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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8

    <308 – 해적식 인사법>

     

    승무원의 반이 갈려버린 크루즈선은 빈말로도 썩 좋은 분위기라고 할 수 없었다.

     

    “이번 항해가 끝나면 배에서 내릴 거야.”

    “포인트로 인생역전은 어쩌고?”

    “평범하게 재단의 지령을 수행하면서 벌래. 이런 항해는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해.”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여하가 아닌 일확천금만을 기대하며 배에 올랐던 승무원들은 운이란 행운만이 아닌 불운도 찾아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요행을 바라지 않으면 일상의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극복할 수 있지만 요행에 인생을 걸었다간 일순간의 불운으로 명을 달리한다.

    심지어 죽은 자들이 살아남은 이들보다 무언가가 특별해서 살아남은 것도 아니다.

     

    1번 우리부터 4번 우리.

     

    각기 다른 번호의 우리에 뭉텅이로 500명씩 감금당했던 승무원들.

    그중 마족계약자 로우의 의식을 끌었던 1번 우리와 2번 우리에 갇힌 것만으로 승무원들은 무더기로 죽음을 당했다.

    어쩌다가 3번이나 4번이 끌렸다면 죽은 자와 산자가 모조리 뒤바뀌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크노디 아가씨. 목적지까지 모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마족계약자의 손에 살해당한 승무원 중에 항해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크루즈선을 몰 수 없게 됐습니다.”

    “앗. 그거라면 괜찮아요. 학생중에도 배를 잘 모는 학생이 있거든요!”

     

    오크노디의 지목을 받은 지고쿠는 이게 맞나 싶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나야 좋기는 한데 정말 괜찮은 거냐? 해적한테 배를 맡겨도.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고?”

    “괜찮아요. 고양이도 복어는 먹으면 죽거든요!”

    “…”

     

    하긴 이런 위험한 배를 낼름 집어삼키려고 들면 탈이 나도 단단히 나겠지.

    지고쿠는 솔직히 늦게 나서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백번도 더했다.

    선상반란 학생들.

    레이브 교수.

    안라게의 사도.

    온갖 소란 속에서 만일 그들이 첫 주자로 나섰다면 진즉에 우리에 갇히거나 제물로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눈치를 살피며 미적거린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고쿠 선장! 그럼 우리도 배를 모는 거야?”

    “선장님이라고 경어를 붙여. 혼자 몰기는 귀찮으니 뭐 같이 몰까.”

    “우와! 약소잡졸해적이라서 평생 해적질이나 하면서 살 줄 알았는데 배를 모는 경험까지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래서 배는 어떻게 모는 건데? 노 같은 거라도 젓는 건가?”

    “바보야. 이건 갤리선이 아니잖아. 이 큰 배를 노로 저으면서 다니려면 지하에만 마나사용자가 수천 명이 들어가 있고도 남겠다.”

     

    그럼 진짜로 어떻게 모는 거지?

     

    “이런 배는 일단 기계화가 되어있다. 너희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마나를 불어넣고 좌표만 지정하면 자동항해기능을 이용해서 이동하지. 암초위험지대를 맞이할 때나 조타수가 깔짝깔짝 손을 대고.”

    “그럼 저흰 응원 담당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냐? 배의 주요기능이 전투에 동원되어서 기계장치가 전부 망가졌어. 비상시에 대비하여 마련된 수동 장치를 가동해야해.”

     

    지고쿠는 창고의 비상적재함을 뻥 걷어차 열었다.

     

    “자. 연장 하나씩 챙겨.”

     

    지고쿠해적단의 삼류허접졸개단원들은 지고쿠가 넘겨주는 삽을 한 자루씩 받았다.

     

    “뭐지? 이 삽은 뭘 암시하는 거지?”

    “게으름을 부리는 승무원들을 삽으로 후려치라는 뜻일지도 몰라. 우린 해적이잖아.”

    “오오!”

    “무슨 헛소리들이야? 가서 승무원들이랑 같이 석탄 캐다가 집어넣어!”

    “…….”

     

    꿈도 희망도 없는 말단해적의 실상!

    심지어 해적들은 승무원들에게도 눈총을 받았다.

