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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제국력 100년 1월 1일 새벽 4시 49분, 세이레네 백작령.]

     푸ㅡ욱.

     깊게, 칼날이 허벅지 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순식간에 붉은 피가 밖으로 흘러나오고, 허벅지에 찔린 중년의 남자를 바라보는 여인의 목소리에서는 비명이 흘러나오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읍, 으읍, 으으읍…!!”

     허벅지가 칼에 찔린 남자는 이를 악물며 버티고 또 버텼다.

     따로 입에 재갈을 문 것도 아니지만, 버텨야만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처럼 악을 썼다.

     “이런, 이런. 그렇게 버텨봐야 결국에는 죽게 될 것을.”

     군청색에 비슷하게 머리를 물들인 청년, 프란츠는 자신의 손에 들린 네모난 마석을 만지작거리며 하품을 내뱉었다.

     “세이레네 백작. 끝까지 말하지 않을 참인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국왕 전하께서 자네에게 무엇을 시켰고 무엇을 부탁했는지?”

     “하악, 하악, 카아악….”

     

     칼에 찔린 중년 남성, 세이레네 백작은 비릿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입을 열자마자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그 피는 한 방울 주룩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입에 고여있던 것이 터져나오듯 다소 과하게 흘러나왔다.

     “흐, 흐흐. 그런 거…없다!”

     “그런 게 없다고? 좋아.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해보도록 하지.”

     프란츠가 세이레네 백작의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서명하시오, 세이레네 백작.”

     “…….”

     “나는 더 이상 노스트럼을 따르지 않고, 테르시안 제국을 따르기로 하겠다는 전향서요.”

     “크, 크흐….”

     세이레네 백작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곳은 분명 자신의 집무실이며, 백작성에는 제법 강한 기사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들은 전부 바닥에 피를 흩뿌리는 시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백작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살아있는 이들은 끌려온 가솔들이 전부.

     단 한 명의 가솔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자다가 끌려나온 바람에 잠옷 차림을 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각각 제국의 그림자들이 목 아래로 칼을 겨누고 있었다.

     새벽, 제국의 첩보부대가 야습으로 백작성을 순식간에 점거했다.

     기사들이 나설 새도 없이, 제국의 그림자들 중 일부 마스터급에 의해 백작성은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점거되었다.

     30분.

     결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성이 점령당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

     내부에 배신자가 있어, 습격자들에게 비밀통로를 알려주고, 일부러 약속한 날에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시간.

     “저런, 저런. 백작님. 얌전히 서명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네놈….”

     “그 동안 신세 많이졌습니다, 백작님.”

     유일하게 정장을 입고 있던 사내, 백작가의 집사장은 키득거리며 백작에게 허리를 가볍게 숙였다.

     “세이레네 땅이 제국의 것이 된다면, 그 뒤에는 이 항구를 관리하는 자가 필요하겠죠.”

     “네놈, 그걸 노리고…!”

     백작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제국인이 올 것입니다. 저는 대신 제국에서 보상금을 받고, 제국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 더러운 매국노…! 크으윽…!”

     세이레네 백작이 악을 쓰며 소리쳤으나, 악을 쓸수록 허벅지에 박힌 칼이 백작의 살을 더 깊게 파고들 뿐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꿈 속에서의 백작께서도 나라를 배신하고 제국에게 문을 열어주셨잖습니까.”

     “그건, 내가 아니야!”

     “맞습니다. 백작님은 아니시죠. 하지만 황금이 보여주는 세상이 ‘그럴 수도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누군가는 결국 제국의 편이 되어 문을 열어주고 그러겠죠.”

     “집사장. 슬슬, 시작하도록 하지?”

     손목시계를 확인한 프란츠의 경고에 집사장이 입을 다물었다.

     “1분만 더 주도록 하지.”

     “아, 예. 죄송합니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왜, 왜 배신을 하였나!!”

     “왜라뇨.”

     세이레네 백작의 말에 집사장이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30년 넘게 백작님 아래에서 개고생을 했는데, 5년 동안 월급 한 번 올려주신 적이 없잖습니까.”

     “너, 너…!”

