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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7

    <307 – 유희의 시간>

     

    와이히엠하이 재단 이사장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머무르는 거처를 줄 세우자면 단언컨대 어느 누구에게서든 한 손에 손꼽힐 장소에서는 시음회가 한창이었다.

     

    “<월간미식회>에서 후원금의 답례로 진상한 통곡의 미주.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영혼의 절규가 입 안을 맴도는 맛이 나름 나쁘지 않군요.”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금주 중이라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런. 안됐군요. 이런 특별한 미주를 마시고 와인컬렉션을 늘릴 기회는 흔치 않은데.”

     

    부와 권력을 모두 지닌 이들은 필연적으로 이 세계의 강해지는 방법에 눈을 뜨게 된다.

    아이템 도감수집.

    무기상인이라면 무기를 수집하고 몬스터헌터라면 죽인 몬스터의 전리품을 수집하며 미술상이라면 미술품을 수집한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이사장은 그런 흔한 수집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부와 권력을 지녔다.

    그가 수집하는 분야 또한 하나에 치중되지 않고 온갖 분야의 다양한 컬렉션으로 넓혀졌다.

     

    “세상에 현존하는 물건을 손에 얻기란 간단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집품을 찾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미주는 제법 가치가 높죠.”

     

    와인잔 안에서 빙글 한 바퀴 돌리는 액체를 따라 작은 해골모양의 영혼들이 유리창에 낀 얼룩처럼 떠오르고 사라졌다.

     

    “상당한 고문기술과 납치기술, 영혼추출에 와인제조기술을 모두 겸비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제작난이도 5위계 이상의 와인. 권력이 없다면 얼버무릴 수 없는 극악무도한 술이지 않습니까. 달리 이름을 붙이자면 권력의 미주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비서실장은 미칠 것만 같았다.

    싱긋 웃으며 들이마시는 와인잔에서 들리는 비명과 절규만으로도 간담이 다 서늘해지는데 저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마시는 이사장의 정신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걸까.

    애초에 저딴 흉흉한 미주를 제조하겠다는 월간미식회에 순순히 후원금을 지불한 것부터 제정신이라고 부르기 힘든 인간이었다.

     

    “그래서 우리 말괄량이 따님께서는 이 파파의 시련을 잘 치르고 있답니까?”

    “방금 크루즈선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배의 목적지가 쿠에라니아 열도의 저택으로 변경되었으며 안라게의 사도에 의한 유혈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나는 살아남았습니까?”

     

    비서실장은 질문의 진의를 곧장 파악하지 못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이사장은 그 망설임마저도 통곡의 미주를 즐길 때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여운을 누렸다.

    그것이 꺼림칙했던 비서실장.

    그는 사고를 거듭하며 이사장이 조나의 생존유무를 가장 먼저 찾았던 이유를 속으로 궁리해보았다.

    승무원이 반이나 죽었지만 조나의 생존이 가장 중요한 이유.

    자신이 초대한 오크노디보다 조나가 우선시 되는 이유.

    이는 조나의 생존과 죽음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를까.

    조나는 이미 몇 번의 아가씨의 죽음을 겪었다.

    심지어는 아가씨를 살리고자 감히 재단에 반기를 보이기도 했다.

    조나가 살아있다면 오크노디의 안위에 해를 끼치는 일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가 죽었다면 오크노디의 안위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조나와 꼬리 둘, 아가씨와 친구들까지 전원 생존이 확인되었습니다.”

     

    입으로 내뱉고 나서야 비서실장은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안라게의 사도는 타락의 신을 모시는 자.

    사람이 지닌 소질Anlage을 강제로 일깨우는 악신에게 기존의 직업, 일상, 노력은 중요치 않다.

    그 사람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일깨울 수 있는 새로운 적성을 일깨우고 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것.

    자신의 소질을 따르기 위해 인생을 뒤바꾸는 것이 안라게의 사도에게 주어진 사명.

     

    ‘성물을 얻은 사도는 한술 더 떠서 소질을 지닌 육체의 주인도 제 멋대로 바꾸려 들지.’

     

    보다 우수한 영혼에게 우수한 신체와 적성을 새롭게 배정한다.

    육신의 그릇과 정신의 영혼을 뒤바꾸는 짓이 허용되는 것도 모두 신이 뒤를 돌봐준 탓이다.

    조나 와이히엠하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아가씨를 마족계약자 따위가 대신하는 행위를 용납할만큼 무른 남자가 아니다.

     

    ‘단 하나의 정보로 가장 중대한 갈등과 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었군.’

     

    이사장은 이 모든 인과관계와 욕망의 충돌을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가 이 판을 설계한 주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두려워졌다.

    이 사내, 자신을 파파라고 부르는 아이에게 일말의 정조차도 없는 걸까.

    그런 위험한 존재와 충돌할 수 있는 크루즈선에 오크노디를 불러내었다.

     

    “이런. 제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군요.”

    “실례했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우리 사이에 사과라니, 당치도 않지요. 피차 서로의 목숨을 한 번씩 빼앗으려 들었던 관계가 아닙니까.”

