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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얼마 전 명품 패션 브랜드인 멜브림 데파르트망 사가 뉴링크 L3 메트로폴리스에 있던 플래그십 스토어를 정리하면서 나오게 된 해당 매장의 간판 드레스입니다. 언제나 도시 홍보 영상이나 브랜드 광고에서 유리관에 전시된 걸 스치듯 보여주던, 그 지역 디자이너가 딱 한 벌만 만든 한정 상품이 맞습니다!

         

         자체 개발한 발광 섬유(Luminous Fiber)로 어두운 장소에서도 은은히 빛나고, 이렇게 밝은 회장에서는 입사각에 따라 화려한 프리즘 효과로 계신 곳을 어디든 무대로 만들 수 있죠! 이제는 더 제작될 수도 없는 하나뿐인 상품이나… 안타깝게도 장기간 전시로 품질이 열화된 점과 스타일이 낡은 걸 고려하여 책정가 650만 크레딧, 최소 호가 단위는 50만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엄청 속사포로 떠드는 것 같으면서도, 새는 발음 하나없이 조곤조곤하게 사회를 보는 진행자 아저씨.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무슨 놈의 최신 유행 화장인지 트로트 가수 옷과 비슷하게 맞춘 것 같은 반짝이 가루가 내려앉은 속눈썹이 흔들리는 게 보일 정도로 실내 조도는 굉장히 밝았다.

         

         대기 시간을 보내던 경매사 메인 홀에 붙은 큰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빨려들 듯이 들어와 각자 예약된 자리에 착석하자 곧바로 시작된 저녁 경매.

         

         처음 봤을 때는 영화관? 오페라 하우스 등을 연상케 하는 구조라 좀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경매가 진행될 줄 알았는데, 이건 좌석 배치도 그렇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나 결혼식장 쪽에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하긴, 다른 여러가지 부가적인 이득이나 친목 도모가 포함되어 있을 순 있어도. 엄연히 가게에 물건 보러 온 손님들인데 쇼핑을 방해하는 배경 요소를 운영 측이 제공해서야 쓰나.

         

         “1500! 14번 테이블에서 1500만 나왔습니다. 더 이상 없으시다면… 아, 1550… 1600…! 6번 테이블에서 2000만!! 2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슬슬 최소 호가를 100만으로 올리는 걸로…!”

         

         가벼운 제스처나 중간중간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하려는 듯 가볍게 손을 들어올리는 테이블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각 테이블에 놓인 입찰 리모컨으로 묵묵히 호가를 올릴 뿐, 간혹 잡담을 나누는 것도 같은 자리에 앉은 일행끼리 나누는 것밖에 없었다.

         

         당장 물건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만큼 나름의 신경전을 벌이는 걸까?

         정가라는 개념이 없는 걸 사러 온 부자라 해도 구태여 지출을 늘려가며 비싼 값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겠지 그래.

         

         “상회 입찰이 더 없으시다면 3… 2… 1. 4700만 크레딧에 6번 테이블 손님께 낙찰되었습니다!”

         

         짤막한 박수와 함께, 갈 길이 멀다는 것처럼 지체하지 않고 다음 상품으로 로테이션을 돌리는 진행자 씨를 구경하며 옆에다 작게 속삭였다.

         

         “막 거창하게 소개했던 것치고는 좀 싸지 않나요? ……전자제품 매장에서 가서 이것저것 골라 담아도 저것보단 많이 나올 것 같은데.”

         

         “흠, 아무래도 여유 있는 아가씨의 시선으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지.”

         

         빈정거리려던 의도나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내 예상보단 훨씬 낮은 금액에서 마무리된 ‘한정 드레스’에 대해 알프레드 씨의 의향을 물은 건데.

         

         도중에 헬레나가 내 경제 관념이 망가진 건 아닐까…하는 느낌으로, 심각하게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길래 다급하게 몇 마디 예시를 덧붙였고.

         

         아니, 아무래도 여기가 아무래도 제대로 된 경매장인 데다가, 최근 주 소비처가 부동산 아니면 드론 및 드로이드 부품이다 보니 고급품의 기준점을 약간 올려 잡은 것뿐이라니까?

         

         분명 내가 외형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했고 그녀도 납득하고 넘어간 거 같았는데, 왜 과보호나 걱정이 더 심해진 것 같지… 거 참 이상하네.

         

         “하지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긴 했어도. 모체 브랜드나 가공 기술이 아예 세상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오, 디자이너가 사망한 것도 아니니 차후 유사품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걸 고려하면 적당하지 않나? 그나마 상징성이 높이 평가받아서 저 정도라 보네만.”

         

         “어… 그런가요…?”

         

         좀 더 생각을 해봐야 수긍할 수 있겠다는 것처럼 말꼬리는 미묘하게 잡아 올렸지만, 논리는 물론 판단 근거도 꽤 확실한 노인의 말에 난 내심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미적감각은 어떠실지 몰라도 ‘돈 되는 물건’에 관해서는 굉장히 빠삭할 사채업자의 냉정한 평가이니 아마 그대로 삼켜도 괜찮지 않을까.