     

    “저 녀석들 복면을 쓰고 대강당에 들이닥쳤던 그 해적들 맞지?”

    “그때 훔쳐갔던 보석 아직도 안 돌려줬어…”

     

    승무원들은 가장 힘든 노동현장에 해적들을 적극적으로 투입하였다.

     

    “너무 중노동이잖아.”

    “팔이 부러질 것 같아.”

    “엄마 보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얼굴에 검댕이가 잔뜩 묻은 단원 한 명이 슬그머니 바깥의 눈치를 보았다.

    우리가 이렇게 불쌍하게 일하는데 선장한테 뭐라고 말 좀 해줘!

    승무원들 몰래 고개를 빼꼼 내밀어 다른 학생들에게 입모양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는 단원!

    불쌍함을 어필하는 단원에게 한 학생이 창문 너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눈을 마주쳤다.

     

    “헉!”

     

    갑작스러운 아이컨택에 당황해서 뒤로 넘어졌던 단원은 눈을 마주친 대상의 정체에 더 놀랐다.

    볼에 반창고를 붙인 매스각키 황녀가 눈에 힘을 주며 웃었다.

     

    “어라~? 전투 내내 간만 보면서 힘든 일은 하나도 안 하고 날먹만 했던 삼류잡졸단원이네♡”

    “윽. 제국의 황녀…”

    “설마 하는 것도 없이 조금 팔이 아프다고 도망칠 셈은 아니겠지~? 화가 난 동급생한테 맞아죽고 싶은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바보가 있겠어~?”

     

    매스각키 황녀의 옆으로 험상궂은 털보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말만 해라. 도망치는 놈이 있다면 봉으로 뚝배기를 깨버릴 테니깐.”

    “…”

     

    그 어렵다던 변방과 제국의 대통합을 이루는 매스각키 황녀와 손오천의 연합!

    진영논리를 떠나 죽을 위기를 넘긴 학생들의 대통합에 간만 보던 해적단원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삼류잡졸해적단원들은 날먹의 업보를 벗어날 길이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머금으며 삽을 들었다.

     

     

    * *

     

     

    단원들의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즈음, 마침내 목적지인 섬이 육안에 포착되었다.

    뱃고동 소리로 넓은 크루즈선의 곳곳에 있던 승무원과 학생들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모두가 선창으로 몰려나와 섬을 구경하였다.

     

    “우와. 건물 짱 크다.”

    “뭐지? 마탑인가?”

    “재단의 비밀기지일지도 몰라.”

    “이런 정체불명의 섬에 저만한 규모의 건물을 올리다니. 재단의 귀중품을 모아둔 보물고라도 되나?”

     

    수많은 학생들의 물음에 오크노디의 곁에 기립해있던 조나가 친절하게도 대답해주었다.

     

    “저곳은 쿠에라니아 열도라고 불리는 장소이며 지금 보이는 건물은 이사장님의 저택입니다.”

    “저게 다 집이라고요!?”

    “…우리 마탑보다 층수가 높은데?”

    “건물도 흙으로 지은 황색마탑보다 훨씬 호화롭고.”

     

    석화에서 풀려난 로지니와 그녀에게 팔을 잔뜩 꼬집힌 샌드쿠커는 저택으로 추정되는 탑을 시샘 가득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마탑의 탑도 30층을 넘기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지금 보이는 탑은 무려 50층도 넘었다.

    심지어 저게 ‘저택’이라고 불린다.

    재단의 스케일이 전 대륙에 암약하는 수준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너무할 정도로 부유했다.

     

    “황녀가 살던 궁전보다 큰데?”

     

    매스각키 황녀조차도 조금 당황할 정도로 대단한 규모의 저택!

     

    “저택이 큰 이유는 수집품을 저장하는 목적을 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집품이요?”

    “아가씨도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으시겠군요. 이번 기회에 살펴보십시오. 도감수집을 입버릇처럼 외치시는 아가씨에게는 견문이 넓어질 기회입니다.”

    “그럼 요리도 많아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조나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

    오크노디의 기대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지는 반면, 용사는 상당히 주눅이 든 채로 눈치를 보았다.

