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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내가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휴고는 저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를 뻔했다. 그 특이한 그랜트가 또 꽂혔다.

       

       “아 정말 저를요?”

       

       막 들어선 여자를 아주 기묘한 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니.

       

       동양의 예절은 몰라도 그런 노골적인 시선은 누구나 난감할 거라며 휴고는 그랜트를 속으로 수십 번 욕했다.

       

       “저도 오늘 미팅을 많이 기대했는데.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데보네어 이도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면이 익숙한 듯 돌아온 건 형광등보다 밝은 여자의 눈웃음. 역시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인 만큼 프로정신이 있는 걸까.

       

       “이제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상대측 사장은 묘한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는 그 웃음에 정신을 차렸다.

       

       “네, 아티스트분들을 이렇게 만나 기쁩니다.”

        

       그래, 동서를 불문하고 세계적으로 먹힐 거라 확신할 수 있는 외모를 가진 아티스트들의 등장은 분명 잠깐 자신을 동요하게 만드는 데에 충분했으나 어차피 마지막 단계만을 남은 계약의 글귀에 큰 변화는 없을 거였다. 

       

       “그럼 앞서 조율된 저희의 세부 조항과 미래 비전을 다시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휴고는 그리 되새기며 차분히 서류만을 바라봤다.

       

       “저희 워너 레코드사는 여러분의 재능과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신뢰성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딱히 멤버들을 마주보기 부끄러워서 보단! 저 늙은이 그랜트처럼 빤히 바라보는 건 엄청난 실례니까.

       

       “그러지 말고.”

       

       하지만 휴고는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쯤에서 잠시 재미없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둘까요?”

       

       그랜트의 노망은 기어코 자신이 보고 있던 서류를 다짜고짜 옆으로 밀어치워 버렸으니.

       

       “도희, 당신이 이번 앨범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또 그 기묘한 열기를 참지 못한 듯했다.

       

       “저는 그런 것부터 대화하고 싶군요. 우리의 비전엔 그런 것이 우선하지 않겠습니까?”

       

       계약 이후에 질의시간을 가져도 충분한데 말이다. 하지만 이미 그랜트가 질러버렸다면 휴고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맞아요. 혹시 저희의 앨범을 들어보셨어요?”

       

       “그럼요. 날짜에 맞춰진 감정을 노래하는 앨범이라니! 너무나 훌륭하고 우아한 퀄리티의 앨범이였어요!”

        

       저 모양일지라도 그랜트는 워너 레코드사의 오래된 최고 경영인. 협상 테이블에 있어 감히 권위를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사실 이번에 꽤나 한국에서 뜨거웠다는 이슈로 알게 됐습니다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마 앨범 해석에 있어 음악 평론가와 프로듀싱을 하고 있는 유튜버간의 의견이 갈리는 일이었죠?”

       

       결국 그랜트의 도희를 향한 질의는 자연스레 이 협상의 분위기를 저쪽, 두 사람의 대화로 옮겨버렸다.

       

       “물론 난 역시 유튜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만! 오늘 이 훌륭한 앨범의 제작자를 만나 직접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도희, 이 앨범 해석의 내용이 그게 맞을까요?”

       

       “아, 아… 그게.”

       

       그리고 도희란 멤버는 역시나 몹시 난처한지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얼추 맞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맞죠?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흐흐흐.”

       

       아, 좋아하는 거구나.

       

       “역시!”

       

       더구나 그 풋풋한 웃음에 덩달아 그랜트 역시 입매가 흐물흐물 허물어졌다. 

       

       “제가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겠군요!”

       

       이 치매 노친네는 자신이 아까까지만 해도 한국 출장 차에 들렸다며 허세 부린 것을 망각한 듯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휴고가 할 수 있는 건 계약을 시시각각으로 망치고 있는 그랜트를 속으로 욕하는 것뿐. 둘의 질의응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혹시 다음 앨범의 구상안이 있나요? 아! 물론 대외비라면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어, 아직 정확히 짜진 건 없지만…”

       

       모두가 도희를 바라보는 가운데, 도희는 옆의 디렉터를 바라봤다.

       

       [있으면 말해도 돼. 저측에서 유출할 일은 없을 테니까.]

       

       어떠한 허락을 받는 듯했다.

       

       “그렇겠네요. 사실 저희의 데뷔앨범부터 이번 앨범까지의 흐름이 결국 데보네어란 그룹이 어떤 그룹인가를 표현하는 시리즈였다면, 역시 이 시리즈의 완성은 모든 시선과 별개로 결국 데보네어가 하고 싶은 곡이 뭘까. 좀 더 얕게는 제가 하고 싶은 곡이 아닐까 싶어요.”

