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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8

   삼십 분 정도 만에 첫 번째 방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 후 아서는 흩어져가는 기사를 보며 어깨를 풀었다.

   

   “이제 첫 번째 방을 공략하는 것에도 익숙해졌군.”

   

   처음 던전에 발을 들였을 당시 아서 일행은 첫 번째 방을 돌파하는 데에만 몇 시간을 소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던전의 기믹을 하나하나 알아내며 여러 병사와 기사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각 난관을 통과하는 법을 알게 된 지금 아서 일행은 첫 번째 방을 공략하는 데 자그마한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정도로 능숙했다.

   

   “기믹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크긴 하네요.”

   

   자신이 마법을 쓸 틈조차 없이 끝나버린 전투에 조이가 어깨를 으쓱이자 아서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야 루시 알른은 모든 학생이 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을 테니까. 공략법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크겠지.”

   

   강하고 약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방을 공략하기 위한 기믹을 알아차린다면 누구나 방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설계해두었을 것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 괴악한 던전이 시험 문제로 출제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이 앞에 있는 두 번째 방도 그럴 것이다. 바로 가지.”

   

   일행 중에서 아서의 제안에 의문을 표하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루시와 함께 할 때에는 이보다 더한 고행이 일상이었기에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방에 들어선 순간.

   

   페이비는 빛으로 시야를 밝힘과 동시에 파티원들에게 여러 버프를 걸어주었고.

   

   조이는 언제라도 마법을 쏠 수 있도록 자신의 주변에 여러 개의 마법진을 띄웠으며.

   

   프레이 같은 경우에는 두 손으로 검을 쥔 채 신경을 곤두세우며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쳤다.

   

   허나 아서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검손잡이 위에 손을 올린 채 느긋허니 주변을 둘러볼 뿐.

   

   “3왕자님?!”

   

   그답지 않은 모습에 조이가 당혹을 표했지만 정작 아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늑대를 보고서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3왕자님. 죽으러 온 거야?”

   “아니. 공략을 하러 온 거다. 보고 있도록.”

   

   먹잇감이 앞으로 다가오자 늑대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아가리를 벌렸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쳤을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고 벌벌 떨었을 것이다.

   

   허나 아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의 머리를 가뿐히 집어삼킬 거대한 입을.

   

   철조차 가뿐히 꿰뚫어버릴 송곳니를.

   

   자신의 살과 혈액을 맛 볼 혀를.

   

   이윽고 아서의 머리를 집어 삼킨 늑대의 입이 닫힌다.

   

   “역시나.”

   

   그러자 기이한 일이 생겨났다. 늑대에게 당해 던전 바깥으로 쫓겨났어야 할 아서가 늑대의 입 안에서 멀쩡히 목소리를 낸 것이다.

   

   “…어?”

   “뭐…죠?”

   “도대체 무슨 일이.”

   

   다른 세 사람이 당혹을 표하건 말건 아서는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늑대의 입에 갇혀 있어야 할 그의 얼굴이 늑대의 몸통을 지나쳐 안 쪽으로 파고든다.

   

   “루시 알른. 그 녀석도 참 지독하다니까.”

   

   그 끝에 늑대의 한 가운데에 도달한 아서가 무언가를 걷어 찬 순간 깨갱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형상이 흩어지고 그 뒤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난다.

   

   “…아기 늑대?”

   “그래. 이 녀석이 우리를 몇 번이나 던전에서 내쫓았던 늑대의 정체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떨쳐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고 아서 일행조차 몇 십 분 버티는 것이 한계일 만큼 막강한 것이 늑대다.

   

   그런 괴물을 따돌리며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 일반 학생들에게 가능할 리 없잖은가.

   

   “…그럼 저희 늑대에게 당했을 때 왜 내쫓긴 거죠?”

   “늑대가 환각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공격당하면 내쫓는 식이겠지.”

   “아카데미의 던전이기에 가능한 방식이군요.”

   “그렇지. 하. 루시 알른 그 녀석. 머리를 잘 썼어.”

   

   덕분에 꼼짝없이 속아버리지 않았는가.

   

   토비 그 녀석이 던전을 공략한 걸 보지 않았더라면 한참은 더 헤맨 후에 해답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야.

   

   “루시 알른이라면 충분히 이런 걸 문제로 냈을 것이라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녀석.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식적인 선에서 문제를 냈군.

   

   교수가 잘 제지를 한 것인지 루시 알른 그 녀석이 신경을 써서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럼 이야기가 편해지지.

