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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티파티에 초대한 친구들의 목록에는 일단 그날 나와 함께 법국에 있었던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올라가 있었다.

        

       그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으로서 인제 와서 하기에는 너무 늦은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친구들을 모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친구 중에는 밖에서 다른 친구들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한 해를 맞이하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긴 있겠지만, 사실 서른쯤 되면 하나둘씩 결혼할지 말지 간 보는 여자친구가 생기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은 보통 자기 여자친구와 그날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자리에 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나와 그 친구 둘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전부 모이는 모임이라면 각자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 소개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여자친구가 없는 나는 그런 자리에 굳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1월 1일을 굳이 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1월 1일이 가족 행사인 경우도 많고.

        

       특히 상대가 귀족이라면 더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아이디어를 낸 다음 날에서야 기억났다.

        

       “응? 딱히 그런 거 없지 않아?”

        

       하지만 나의 말을 들은 앨리스는 별거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귀족 중에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새해 마지막 날, 그리고 첫날의 연회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 법이잖아?”

        

       ……아, 그렇겠네.

        

       ‘귀족’들이었으니까.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말 그대로 연회를 연회로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1월 1일의 파티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나는 곧장 납득했다.

        

       내 주변 친구 중 그런 파티를 즐기는 애는 없다. 음, 샤를로트 정도라면 그럴 수 있다고 보긴 하는데, 그것도 진심으로 즐긴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니는 것 같았다.

        

       만약 정말로 즐기고 싶었다면 제도 내에서도 연회가 엄청나게 자주 있었다. 왕가의 이름을 대면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텐데 굳이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 연회 자체를 즐기는 성격은 아닌 거겠지.

        

       앨리스는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그런 곳에 가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천성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 환상 속의 세계에서도 내가 일부러 명성을 만들고 나름대로 유명해진 다음에도 앨리스는 한참 동안 연회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쪽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 앨리스랑 같이 그렇게 지낸 클레어도 마찬가지고.

        

       클레어의 남매인 레오도 마찬가지다. 안 그러면 사람이 그 정도로 숙맥일 수가 없다. 남자 귀족은 연회에 나가면 거의 무조건 춤이라도 한 곡 추게 되니까.

        

       로티는 참석했더라도 제대로 된 귀족 취급을 받지 못했을 거고, 제이크는 그런 로티를 보호하기 위해 연회에 참석했을 테니 연회 자체를 별로 즐겁게 즐기지는 못했을 거다. 여자들을 그렇게 이끌고 다니면서도 정작 사귄 여성은 로티뿐이니까.

        

       소피아도 그런 규모 있는 연회에 열심히 드나들기에는 위장 신분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게다가 본인은 상당히 독실한 종교인이라 그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을 거고.

        

       미아는 뭐……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다.

        

       “왜 그래?”

        

       내 표정을 보고 앨리스가 되물었다.

        

       “아뇨, 그게…… 아무래도 주변에 있는 귀족 중에서 전형적이라고 할만한 귀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제일 특이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나의 말을 들은 앨리스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

        

       내가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 뭐 대단한 파티를 하자는 소리가 아니었다.

        

       앨리스가 떠올렸던 것처럼, 그냥 말 그대로 가볍게 차나 마시자는 소리였다. 혹시라도 정 자고 가고 싶다면 방 정도는 내어줄 수 있다는, 그런 소리였는데.

        

       “……왜 테이블에 술 궤짝이 올라와 있는 겁니까?”

        

       그렇다. 차 세트를 올리기 위한 둥근 테이블에 참 당당하게도 술병이 가득한 궤짝이 올라와 있었다.

        

       별로 고급술도 아니었다. 사실 귀족가에서 마시기에는 영 이름이 떨어지는, 그런 술이었다. 그걸 내가 아는 이유는 그 술이 요리용으로 쓰이는 거라는 것을 이전에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날에는 진탕 마시는 게 최고니까. 그리고 그런 용도로 고급술을 쓰면 맛이 안 살거든.”

        

       그 궤짝을 올려둔 제니퍼는 그렇게 대답했다.

        

       “뭐, 그래도 학생인 너희들에게 줄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라.”

        

       나는 제니퍼를 초대한 것을 진지하게 후회했다.

        

       “제자가 뭘 모르는 것을 사과하마.”

        

       그리고 그런 제자 앞을 가로막듯 나타난 검성은 술 궤짝 위에 이제 막 먼지를 털어낸 것 같은 엄청나게 오래되어 보이는 병을 올려두었다.

        

       아예 유리병도 아니었다. 하얀 도자기로 된 걸 보니 동방 어디선가 들어온 독주인 모양이다.