       

       “데보네어가 하고 싶은 음악이라! 듣기만 해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그럼 장르는요?! 장르는 무엇일까요!”

       

       “음… 저도 모르죠? 펑크, 디스코 혹은 일렉트로닉 하우스일 수도 있고, R&B 혹은 정말 클래식일 수도 있겠죠?”

       

       이도희는 이번엔 대답을 회피했다.

       

       “뭐 어느거든…” 

       

       명확하지 않은 말꼬리는 어째선지 어느 장르던 불가능은 없고 모두 자신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오케이! 사실 저는 데보네어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나는 정말 이번 앨범을 무척 밀어주고 싶었습니다.”

       

       반응을 조금 더 살피던 그랜트는 펜을 집어 들더니 결국 선언하듯 외쳤다.

       

       “허나 이 앨범의 스토리 라인을 완벽히 홍보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이 앨범의 감동은 발매 당일에 가장 격정적이었고, 데보네어가 북미의 최정상 아티스트 위치에 올라있었다면 세계 모두가 이 앨범의 완성도를 주목했겠지만, 사실 지금의 북미 인지도론 단 하나 각각의 싱글곡들로만 우선되고 있으니요.”

       

       펜을 꼬나쥔 그랜트의 손이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듯 화려한 필기체로 서류를 마구잡이로 낙서했다.

       

       “본래 그렇습니다. 대중성에 있어 하나의 싱글보다 전체 앨범이 우선할 순 없어요.”

       

       계약 서류가 무참히 꺽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앨범은 물론 각각 곡들의 퀄리티 역시 무척 믿습니다. 지금부터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라디오 및 토크쇼까지 나온다면 예상컨데 빌보드 100을 뚫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일 거라고요.”

       

       휴고는 결국 못 참고 불쑥 끼어들어 그랜트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눈치를 줬지만.

       

       “사실 나는 이미 그 정도의 흐름이라 보고 있으며 이미 많은 프로듀서들과 대화를 통해 직감한 내용입니다.”

       

       그랜트의 손짓엔 끝까지 망설임이 없었다.

       

       “이 동네에서 흔해빠진 수법입니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의 입장적 취약점을 강조하는 것은요. 분명 기업인으로서의 태도겠죠.”

       

       급박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기업이기전에 음악의 순수성을 사랑합니다. 훌륭한 아티스트에 매혹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음악의 순수한 팬으로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존중을 보이는 중입니다.”

       

       펜촉은 내려놨고.

       

       “나는 이 앨범이 빌보드에 드는 것은 결국 불씨를 발화시킬 부싯돌의 역할만이 남았다고 봅니다. 이는 우리 프로덕션이 아주 손쉽게 도울 수 있겠죠.”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주 웃어넘기고 있다.

       

       “이 앨범은… 그래요 K-POP 아티스트로선 딱 코랄블루만큼 만의 인지도가 생긴다면 반드시 명반이라 회자될 앨범이라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랜트가 서류를 돌려 멤버들 측으로 보였다.

        

       “하지만 하나 제안하고 싶습니다. 겨우 빌보드 100에 드는 것이 그리 중요하다 생각하나요?”

       

       이제 폐지가 되어버린 계약서엔 낙서 같은 필기체만이 가득했지만, 단 하나 단어는 보였다.

       

       “그래미를 노려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난 아직 K-POP에서 그래미를 받은 가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빌보드 1위를 수시로 한 NND조차 노미네이트만 됐을 뿐 그래미가 없지 않나요? 물론 노미네이트 역시 엄청난 영광이기에 감히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미 어워드.

       

       “다만 나는 이 앨범에서 대중성까지 포함한 그대들의 음악성을 무척이나 높게 평가하게 됐습니다. 그건 대중성 이상으로 음악성을 따지는 그래미의 본질에 유리하다고 봐야겠죠.”

       

       그랜트는 물끄러미 이도희를 바라봤다.

       

       “가장 영광스런 그래미 본상. 네,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대상 중 하나인 신인상을 노릴 생각이 있나요?”

       

       이도희는 떫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대답은 은근히 기세등등했다.

