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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8

       카페는 티타임이 끝나는 시간에 닫기로 했다.

        

       애초에 본격적으로 카페를 하려고 열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아쉽지 않은 귀족 집 애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문화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은가.

        

       시간을 정해두고 번갈아 쉬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어차피 티타임이 끝나면 손님도 확 줄어든다. 아카데미 안까지 들어온 손님의 수는 한정적이었고, 한 번 온 다음 몇 번이고 다시 들리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게다가 아카데미의 축제는 아카데미의 축제만으로 끝이 아니다.

        

       아직 새해가 시작되려면 내일 하루를 더 지나야 했지만, 아카데미 바깥은 이미 연말 축제 분위기. 마침 평소와 다른 복장을 하기도 했겠다, 친구들과 단체로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그 분위기를 백 퍼센트 즐겨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도 그랬다.

        

       “마침 B반 애들이 연극을 할 모양이야.”

        

       앨리스는 미리 챙겨두었던 안내서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평소에는 그리폰 못지않게 고고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제일 신난 모양이다. 나야 어린 시절을 나름대로 친구들과 함께 보냈고, 본질은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였기에 앨리스만큼 신나지는 않았지만, 친구 없이 유년기를 보낸 앨리스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앨리스를 보니 마음이 조금 포근해졌다. 그래도 10대 시절은 빛나게 보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제이크는 C반을 도우러 갔다고 했던가요.”

        

       안내서를 들여다보느라 내 표정을 보지 못한 앨리스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 너머에 있는 샤를로트와 눈이 마주쳤지만, 우리 둘 다 그냥 웃어넘겼다. 괜히 앨리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가는 또 축제 내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 말 그대로, 제이크는 C반의 활동을 도울 예정이었다. C반에도 남자애들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연극의 내용상 제이크가 주인공인 쪽이 좋다는 모양이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혹시 금태양이 등장하는 불륜물이기라도 한 걸까? 확실히 평민 사이에서 NTR을 시전하는 캐릭터라면 금태양의 외모를 한 귀족이 엄청나게 어울릴 것 같기는 했다.

        

       이 시대 기준으로 괜찮은 내용인가, 그거?

        

       “연극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아. 한 30분 정도?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한 번 보는 것으로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앨리스가 안내서에서 고개를 들어 우리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니지, 정확히는 세 사람이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도망가려는 미아를 샤를로트와 내가 붙잡았으니까.

        

       “바로 근처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이 하는 연극인데 당연히 봐야죠.”

        

       “저, 저는 조금 쉬러 가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미아가 용기 내서 한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고로 클레어는 일을 마무리하고 합류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레오도 함께 모일 예정이었지만, 아까 카페 일을 하는 와중에 은근히 레오 옆을 떠도는 소피아를 보더니 마음이 바뀐 모양이다.

        

       ‘남동생의 연애사를 방해하면 안 되겠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작 내가 레오를 좋아한다고 오해했을 때는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방해했던 건지.

        

       “시간이 조금 남긴 하지만, 그렇다고 따로 할 일도 없으니까요. 먼저 가서 기다리도록 하죠.”

        

       샤를로트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주인공으로 굳이 다른 반의 남자애를 데려다 쓴 이유는, 캐스팅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여주인공이 로티였다.

        

       게다가 장르는 로맨스였고.

        

       이렇게 보니 C반 애들이 불렀다기보다는 제이크가 적극적으로 본인이 하겠다고 끼어든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연극이긴 하지만, 그거 괜찮은 건가?”

        

       볼을 조금 붉힌 앨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벨부르 기준이라면, 불가능한 건 아니죠. 연기한 사람이 귀족이라는 게 조금 걸리겠지만…….”

        

       그리고 샤를로트도 볼을 조금 붉히고 있었다.

        

       “대, 대단하네요, 두 사람…….”

        

       미아는 조금 멍한 표정이었다.

        

       연극은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의 로맨스 이야기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로미오와 줄리엣 스러운 이야기.

        

       30분 정도로 짧게 바꾸면서 이야기가 좀 심하게 급전개였고, 중간부터는 악당들이 너무 맥없이 떨어져 나가서 등장한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키스신 하나는 확실하게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진하게.

        

       아마 키스신은 있었어도 그걸 한 것은 제이크의 의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로티는 그 이후에 대사를 제대로 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어버버하는 그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참고로 스토리를 쓴 사람은 릴리 베이커였고, 은근슬쩍 제이크를 부른 사람도 그녀였다는 모양이다.

        

       정작 그 스토리를 쓴 본인도 그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모양이지만.

        

       “로티는…… 괜찮을까요?”