         

         속는 쪽이 나쁘다는 수준의 극단적인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얘네도 이문을 남겨먹으려는 친구들이니 너무 홀라당 믿는 건 곤란하다는 뜻이렸다.

         

         ‘정당하게 양지 사업을 하는 만큼 거짓말에 대한 걱정은 좀 덜어도 괜찮으나, 일부러 말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구매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라… 시대가 바뀌었어도 또 이런 소비자 기만 전략은 여전하구나? 음, 좋은 걸 배웠다.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여긴 제공하는 요깃거리(Snack food)가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하구만. 손님 부탁을 정말 귓등으로도 안 들어처먹는 건 별로여도 음식은… 아주 좋아! 크라이테리아가 이걸로 경쟁력을 확보했었나 싶을 지경이야. 우리 아가씨들도 어서들 들어보게! 아예 돌아가는 길에 좀 포장해갈까?”

         

         “살짝 배가 고프긴 한데… 그럼 무슨 맛인지 짐작도 안 가는 거기 파란색 무스 케이크를 한 개만. 아니, 언니는 뭘 먹여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거야. 그냥 팔 뻗어서 직접 먹…… 알았어. 알았다고! 얼굴 펴!”

         

         저것들은 대체 뭔데 모시고 온 고용주와 맞먹고 앉아서 저렇고 있지~

         경매에 큰 관심이 없을 수는 있는데 왜 저런 염장질을 하고 있으실까 어허허~ 하는 주변의 기묘한 눈초리가 두 사람은 진짜 아무렇지도 않나?

         

         제가 아무리 너무 주변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기는 했어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이 참에 전면 부정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니거든요?

         

         세상에 어느 얼빠진 보디가드가 밥때가 되었다고 의뢰인 옆자리에 착석해서 태연하게 식사를 하냐고… 이런 곳에 또 올 일이 드물 테니까 즐기지 않는 게 손해다 뭐 이런 건가.

         

         “아나스타샤 아가씨가 알아서 내막이 뭔지 탈탈 털어내 주지 않았나? 신경을 거스르던 범인들도 다 내뺐다 하고, 기업들이 이 늙은이를 입막음해야 한다거나 그런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는 것도 다 알아냈고! 그럼 느긋하게 저 치들이 서로 물어뜯는 걸 구경할 일만 남았는데 이 정도 융통성도 발휘 안 하면 쓰나.”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띄워 주신다면야.”

         

         직접적인 검거 활동이나 무력 시위를 벌인 건 다른 둘이거늘 너무 나만 평가받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아무도 불만이나 이의가 없어 보여서 굳이 칭찬을 사양하진 않았다.

         

         결국 자리 뒤쪽에 부동 자세로 서있는 건 다리가 아플 일도, 영양분을 보충할 필요도 없는 드로이드들뿐.

         나와 헬레나는 혼자 앉아있기엔 쓸쓸하다는 알프레드 씨의 강권에 못 이겨 테이블에 같이 둘러앉아버린 상태다.

         

         제로는 망가진 3호기의 전선 복귀에 30시간은 걸리겠다며, 다음에 마리나를 만나게 되면 정식으로 항의하겠다 벼르고 있었지만.

         

         수리비까지 다 배상 받는다 치면… 결과적으로 들인 수고에 비해 보상도 적당한 나들이였다는 느낌? 괜히 의심병이 도져서 사생활 침해 수준의 감시망을 구축할 필요는 없었던 게 아닐까.

         

         뭐, 지금도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쑥덕거리느라 바쁜 하이에나들을 구경하는 데에는 겁나 잘 써먹고 있긴 해. 허허.

         

         

         “다음은 인상파 화가 엘리아스 샤르댕의 최후 유작입니다. 대전쟁이 한창 무르익기 이전 선견지명을 가지고 착공했을 걸로 추정되는, 네바다 주에 위치한 개인 벙커에서 사망 추정 년도 2120년의 부패한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으로. 마지막 숨을 담아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굵은 획을 그은 게 응축된 감정을 드러낸….”

         

         어… 그냥 그런 식으로 최후를 맞는 게 슬프고 통탄스러워서 그리던 그림에 X자를 후려갈기다가 쓰러진 것 같은데, 그걸 또 저렇게 고상하게 포장할 수도 있구나.

         

         일단 난 모르는 구시대 화가의 투명 관에 담긴 백골과 미완성 유작 세트, 팬을 자처하는 어느 애호가에게 3억 4천만 크레딧에 최종 낙찰.

         

         

         “이건 도시 외부 황무지 조사팀이 발견한 보존 상태가 굉장히 좋은 MRE(Meal, Ready-to-Eat; 전투 식량) 및 통조림 박스로. 취식하셔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점을 저희 회사 명의로 보장해드리고 있으며, 해당 식료품을 만든 제조사는….”

         

         저런 건 왜 사는 걸까? 그래도 나름 이성적인 소비만 하는 난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도시 외부 황무지 조사팀’이란 스캐빈저를 뜻하는 명칭이다. 외부 세계 생존자를 비공식적 인구로 취급하다 보니, 그런 출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웃긴 억지 눈가림이랄까…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것도 훌륭한 기업의 자세인가?