       

       “원래도 일단 저희 목표가 빌보드 1위라…”

       

       그랜트는 곧 관찰하던 시선을 거두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요! 내 생각은 이렇겠습니다. 이번 앨범까지는 흐르는 대로 둡시다. 북미에서의 토크쇼? 진행하지 말고요. 라디오 프로모션으로 충분히 빌보드 100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비록 이지리스닝 계열은 아니기에 그 이상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팬덤은 확실히 확장될 겁니다.”

       

       아주 발까지 동동굴렀다.

       

       “대신, 다음 앨범에선 시작부터 빌보드 100입니다. 주목할 신인의 등장입니다. 그건 팬덤이 준비되고 저희의 지원만 있다면 충분할 겁니다. 당연히 북미의 TV프로그램에도 나와줘야겠죠. 물론 이 선택은 여기 탑이스트분들께 맡기겠지만.”

       

       정말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제가 기대하는 건 음악, 앨범입니다. 다음 앨범엔 정말 하고픈 음악을 맘껏 해주세요. 그리고 내년엔 정규앨범도 내주길 바래요. 어차피 K-POP 그룹은 3년차면 보통 정규앨범을 내잖아요? 그래요. 딱 내년 첫 정규 앨범. 해당 앨범으로 그래미. 좋네요.”

       

       

       * * * 

       

       

       계약을 마치고 사옥을 나서는 길.

       

       “뭐가 그렇게 즐겁습니까. 계약이 다 망가졌는데.”

       

       휴고는 기어코 따로 도희와 독대를 한 번 더하고 돌아오는 그랜트를 노려봤다.

       하여튼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무슨 소리야? 구상해온 계약대로 됐는데.”

       

       그 뻔뻔함이 어이가 없다.

       

       “괜히 비율을 올려줬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먼.”

       “당연하죠. 아무리 좋게 봐도 현재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비율 조정이 말이 됩니까?”

       

       돌아오는 건 혀를 끌끌차는 그랜트였지만.

       

       “대신 우린 기간을 1년 늘렸지.”

       “겨우 1년을요.”

       “우리는 기업가지만, 음반사지.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음악을 좋아하는 프로듀서들과도 직접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거야.” 

       

       웃음기가 싹 가신 그랜트가 곧장 이야기했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지. 마지막 연장된 그 1년이 기존 이상의 훨씬 넘치는 수익을 가져다줄 거라고. 더구나 지금 심어둔 인상은 재계약까지 지속되지 않겠어?”

       

       “그런 추론이 틀릴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경영의 미덕이 안정성이고요.”

       

       목소리는 짐짓 다정했지만, 힘이 있다.

       

       “물론 뚜껑을 열어보면 속 빈 작자들도 많아. 하지만 그리 손해일 거 같진 않지 않았나?”

       

       사실 휴고도 자신이 완벽히 이끌던 계약을 물거품으로 만든 그랜트에 억하심정이 있을 뿐, 짧은 만남에 긍정하게 됐기에 마냥 아니라고 부정하진 못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독대하면서 또 뭔 얘기를 나눴습니까?”

       

       “별거 아니야. 그래미의 기존 본상은 4개였지. 올해의 레코드, 앨범, 노래 그리고 신인상.”

       

       기대감이란 기색이 그랜트의 얼굴에 살짝 스쳤다.

       

       “거기에 새롭게 추가된 작곡가상과 프로듀서상. 19살 소녀가 받게 된다면 그거 참 재밌지 않겠냐고 슬쩍 부담을 줬을 뿐.”

       

       

       * * *

       

       

       “마지막에 뭔 얘기하고 온 거냐?”

       “몰라 나보고 천재라던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의 신님 50코인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최근 날씨가 무척 더워 35도까지 올랐었죠? 저는 그 날 방 안에서 선풍기만 틀고 햇빛 차단용으로 커튼을 치고 글을 썼는데요 그러니 생각보다 덥지가 않더라고요!역시 습하지만 않다면 선풍기만으로 충분한 건가 싶었어요. 작년엔 에어콘이 없어 고생했기에 올해는 이동형 에어콘이라도 구비할까 했는데 제습기만 있어도 선풍기만 튼다면?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하하 주 3회 연재의 약속 최소한의 양심은 챙겼…습니다. 내일 올려 4회 연재를… 아마 월요일날 올라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P.S 노벨피아 시스템상의 이야긴진 모르겠지만! 그, 그 일단 저도 메세지가 있으면 드릴 감사 인사가 많아져서 좋아요!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Decided to Become a Perfect Girl

I Decided to Become a Perfect Girl

완벽녀가 되기로 했습니다
Score 3.8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f only I had done that at that time.”

If I were born again, I would want to live perfectly without any regr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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