     

    “저길 가면… 그 지령이라는 걸 받게 되는 거야?”

     

    재단의 지령에 대한 소문은 들어봤어도 직접 이행해본 경험은 없는 초짜장학생다운 두려움!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의 하부조직인 <비밀장학결사>단원들은 곳곳에서 입을 꼭 틀어막으며 신입장학생의 얼빠진 소리에 웃음 지었다.

     

    “시작부터 어려운 지령을 줄 리가 없잖아.”

    “지령은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거나 재단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열등한 장학생에게 주어지는걸.”

    “신입일 땐 오히려 대우가 좋았지?”

    “아 그립다.”

    “나도 신입일 때로 돌아가고 싶어.”

     

    장학생이 된 것을 후회하는 이들도 초창기만큼은 그땐 좋았지 라며 회상할 정도로 재단의 초기투자는 훌륭했다.

    라면 끓이는 법을 배우려고 5년간 설거지를 하거나 용병일을 배우겠다고 짐꾼만 5년 하는 평범한 생산직 종사자나 모험직 종사자에 비하면 양반일 정도!

     

    “무서우면 손이라도 잡아줄까요?”

    “윽. 어린애 취급하지 마.”

     

    오크노디의 제안을 거절한 이슈타르의 손을 누군가가 꼭 붙잡았다.

     

    “허세 부리지 마요. 이렇게나 떨고 있으면서.”

    “유피!”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운 줄 알고 있으면 부끄러울 일을 하지 말았어야죠. 후견세력 구하겠다고 전에 멋대로 절 기절시킨 벌이에요.”

     

    유피의 적극적인 태도에 로지니와 아카디아가 동시에 눈을 반짝였다.

    로지니의 시선은 샌드쿠커에게 향했지만 아카디아의 시선은 오크노디에게 향했다.

     

    “뭐, 뭐야.”

     

    눈치도 없고 숫기만 많은 샌드쿠커는 기겁하며 도망 다녔지만 오크노디는 은근슬쩍 손을 잡는 아카디아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맡겼다.

     

    “아카디아도 무서워요?”

    “디가 무서울까봐요.”

    “제가요?”

     

    눈이 동그래진 오크노디에게 아카디아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디의 파파는… 무서운 분이시잖아요.”

     

    선창에 올라온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딸아이를 마중 나온 배에서 승무원 절반이 죽을 대참사를 준비해둔 파파다.

    이런 사람이 무섭지 않다면 세상에 무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가? 잘 몰?루.”

    “크흑. 저 아이, 평범한 가정이 어떤 건지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자기 파파를 무서워할 줄도 모르나봐.”

    “불쌍한 녀석.”

    “재단 진짜 용서할 수 없어.”

    “용서할 수 없어가 아니라 제발 살려줘부터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번엔 함정을 심어둔 파파 본인을 만날지도 모르잖아.”

    “설마 자기 집에서까지 크루즈선에서 겪은 것처럼 끔찍한 함정을 팠겠어?”

     

    집은 쉬기 위한 곳인데.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환대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선은 지켜 주리라.

    그러니 우리도 눈치껏 적의를 감추자.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 적당히 잘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크노디 몰래 암묵적인 약속을 주고받는 학생들!

     

    “근데 배는 왜 안 멈춰?”

    “섬이랑 점점 가까워지는데?”

     

    모두가 당황해서 조타실로 뛰어갔다.

    조타실의 새로운 주인이 된 지고쿠가 무언가를 한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 물건은 한때 레버 역할을 수행하던 녀석이었다.

     

    “뭡니까 그건?”

     

    불길한 예감을 감추지 못한 지젤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었다.

     

    “아아. 이건 브레이크라는 녀석이다. 지금은 부러져서 작동하지 않지.”

     

    지고쿠의 당당한 대답에 직접 물었던 지젤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오크노디 파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각오가 무색하게도 총 톤수 20만 톤, 격전을 거쳐 줄어든 현재 톤수조차도 12만 톤에 달하는 크루즈선이 섬의 모래사장을 갈아엎으며 저택을 향해 돌진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해적식 인사법은 충각 돌진이 상식!

    오늘도 다음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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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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