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09

       마침내 사흑련을 떠나는 날.

         

       그를 마중 나온 도굉은 인자한 표정으로 검지를 들어 제 앞의 땅을 가리켰다.

         

       “대가리 박게.”

       “옙.”

         

       군말 없이 대가리를 박는 백우진.

         

       반질반질한 그의 뒤통수 위로 살기 어린 말들이 쏟아졌다.

         

       “내 자네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한 것 같은데, 영 듣질 못하는구먼.”

         

       경고를 무시한 대가였다.

         

       분명 혼인 전까지는 섣불리 행동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본인도 잘못한 건 아는지 순순히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에 도굉은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게.”

       “옙.”

         

       경고는 무시하더니, 다른 말은 참 잘 듣는다.

         

       “조만간 무림맹주와 만나 지지부진한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참이네.”

       “…….”

         

       그가 말한 지지부진한 이야기란 동맹에 관한 것일 터다.

         

       제아무리 공공의 적이 나타났다고 한들,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못하고 서로를 배척하던 두 세력이 손을 잡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괜히 덥석 손을 잡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고 괜한 요구도 막 던지고….

         

       그러다 보니 동맹의 필요성은 양쪽 모두 여실히 느끼고 있으면서도 정작 확실하게 체결되지는 못한 상황.

         

       도굉은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림맹주 검존과 대면함으로써.

         

       “그때 자네 이야기 또한 꺼낼 참이네.”

         

       동맹 체결과 더불어 결속의 강화를 위한 증표로써 쓰일 예정이라는 뜻.

         

       “자네는 그리 알고 있게.”

       “예, 장인어른.”

       “…….”

         

       난데없는 호칭에 도굉의 미간이 좁혀졌다.

         

       장인어른이라니.

         

       사흑련주, 흑사패황, 사신, 냉혈한 등.

         

       숱하게 많은 칭호로 불리는 와중에도 크게 감흥을 느낀 적이 없건만, 장인어른이라는 단어에 온몸이 요동치는 듯하다.

         

       “가문에 잘 얘기해두게. 난데없이 사파의 여식과 혼인한다는 말에 가족들이 졸도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일세.”

       “…예, 그래야지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제아무리 연을 느끼지 못하는 가문이라곤 하나, 자신이 백우진으로 존재하는 이상 그들을 무시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

         

       ‘행선지를 좀 바꿔야겠어.’

         

       곧장 학관으로 복귀하려던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가는 길에 섬서백가에 들러 미리 이야기를 해두어야 할 듯싶다.

         

       사파의 여식과 혼인하겠다는 말에 일단 명목상으로 아비인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지금의 자신은 오대세가라고 해도 쉬이 짓누를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그것은 비단 무력뿐만이 아니었다.

         

       그간 차근차근 쌓아 올린 명성도 지금은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상황.

         

       아마 정파의 무인들은 제 혼인을 숭고한 희생쯤으로 여기게 될 터다.

         

       그런 상황에서 섬서백가가 대놓고 거절을 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희생은 오대세가의 반열에 오르고자 애쓰는 섬서백가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하등 없을 테니까.

         

       “그럼 조만간 전장에서 봄세.”

       “예, 그때까지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이만 가보게. 저기 자네 정인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구먼, 쯧.”

         

       도굉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경이 서 있는 곳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그는 문득 격세지감을 느꼈다.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설마 자신이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백우진은 도굉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한 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도경에게로 향했다.

         

       “…이제 가는구나.”

       “응.”

         

       백우진을 올려다보는 도경의 눈에는 짙은 슬픔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를 본 백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별이라고 해봐야 그리 길지 않을 터인데 어찌 저리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지, 원.

         

       “금방 만나게 될 거야.”

       “으응…, 알고 있다.”

       “알면서 왜 그렇게 울적한 표정을 하고 그래.”

       “마음이 울적한 것을 어, 어쩌란 거냐…!”

         

       슬픔 섞인 투정에 백우진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도경은 평소 고집하던 무복 대신 여인이 자주 입는 궁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의복 예쁘다.”

       “…….”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백우진은 안다.

         

       도경이 저 의복을 입기 위해 얼마나 깊은 고심을 했을지.

         

       저것은 그녀 나름대로 앞으로 사내가 아닌, 여인으로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물론 여기 모인 이들은 그녀가 여인임을 아는 최측근들 뿐이지만, 앞으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도 저러한 차림을 하게 될 테지.

         

       “이, 이제 가도록 해. 더 늦었다간 산속에서 밤을 맞이하고 말 거다.”

       “그래야지.”

         

       마지막으로 진한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뒤에서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렸다간 죽이고 말겠다는 살기등등한 시선이 느껴졌기에.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가 놓고서 떠나려던 찰나.

         

       도경이 별안간 맞잡은 그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먼저 입을 맞춰버렸다.

         

       “읍…!”

       

       창졸간에 벌어진 일에 백우진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도굉 또한 크게 당황하여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파하…!”

