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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동검도의 북동부 선착장 근처에는 학교 소유의 2층 숙소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대강 짐을 풀고, 1층의 넓은 홀에서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오후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럼, 오늘은 이쪽부터 시작하죠.』 

       

       요까이찌 교수는 숙소와 인접한 등산로 앞에 우리를 모아놓고는 말했다. 

       

       『숙소가 있는 동북쪽으로부터, 산의 정상까지 이어지는 루-트입니다. 산길은 멀쩡한지, 길이 파손되어 실족할 위험은 없는지, 중간중간의 이정표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 잘 확인해 주세요.』 

       

       나, 송병오, 무라사끼 녀석같은 남학생들은 각자 삽 한자루씩을 들고, 이유하, 양복자, 아이까와같은 여학생들은 간단한 연장과 자잘한 물건들을 든 채로 대답했다. 

       

       『예…….』

       『모두 기운을 내세요! 그럼, 출발합시다!』 

       

       우리는 요까이찌 교수를 따라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내 뒤를 따르는 분대원들에게, 요까이찌 교수가 듣지 못하도록 조선어로 작게 말했다. 

       

       “내가 봐도 이번 임무는 평범한 일이긴 하지만 말야. 그래도 교수 놈들이 나를 일부러 이 곳에 보낸걸 보면 뭔가 있을지도 몰라.” 

       “알겠네!” 

       “다들 긴장을 늦추지 마. 아이까와랑 무라사끼한테도 조용히 통역해서 말해 줘.” 

       “응응!”

       “경계는 경계고, 어쨌든 맡은 일은 시키는대로 하자. 뭐, 산길 정비하는 거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요까이찌 교수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 조선어로 무슨 이야기를……』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무리 시국 지침으로 학교에서는 국어만 쓰라고는 하지만, 조선인은 조선어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죠. 게다가 여기는 학교 밖이니까 편하게 하세요.』 

       

       요까이찌 교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제 험담만 하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나중에 알게 되면 상처받는답니다? 하하…… 우와앗!』

       

       우리 쪽을 뒤돌아보며 걷던 요까이찌 교수는 갑자기 휘청하며, 등산로 바깥쪽의 내리막으로 몸이 기울었다.

       

       『선생!』

       

       나는 급히 요까이찌 교수의 팔을 붙잡고 잡아끌었다.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던 요까이찌 교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야, 도움받았습니다. 고마워요, 시라바야시 생도.』

        

       요까이찌 교수는 자신이 넘어질뻔한 길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이렇게 토사에 휩쓸려 등산로가 무너져내린 부분이 있지요? 이러면 생도들이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할 수 있으니, 이렇게 미리 점검을 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스스로도 챙겨 온 삽을 들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는 간단하게 보수할 수 있으니, 남자 생도들이 저와 함께 삽으로 메꾸어 봅시다.』

        

       ‘결국은 삽질이구나.’

       

       삽으로 흙을 퍼다가 산길을 메꾸고 있자니, 어쩐지 21세기에서 각성하기 전, 군대에 있을 때 진지공사를 하던 생각이 나는데……

       

       그러던 중, 무라사끼 녀석이 삽을 내던지며 투덜거렸다.

       

       『쳇! 의미 모르겠습니다!』 

       『무라사끼 생도. 무엇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거죠?』

       『애초에 엽사가 된다는 놈들이라면, 길이 험하다고 넘어져 다치거나 길을 잃는 놈이 똥바보인 것 아닙니까! 마수와 싸운다면 지형적인 위험도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 

       

       ‘좋아, 무라사끼 겐지.’

       

       나는 생각했다. 겉으로 보면 무라사끼 녀석이 뜬금없이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것도 내가 지시한 것이다. 

       

       ‘저 요까이찌라는 교수의 어수룩하고 선해보이는 모습도, 어쩌면 가면을 쓴 것일지 몰라.’

       

       양복자가 친화력으로 요까이찌 교수의 경계심을 낮추는 역할이라면, 무라사끼 녀석은 요까이찌 교수에게 반항하며 속을 살살 긁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자신에게 대드는 생도에게 요까이찌 교수가 어떻게 가면을 벗고 대응하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뭐, 내가 딱히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무라사끼 녀석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기도 했지만. 

       

       『이야, 무라사끼 생도의 말도 옳습니다. 실제상황에서 마수와 싸울 때에는 지형적인 위험도 본인이 감수해야죠.』

       

       무라사끼 녀석의 반항에, 요까이찌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저희가 점검하는 것은 본격적인 실습이 개시되기 전까지 생도들이 이동하는 루-트이기도 하고, 전투 중 잠시 후퇴한 생도들이나 도중에 시험을 포기한 생도, 덧붙여 부상당한 생도를 위한 산길과 안전구역입니다. 어디까지나 시험이니까, 안전해야 할 구역은 확실히 안전해야지요.』 

       

       ‘이 사람, 화도 안 내네.’

       

       게다가 하는 말도 맞는 말 뿐이었다.  

       

       ‘으음. 뭐지?’ 

       

       대동아공영회 소속의 교수인데, 시종일관 어리숙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맞는 말만 하니까 조금 인지부조화가 오는 것 같았다. 

       

       ‘진짜 그냥 착한 놈인가……?’

       

       물론 그 악랄한 대동아공영회 소속인데 착하다니 이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개인의 성격은 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해괴한 교리의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도,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외에는 어딜 봐도 멀쩡하고 선한 사람이 종종 있지 않은가. 이 사람도 그런 경우이리라.