   

   앞으로의 방 또한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일 것이란 소리니까.

   

   아카데미의 모두가 공략할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단 가정이 갈려 있다면 답을 찾아내는 게 쉬워질 터.

   

   “그럼 저희가 여태까지 했던 여러 발악은.”

   “별 거 있나. 루시 그 녀석에게 놀아난 것 뿐이지.”

   “그러어언…”

   “완전 허무해.”

   “살짝 힘이 빠지네요.”

   

   자신들이 여태까지 해왔던 여러 필사적인 행동이 모두 호들갑에 불과했단 걸 깨달은 세 사람이 헛웃음을 흘리자 아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되었으니 다음 방이나 구경해보자고. 또 얼마나 괴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잖나.”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 사이의 격차를 생각해본다면 세 번째 방 또한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하겠지.

   

   그렇지만 괜찮다. 경향성을 알아냈으니 이번엔 공략하기가 수월할 터.

   

   두 번째 방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여 신이 난 아서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해버렸다.

   

   루시가.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있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루시가.

   

   공략자들이 경향을 파악해 나갈 것을 과연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세 번째 방으로 넘어간 아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취소! 취소다! 루시 알른 그 녀석에게 상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던전학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 녀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루시 알른에게 전권을!…”

   

   아카데미 기말고사의 첫 날.

   

   수많은 이들이 던전학 시험에 도전했지만 그 중에서 세 번째 방을 넘어선 이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

   

   ‘아무도 세 번째 방을 통과 못했다고요?’

   “우와~ 아카데미 학생들이 얼마나 허접하길래 아직 세 번째 방도 통과 못 했대?”

   

   던전학 교수로부터 현재의 진행상황을 들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 공략의 속도가 빠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아?

   

   “두 번째 방을 통과한 것도 각 학년의 최상위권 뿐입니다. 대부분은 두 번째 방에서 멈추거나, 첫 번째 방조차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진짜요?’

   “푸하핳. 진짜 상상 이상의 개허접들이네. 이 쯤 되면 가르치는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냐? 바보 교수?”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늑대를 환각 채로 부수는 광경을 보곤 이게 맞나 싶더군요.”

   

   뭐요?

   

   절대 공략할 수 없게 만들어 둔 늑대를 환각 채로 부쉈다고요?

   

   뭔 미친놈이 그딴 기행을 저지른답니까?

   

   “라흐비의 둘째 공자를 아십니까?”

   

   …아.

   

   힘이 충분하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단어를 인간으로 빚어낸 듯한 괴물이 상대라면 말이 되지.

   

   파괴의 신 세프트의 가호를 지닌 라흐비 가문의 쿠르텐 공자는 일종의 로망 캐릭이었다.

   

   강력한 한 방을 위해 모든 걸 내버린 듯한 스텟과 스킬 구성을 지닌 녀석은 이론상 최고 데미지를 이야기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존재였지.

   

   이런 로망캐들이 다 그렇지만 실전성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컨셉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면 굳이 접근하지 않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뭐 어쨌든 파괴신의 가호를 지닌 쿠르텐 공자라면 늑대를 박살낸 것도 이상하진 않아.

   

   가호에 의해 환각을 이루는 마법 자체가 박살이 나버렸을 테니까.

   

   “생각이고 나발이고 동료들이 버티는 사이 힘을 모아 일격에 내리치는 전술이라니. 3학년이 지닐 사고방식이 아니잖아요.”

   

   분명 최선을 다해 가르쳤을 텐데 어쩌다 저런 바보가 되버린 걸까 중얼거리는 교수의 모습에 헛웃음이 샜다.

   

   그건 교수 잘못이라기보단 라흐비 쿠르텐이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인 것 같은데.

   

   ‘교수님. 크게 신경 안 써도…’

   “별 신경 안 써도 괜찮지 않아? 어차피 던전을 진행하다 보면 이 빡대가리 공자라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텐데.”

   

   “그 순간이 찾아와도 던전학 시험이 끝날 때까지 힘으로 해결하려들까 싶어서 그래요.”

   

   에이. 아무리 라흐비 쿠르텐이 뇌근육이라도 그 정도로 멍청하진.

   

   …걔라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긴 하네.

   

   “하아. 정말 제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난 회의에 빠진 던전학 교수에게 무어라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옆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보자. 지금 세 번째 방에 도전 중인 사람들이 누가누가 있을까?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아서의 이름이네.

   

   토비에 이어 두 번째로 늑대가 환각인 걸 알아차렸구나.

