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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솔직하게 말해 크라슈는 반신반의했다.

     

   세계의 틈을 대상으로 블랙 후드를 발동시키다니.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었기에 시도했고.

   예상외로 블랙 후드는 정말로 작동했다.

     

   크라슈는 자신의 손아귀로 몰려드는 아우라의 힘을 느꼈다.

     

   세계의 틈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것에 의문점은 있었으나 발동한 시점에서 망설일 것 없었다.

     

   블랙 후드는 대상의 것을 훔치길 시작한 순간 훔치려고 한 것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전부 가져온다.

     

   본래라면 크라슈가 아무리 아우라를 흡수하려 한들 자신의 그릇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크라슈가 용왕족의 육체와 사계를 통해 세계 침식의 그릇까지 아우라의 그릇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들.

   결국 그릇인 이상 한계점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정한 수준이 넘어가 버린다면 힘은 전부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아우라를 흡수한다 한들 결국 최대치에 도달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러나 블랙 후드로 흡수된 아우라는 달랐다.

   블랙 후드는 이제 아우라가 자기 것이라는 것처럼 탐욕스럽게 크라슈의 몸속에 가둬 두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 주제에 자기 것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이기심이었다.

     

   하지만 이건 크라슈에게 기회였다.

     

   블랙 후드는 스킬이다.

   그 말은 즉, 블랙 후드라는 스킬의 기본 모토는 신기라는 점.

     

   크라슈는 블랙 후드가 아우라를 자기 몸속에 가둬 두기 위해 신기로 둘렸음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었군.’

     

   그릇을 넘어 크라슈는 자기 몸을 가득 채워 나가는 아우라를 느꼈다.

   아우라의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아우라는 크라슈의 몸을 가득 채우다 못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자 제멋대로 날뛰려 했다.

     

   하지만 크라슈라고 해서 그걸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아우라가 일정 이상 차면 바깥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은 해결했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을 내부에서 아우라를 먹어 치우는 것이다.

     

   그 순간 바이오렌에게서 받았던 기문이 발동되었다.

   기문은 날뛰려는 아우라를 강제로 진정시켰다.

     

   아우라가 크라슈의 몸을 부수지 않도록 진정시킨 것이었다.

     

   곧이어 나선 것은 사계였다.

   사계는 몸 내부를 가득 채운 아우라를 마구잡이로 먹어 치웠다.

     

   사계는 육체에 어떤 영향이 가더라도 죽지 않게 유지 시킬 수 있다.

   크라슈는 1차적으로 사계를 거쳐 놈의 뱃속에 아우라를 전부 때려 넣었다.

     

   그렇지만 사계라고 한들 넘쳐 나는 아우라를 전부 처리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크라슈는 여기서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비기들을 써먹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눈이 고요히 감겼다.

   그리고 크라슈는 사계가 삼킨 아우라에 집중했다.

     

   크라슈는 사계를 통해 아우라를 하나씩 분할시켰다.

   그러고는 분할된 아우라의 위에 라이오너를 덧씌웠다.

     

   덧씌워진 라이오너는 아우라를 둥글게 말아 넣었다.

   말아진 아우라는 라이오너를 빠져나가고자 날뛰려 했지만, 기문이 강제로 안정화했다.

     

   그렇게 거대한 구의 형태가 된 아우라에 크라슈는 듀란달에게 배운 비기를 덧씌웠다.

     

   그건 바로 창제무신이었다.

     

   본래라면 바깥에 무구의 형태로 만들어져야 할 창제무신이다.

   그러나 크라슈는 창제무신을 다름 아닌 내부에서 발동시켰다.

     

   창제무신의 기본 방식은 아우라를 한계치까지 압축시키는 것.

   크라슈는 그것을 거대한 구의 형태가 된 아우라에 적용해 아우라를 강제로 압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우라는 끊임없이 날뛰었지만, 크라슈는 지금까지 힘의 폭주를 검귀의 발도술을 통해 제어하는 법을 꾸준히 숙련해왔다.

     

   ‘네가 아무리 날뛰려 해도.’

     

   검귀의 발도술과 기문을 응용한다면 억누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크라슈는 정신을 악착같이 유지 시키며 인내해야 했다.