         

       거친 입맞춤 이후에 입술을 떼어낸 도경이 수줍게 웃으며 그의 가슴을 쳤다.

         

       “어쨌든 잠시 떨어져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어, 음.”

         

       백우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도굉에게 항변 어린 시선을 쏘아보냈다.

         

       보셨죠?

         

       이거 제가 한 거 아닙니다.

         

       따님께서 먼저 제게 입맞춤을…!

         

       아, 소용없다.

         

       “에라이.”

         

       백우진은 곧장 줄행랑을 쳐버렸다.

         

         

       * * *

         

         

       순탄하게 여정을 이어 나가는 도중이었다.

         

       급하게 걸음을 옮기느라 매일 이슬을 맞으며 잠든 탓에 오랜만에 하루 묵어갈 만한 작은 마을에 당도하여 기쁘기 그지없었건만.

         

       “…기척이 없어.”

         

       마을 어디에도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따금 있는 일이다.

         

       존재하던 마을이 모두가 떠나간 뒤에 죽어버리는 것쯤은.

         

       그러나 이번은 그 경우가 달랐다.

         

       곳곳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을의 주민들이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 이곳에 쭉 살고 있었다는 생활의 흔적들.

         

       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온기가 남아 있는 불씨가 그러했고, 먼지가 채 쌓이지 않은 마루가 그러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그들의 배를 불려주었을 곡식들도 남아 있다.

         

       “살림살이를 전부 내버려 두고 떠날 일은 없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살림살이를 모두 버려두고 도망칠 만큼 큰일이 벌어졌거나.

         

       “…납치당했거나.”

         

       최근 하오문주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숨어 있던 적의 정체를 파악한 무림맹과 사흑련의 날 선 움직임에 숨죽이고 있던 혈교가 마침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서서히 펼치기 시작했다는 것.

         

       한때의 바람이라면 그저 피해 가려 했으나,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그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님을 판단한 수뇌부에서 중원 전역에 흩뿌려진 교인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성전(聖戰)을 준비하라.”

         

       피할 수 없다면 이겨내리라 다짐이라도 한 듯, 그들은 활동을 재개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를 모조리 핏물 속에 수장시키는 수밖에 없는 상황.

         

       이를 위해 그들은 사람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관아의 눈길이 덜 미치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는 부랑자들, 돈벌이를 위해 곳곳을 쏘다니는 삼류 낭인들이 사라졌다.

         

       그들이 전쟁을 앞두고 사람을 납치하는 데에 혈안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무공인 혈술(血術)에 있다.

         

       술법과 무공의 경계선상에 놓인 그 오묘한 이치는 피를 통해 힘을 강화할 수 있다.

         

       정확히는 피에 담긴 혈기(血氣)를 몸에 쌓는 것이다.

         

       그리고 혈기가 가장 많이 담겨 있는 피가 바로 인간의 피다.

         

       수십 마리 짐승의 피를 마셔도 채울 수 없는 양을 인간의 피 한 모금으로 채울 수 있으니, 쉬운 길을 놔두고 어찌 먼 길을 돌아서 가랴.

         

       “쓰레기 같은 놈들.”

         

       백우진은 안색을 굳힌 채 마을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적게 잡아도 수십 명이나 되는 인원이 사라졌으니, 단서가 없지는 않을 터.

         

       날카롭게 벼린 눈동자에 하나둘씩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희미한 흔적들이 띄엄띄엄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야트막한 산봉우리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림이 그려진다.

         

       저 산 어딘가에 혈교의 주구들이 숨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 백우진은 곧장 신법을 운용하여 산속으로 몸을 날렸다.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해.’

         

       놈들은 노동력이 필요해 인간을 납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오직 인간의 피.

         

       늦을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자명한 일.

         

       백우진은 곧장 기감을 넓게 펼친 상태로 산속을 누볐다.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탐색은 지지부진했다.

         

       야트막한 산의 넓이가 생각보다 방대하다.

         

       심지어 다른 산으로 길이 이어져 있어 이곳을 벗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빌어먹을.”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흔적은 이미 백우진이 당도하기 며칠 전에 끊어져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십 명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아니, 모두가 죽은 지 오래라면 그들의 시체라도 발견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을 대신하여 놈들을 더욱 잔인하게 죽여 없앨 수 있을 테니.

         

       격렬한 분노를 애써 잠재우며 산속을 헤매기를 몇 시진.

         

       광범위하게 펼쳐진 그의 감각의 끝자락에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산과 산을 잇는 경계선상.

         

       그곳의 땅 밑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수는 대략 수십여 명.

         

       ‘찾았다.’

         

       백우진이 몸을 날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글 쓰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어제 낮에 병원 다녀오고 하다 보니까 잠이 부족했는지 새벽에 잠깐 잠이 들고 말았네요;

    다음 편은 조금 더 빨리 들고 올 수 있도록 하겠읍니다.

    그럼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