        

       “원래 진탕 취하기 전에 먼저 비싼 술을 음미하는 거다. 그래야 좋은 술이 왜 좋은 술인지 알 수 있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술맛도 모르는 애송이들한테 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검성을 부른 것도 후회했다.

        

       그날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라서 부르지 않는 것이 영 도리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불렀는데, 부르자마자 이렇게 술을 잔뜩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정말이죠? 정말 학생들한테는 안 먹이시는 거죠?”

        

       그리고 우리 담임인 캐롤린이 물었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다. 보통 교육자는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술에 대한 거야 내가 안 마시면 될 일이긴 했지만, 문제는 장소였다.

        

       내가 장소를 내 방으로 고른 이유는 진짜로 ‘티타임’을 가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 내 방에 계속 이것저것 꾸밀만한 것들이 들어오는 거지.

        

       별다른 장식이 없던 살풍경한 방은 지금은 분홍색 레이스가 이곳저곳에 달려 있었다.

        

       “아, 그거.”

        

       내가 물어봤더니, 앨리스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그게, 네 방에 여러 귀족을 초대했다고 미리 말했거든. 아무래도 방문한 사람들이 죄다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가볍게 모임을 즐길 생각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사용인들이 연회로 받아들인 모양이야.”

        

       게다가 그 ‘파티’는 당장 오늘로 예정되어있었다.

        

       결과적으로, 촉박한 시간에 황궁 내의 관료주의까지 겹치고, 공증을 황태녀가 해주었다는 증언까지 겹쳐서 ‘지금 당장 연회 준비를 해야 한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모양이다. 그 과정이 워낙 긴박하게 척척 이루어진 나머지 ‘연회 장소가 어째서 연회실이 아닌가’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

        

       내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앨리스를 빤히 바라보자, 앨리스는 시선을 피했다.

        

       “언니!”

        

       그리고 그런 우리 사이로 끼어든 사람이 한 명.

        

       “이렇게 모였으니 사진 찍자! 1학년도 곧 막바지잖아. 이렇게 사진 찍기 좋은 날이 또 어디 있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클레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나는 술이 궤짝 단위로 올라가 있는 테이블과 방을 꾸미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용인들과 그런 사용인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손님들을 보았다.

        

       그리고 차라리 준비가 끝날 때까지 나가 있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안뜰에서 같이 촬영하도록 하죠. 마침 그리폰도 거기 있으니.”

        

       ‘마침’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그리폰은 언제나 거기 있긴 했지만.

        

       내 말에 클레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

        

       그리고 그건 꽤 좋은 선택이었다. 아직 하늘에 해가 살짝 걸려 있었고, 덕분에 노을만으로도 빛이 충분했다.

        

       그리폰은 카메라가 무엇인지도 모를 거다. 보는 것은 처음일 테니까.

        

       처음 여기로 나오자고 한 건 그 혼잡한 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나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폰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이야기로는 남아있는데 영상자료로는 없다고 하면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뭐, 후손들 이야기는 후손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그보다 나한테 후손이라는 게 있을지 없을지.

        

       …….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충분하겠지.

        

       우리는 아직 어리다. 내가 아무리 원래 나이는 서른이다 뭐다 해도, 결국 남들에게는 열여섯으로 받아들여질 뿐.

        

       그렇다면 앞으로 시간은 많다.

        

       이야기를 어떻게 써갈지는 천천히 생각해나가면 될 일이다.

        

       “전부 모였지? 좋아.”

        

       언제 준비했는지 삼각대까지 챙겨온 클레어였다.

        

       다른 사람 시켜도 될 텐데 굳이 본인이 직접 세팅하는 것을 보면, 사진 찍는 것에 재미들 붙인 모양이다.

        

       ……만약 원작이었다면—

        

       —아니,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원작이 어쨌건, 지금 우리는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

        

       아무도 죽지 않고, 모두가 살아서. 완벽한 결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가 웃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

        

       “자, 그럼 모두 웃어주세요!”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더니, 카메라의 레버를 당긴 뒤 이쪽으로 얼른 뛰어왔다.

        

       우리 사이에 비어있는 자기 자리로 들어가 척 서는 모습은 단련된 사람의 것 그대로였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 모두가 웃고 있는,

        

       그리고 그사이에 내가 분명하게 끼어있는,

        

       해피엔딩.

        

       내가 여기 처음 오는 순간부터 여겼던 것이 바로 이 결말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안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이후에는 본편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if 스토리를 외전으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그리고 앞으로도 따라와주실 분들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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