         

         MRE를 비롯해 미국인들이 지긋지긋해하기로 엄청 유명한 모 고기 통조림 한 박스. 내 소비 관념보다 저쪽을 더 이상하게 여겨야 할 것 같지만 어쨌거나, 호가 1100만에 낙찰.

         

         

         “…아샤 너는 거부감도 없이 이런 걸 잘도 먹네.”

         

         “뭐? 언니, 새우 몰라 칵테일 새우??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는 게 아니면 한 번 먹어 봐, 싸구려긴 해도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그치만 너무 징그럽게 생겼잖아. 게다가 방금 검색해보니까 바퀴벌레가 방사능 무기 때문에 수중에 적응한 생명체라는 소리도 있는데…?”

         

         “어허!! 안 되겠다. 이리 와서 아~ 해. 얼른!”

         

         기업 가공식품에 절여지다 못해 세뇌당한 현대인의 식습관에 내가 경악하고 있거나 말거나, 경매가 진행되는 템포. 그러니까 중앙 무대에 올라와 있는 상품이 휙휙 바뀌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이게 무슨 소리냐.

         

         경매 초반부 참여율이 굉장히 저조하다는 걸, 사실 저조하다 못해 과열된 입찰도 없이 재미없다는 걸 돌려 말한 게 되시겠다.

         

         수십 개가 있는 테이블에, 나눠진 리모컨이 몇 개며 매겨진 번호가 백에 가깝게 있는데 왜 이러냐 물으신다면. 역시 문제의 그 녀석이 등장하기만을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네… 잠시. 애타게 기다리시는 분도 워낙 많고, 일정이 촉박하신 와중에 겨우 참석해주신 고객님도 계셔서 임의로 경매 순서를 조정하는 걸로. 손님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분위기나 형편을 무시해가며 없는 텐션을 끌어올리는 것도 이제 한계라 판단했는지 운영도 아예 중간쯤 순서를 뒤집어버렸다.

         

         일단의 무리. 제복을 갖춰 입은, 이번에는 ‘진짜’ 크라이테리아 직원들이 우르르 이쪽 테이블로 몰려와서 조심스럽게 보관함을 전달받으셨다.

         

         무슨 트롤리에 올려놓는 것도 아니고 성인 남자 서넛이 상자 귀퉁이를 양손으로 붙들고 쩔쩔매면서 잰 걸음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웃겼지만 어쩌겠나? 안에 있는 데이터를 빼더라도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골동품이라는데 저게. 시발!

         

         하여간 내가 아무리 거품 물어봤자 세상은 아랑곳 않고 표표히 흐른다는 것처럼.

         

         짜게 식은 눈으로 지켜보는 와중에도 사회 겸 진행자인 반짝이 아저씨는 과대 포장을 멈추지 않았으니.

         

         “자, 많은 분들이 기다려 주신 대망의 예술 골동품. 20세기 후반부나 21세기 초입, 이젠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인터넷 네트워크가 막 태동을 시작한 원시 시대에 열악했을 온라인 상으로만 커스텀 오더 메이드 주문을 한두 건 받았다 공식 기록이 남아있는 조각상.

         

         현 만다라 교의 모태가 되는 불교(Buddhism)의 우상이자, 열화의 흔적이 거의 없는 이 아리따운 여신상을 지체없이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밝았던 실내 조명이 약간 어두워진다.

         

         먼저 불투명한 보관함 뚜껑을 살짝 기울여 발판 부분에 있는 스위치를 조작한 그가 수직으로 천천히 장막을 벗겨낸다.

         

         “어머.”

         “허어….”

         

         은은한 빛무리와 함께, 흐드러진 연꽃 형상들과 아찔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하반신이 공개되자 좌중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는 물론 오묘한 감탄사까지 튀어나온다.

         

         과거 한국 환율로 따져도 순수하게 제작비만 몇백 만원은 들어갔을 그것.

         이 동네 사람들은 단정하긴 어려워도, 시대를 경험한 자로서 감히 단언하건대 한중일 세 곳 중에서 만들어졌을 게 뻔히 보이는 약간 부끄러운 자화상.

         

         인자한 인상도 어딘지 모르게 남아있으나, 주문자의 사심이 가득 들어갔는지 훨씬 미녀에 가깝게 디자인되고 진짜 사이버펑크스럽게 색채도 휙휙 바뀌는 그건.

         

         당시에는 제대로 된 조각상이 아니라, 보통 관음보살 LED 무드등이라 불리던 아주 힙한 녀석이 정말 녹슬거나 깨진 곳 하나없이 완벽한 자태를 드러냈다.

         

         …….

         

         그… 나도 저런 게 비싼 건 정말 비쌌다는 걸 알긴 아는데 요게 기분이 참.

         

         역시 세월이란 건 저런 드문 공산품에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추가로 부여하는 마성의 힘이 있는 건가…?

       

       

         나, 어쩌면 진짜 너무 늙었을지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푸하하, 요즘 갬성도 모른대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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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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