        

       하긴, 지금까지 내가 싸워온 놈들이 죄다 미친 빌런들이어서 그렇지, 대동아공영회 소속이라고 전부 미친 놈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쳐도 이 사람은 정말 성실하고 멀쩡한 사람 같은데, 왜 대동아공영회에 들어온 걸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자아!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조금 더 힘내서, 맡은 바 일을 해내도록 해요!』

       

       그렇게 우리는 요까이찌 교수의 인솔을 따라, 산길이 토사에 휩쓸려 무너져내린 부분이 있으면 메꾸거나 지도에 체크하고,

       

       안전 로프가 끊어져있으면 새로 묶어서 이어주고.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있거나 쓰러져있는 이정표를 바로세우고,

        

       안전지역 공터에 무성하게 자라난 수풀을 베고…… 

       

       이렇게 평범한 잡일을 이어나가다보니, 어쩐지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의심이 너무 과했나.’ 

       

       뭔가 함정이라도 준비해놨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진짜로 잡일 시키려고 보낸 모양이었다. 

       

       하긴. 함정을 준비했다면 요까이찌 교수를 같이 보낼리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별다른 전투능력도 없는 자기네 교수를 위험한 곳에 보내진 않겠지. 

       

       다만……

       

       ‘개덥네, 시발.’

       

       더웠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지, 다른 녀석들도 하나둘 투덜거렸다.

       

       “제기랄! 더워서 죽겠군!”

       “소오 군, 소오소오! 백년만의 더위라쟝!” 

       “그러게 말일세! 물론 천기예보에선 매년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긴 하지만, 이번엔 정말 그런 모양이야!”

       

       아닌게 아니라 진짜 덥긴 덥다. 내가 살았던 세계의 역사에서도 1939년이 이렇게 더웠나. 아무리 대동아공영회라도 날씨까진 조종하지 못할테니 아마 그랬겠지. 

       

       주변은 온통 숲이었기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은 파랗고, 중천에 뜬 태양빛이 뜨겁다. 

       

       ‘이렇게 뙤약볕이 쏟아지는 여름날에 등산이라니.’ 

       

       대동아공영회 교수들은 나에게 소소하게 엿을 먹이려고 여길 보낸 걸까? 그나마 이유하가 우리 주변의 온도를 낮춰 주기는 했지만, 이유하도 마력과 체력에 한계가 있다.

       

       요까이찌 교수도 힘든지 헐떡거리며 말했다.

       

       『다, 다들 힘들지요? 그래도 힘내서! 조, 조금만 더 가면, 정상입니다……』 

       『선생은 괜찮아요?』 

       『저, 저는……』 

       

       요까이찌 교수는 잔뜩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제가 대학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고, 말했지요? 민속학 연구를 위한 답사로, 험난한 오지를 다닌 경험은 충분…… 그, 그러니까 이 정도는 여유입니다, 여유!』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데.’ 

       

       요까이찌 교수는 자신있게 말하면서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아니 이 양반, 비쩍 마른 송병오 녀석보다 더하네. 한창 젊은 사람인데 체력이 영락없이 노인네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마침내 동검도 산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요까이찌 교수는 모자를 벗고 부채질을 하면서도, 산 정상을 둘러보며 말을 시작했다. 

       

       『하아, 하아……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봉화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이 전보다 전화같은 통신수단이 없던 시절, 불을 피워서—』

       

       산 정상 팔각정 위에 대자로 뻗은 양복자가 외쳤다. 

       

       『모오, 조금 쉬게 해 주세요!』 

       『앗. 제가 또 습관대로……』 

       

       다른 녀석들 뿐만 아니라, 나도 간만의 등산이라 힘들다. 잠시 숨을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음……?’

       

       지금까진 동북쪽으로부터 정상을 향해 올라오는 길이라 몰랐는데, 정상에 서서 서쪽을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섬이 하나 더 있었다. 

       

       ‘강화도는 북쪽에 있는데. 저건 무슨 섬이지?’

       

       지도를 보니, 서봉도(西棒島)라는 이름의 섬이다. 이곳 동검도와 나란히 있는 쌍둥이같은 섬이지만, 동검도보다 두배 가량 더 큰 섬. 

       

       주민들이 사는 섬 같지는 않은데, 저기도 산 중턱에 얼핏 건물같은게 보인다. 나는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동아엽사재단 ■■■ 연구소……?’ 

       

       중간의 글자가 먹칠을 한 듯 지워져 있었다. 

       

       ‘뭐지.’ 

       

       서봉도. 저 섬도 이곳 동검도처럼, 대동아공영회 소유의 섬인가. 게다가 이름이 지워진 연구소라니.  저곳에 뭔가가 숨겨져 있으리란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서봉도라…….’

       

       나는 저 섬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분 탓일까, 멀리 서남쪽 하늘에서부터 먹구름이 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2/4)!!!!!

    그리고 잠시 TMI입니당!!!!

    1. 1939년의 여름은 실제로 몹시도 더웠다고 합니다. 무려 나○위키에도 ‘1939년 폭염’이라고 문서가 만들어져 있네요.

    2. 동검도와 서봉도
    작중에서는 서해바다 강화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서봉도(西棒島)와 동검도(東劍島)가 마치 쌍둥이 섬인 것처럼 나왔습니다만, 실제로는 동검도만 존재할 뿐 서봉도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섬입니다.
    또한 작중에서는 동검도를 한자로 ‘東劍島’라고 표기했지만, 실제의 동검도(東檢島)에는 ‘劍(칼 검)’ 대신 ‘檢(검사할 검)’이 들어갑니다. 과거 중국의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거쳐오는 곳이었기에, 동쪽의 검문소라는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네요.
    (이제 아시겠지용? 한자 틀리게 썼다구 혼내지 말아주세요…… 오들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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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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