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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8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니, 합스베르크 황제가 내 옆에 앉아있다.

     “…얼마나 잠에 들었던 겁니까?”

     “얼마 되지 않았네. 지금 시각이…새벽 5시로군.”

     

     합스베르크 황제가 자기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가리켰다.

     “그렇군요. 혹시 제가 졸면서 뭐 이상한 소리는 안 했습니까?”

     “혹시나 그런 게 있다면 어떨까싶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소리 없이 쥐 죽는 듯이 자더군.”

     다행이다.

     자다가 꿈에서 내뱉은 소리로라도 황제를 죽이겠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보다.

     나는 잠꼬대를 하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13살에 아스타시아나 나리아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능왕은요?”

     “아직 굳히는 중이라네.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더군.”

     시간은 내가 이곳에 도착하여 무능왕을 벽돌로 만들어 버리고 쓰러진 때로부터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았다.

     꿈에서 대화를 나눈 시간을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 것 같기는 하지만, 사고와 현실이 꼭 1:1에 맞춰 시간이 흘러가는 건 아니다.

     시간 끝만 하더라도 그런데, 꿈이라고 다를까.

     “우선 이 말부터 하자면, 진심으로 고맙네.”

     황제가 뜬금없이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제거했잖나.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무한히 늘어나는 황금을 상대로 머리를 움켜쥐었어야 했을 거야.”

     “…인간의 사회과학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니까요.”

     “대응하기 어렵다? 아니지, 그냥 대응 불가능한 문제지. 황금이 물처럼 쏟아지는데, 그걸 시장의 논리로 대응하려고 한 게 바보 같은 짓이었을지도 몰라.”

     황제가 가볍게 두 손을 들었다.

     “자네는 노스트럼의 기적을 상대로 멋지게 승리했지.”

     “기적과 권능을 쓰는 자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서 이긴 겁니다.”

     “아니야. 다른 왕이 그런 권능을 가졌다고 해도, 그 이상을 가졌다고 해도 자네라면 능히 이겨냈을 거야.”

     순간, 합스베르크 황제의 말에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다.

     “황제 폐하.”

     “왜 그러나?”

     “제게 뭔가 말할 것이 있는데, 지금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까?”

     “…역시 자네야.”

     황제의 말에서 자꾸만 미묘한 불편함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어쩐지 본인이 말하기를 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자네는 노스트럼을 믿나?”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노스트럼을 끝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폐하.”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노스트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제국 또한 빛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테르시안 제국이잖나.”

     “설령 합스베르크 제국이 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 보시든가요.”

     “기다린다?”

     “나리아 여왕에게도 한 번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너무나도 심각한 상황에 봉착하여 다급해졌지만, 나는 꿈속에서의 혼란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불확실성이 사라졌으니, 이제 노스트럼은 인간적인 수준에서 국가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할 겁니다. 예,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렇겠지.”

     막아야 한다.

     “나리아 여왕은 그래도 말이 통하기는 하더군. 그래. 사람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은 치워버리고 난 뒤에, 협상 테이블 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라면 큰 상관은 없으니까.”

     “합스베르크 폐하.”

     “하지만 물질은, 노스트럼에 깃든 드래곤의 기적은 논외야.”

     합스베르크 황제가 표정을 굳힌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노스트럼 왕국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기적을 찾아냈겠지.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며 사치와 향락을 즐겼지만, 그건 그가 이렇게 끝날 거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야. 알았다면, 결코 이렇게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지는 않았겠지.”

     황제는 알고 있다.

     노스트럼 왕족의 몸에 깃든 황금룡의 기적을.

     “자네는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나?”

     “…….”

     “한 인간의 감정에 세계를 맡기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지.”

     황제가 나를 한 손으로 가리켰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다. 하지만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은 마냥 믿을 수 없어. 그러니, 나는 내 생각대로 하겠다.”

     “폐하.”

     “나는 정말 많은 아이를 낳았지.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있어, 좋은 아버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등을 돌렸다.