   자칫 삐끗하는 순간 크라슈가 평소 사용하던 멸화천뢰가 몸속에서 벌어질지 모른다.

     

   몸이 터져 죽을 생각은 없었던 만큼 최대한 정신력을 끌어모아 집중시켜야 했다.

     

   거대했던 아우라의 구체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우라의 구체가 자그마한 구슬만큼 작아진 그 순간 크라슈는 한계를 깨닫고 기문을 발동시켰다.

     

   내부에서 날뛰던 아우라가 기문에 의해 그 지점에서 고정되었다.

     

   그것은 아우라의 결정체, 내단이었다.

     

   ‘이거라면 아우라를 계속 남겨둘 수 있다.’

     

   크라슈가 얼굴에 식은땀을 가득 흘린 채 고개를 들었다.

   아직 블랙 후드의 효과 덕분에 몸에 간신히 남아 있는 아우라가 수없이 많이 남아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아우라를 전부 내단으로 만들 때까지 이곳을 뜰 수 없을 테니까.

     

   ‘부디 내 정신력이 끊어지기 전에.’

     

   버텨내야 한다.

   설령, 그 시간이 끝없이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언제까지고, 시끄럽게 울던 매미도 한풀 꺾여 조용해지기 시작할 무렵.

   여기저기 곳곳에 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눈꽃의 아래, 한 소녀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카락이 불어온 바람을 따라 일렁였다.

     

   소녀의 이름은 비앙카 하덴하르츠.

   본인의 이름보다는 크라슈 발하임의 약혼녀로서 이름이 더 높은 그녀였다.

     

   “비앙카!”

     

   그러는 순간 그녀는 자신을 부르짖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옅은 금발의 목뒤에서 끊기는 머리카락을 지닌 한 소녀가 있었다.

     

   달레아 쥬논.

   제국 제일의 검가, 쥬논 가의 여식이었다.

     

   “쥬논.”

   “오늘은 평소보다 괜찮아 보이네?”

     

   쥬논의 말에 비앙카는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제는 정말 겨울이니까요.”

     

   거의 평생을 북부 지방에서 살았던 비앙카는 여전히 더위에 약한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여름 내내 비앙카는 항상 얼음 환수들을 옆에 끼고 다닐 만큼 더위에 취약했다.

     

   올해 날씨는 특히나 더웠다.

   오죽하면 가을을 생략하고, 날씨가 바로 겨울에 접어들었을까.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겨울에 들어선 덕분에 더위에 취약한 비앙카도 괜찮아진 시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더위에 약하면서 잘도 네 약혼자 옆에 붙어 다녔네.”

   “크라슈 님은 시원해요.”

   “힘을 쓰면 다르잖아.”

     

   달레아의 말대로 크라슈의 능력은 주로 불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 침식을 가장 수월하게 사용하기에 적합한 속성이 불꽃이다 보니.

   크라슈가 비기를 발동하곤 하면 그의 옆은 뜨거워서 다가가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비앙카는 크라슈가 비기를 발동할 때도 늘 옆에 붙어 다녔다.

   더위에 그토록 약함에도 자신의 약한 부분까지 이겨낼 만큼 크라슈의 곁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랑이네. 사랑이야.”

     

   달레아는 대단하다는 듯 감탄하며 비앙카의 옆에 서서 걸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주인은 언제쯤 온대?”

     

   크라슈가 라헬른 아카데미를 떠난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여름쯤에 떠났던 만큼 이제는 슬슬 얼굴을 비칠 때도 된 것 같건만.

   그는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벌써 초여름이 지나고, 여름과 가을 끝나서 겨울이 됐잖아. 분명 올해 결혼식을 올릴 거라 하지 않았었어?”

     

   달레아와 친해진 만큼 비앙카도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인지 달레아는 그녀가 올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것도 들었다.

     

   “괜찮아요. 크라슈 님이니까요.”

     

   비앙카는 딱히 토라진 기색 없이 당당히 말했다.

     

   “약속은 지키시는 분이에요.”

   “흐음, 비앙카 네가 그렇다면야.”

     

   비앙카는 크라슈를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실 올해 식을 올리지 않는다 해도 비앙카는 괜찮았다.

