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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309화. 침묵 ( 2 )

       

       

       

       

       

       흑색 구슬로 인한 마수의 광폭화, 광범위로 일어나는 실종 사건.

       이로 인한 대륙적 혼란.

       

       자고 일어나면 또 어디가 마수의 습격을 받았다더라. 이웃 마을에 사는 누구는 물려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더라.

       이런 소문이 가득한 마당에 민심은 날이 갈수록 뒤숭숭해졌다.

       

       시골에 사는 이들은 하나같이 장벽을 세우고 자경단을 꾸렸으며, 도시의 성문은 굳게 닫히고 병사들의 창칼은 섬뜩하게 날을 빛냈다.

       

       “…분위기가 좋지 않네요.”

       

       “아무래도 시국이 시국이니까요. 그나마 성도니까 이 정도라도 되는 겁니다.”

       

       케니스가 성도의 거리를 걸으며 우울하게 말했다. 이에 대꾸한 한스는 어쩔 수 없다는 말투였다.

       

       평소의 성도였다면 시끄럽게 떠들며 호객하는 장사꾼과 낮게 들려오는 기도소리,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가득했어야 할 풍경이다.

       허나 지금은 낮고 음울하게, 축 가라앉은 분위기가 흘렀고 사람들도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런 모습이었지만 한스의 말대로 그나마 성도는 괜찮은 편이었다. 성기사와 사도들이 항상 주둔하고 있으며, 신의 기적이 임한 땅이라는 까닭이다.

       그러한 이유로 난민도 제법 많이 몰려오는 편이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실지 모르겠군…’

       

       외딴 시골에 위치한 한스의 고향. 홀로 농사짓는 아버지가 걱정되는 한스였다.

       다행히 만신전에서 성기사 한 명을 보내 성도로 데려오겠다고 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아. 데이지가 사달라고 한 책이 이거죠? ‘수트리가의 네 번째 비극’!”

       

       “…무슨 책 두께가 방패로 써도 될 정도인데. 데이지가 정말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사달라고 했다고요?”

       

       “요즘 한스가 데이지를 잘 못 만나서 모르시네. 데이지가 얼마나 똑똑하고 날렵한데요. 요즘 전투 수련도 받는 중인데, 아주 날아다녀요.”

       

       “그, 그런가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스의 안에서 데이지는 나이에 비해 조금 똘똘한 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쑥쑥 자라는 걸까.

       

       케니스와 한스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데이지가 부탁한 책 이외에도 프리가가 부탁한 부드러운 털실과 뜨개질 재료, 셀리나가 부탁한 빗 등을 구매했다.

       

       “으음. 이 정도면 대충 부탁받은 건 전부 산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돌아가죠?”

       

       “아, 네.”

       

       한스는 케니스의 뒤를 살짝 떨어져서 걸으며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마 전 데모닉이 남긴 조언은 계속해서 한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 “후회없이 행동하게. 사랑할 시간은 항상 부족한 법이니까.”

       

       ‘후회… 없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 모를 리가 없다.

       

       필요한 것은 5초도 되지 않는 순간의 용기, 그리고 결단.

       

       ‘하, 할 수 있을 리가…! 내, 내가 용사님에게?!’

       

       소년은 거대한 용왕의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맞서 싸웠지만,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에는 조금 서툴렀다.

       

       결국 한스는 번뇌에 휩싸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만신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덜컹!

       

       “한스 경!”

       

       문을 박차고 이스칼이 뛰어 들어왔다.

       

       요즘 두 아내에게 시달린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는지, 얼굴이 살짝 수척했다.

       그래도 표정이 썩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법 행복한 신혼을 즐기는 모양이다.

       

       “이스칼? 무슨 일로…”

       

       “자네 혹시 소문 못 들었는가?!”

       

       “소문이라면 무슨 소문을 말하시는 건지.”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뭔가 커다란 소란이 있었던 모양. 이스칼이 한스의 어깨를 붙잡고 탈탈 흔들었다.

       

       “이번에 그 빌어먹을 실종 사건의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군!”

       

       “! 그게 정말입니까?!”

       

       현재 대륙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사건은 두 가지였다.

       미쳐 날뛰는 마수들과 온 대륙을 영역으로 일어나는 실종 사건.

       

       세간에서는 마수를 조종하는 악마가 바람을 타고 대륙을 휩쓸며 인간을 잡아간다는 소문까지 돌 지경이었으니.

       백성들의 공포는 극에 달한 참이었다.

       

       현장에 남은 흔적이라고는 무언가를 질질 끌고 간 흔적뿐이었는데,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니.

        

       확실히 이스칼이 부리나케 달려올 만한 소식이었다.