     “심지어 금광 개발로 그렇게 많은 돈을 창고에 쌓아두셨으면서. 제가 그 회계처리를 할 때마다 얼마나 눈물났는지 아십니까? 제국은 그 황금에 해당하는 탈러를 제게 주기로 했습니다.”

     “제국을 믿다니, 어리석은 자가…!”

     “누가 어리석었는지는 결과가, 역사가 증명해줄 것입니다.”

     “집사장.”

     “예.”

     집사장이 직접 검을 들었다.

     “잘 가십시오, 백작님.”

     “너-”

     푸ㅡ욱.

     “아버지!!”

     “백작님!!”

     심장에 칼이 박혔다.

     그 어떤 평범한 인간도 심장에 칼이 박히면 살아남을 수 없다.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세이레네 백작은 그런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도…망….”

     풀썩.

     마지막으로 한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세이레네 백작은 그렇게 집사장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흐흐. 프란츠 공. 그러면 세이레네 백작가는 제 것입니까?”

     “재산은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면…아가씨도?”

     “그러시든가. 다만.”

     

     집사장의 질문에 프란츠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자네같은 보험이 아니라, 진짜로 세이레네 백작가를 점령하게 한 내부자에게 말이야.”

     “예?”

     “약속대로, 전부 죽여.”

     푸화악.

     프란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국의 그림자들이 일제히 백작가의 가솔들을 전부 죽여버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그대도.”

     서걱.

     프란츠가 직접 검을 휘둘러 집사장의 목을 베었다.

     세상이 뒤집히고, 자신이 목이 베였다는 걸 인지했을 때.

     아주 천천히, 세이네레 백작영애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집사장은 보았다.

     “이-”

     그저 그것만 본 채,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 * *

     황제가 말했다.

     세이레네 백작가를 점령했다고.

     그걸 시작으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 내가 언제 거짓을 말하겠나.”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 다시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 정녕 전쟁이 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답변이겠지만, 전쟁만이 답이야.”

     황제는 부정하지 않았다.

     “자네와 나, 황금룡의 기적, 권능, 회귀. 그 모든 걸 제거하고, 오직 인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서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이야기해보도록 할까.”

     황제는 내 앞에 한 손을 쭉 펼쳤다.

     “하나. 왕국의 정치체계는 너무나도 야만적이야. 왕국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고대의 원시 부족과 다를 바가 없지. 국왕이 자리를 비운다고 왕비가 옥새를 대신 다루고 통치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

     제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왕국은 그냥 정치 동아리일 뿐이다.

     “둘. 사법체계조차 어리석기 그지 없지. 약육강식은 인정하지만, 그 강함이 오직 검과 마법으로 국한되는 나라가 옳은가? 비행선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자가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하급기사에게 결투에 걸리고, 맞아죽는 그런 나라가 말이야.”

     제국의 법조인들이 본다면, 왕국은 법이라는 것은 오직 특권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셋. 사실 이게 제일 심각한 문제지. 왕국의 경제는 뒤틀린 채로 500년은 흘러들어왔어. 황금이 썩어넘친다고 해서, 그게 1골드 금화로 최소 단위가 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 누구 하나 지금까지 화폐를 개혁하지 않은 채, 오히려 10만 100만 그 단위를 높여가면서 지내온 게 자네는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나?”

     

     왕국과 제국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이후, 제국 경제학자들이 가장 먼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이 나라는 그저 저능아가 만들어낸, 국가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는 부족연합왕국의 연장선일 뿐이야. 그게 500년 동안 소드 마스터와 마법, 황금룡의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져왔을 뿐. 이 나라에서는 어떠한 인간의 지적 사고에 의한 발달을 기대할 수 없다. 기존 체계에 반하는 소리를 하는 자들은 전부 흰 장갑을 얻어맞고, 투기장에서 살해당했으니까.”

     “…….”

     “노스트럼은 답이 없어. 자네도 그걸 알고 있기에, 제국의 문화를 어려서부터 받아들인 거 아니겠는가.”