     “애초에 나는 아버지가 뭔지도 몰랐어. 내가 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건 내가 내 이복형제를 죽이고 난 뒤, 18번째 황위 계승자로 인정받으면서 처음 황궁에 들어왔을 때였거든.”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다.

     “아버지란 무엇일까. 자식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버지일까? 나는 제국에서 수많은 남자를 보았고, 수많은 아버지를 죽였지.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평범한 아버지들과는 다른 아버지라는 걸.”

     “그거야….”

     자각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역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제가 뭐라고 생각한 줄 아시고.”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의 가족 관념은 정상이 아니다.”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애써 침을 삼켰다.

     “제가 테르시안 제국의 황궁에서 태어났다면 황제 폐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며, 폐하께서 저희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저와 비슷한 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내가, 지브롤터에서.”

     황제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그건 재미있는 발상이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

     “알고 있다네. 모든 걸. 단지 자네가 숨기려는 단 하나. 그게 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건….”

     “왜,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거지?”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자네는 처음 나를 보는 순간부터 나를 죽이고 싶어 했어.”

     “…….”

     역시나.

     역시-가 아니다.

     ‘젠장.’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숨겨왔는데,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도 해봤지. 노스트럼의 수호자로서, 12명의 아내를 들였던 그레이 변경백이었다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

     이 남자는 과거의 원한으로 인해 자신에게 살심을 품은 자들의 시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거로 돌아온 자네가 오직 아스타시아만을 찾는 건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봤지. 결론이 나왔고. 사람들이 거짓된 황금으로 봤던 건 세인트 지오가 되감은 세상이야. 다른 이가 감은 세상이 아니야.”

     합스베르크 황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약 1시간 전. 자네가 잠든 사이, 세이레네 백작령에 있던 그림자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네.”

     내가 바로 몸을 일으키려고 한 순간.

     “가만히, 듣게.”

     합스베르크 황제가 내 손등을 향해 정확히 손가락을 뻗었다.

     “……!!”

     움직일 수 없다.

     이미 손을 뻗기 직전, 손이 앞으로 나가려다 황제에게 막혔으니까.

     “과민반응이야. 내가 말하려고 하던 건 ‘자네가 겪은 시간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상황이거든.”

     “…….”

     “하지만 반응했지. 왜 그럴까? 나리아 여왕이 자네를 위해 감아준 세상에 대하여, 자네가 내게 숨겨야 할 문제가 하나 심각한 게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검이 빠져나온 거지.”

     황제가 나를 향해 쓰게 웃었다.

     “비약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군. 섭섭하네.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하지 않았나? 과거라는 건 그저 과거일 뿐, 현재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자고.”

     “…그렇기에, 검을 뽑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어찌할 것입니까?”

     “설득하고 타협하고 논의하면 좋겠지만, 국정이라는 게 그렇게 평화롭게 해결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황제가 내 손등에서 손을 떼어낸다.

     “역시, 자네는 내가 눈여겨보던 그대로야. 어쩌면 제국에서 자네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손가락에 꼽을 수도 없겠지.”

     그러면서 세 걸음 뒤로 물러나,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거리를 벌린다.

     “여전히 나는 자네가 나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몰라. 하지만 최악의 가정으로, 자네가 나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가령, 자네의 시간대에서 내가 아스타시아를 죽였다거나 그런 상황이라면.”

     황제가 한 손을 자기 가슴에 올렸다.

     “자네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믿는 것처럼, 이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믿어달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봐야 자네에게는 들리지도 않겠지.”

     “…….”

     “그런 걸로 설득될 일이었다면, 자네라고 하는 인간은 고작 그런 걸로 내게 살심을 지금까지도 품어왔지 않았을 것이야. 나는 자네를 알아. 자네도 나를 알지.”

     황제는 한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었다.

     “아무래도 자네의 시간에서 ‘나’는 이 찢어질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고, 자네를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만 했을 일이 있었을 것이야.”

     “…….”

     “그리고 그는 생각했겠지. ‘시간이 감기더라도, 과거의 나라면 회귀한 그레이 지브롤터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너라면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실제로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걸 포기하지 않았다네.”

     나도 모르게 오러를 일으킨 게 실수였을까?