       

       “제국과 협력해서 그 단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더군! 어서 보러 가자고!”

       

       “당장 가죠!”

       

       한스가 벌떡 일어나 이스칼의 뒤를 따라 달렸다.

       

       

       

       ***

       

       

       

       이번에 발견한 흔적은 아무나 볼 수 없는 중요한 증거물이었지만, 이스칼과 한스는 그 ‘아무나’에 포함되지 않는 중요 인물. 

       덕분에 순조롭게 위병을 통과해 소문의 ‘단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게 그 흔적… 인가요?”

       

       “예. 틀림없이 현장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스칼과 한스는 단호하게 확신하는 위병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단단한 사슬로 칭칭 묶인 창백한 회색의 살점. 축 늘어져 어딘가 윤기가 흐르는 모습은 진흙과 물고기를 절반씩 섞은 것처럼 보였다.

       

       “이제 보니 자네랑 저 살점이랑 닮은 것도 같군. 뭔가를 칭칭 감아서 봉인하다니.”

       

       “…으득.”

       

       이스칼이 힐끗 한스의 오른쪽 의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스칼의 《황금 날개 어쩌고》하는 이명은 금세 사라졌지만, 한스는 아직도 《흑염용왕의 주인》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큽! 푸흡!”

       

       뒤에 있던 위병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몸을 부들부들 떨던 한스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훽 돌렸다. 이럴 때일수록 대꾸하지 않아야 하는 법.

       

       “…흠, 크흠! 그나저나 이거. 좀 이상하군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저는 솔직히 악마나 마수의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살점… 아니 살점이 맞는지도 좀 의아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악마 특유의 삿된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보고 있으면 어쩐지 몸이 오싹하군.”

       

       참으로 기묘한 살점이었다.

       얼핏 보면 길가의 돌멩이와 비슷할 정도의 존재감이었지만, 한 번이라도 인식하면 그 기묘함에 눈을 돌릴 수 없다.

       

       생물과 무생물, 그 중간쯤에 걸쳐진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이미 대사제와 제국의 학자들도 한 차례 조사하고 갔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마당.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한스와 이스칼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결국 둘은 조금 허무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뭔가 생각보다 김빠지는군.”

       

       “그러게요.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불길하다는 것만 알 것 같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낮에도 봤던 약간 음울한 분위기의 거리가 둘을 반겼다.

       

       오가는 행인의 수가 적고 눈빛은 굳었지만, 어떻게든 가까스로 일상의 껍데기만큼은 뒤집어쓰고 있는 꼴이다.

       

       ‘역시 분위기가 잔뜩 죽었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어쩔 수 없나…’

       

       그래도 성도라는 상징이 있기에, 신께서 보살피는 땅이라 굳게 믿고 있기에 위태롭게라도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리라.

       

       한스도 이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성지는, 신의 기적이 임한 땅은 괜찮을 것이라고.

       

       ㅡ그리 믿었다.

       

       쩌적-

       

       “음?”

       

       대수롭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걷던 한스가 덜컥 몸을 멈췄다. 얇은 유리가 깨지는 듯한 불길한 파열음.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ㅡ그러니까 결혼하면 자네도 알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잠버릇이나 생활 패턴이ㅡ 음? 왜 그러나?”

       

       “…소리.”

       

       “소리?”

       

       “ㅡ소리가 들렸습니다.”

       

       잘못 들었을 리 없다. 착각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극에 다다르게 예민해진 한스의 청각은 계속해서 불길한 째깍거림을 뇌리에 쑤셔 넣었다.

       

       쩌저적- 쩍-!

       

       커진다.

       끊임없이 무너진다.

       

       이스칼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굉음이 거리를 뒤덮는다. 허공에서 거미줄처럼 일어난 균열이 거리를 꽉 채우며 퍼져갔다.

       

       “! 이건!”

       

       “이스칼! 주위의 대피를 부탁합니다!”

       

       반사적으로 한스가 뛰쳐나갔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다루는 오른쪽 의수에 검은 불꽃이 이글거렸다.

       

       ‘저 균열은…!’

       

       심연으로 가며 봤던, 차원을 찢어낸 흔적.

       

       저 너머에 있는 것이 나오게 해선 안 된다. 한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판단과 동시에 행동한다.

       

       검은 화염이 작열하며 거리를 뒤덮는 균열을 집어삼켰다.

       

       “크으읍!”

       

       무엇이라도 불태우는 용왕의 흑염이다.

       허나, 용왕이 사용하는 것과 인간 한스가 사용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했다.

       

       ㅡ쩌적!

