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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7

   아서는 예전부터 크라슈의 눈치가 빠름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에 능한 그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음속 깊이 숨겨 두고, 외면하여 잊었던 것까지 꿰뚫어 볼 줄은 몰랐다.

     

   아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꼭꼭 숨기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과 여러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 샘솟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기심을 자각하고 말았다.

     

   세상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여러 짓을 행한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연인에게조차 정작 그를 생각하기는커녕.

   오직 자신만을 위했다는 것 전부.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를 향한 환멸감을 견디지 못했다.

     

   「다시, 다시 할래.」

     

   어쩌면 첫 번째 회귀를 겪었던 아서는 크라슈의 조언을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세계의 멸망에 맞서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몇 번의 회귀로 찬란했던 아서는 마모되고, 깎여나가 자신을 향한 환멸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런 그녀가 택한 것은 도주였다.

     

   자신의 치부를 안 크라슈와 멸망해 가는 세상을 두고, 회귀한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이런 일도 없을 테니까.

     

   다음에 다시 잘하면 된다.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크라슈는 멍한 얼굴로 아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의 크라슈도 깨닫고 말았다.

   아서는 회귀로 인해 이미 망가져 버렸음을 말이다.

     

   아서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서가 회귀를 결심하고 스킬을 발동했다는 증거였다.

     

   크라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막아야 했다.

   이대로 아서가 떠난다면 그녀는 다음 회귀에서도 영영 망가지고 말 것이다.

     

   설령 그녀가 이번 세계에서 다시금 회귀를 택하는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상태로 그녀를 회귀하게 둬서는 안 되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크라슈는 반드시 그녀의 회귀를 막아야 했다.

     

   「멈춰. 아서! 멈추라고!」

     

   소리친 크라슈가 아서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결심을 마친 듯 죽어 버린 눈동자로 회귀를 발동시키고 있었다.

     

   「다음에는, 다음에는 더 잘할 테니까.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할게.」

     

   크라슈의 이가 바득 갈렸다.

   그동안 아서의 회귀를 막을 방법을 떠올렸지만, 크라슈는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서를 보니 깨달았다.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음을 말이다.

     

   「아서, 회귀는 널 언젠가 완전히 망가트릴 거다.」

     

   그러니 크라슈는 회귀하고 있는 아서에게 조용히 고했다.

     

   「난 네가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는 영웅왕이길 바랐어. 그리고 그 끝에 내가 함께 서고 싶었다.」

     

   크라슈는 씁쓸히 아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이의 눈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선택을 하는 내가 적어도 너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

     

   아서의 눈이 희미하게 크라슈를 향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서 그라말테, 나는 지금부터 네 회귀를 빼앗을 거다.」

     

   아서의 두 눈이 서서히 크게 뜨이기 시작했다.

     

   「네게 회귀를 들은 그날부터 난 블랙 후드의 조건을 맞췄어. 네 회귀를 빼앗기 위한 조건은 이미 충족되었다.」

   「……뭐?」

     

   아서의 눈이 당혹스럽게 떨렸다.

   동시에 크라슈의 손이 거세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블랙 후드를 발동시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회귀는 내가 받아 간다. 네가 지키지 못한 세계는 내가 지켜낼게.」

     

   크라슈의 눈은 진심이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회귀를 빼앗아 갈 작정이었다.

     

   아서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회귀를 빼앗기면 자신에게 무엇이 남지?

     

   없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회귀는 이제 그녀에게 전부였다.

   그걸 빼앗기는 순간 그녀는 텅 비어 버린다.

     

   「그, 그만, 그만둬!」

     

   아서는 정말로 자기 몸에서 회귀가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에 빠졌다.

   그녀는 몸서리치며 크라슈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저 블랙 후드의 사용을 감행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내 곁에 있었던 거야?」

     

   아서가 크라슈를 향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하지만 크라슈는 대답조차 안 하고 차갑게 아서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서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의 머리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이미 자신을 향한 환멸감으로 인해 그녀의 정신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크라슈가 회귀를 빼앗겠다고 선언을 해버렸으니.

   혼란스러운 정신의 종지부를 찍은 것과 다름없었다.

     

   평소라면 조금 더 그의 의중을 생각해 봤을 테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그럴 틈 따위 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생각은 회귀로 도망친다는 것에서 회귀를 지킨다로 바뀌었다.

     

   회귀를 빼앗기는 순간 남은 건 멸망하는 세계에서 발버둥 치다 죽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영영 지키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사명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크라슈!」

     

   결국 소리친 아서가 크라슈를 밀어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블랙 후드를 발동 중이었다.

     

   회귀를 빼앗기면 자신도, 세상도 끝장이다.

     

   그리 판단한 그녀의 허리에서 검이 뽑아 나왔다.

   뽑아 나온 검은 크라슈의 심장을 향해 내질러졌다.

     

   검의 섬광이 흩뿌려졌다.

   극혈침독을 익힌 크라슈는 창공의 세대에서 활동할 만큼 강자였다.

     

   그런 그를 한순간에 끝내기 위해 아서는 전력을 담았다.

     

   파각!

     

   아서의 전력을 크라슈는 피하지 못했다.

   그의 심장에 박혀 들어간 검에서 뿜어 나온 섬광이 그를 갈가리 찢어 나갔다.

     

   콰가가가가가가각!

     

   아서는 내지른 검과 함께 그 너머 크라슈의 마지막 얼굴과 마주쳤다.

