형을 면한! 미치광이 3형제! 트라이머리!”

         

       수탉 미노바의 우렁찬 외침에 따라 랫맨들이 철창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머리 셋 달린 인간이 낄낄거리며 무대 위에 올랐다. 그의 등장과 함께 사방에서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3형제는 상반신을 탈의한 상태였는데, 사회자가 소개했던 것처럼 어떤 미친 의사가 세쌍둥이를 외과적 실험으로 합친 흔적이 몸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강철 케이블로 살을 꿰맨 자국이 양어깨에서 내려와 배꼽에서 만났다.

         

       셋은 나란히 무대에 섰으나 그것이 서로의 사이좋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부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트라이머리다!”

       “무슨 소리! 트라이머리는 나다!”

       “윽, 방금 그 말 내가 하려고 했는데?”

       “‘내가 바로 트라이머리다.’라는 말?”

       “아니. ‘무슨 소리! 트라이머리는 나다!’라는 말!”

       “헛소리! 나라니까!”

       “나라고!”

         

       괴물 곡예사들은 각자 다른 공포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트라이머리가 보여주려는 것은 멍청함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였다. 그들의 등장에 잔뜩 긴장해 있던 관객들은 그들이 벌이는 만담에 금방 경계를 풀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상황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얼굴에는 점점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 이건 토순이라고 내가 기르는 토끼야.”

       “아니, 내가 기르는데?”

       “내가 매일 밥 주고 있어.”

       “나도 주는데?”

       “그럼 누가 기르고 있는 거지?”

       “음, 모르겠다.”

       “셋이서 사이좋게 나누자!”

         

       짐승의 애처로운 비명이 공연장을 울렸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토끼 한 마리를 산 채로 찢어 셋이서 나눠 가졌다. 객석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토순이는 진짜 토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엘라가 만든 소품에다가 마야가 환상을 덧씌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 리 없는 관객들은 잔인하게 죽은 토끼를 들고 좋다고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는 세쌍둥이의 모습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그 외에도 그들은 무대 설비 설치하는 것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랫맨 한 마리를 압사시키지를 않나, 몸 주도권을 놓고 다투다가 스스로 팔을 분지르질 않나, 각자가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서 하마터면 실수로 단검을 사회자에게 맞추질 않나. 보고 있던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세쌍둥이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였다.

         

       세쌍둥이는 종종 관객들의 그런 반응에 맞춰 그들을 향해 능청스럽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되묻기도 했다.

         

       “우리는 머리가 좋아.”

       “머리가 셋이니까!”

       “지능도 3배지!”

         

       그렇게 그들은 정상적인 판단 능력만 있으면, 혹은, 그들이 정상적인 몸이었다면, 평범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문제들을 어떻게 재앙으로 바꾸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럼 들어갈게!”

       “아니, 내가 들어갈 거야!”

       “잠깐! 멋대로 내가 들어가게 하지 마!”

         

       그들의 엉뚱한 짓거리 덕분에 식은땀을 한바탕 쏟은 관객들은 세쌍둥이가 우리에 갇혀 퇴장하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쌍둥이의 연기는 처음에 비해 상당히 발전했다. 처음에는 저 미묘하고 복잡한 긴장감을 만들어낼 능력이 안 돼서 무작정 난동이나 부렸던 그들이 이제 표정이나 대화만으로 관객들의 “그러지 마!”하는 반응을 끌어내고 있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레이나는 지난 3일간 자신이 본 괴물 서커스에 대한 감상을 솔직히 늘어놓았다.

         

       “트라이머리 씨, 세 분 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정말 기존의 괴물 서커스와 그 궤를 달리하는 대본이었어요. 광대의 연기 분야 중에 ‘못투성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건 ‘슬랩스틱’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장르예요. 슬랩스틱은 몸을 다치게 하는 상황과 거기에 대한 광대의 반응으로 웃음을 준다면, 못투성이는 몸을 상하게 ‘할 뻔한’ 상황과 광대 본인은 그 위기를 ‘모르고 지나가는’ 반응으로 긴장감을 주죠. 세 분의 연기는 못투성이를 극한으로 살린 것으로 봐야 해요.”