       

       균열이 커진다. 계속해서 덩치를 키우며 하늘과 땅으로 찢어진다. 결국 균열의 틈이 길게 찢어지며 거대한 흉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ㅡㅡㅡ…》

       

       균열을 억지로 넓히며 모습을 드러낸, 회색빛의 무언가.

       

       첫인상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것.

       

       “하…! 저건 도대체ㅡ!”

       

       전체적으로 마치 녹아내린 찰흙 같은 생김새, 하지만 결코 찰흙 같은 건 아니었다.

       

       찰흙이라면 몸 곳곳에 저런 흉측한 입이 달려있을 리 없으니까.

       

       그쯤에서 한스는 눈앞에 있는 녀석이 방금 보고 온 살점의 주인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대륙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 기묘한 실종 사건의 원흉.

       

       “이스칼ㅡ!! 지원을 부탁합니다!”

       

       “가세하겠네!”

       

       가벼운 마음으로 무장을 챙기지 못한 것이 통한의 실책.

       하지만 후회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균열이 일어난 곳은, 피난민과 시민들이 가득한 거리.

       

       최대한 이 괴생명체를 막지 못하면 인명피해는 피할 수 없다.

       

       《ㅡㅡㅡ!!》

       

       회색 거체를 꿈틀거린 녀석이 곧장 길게 몸을 뻗어 거리의 곳곳으로 날리려다가ㅡ 곧장 몸을 틀어 한스와 이스칼을 향했다.

       

       마치 더 좋은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온다!”

       

       버클러도 없어서 급하게 주운 판자를 방패 대용으로 사용한 이스칼이 공격을 받아냈다. 회색 생명체는 생김새를 증명하려는 것인지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은 유연하고 빠르게 몰아쳤다.

       

       ‘하지만ㅡ!’

       

       이스칼이 판자 방패를 유연하게 비틀며 튕겨냈다.

       

       “이런 건 이미 한 번 당해봤다고!”

       

       크게 튕겨내며 벌어진 빈틈. 그 사이로 한스가 뛰어들었다.

       

       롱소드는 없기에 오로지 두 주먹과 이글거리는 흑염이 전부.

       

       이걸로 충분하다.

       일점에 집중한 용왕의 흑염이 괴수의 정면에 내리꽂혔다.

       

       투쾅ㅡ!

       

       어마어마한 폭염이 자욱하게 일어나며 거리를 메웠다. 

       

       “콜록콜록… 연기가 너무 심하군.”

       

       “이스칼! 다친 곳은 없습니까?!”

       

       “나는 괜찮네. 임시방패가 부서진 건 조금 아쉽지만…”

       

       부서진 판자를 버린 이스칼이 경계를 끌어올렸다. 태연하게 잡담이나 나누고 있지만, 이곳은 성도의 한복판. 곧 소란을 듣고 지원이 올 것이다.

       

       “녀석은?”

       

       “…모르겠습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요.”

       

       집중해서 소리를 들으려 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경종 소리에 쉽지 않았다.

       

       “그러면 쓰러뜨린 게 아닌지ㅡ 커헉!”

       

       콰앙ㅡ!

       

       “이스칼!”

       

       연기를 뚫고 날아온 일격에 이스칼이 한참이나 날아갔다. 연기가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회색의 괴생명체.

       

       《ㅡㅡㅡ…》

       

       그을음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다.

       

       “크읏…!”

       

       회색의 거체가 서서히 부풀어 일어나며 한스를 압도했다. 눈, 코 따위의 기관 없이 오직 입만이 존재하는 흉상이 거대하게 불어난다.

       

       딱딱딱- 몸에 돋아난 이빨끼리 맞부딪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자아낸다. 배고파서 재촉하는 아이의 칭얼거림이다.

       

       ‘이스칼은ㅡ’

       

       저 멀리 날아가 아직 일어날 기미가 없다. 

       

       “젠장. 지원은 도대체 언제ㅡ!”

       

       써걱.

       

       “지금 왔다.”

       

       하늘에 하나의 선이 길게 그어지며, 회색 생명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무섭도록 날카로운 일격.

       

       척, 척, 척ㅡ

       

       한스의 등 뒤로 강철 군화 수백 개가 일제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선두에서 성기사들을 이끌고 달려온 사람.

       

       팔라딘 데모닉.

       

       “한스 경, 이스칼 경. 고생 많았네. 여기부턴 우리가 맡도록 하지.”

       

       균열이 열리고 3분이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건강검진..!!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귀찮음을 이유로 아직 받은 적은 없습니다…!! 대신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 관리를 하는 편입니다…!! 여러가지 이것저것 폭식을 통해 강해지는…!!! 그런 타입…!! 문득 다이어트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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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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