     

   그녀의 눈에 크라슈와 함께 맞춘 반지가 비치었다.

     

   약혼을 확실시하는 반지.

   이게 있는 만큼 그녀는 언제까지고 괜찮았다.

     

   오죽하면 세간에서 크라슈와 시즐리의 약혼 소식으로 화제가 되었음에도.

   정작 당사자 중 한 명인 비앙카가 걱정 없이 당당했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불안불안한데 말이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달레아는 비앙카를 살짝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불안하다뇨?”

   “그 사람 곁에 워낙 많잖아.”

     

   비앙카는 달레아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크라슈의 곁에는 그를 마음에 품고 있는 인물이 매우 많았다.

     

   비앙카는 크라슈를 마음에 품는 이들이 왜 많은지 알고 있었다.

     

   크라슈는 다른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불사지른다.

   문제는 차라리 그 속에 흑심이 있었다면 조금 꺼림칙하게 느끼겠지만.

     

   그에게는 목적은 있을지언정 흑심이 전혀 없었다.

   그저, 정말로 돕고 싶었기에 도왔다. 구하고 싶었기에 구했다.

     

   그 말이 크라슈에게 딱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그 점은 의외로 무심코 사람의 마음에 깊숙하게 파고든다.

     

   ‘왜 그렇게 되신지 이유를 모르지는 않지만요.’

     

   크라슈와 가장 오랜 기간을 함께 지내 온 비앙카다.

   비앙카는 크라슈가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크라슈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밖에 없다.

   그러니 그 단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어떤 흑심도 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그에게는 여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사람이라는 건 그런 목표 하나만을 보고 나아가는 이에게 약한 법이다.

   목표 하나만을 보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크라슈의 주위 사람들이 자꾸만 그에게 영향을 받아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게 그러했다.

     

   그러는 크라슈가 무려, 비앙카에게 흑심을 스스로 드러내 주었다.

   먼저 고백해주고, 결혼하자고 말해 주었다.

     

   비앙카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가치 있는지 다른 이들은 모를 것이다.

     

   비앙카가 등을 곱게 펴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비앙카 특유의 우쭐거리는 표정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우쭐거리고 있네. 귀엽게.”

     

   반년 동안 비앙카를 봐와서인지 슬슬 그녀의 표정을 읽기 시작한 달레아가 비앙카를 귀여워했다.

   어째선지 같은 동년배임에도 달레아는 비앙카보다 어른스러운 척 굴곤 했다.

     

   그때, 비앙카의 발이 대뜸 우뚝 멈췄다.

   따라 걷던 달레아가 비앙카의 멈춤에 의아해하며 따라 멈춘 순간.

     

   “크라슈 님이 돌아왔대!”

   “정말?”

     

   뒤늦게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레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비앙카를 돌아보았다.

     

   신체에서 월등한 재능을 지닌 달레아다.

   그런 그녀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애들의 이야기를 비앙카는 크라슈가 포함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달레아.”

     

   비앙카가 어느새 굳은 표정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달레아는 그 행동이 무슨 뜻인지 인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던 약혼자께서 왔다는데, 가봐야지.”

     

   비앙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저렇게나 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던 것이 참 웃겼다.

     

   크라슈는 오자마자 특수학관에 들렸다고 한다.

     

   달레아는 특수학관으로 달려가는 비앙카를 보며 흰색의 병아리가 날갯짓하며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는 것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얼마 후 특수학관에 도착한 비앙카의 걸음걸이가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달레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는 비앙카가 보는 방향을 따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말처럼 검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있었다.

   그동안 꽤 고되게 보내기라도 한 듯 조금 더 성숙해진 소년은 분명 크라슈 발하임이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크라슈가 온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 벌어진 상황이 문제였다.

     

   지금 크라슈의 앞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검은색의 머리카락에 보라색이 뒤섞인 한 소녀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하링 라그렌.

   독왕 라그렌의 딸이었다.

     

   문제는 그런 그녀가 지금 크라슈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말이다.

     

   달레아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비앙카의 얼굴을 본 달레아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수라장이다.’

   

   

   

   

     

   

   비앙카의 눈은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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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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