         

       비록 본인은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지만, 서커스에 대한 이론과 기술만은 엘리트 교육을 통해 최고로 습득한 레이나였다. 그녀는 괴물 서커스에서 단원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름: 레이나 마기어

       나이: 19

       호감도: 22 (다음 보상: 호감도 30)

       칭호: 황금 천칭

       직업: 훈련 교관

       특성

       : [페르소나-우는 여자], [귀가 명령]

         

         

       레이나 같은 대단한 곡예사의 칭찬에 세쌍둥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럼 우린 어딜 고쳐야 해?”

         

       앞선 단원들은 레이나에게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받았고 그것을 개선한 방안 또한 전달받았다. 레이나가 말없이 3일 동안 공연을 지켜본 것도 그들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자신이 공연에 대해 정리한 노트를 흘깃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몇 가지 있어요. 방금 말한 못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트라이머리 씨는…….”

       “잠깐, 트라이머리 씨가 뭐야, 트라이머리 씨가.”

       “너무 딱딱하잖아. 그냥 씨는 떼고…….”

       “그럼 오빠들로 부르면……될까요?”

         

       레이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진지하고 딱딱했다. 그녀가 오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것도 별생각 없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세쌍둥이의 얼굴에는 금방 바보 같은 미소가 걸렸다.

         

       “뭐, 뭐라고?”

       “푸흣흣, 오빠, 오빠라고?”

       “오빠다! 우리 보고 오빠라고 했어?”

         

       레이나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줄 알고 긴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 제가 뭘 잘못 했나요?”

         

       그녀의 그런 순진한 반응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조용히 레이나가 단원들을 지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원더스타인은 안심하라는 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기뻐서 저러는 겁니다.”

       “푸핫핫, 그렇죠! 기쁘죠, 당연히!”

       “단장님은 이해 못 할 겁니다. 우리의 심정을!”

       “반말로 막 부르는 부단장님과 다르게 마음씨도 고와!”

         

       세쌍둥이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고는 구석을 슬쩍 쳐다봤다. 그곳에는 녹초가 되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엘라가 있었다. 그녀는 삼 형제를 한 번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원한다면 불러줄까? 오빠?”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별것도 아닌 일에 그들은 신나서 난리였다. 오늘은 이곳에서의 공연 마지막 날이었고, 내일부터는 이틀 동안 자유시간이었다. 그들은 스벤의 진부한 개그에도 다들 자지러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정표는 다 확인하셨나요, 엘라 양?”

         

       원더스타인이 방금까지 그녀가 읽고 있던 서류 뭉치를 곁눈질하며 질문했다. 엘라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화물칸 6개를 빌려놨어. 출발 시간은 3일 후 아침이야. 한 개 역을 이동한 후에 하차하고, 거기서 1주일 동안 머무를 거야. 공연은 사흘 동안 할 거고. 무대는 900석 정도 되는 천막 극장이야. 홍보물은 역 근처 인쇄소에 300부 예약했고, 광고는 지역 신문사에 위탁했어.

       “그것을 이틀 만에 다 처리하고 왔나요? 대단하군요.”

       “흥. 그런다고 일을 줄여줄 것도 아니잖아. 악마 같은 인간.”

         

       엘라는 그렇게 한 번 쏘아붙인 후에 탐색 과정에서 소요된 경비랑 역 근처에 제휴할 만한 지역 상권 목록 등을 차례차례 전달했다.

         

       지난 레카체프 건 이후로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다시 기억을 잃기 전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예전처럼 적대적으로 구는 것은 또 아니었다. 간간이 뼈있는 농담을 던지거나 빈정대는 것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러나 서커스단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는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이것저것 질문도 많이 하고 의견을 교환하거나 맞장구쳐주기도 했다.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아주 차분했고, 감정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잃었을 때처럼 그에게 애정을 표하진 않았지만, 나름 친절하게 굴려고 애쓰는 것 같았고, 신체적 접촉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까이 다가갔다고 해서 질색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녀의 뒤통수로 삐져나온 머리털이 움찔거렸다. 원더스타인은 자신도 모르게 예전 버릇대로 그녀의 머리를 긁어주었다. 그러다 아차 싶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화를 내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빤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뭐 하는 짓이야.”

         

       그저 그렇게 차갑게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옆으로 슬쩍 물러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토요일 날 올릴 분량을 지금 올렸네요! 오늘은 3화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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