     황제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그렇기에 나는 자네를 포기할 수 없어. 노스트럼에만 매몰된 충성병자였다면 노스트럼의 영웅들을 모아서 직접 혁명을 일으키려고 했겠지.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내적으로는 온갖 편지풍파에 맞서서 정치적으로 제도 개혁을 이끌어나가고, 내부의 암 덩어리를 제거했을 것이야. 하지만 자네는 그러지 않았어.”

     “폐하.”

     “그렇기에, 지브롤터가 아닌 노스트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자네라면 그 의미의 차이를 알겠지?”

     “…결국에는 칼과 총으로 협박을 하는 것 아닙니까.”

     내 질문에 황제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부정하지 않겠네.”

     “세이레네 백작가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쪽으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조차 폐하의 마음대로 정해지게 되겠죠. 하이레딘 장군을 죽여서 세이레네 백작가에 배를 정박시켰던 것처럼.”

     “자네가 겪은 시간대에서도, 본인은 그렇게 했었나?”

     “그 정도는 그냥 제국신문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시체팔이는 합스베르크 황제의 전문이다.

     “흐흐흐. 역시나 자네야. 그렇다면 나는 이제 세이레네 백작가를 이용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퍼뜨릴까? 참고로 힌트를 하나 주자면, 세이네레 백작 영애는 이미 제국 편일세.”

     “둘 중 하나죠.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꿈 속 기억과 일치시키거나, 혹은 아예 비틀어서 그 꿈은 진실로 거짓되다는 것을 노스트럼 백성들에게 말하거나.”

     전자.

     “국가를 위한 패륜.”

     “계속해보게.”

     “세이레네 백작이 꿈의 경우처럼 노스트럼을 배신했다. 그는 해협을 열어 제국의 비행선이 상륙하게 만들었고, 제국령 세이레네가 되기를 노렸다. 그러나 노스트럼을 배신한 걸 눈치챈 딸에 의해 사망했다.”

     “그랬었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다른 쪽은?”

     후자.

     “복잡한 거 다 치우고, 그저 노스트럼 자체를 지워버리기 위해 지금 당장 아무 명분이나 내뱉는 것.”

     황제의 미소가 짙어진다.

     “어째서?”

     “어리석은 백성은 자기 집 창고를 채워주는 지배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만 할 뿐이니까.”

     황제가 말했었다.

     지금의 황제가 아닌, 대륙을 통일했던 합스베르크 황제가.

     “일단 멸망부터 시키고, 그 뒤에는 적당히 다른 이유를 끼워맞추면서 선포하면 되겠죠. 마침 적당한 이유도 있고.”

     이것만큼 확실한 선전포고 사유가 없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죽었지만, 노스트럼의 땅에 있는 무수히 많은 황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흐흐.”

     “그 황금을 없애든 우리가 전부 가지든, 황금을 통제하는 건 노스트럼이 아니라 제국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다툼은 결국 남의 것을 빼앗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다.

     “황금룡의 기적? 인간 시대의 시작? 회귀라는 기적에 대한 변수 제거? 백성들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가장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죠.”

     “무엇인가?”

     “제국 경제를 지키기 위해, 노스트럼을 멸망시킨다.”

     세이레네 백작가는 해협인 것도 있기는 하지만, 거짓된 황금이 가장 많이 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곳이기도 했다.

     “정답을 알아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건가?”

     “…….”

     “사라진 역사대로 멍청이들의 수호자가 될 건가, 아니면-”

     “폐하. 복잡한 거 다 떼어놓고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지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회귀, 황금룡, 시간, 기적, 권능, 제도, 법률, 정치, 문화, 이념, 인종. 그 모든 걸 다 떼어놓고, 가장 확실한 명분과 이유를 바탕으로 논의하도록 하죠. 개전에 대하여.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모든 백성들이 단번에 이해하기 쉬운 가장 명확한 논리로.”

     나는 황제를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겨눴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지브롤터입니다. 그레이 폰 합스베르크가 아니죠.”

     “…….”

     황제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가. 그렇군.”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으나, 이내 곧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싸우기를 선택하는 건가?”

     “싸워아죠.”

     나는 내 안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냈다.

     “제가 노스트럼 최대 황금광산의 소유주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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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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