     

    신용이 없음을 알기에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그런 담백한 관계야말로 비서실장을 더욱 두려움에 빠뜨렸다.

    믿고 의지하지 않으며 아쉬움이 없는 관계란 언제든지 끝나고 단절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이 관계에는 어떠한 구속도 없다.

    봉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충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비서실장이 이사장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얻어내는 것.

    이사장이 그에게 원하는 것 또한 하나.

    자신을 죽이려 드는 애송이가 제 손 위에서 놀아나는 굴욕적인 모습을 관람하는 것.

    비서실장의 존재 자체가 이사장의 유희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적조차 부려먹는 이사장의 광기는 수석장학생 오크노디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통의 미주란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맛이 성숙하기 마련입니다. 제 취향은 짧고 스토익한 증류주가 아니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지금 저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평소의 성품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봐야겠지.

    물론 안심은 조금도 되지 않는다.

    느긋하게 고통을 주어 비명이 무르익도록 만드는 것이 취향이라는 인간에게 “천천히 마음을 졸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사장의 사람 좋은 미소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꺼림칙했던 비서실장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

     

    “오크노디양이 안라게의 사도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어떨까요.”

     

    빙그레 웃음짓는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말에 칩을 거는 도박꾼의 얼굴에 가까웠다.

     

    ‘실화냐…’

     

    언제나 그렇듯이 기가 질린 그에게 이사장은 조금은 수줍게, 약간은 뿌듯한 듯이 속모를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결과를 음미하였다.

     

    “겁도 없이 저를 파파라고 부르는 아이가 안라게의 사도에게 꺾였다면 그것 나름대로 유열감이 충족될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장난감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해낸 안라게의 사도라면 저희 새로운 딸로 인정할만한 자격이 있겠죠.”

    “그걸 기대하셨습니까?”

    “설마요. 한 번 가치가 다한 장난감이 재활용되는 것보다는 역시 새 장난감이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컸습니다. 오크노디는 제 기대 이상의 훌륭한 성과를 내어주었죠.”

    “조나의 성정상 안라게의 사도를 물리칠 가능성은 희박했으니 확실히 오크노디 양이 무언가 대단한 활약을 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활약? 크큭. 당신은 아직도 저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그 우둔함도 나름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비서실장이 멍청한 것은 조금 어떨까요.”

     

    오답이었다.

    이 남자가 바라던 답은 아닌가보다.

    비서실장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그 아이의 독심을 눈여겨본 것입니까?”

     

    이사장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친구가 아닌 승무원이라면 천 명이 죽더라도 개의치 않는 작전. 인적자원과 친구를 구분할 줄 아는 똑똑한 아이는 싫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덕분에 안라게의 사도를 꺾는 쾌거를 이루었지 않습니까.”

    “대신 신의 사도를 꺾어 신에게 원한을 사게 되었습니다. 타락의 신은 이 일을 경시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 24신격 모두에게 사랑받는 재능을 지닌 신의 장난감이 미움을 받다니요. 농담도 과하군요.”

    “…오크노디의 재능을 그 정도로 높게 보십니까?”

    “저 아이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인망으로는 용사를 뛰어넘었고 혹독함으로는 북부대공녀를 능가했죠. 카리스마로는 서귀연의 대공자를 능가합니다. 트럼프의 어디에도 쓰일 수 있는 조커Joker라고 할까요?”

    “…이사장님은 그 아이를 대체 무엇으로 만들고 싶으신 겁니까?”

    “그런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답이 정해진 소리만큼 따분한 소리도 없다.

    이사장의 얼굴이 일순간 지루함으로 물들었다.

    실수다.

    오직 흥미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

    그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벌어지는 참사들은 드래곤교장의 <유희>에 못지 않게 끔찍하다.

    자신의 실수에 잔뜩 긴장한 비서실장의 모습을 보며 이사장은 피식 웃었다.

     

    “부모란 모름지기 자식이 자신을 닮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오크노디의 행적에 대한 보고서를 손가락 하나로 툭툭 건드려 마나를 주입한 이사장.

    그의 손짓을 따라 크루즈선의 형태로 접힌 종이배가 와인잔에 퐁당 빠졌다.

     

    “권력만 있다면 어떻게든 쥐어짜낼 수 있는 값비싼 비명은 희귀할지언정 유일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희귀Rare함과 유일Unique함의 차이이죠.”

     

    “자신의 유희를 위해 세상을 뒤틀고 즐기는 법을 아는 자야말로 유일에 가까운 존재.”

     

    새로운 아이템.

    새로운 도감.

    새로운 유희에 굶주린 이사장의 눈이 세계전도 위로 떠오르는 크루즈선의 동선을 쫓았다.

     

    “파파의 지령을 무사히 수행한 유니크급 딸에게는 상을 주어야겠죠. 모처럼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아무도 없는 빈 저택으로 맞이할 수는 없으니까요.”

    “3분 내로 쿠에라니아 열도의 3번 저택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준비해두겠습니다.”

     

    재단의 이사장.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아이의 만남이 가까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진 테디베어는 하루에 두 편을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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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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