     아니다.

     이 남자는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나를 상대로 긴장을 놓았던 적이 없었다.

     “자네는 참 대단한 존재야. 단순히 지브롤터의 핏줄이라고 해서 그런 걸 넘어섰지. 손에 꼽을 재능을 가진 자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노력을 보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자네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네.”

     내가 꿈속에서조차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죽이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던 건, 지금이라는 현실에서조차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 두 장, 아니 한 장 차이인가. 대단하네, 정말.”

     종이 한 장.

     “1년만 더 일찍 돌아갔어도, 아마 자네는 진작 내 목을 날려버렸을 거야. 노스트럼의 황금룡이 10살…인가? 그때로 되감기는 시간을 정한 게 참 다행이군. 9살이 아니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곳은 ‘적진’.

     “자네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현재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합스베르크 황제가 탁자 위에 놓여있는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사망. 그러나, 거짓된 황금은 사라지지 않았어.”

     금괴처럼 생긴 무언가.

     그곳에는 제국 중앙은행과 금 거래소, 그리고 제국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99% 유사하고, 1% 정도 조잡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인간은 죽었지만, 아직 노스트럼에는 황금이 넘쳐나. 이는 지금의 제국에 있어,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지.”

     “……설마.”

     “복잡하게, 회귀고 뭐고 그런 건 생각하지 말자고.”

     황제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나,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은 노스트럼 왕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황제가 웃는다.

     “개인적인 명분으로 말하자면, 황금룡의 기적이 드리운 국가를 멸망시키고 오직 인간의 사회과학으로 움직이는 인간 시대를 열기 위하여.”

     황제가 손목시계를 ‘정방향’으로 감는다.

     “제국의 황제로서는, 드래곤의 유산을 바탕으로 제국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왕국을 정복하여 물가 안정 및 화폐 가치, 그리고 제국 시민들의 가계를 지키기 위해.”

     시침이 어느새, ‘6’을 향하고 있었다.

     “자네와 나 사이에서 이야기하자면, 자네가 걱정하는 일 없이 마음 편하게 아스타시아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그래서 자네가 행복할 수 있게.”

     황제가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자네에게 완벽한 통일대륙을 물려줄 아버지로서, 기꺼이 내 손에 피를 묻히기로 했다네. 모든 더러움을 내가 뒤집어 쓰고, 자네에게는 가장 깔끔하고 아름다운 대륙을 물려주기로.”

     “……노스트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노스트럼은, 그래. …쓰레기야. 쓰레기는 치워야지.”

     황제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역사에 노스트럼은 존재할 수 있어도, 자네가 만들어나갈 시대에 노스트럼은 있어서는 안 돼. 그러니, 내가 피를 뒤집어쓰겠다. 그래, 전쟁이다.”

     “선전포고를…아니.”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몇 시간 전에 한 겁니까?”

     “오점이 없군. 완벽해.”

     황제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제국력 100년 1월 1일, 새벽 4시 33분. 자네가 침대에 쓰러진 시각.”

     황제는 내가 지쳐 쓰러진 순간, 저질렀다.

     “세이레네 백작령을 시작으로 하여, ‘지브롤터가 아닌 노스트럼의 모든 영지’에 선전포고를 했다네. 영지전처럼 말이야.”

     “그게, 무슨….”

     “억지냐고? 당연히 억지지. 아니면…노스트럼식으로 비유를 하면 되겠나?”

     황제가 웃는다.

     “나의 사위를 향해 매국노라고 욕한 자들에게 결투를 신청했을 뿐이야.  대부분의 올바른 아버지들은 자식이 모욕을 당하면 바로 나서더라고.”

     마치.

     “그게, 부성이라는 거겠지?”

     학습된 미소를 품에서 꺼내는 것처럼.

     “드래곤의 시대를 끝맺는 건 나다. 대신, 그레이 네게는 인간 시대의 시작을 물려주도록 하마. 그 시작은 세이레네 백작령.”

     시간은.

     “한 시간 전, 그림자들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되감을 수 없다.

     “세이레네 백작가는 제국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정 거 미리 풀어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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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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