   크라슈의 얼굴에 담긴 부서질 듯한 웃음은 그녀의 뇌리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앙!

     

   아서의 섬광에 뒤따른 충격이 주변을 초토화시켜 놓았다.

   그곳에 크라슈의 시체는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털썩-

     

   아서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회귀를 지키기 위해 연인을 제 손으로 죽인 그녀는 멍하니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크라슈의 핏물조차 묻어있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회귀는 빼앗기지 않는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여러 감정이 그녀를 지독히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 회귀해서…….」

     

   회귀해서 다시 바꾼다면.

   그리 생각한 그녀의 머릿속에 다시금 크라슈의 마지막 미소가 떠올랐다.

     

   어째서일까.

   회귀를 할 수가 없었다.

     

   설마 그에게 회귀를 빼앗긴 걸까.

     

   아니다.

   분명 자기 몸속에는 여전히 회귀가 남아 있었다.

     

   회귀를 할 수 없는 건 그녀가 지금 여기서 회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를 아서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어느새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먹구름이 하늘을 메꿔나갔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녀가 종적을 감췄다.

     

   세계가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회귀하지 못한 채 세상을 멍하니 보았다.

     

   회귀하고자 하면 그녀는 언제나 크라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였다.

   섣부른 회귀를 하려 할 때마다 크라슈가 떠올라 회귀하지 못하게 되는 저주.

     

   크라슈는 분명 자신의 회귀를 빼앗으려 했다.

   그는 자기 입으로 직접 회귀를 들은 날부터 빼앗을 준비를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죽기 직전 이런 저주까지 걸고 가다니.

     

   「……나쁜 놈.」

     

   아서는 크라슈를 욕했다.

   자신을 배신한 그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안다.

   아서도 멍청이가 아니었으니까.

     

   크라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가 자신을 왜 막으려고 했는지.

   그리고 정말로 그가 회귀를 빼앗을 수 있었는지, 혹은 그것이 연기였는지까지.

     

   그녀는 여러 가지 진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미워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었으니까.

   이기심 넘치는 자신은 그렇게 해야 버틸 수 있었으니까.

     

   「나쁜 놈아아…….」

     

   아서의 두 눈에 눈물이 뚝뚝 흘러넘쳤다.

     

   지독한 저주가 자신을 옭아매었다.

   이 저주는 아서가 회귀를 한다 해도 풀리지 않을 정말 지독한 저주였다.

     

   「차라리 빼앗지. 빼앗았으면 좋았잖아.」

     

   아서는 주저앉은 채 그렇게 며칠을 펑펑 울었다.

   몇 번이고 회귀하면서도 그녀가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었다.

     

   「……사랑했어.」

     

   이제는 한 줌의 조각조차 남지 않은 그에게.

     

   「난 정말로 널 사랑했었어.」

     

   자신을 사랑하기는 했냐고 묻는 그에게 이제는 닿지 못할 대답을 하며.

     

   「……그러니까 다음에는 빼앗아 가.」

     

   그가 언젠가 다시금 자신의 회귀를 빼앗아 가기를 결심한 날이 오는 그때.

     

   그에게 쥐여 주기 위해.

     

   「그때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할 테니까.」

     

   아서는 모든 걸 다해 살아가기로 했다.

     

   몇 년을 허송세월 보낸 그녀가 일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정복의 백기사가 강림하고 있었다.

   이 세계는 분명 끝을 고했다.

     

   남은 건 회귀뿐일 테지만.

   그녀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회귀하지 않았다.

     

   아서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필사적이어야만 했다.

   그것이 크라슈의 저주고, 약속이었으니까.

     

   사랑하기에 그가 자신에게 남긴 저주를 증오한다.

   나는 그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이 증오는 평생토록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가 언젠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날.

   마음속 깊이 새겨진 이 감정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증오하는 만큼 그대가 나를 증오하기를.

   .를기하랑사 를나 가대그 큼만 는하랑사 가내

     

   아서는 증오 속에 짓누른 감정과 함께 성검을 들어 올렸다.

     

   개안을 마친 성검이 거센 빛을 토해내었다.

   새까만 어둠이 드리운 세상을 빛낼 만큼 거센 빛이었다.

     

   성지의 안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성검에 신의 잔해들이 모두 흡수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서가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단 한 마리의 신의 사자도 아서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녀가 서둘러 크라드를 찾았다.

   그러자 곧 그녀는 멈칫하였다.

     

   그곳에는 엉망진창이 된 꼴로 서 있는 크라슈가 있었다.

     

   이미 앞에 정복의 백기사와 싸우느라 과도하게 힘을 소비했던 크라슈다.

   그 뒤로도 조금의 휴식이 주어졌을 뿐 한참을 달리고 난 뒤, 바로 성지에서 전투에 들어갔다.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었다.

     

   “크라드, 당신.”

   “……개안했냐.”

     

   크라드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아서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개안한 성검을 들어 보였다.

     

   “그래, 이걸로 정복의 백기사를 무찌를 수 있어.”

     

   크라드는 그 말을 듣고는 기다랗게 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곧 따라갈 테니 먼저 가라.”

     

   그의 숨은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그것을 가만히 본 아서는 고개를 숙였다.

     

   “무찌를게.”

     

   아서가 섬광과 함께 뛰쳐나갔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만, 마지막까지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정복의 백기사와 맞서고자 달렸다.

     

   어째서일까.

   크라드를 보고 난 뒤, 오늘따라 크라슈가 사무치게 그리운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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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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