   

   아카데미 전 학년 중에서 2등이라는 건 분명 대단한 성적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기대보단 낮은 성적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알려준 게 몇 갠데 세 번째 방에서 헤매는 게 말이 돼?

   

   그 정도쯤은 가뿐하게 넘어가줘야지!

   

   이런 식이면 내가 바라는 이상의 마검사가 될 수 없다고!

   

   알겠어. 아서. 내가 여태까지 널 배려해서 살살 굴린 게 잘못됐던 모양이야.

   

   원래는 방학 때 알아서 수련하라 내버려 둘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변경해야겠어.

   

   자칼을 데리고서 할 생각이었던 수련에 아서도 끼워 넣자. 죽어라 구르다 보면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겠지.

   

   내 친구들 말고 다른 이름들은…

   

   애버리 얘는 토비한테 버스 탄 걸 테니까 신경 쓸 필요 없고.

   

   2왕자가 명단에 있는 건 좀 신기하네.

   

   이 근육뇌가 어떻게 늑대가 환각이란 걸 알아차린 거지?

   

   아아. 제프가 같이 있구나. 얘가 두뇌 역할을 대신해줬다면 이해가 되네.

   

   시스콘이란 걸 제외하면 2왕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한 인간이니까.

   

   으음. 나머지는 대부분 3학년들이네.

   

   그래도 여러 던전을 공략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건가?

   

   몇몇 2학년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크게 신경 쓸 이름은 없고.

   

   1학년 중에선.

   

   비시?

   

   아니 얘가 어떻게 두 번째 방을 통과한 거야?!

   

   늑대를 공략하긴 커녕 첫 번째 방을 통과할 수 있을까 없을까 싶은 녀석이 도대체 어떻.

   

   아! 맞다! 지금 얘 옆에 아드리가 붙어 있지!

   

   아드리 그 할망구가 기믹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면 이 성적을 이해할 수 있어.

   

   그 녀석의 통찰력은 아카데미 학생 수준에서는 치트키가 다름없을 테니까.

   

   아직 세 번째 방을 통과 못한 걸 보면 정답을 다 알려주는 수준은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나중에 자제하라 그래야겠다.

   

   이래서야 시험을 치르는 의미가 없잖아.

   

   “하마터면 본론을 잊어버릴 뻔 했군요. 알른 영애.”

   

   명단을 모두 확인했을 즈음. 간신히 회의에서 빠져나온 교수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시험 2일차부터 하나씩 주어질 힌트의 내용에 대해서 입니다만.”

   

   그녀가 앞으로 내민 것은 내가 직접 작성한 힌트 목록이었다.

   

   생각해봐.

   

   시험의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서 수많은 학생들이 낙제하게 된다면 그 원망이 어디로 향하겠어.

   

   나한테 올 거 아냐.

   

   안 그래도 사람들한테 미움을 사는 나인데 지금보다 상황이 악화되는 건 좀 그렇다고.

   

   그래서 난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힌트를 만들어냈다.

   

   저걸 읽고 열심히 도전하면 낙제는 면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만 들으면 캬! 알른 영애! 완전 천사야! 라는 소리가 나올 선행이다만 저 힌트 목록에는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다.

   

   “정말 ‘반가워~♡ 힌트를 보러 온 허접아♡ 눈은 달려있지?♡ 그 개허접 병사한테 이상한 부분 하나 못 찾아냈어?♡ 아! 맞다!♡ 이 힌트를 볼 개허접이면 아무것도 못 하고 쳐 발렸겠네♡ 푸하핳♡ 완전 한심해♡ 혹시 힌트 보고도 무서워서 못 들어가는 거 아냐?♡…’ 라는 문구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배포할까요?”

   

   바로 내가 직접 작성했다는 것.

   

   ‘아뇨! 제발 수정해주세요! 본래 내용으로 되돌려 주세요!’

   “당연한 걸 왜 물어 보는 거야? 힌트에 매달리는 개허접들에겐 그 정도가 적당해.”

   

   갸아악! 뭐가 적당하긴 적당해!

   

   저딴 문구를 그대로 배포했다간 내 평판이 나락을 가고 말 거라고!

   

   쓰잘데기 없이 번역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제대로 말하란 말야!

   

   ‘수정해줘어어어!’

   “하아. 정말 같은 대답을 몇 번 해야 하는 건지. 교수면서 금붕어보다 멍청하면 어쩌자는 거야.”

   

   안돼애애애!

   

   나의 이미지가아아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파페포포님 10코인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품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독자님께 재미를 드릴 수 있는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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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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