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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던전에서 쫓겨난 라흐비의 쿠르텐 공자는 던전의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 저절로 느껴지는 뒷모습에 그와 함께 던전에 들어섰던 이들이 헛웃음을 흘린다.

   

   “야. 쿠르텐. 우리가 화를 내야지. 왜 네가 짜증을 내고 있냐?”

   “그래. 너 때문에 망했잖아.”

   

   공작 가문의 둘째 아들을 상대하는 것치고는 다소 허물없는 태도였지만 쿠르텐은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의 거대한 어깨를 움츠렸다.

   

   “그으. 미안하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하하하. 그래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아네.”

   

   그는 공작 가문의 사람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박한 사람이었으니까.

   

   쿠르텐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의 탈을 쓴 미노타우르스라고 불렸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 믿을 수 없는 커다란 덩치와 현 아카데미에서 비교할 사람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근력.

   

   거기에 더해 가축으로 키우는 소처럼 순한 성격이 합쳐져 쿠르텐은 위압적인 덩치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애정을 받았다.

   

   던전학 시험 세 번째 방을 통과하기 직전 쿠르텐이 실수를 저질러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파티원들이 크게 화를 내지 않는 데엔 그의 성품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답답했냐?”

   “으음. 무척이나. 병아리들이 가득한 방을 조심조심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 방에 도사린 것은 수많은 골렘이었다.

   

   악마의 형상을 한 녀석들은 첫 번째 방의 기사나 두 번째 방의 늑대마냥 강력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 둘과 비교하는 것이 실례였다. 골렘들은 아카데미의 평범한 학생조차도 손쉽게 잡아낼 수 있을 만큼 허약했으니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녀석들에게는 앞선 두 상대와는 다른 종류의 까다로움이 존재했다.

   

   바로 특정 표시가 되어 있는 적만을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적을 쓰러트릴 때마다 다른 골렘들이 점차 강화돼서 어느 순간 도저히 쓰러트릴 수 없는 괴물로 변모하기에 세 번째 방을 공략하는 데 있어 섣부른 공격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세 번째 방을 한 층 더 까다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골렘들의 움직임이었다.

   

   그 녀석들은 쓰러져선 안 될 골렘과 쓰러져도 괜찮을 골렘을 구분하고 이용할 줄 알았다.

   

   표식이 있는 골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던졌고, 개 중에는 일부러 쓰러지기 위해 돌격하는 놈들까지도 존재했지.

   

   덕분에 쿠르텐의 파티는 이 방에서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대충 공격하기만 해도 박살나는 골렘들이 제발 날 좀 죽여 달라고 달려드는 데 어찌 까다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강자는 강자라는 것일까.

   

   쿠르텐의 파티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세 번째 방에 익숙해졌고 결국 성공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이제 세 번째 방을 넘기 위해 세 구의 골렘 만을 처리하면 되는 그 순간. 성공에 눈이 먼 쿠르텐이 여태까지 아껴 두었던 자신의 무력을 드러내 버렸다.

   

   남아 있는 세 골렘을 포함해서 남아 있는 모든 골렘을 박살내는 것으로 세 번째 방을 클리어하려 한 것이다.

   

   “설마 주변에 다른 골렘들이 벽을 만들어 남은 골렘을 지키려 할 줄이야.”

   

   그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 하여 결과가 좋을 수는 없었으니.

   

   쿠르텐의 공격은 남은 골렘을 일소하는 데에 실패했고, 그렇게 쿠르텐의 파티는 던전 바깥으로 내쫓기게 되었다.

   

   “이제 거하게 실수했으니까 다신 그런 짓 안 할 거지?”

   “그럼. 또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순 없지.”

   “그럼 됐어. 다시 해보자. 이번엔 공략할 수 있을 거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쿠르텐의 파티가 다시금 던전에 진입하려던 그 때.

   

   던전학 조교가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이 쪽을 봐 주십시오!”

   

   성량 확대의 마법을 사용한 조교가 소리를 내지르자 시험장에 머물던 이들이 고개를 돌린다.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여든 것을 확인한 조교는 공지문을 펼쳐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기말고사 던전의 힌트가 지급됩니다! 다만 힌트를 지급받을 시엔 기말고사 성적에 패널티가 붙는 것은 물론 최초 공략자로 인정받을 수도 없게 되니 신중을 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후에도 던전학 조교는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패널티가 파티 전체에 적용된다는 점.

   

   힌트를 볼 경우 발설 금지 마법이 부여되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 없게 된다는 점.

   

   힌트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줄 뿐 바로 정답으로 나아가게 해주지 않는다는 점 등을 말이다.

   

   조교가 모든 설명을 끝마쳤을 즈음 시험장에 머무르던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아직 힌트의 내용에 힌트를 받을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에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것이다.

   

   그 미묘한 공기 속에서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2학년의 한 파티였다.

   

   “패널티는 확인하셨습니까?”

   “네. 저흰 어차피 최초 공략에 아무 관심 없거든요.”

   “그럼 이걸 받으십시오. 종이를 펼친 순간부터 그 곳에 적힌 내용은 당신들만 볼 수 있습니다.”

   “좀 파격적인 힌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2학년 학생들이 힌트를 펼치자 그 곳으로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힌트의 내용을 공유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힌트를 읽은 학생의 반응을 확인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니 저들의 반응을 보고서 힌트의 가치를 추측한 후 힌트를 받을지 말지를 택하면 되는 것이다.