        

       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극이 흐지부지 끝나고 제이크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도 로티는 조금 멍한 상태였으니 걱정될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최근 들어서 엄청나게 가까워진 게 눈에 보였으니까. 심지어 제이크는 쉬는 시간이면 거의 항상 로티네 반에 가 있어서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뜻하지 않은 긴 휴일 동안 두 사람 모두 린드버러 영지에 돌아갔다가 왔다.

        

       그렇다는 건 정황상……

        

       “…….”

        

       아, 물론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긴 했다. 그건 진심이다. 일부러 두 사람이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어.

        

       내가 그저 지금 사귀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 뿐인 건—

        

       —아니다, 그래, 맞다. 사귀는 사람이 없어서 솔로로서 질투심을 불태우는 거다. 뭐 어쩌라고?

        

       두 사람도 어디 구석에 가서 서로 사랑하는 말을 속삭이고 있겠지. 아니면 연인답게 조금 전의 일은 뭐였냐고 투닥거리고 있을지 모르고.

        

       “……아마 두 사람이 알아서 잘하고 있을 테니,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도록 하죠. 여기 있다가는 다시 베이커 양의 아버지께 붙잡힐지 모릅니다.”

        

       “아, 맞네.”

        

       내 말에 앨리스는 정신을 차렸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고 생각하자. 그…… 사람이 싫다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노는 날에 일 얘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차마 같은 학교 다니는 애의 아버지를 욕할 수는 없었는지,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

        

       어린 시절에는 연말이 되면 들떴었는데.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즐거웠고, 조금만 더 하면 학업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즐거웠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좋았다. 연말에 몰려있는 휴일에 친구를 만나고, 방학 때 바깥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것이 좋았다.

        

       그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아마도 일하기 시작하면서가 아니었나 싶다.

        

       시험도 없고 학업에 짓눌리지도 않았지만, 방학은 없었다.

        

       친구들이 일하는 시간과 내가 일하는 시간이 달라서 만나려면 한참 전부터 시간을 조율해야 했다.

        

       길게 쉬는 날 없이 매일 밤늦게 퇴근하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소중해졌고, 시간이 나면 그냥 집에 틀어박혀서 체력을 보충하기만 했다.

        

       그렇게 똑같은 나날이 그냥 쭉 이어지다 보니 날짜가 바뀌어도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밖에 나갔으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기억나?”

        

       “어떤 기억 말씀이십니까?”

        

       “네가 온 뒤에 해마다 굳이 나를 불러서 첫날을 같이 보냈잖아.”

        

       “그랬어요?”

        

       앨리스가 하는 말을 듣고 샤를로트가 의외라는 듯 반응했다.

        

       “별건 없었어. 그렇게 오래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종종 하듯이 내 방에 찾아와서 차 한잔 마시고 간 거니까. 아니면 반대로 나를 부르거나.”

        

       확실히 그런 일이 있기는 했다.

        

       나는 그나마 학교라도 다녔지, 이쪽 세상에는 그런 것도 없었으니까.

        

       앨리스는 언제나 방에 혼자 있었다.

        

       매일 일만 하던 나를 겹쳐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뭔가 해주기에는 내 상상력이 너무 빈약해서, 그냥 매해 마지막 날, 첫날마다 한 번씩 들러서 안부 인사를 나누고 차 한잔 마셨을 뿐이다.

        

       “…….”

        

       앨리스도, 나도, 굳이 그 행위에 고마워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히려 어린 시절의 앨리스는 나를 엄청나게 경계했던 것도 같다.

        

       “그냥, 괜히 생각나서. 마지막 날은 내일이긴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잊어버릴지 모르잖아.”

        

       “그렇다면—”

        

       이야기를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던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친구들끼리 다과회를 가지도록 하죠.”

        

       “응?”

        

       앨리스가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고,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차피 그날도 아카데미에 나오게 될 테니까요. 한 해의 마지막을 친구들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그건 그렇네.”

        

       앨리스는 샤를로트와 미아 쪽을 보았다.

        

       두 사람 다 딱히 이의는 없는 모양이었다. 샤를로트는 둘째치고, 미아조차도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럼 그렇게 할까?”

        

       “그렇게 하죠.”

        

       앨리스의 말에 대답한 뒤, 나는 눈앞의 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들 즐겁게 웃고 있었다. 평소에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었더라도, 오늘만큼은 잊어버리고 싶다는 듯이.

        

       누군가가 축음기를 가져다 두고 캐롤이라도 틀어두었는지, 그 소리 때문에 거리가 한층 더 혼잡스럽게 느껴졌다.

        

       평소의 나라면 이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나 혼자 이 혼잡함 속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별다른 말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하는데도—

        

       솔직히, 꽤 즐거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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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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