   

   여러 속물의 시선 한 가운데에 선 2학년 파티는 콧노래를 부르며 힌트를 펼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표정을 굳히더니.

   

   중간부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힌트 종이를 벅벅 찢어버리고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불태워서 재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걸 본 다른 학생들은 저 힌트가 쓸모없는거였나보다. 먼저 나서지 않길 잘했다. 같은 생각을 하며 2학년 학생들을 바보같다 여겼지만.

   

   정작 힌트를 봤던 2학년 파티는 자신들을 향하는 시선과 중얼거림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던전의 입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진짜 개 같네.”

   “하. 씨발. 이렇게 꼴 받은 것도 진짜 오랜만인 것 같은데.”

   “쫄보새끼가 아닌 걸 보여주면 될 거 아냐.”

   “지가 허접한 지 우리가 허접한 지 두고 보면 알겠지.”

   

   각자 다짐하듯 욕지거리를 내뱉은 2학년 파티가 던전 안으로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참 아래쪽에 있던 그들의 이름이 성큼 위쪽으로 올라왔다.

   

   첫 번째 방조차 통과하지 못해 빌빌거리던 이들이 힌트를 보자마자 첫 번째 방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체 힌트에 뭐가 적혀 있길래.”

   “나도 힌트 받아 볼까.”

   “쟤네가 통과했다는 건 나도 통과할 수 있다는 건데.”

   

   희희낙락해하며 힌트를 펼친 이들은 2학년 학생들이 왜 욕지거리를 내뱉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 어차피 너희 같은 개허접쓰레기들은 내일도 힌트를 보러 올 거 아냐♡ 푸하핳♡ 매도당할 걸 알면서도 힌트를 받으러 올 한심한 꼴을 상상해 보니까 웃기네♡ 패배자들♡ 다음에 봐~♡’

   ‘PS. 혹시 화났어?♡ 이 글 쓴 사람을 혼내주고 싶어 졌어?♡ 그럼 던전을 끝까지 공략해서 허접이 아니란 걸 증명해 봐♡ 그럼 미~안~합~니~다♡ 라고 해줄게♡ 물론 힌트를 보는 허접허접개허접들이 내가 만든 멋진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설마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줄 알고 뒷면을 살펴 본 거야?♡ 푸하하핳♡ 유감~♡ 그런 거 없는데~♡’

   

   그 날. 던전학 시험의 힌트를 본 사람들은 모두 다 마음속으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이 도발적인 힌트를 쓴 녀석에게 예의라는 걸 가르쳐 주겠노라고 말이다.

   

   *

   

   던전학 조교가 아카데미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아침 일찍 시험장을 찾은 아서 일행은 이미 던전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이젠 이 늑대도 귀여워 보이네요.”

   

   실없는 소리를 하는 조이를 무시한 채 늑대의 본체를 걷어차 쓰러트린 아서는 피로에 찌들어 있는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3왕자님.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나요?”

   

   그런 그가 걱정스러웠던 것일까. 페이비가 옆으로 다가가자 아서가 쓴웃음을 지었다.

   

   “던전의 공략법을 생각하는 것에 더해 시험의 준비까지 하려니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더군요.”

   

   본래는 컨디션의 관리를 위해서라도 억지로 잠을 청하려했던 아서였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평민 학생한테 쳐발렸으면서 잠이 와? 실력 없는 개허접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하다니. 완전 한심해~’

   

   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 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것이다.

   

   “3왕자님. 우리 이미 공략 방법을 알아낸 거 아니었어?”

   

   공략법을 생각했단 말에 그의 옆에 있던 프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랬지.”

   

   어젯저녁. 아서 일행은 이미 세 번째 방의 공략법을 대략 정립해 두었다.

   

   완벽하다 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세 번째 방을 통과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지.

   

   진입 제한 시간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아서 일행은 이미 세 번째 방을 공략하고서 네 번째 방에 도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다. 우리가 그 방을 한두 번 들를 것이 아니잖으냐. 앞으로 수십 어쩌면 수 백 번을 들려야 할 텐데 최적화를 해두는 편이 낫지.”

   “그런 거야?”

   “그런 것이니 일단 들어라. 세 번째 방에 들어가고 나서 무얼 해야 할지 설명해 주도록 할 테니까.”

   

   다른 세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확인한 아서는 밤을 세워가면서 만들어 낸 계획을 읊어 주었다.

   

   “우선 입장하자마자 조이 그대가 벌판 전체를 공격할 마법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던 조이는 묘한 기시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라.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데.

   

   미리 판을 짜두고서 거기에 상대를 끌어들이는 듯한 이 방식은 분명.

   

   “조이. 듣고 있나?”

   “아. 이거 알른 영애의 방식이군요?”

   

   그래. 맞아. 이건 알른 영애가 던전을 공략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야.

   

   그 분께서는 던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모든 걸 설계해 둔 상태에서 거기에 맞춰 움직임을 정하시니까.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고서 입꼬리를 살짝 올린 조이는 문득 주변이 고요해진 것을 느끼고서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고 있던 아서가 눈을 부릅뜬 채로 굳어 있었다.

   

   “3왕자님?”

   “…하. 그런가. 나는 무의식중에 그녀를 따라하고 있었던 것인가.”

   “저기.”

   “아무것도 아니다. 조이. 신경 쓰지 마라.”

   

   아무렇게 않은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조이는 생각했지만 그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루시의 방식을 따라했음을 깨달은 아서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으니까.

   

   “방금 전에 하던 설명을 이어 나가자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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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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