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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9

       몸이 안 좋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첫째는 ‘포말의 반지’를 사용하여 생명력을 타인과 나누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사지가 하나씩 잘렸음에도 모두 안전하게 돌아왔다. 그 대가로 나는 당분간 요양 생활을 해야 하는 몸이 되었고.

       

       “미쳤어요? 대체 몸을 얼마나 혹사한 거예요?”

       

       진찰을 온 시큐엘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당연하죠! 이대로라면 당신은…….”

       

       시큐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예요.”

       

       잠깐만, 올해라니.

       

       벌써 8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앞으로 넉 달 정도밖에 못 산다고요…?”

       “쉿! 조용히…!”

       

       원래라면 봄까지 살 수 있었을 텐데. 3개월 치 생명력을 동료들 살리는 데 써버린 셈이다.

       

       “애초에 ‘포말의 반지’가 왜 그런 이름을 가졌겠어요? 결국 누군가는 물거품처럼 사라져야 해요. 생명은 비가역적이니까요.”

       

       그 뒤로 나는 시큐엘의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다, 거기서 진짜로 죽었으면 어떻게 했을 것이냐.

       

       나는 쓴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땐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방법이 없었어도!”

       

       시큐엘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잔소리가 일발 장전되는 것이 훤히 보인다. 나는 대화가 길어지기 전에 주제를 돌렸다.

       

       “아무튼, 흑주도 만들어졌겠다. 슬슬 마왕과의 악연도 끝이 보이긴 하잖아요?”

       “네. 그래서 저흰 다시 전선으로 나가려고요.”

       “…전선으로 나간다니요?”

       

       시큐엘은 낯빛을 굳히며 대답했다.

       

       “이프리트가 죽었어요. 흑주가 개발되기 전에는 저희도 두려움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마왕군도 쉽게 나서지 못할 테니 이 틈을 타서 저희가 직접 그들을 몰아낼 거예요.”

       

       그것이 정령왕으로서의 도리입니다. 시큐엘은 그런 철학을 설파하며 자리를 떴다.

       

       “뭐…. 문제는 없겠지.”

       “네,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동생은 당분간 회복에만 집중하세요. 알겠어요?”

       

       최상급 전계마도의 정령, 앨리스가 내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생. 아픈 데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요.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까.”

       

       시큐엘에게 구체적인 시한부 소식을 들은 앨리스.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이것이 내가 몸이 안 좋은 두 번째 이유였다. 

       

       너무 부담된다고.

       

       “언니, 울어?”

       “울긴요.”

       

       앨리스는 하얀 머리카락을 사락거리며 내 곁을 맴돌았다. 

       

       생각해 보니 이 언니 또한 정령이었다. 여신이 보낸 사도 말이다. 내가 현세로 돌아가고 나면 영영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별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앨리스는 아랫입술을 자근거리며 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부담스러운 간호를 한창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에테르…!”

       “우리 왔어!”

       

       회복실 문이 벌컥, 하고 열리며 로테와 프레이가 들어왔다.

       

       프레이는 나를 보자마자 도도도 달려와서 풀썩 안겼다. 과일 바구니를 든 로테가 그 뒤를 따르며 표정을 굳혔다.

       

       두 사람만 온 게 아니었다. 클라이스나 헤를라인을 비롯하여 아는 사람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딸려왔다.

       

       당연히 아카샤와 로즈마리도 들어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나의 두 여동생.

       

       “언니이!”

       

       블루베리는 프레이를 밀쳐내고 내 품으로 슬라이딩하듯 들어왔다. 프레이의 얼굴에 불퉁한 감정이 어렸다.

       

       두 꼬맹이가 땍땍거리며 자리싸움을 시작하려던 찰나, 로테가 둘을 들어올리고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얌전히 앉혔다.

       

       “에테르.”

       

       자리에 앉은 로테의 붉은 눈동자에 이슬이 맺힌다.

       

       “내가,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 말을 신호탄 삼아 베스트 프렌드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시큐엘에 이어 두 번째였다. 심지어 러닝 타임도 서너 배는 더 길었다.

       

       그런데도 나는 로테의 응석을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 하지 마. 알았어?”

       “…알겠습니다.”

       

       로테는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껴안았다. 나는 미안하다고 답했다.

       

       로테를 잘 달래주는 한편, 문안을 온 다른 사람들도 맞이했다. 이후 로즈마리나 아카샤와도 포옹을 나누었다. 클라이스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술만 달싹이고 말았다. 헤를라인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이제 병실에는 나, 그리고 다른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

       

       버멜 호르데. 그가 반개한 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몸은 괜찮아?”

       “그럭저럭.”

       

       내 시선이 그의 손 부분을 향했다.

       

       “너야말로 링거는 왜 맞고 있어?”

       

       몸이 아픈 것인지, 버멜은 혈관주사 같은 걸 맞고 있었다.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새끼, 시큰둥하기는.”

       

       나는 눈대중으로 버멜을 진단했다. 전체적으로 야윈 인상이었다. 면상은 귀신에 씌기라도 한 것처럼 창백했다.

       

       “마력 고갈 때문이네.”

       “…….”

       

       버멜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한 번 찔러본 건데 정답이었다.

       

       “혹시 공간진을 발동할 때 무리했어?”

       “물어보지 마.”

       “마왕 잡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지. 안 그래?”

       

       버멜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손을 꽉 말아쥐었다. 사내답지 않게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진회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 그때까진 살아 있어야지.”

       

       버멜의 그 말을 끝으로 당분간 소슬한 침묵이 이어졌다.

       

       “……심심한데 사과나 깎아줄까?”

       “마음대로 해.”

       

       사각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버멜은 과일을 깎으면서 몇 번이나 손가락을 베였다.

       

       서투른 솜씨였다. 과일 모양도 바위처럼 울퉁불퉁했다. 그래도 당도가 있어서 그런지 먹을 만했다.

       

       나는 쓰라린 아랫배를 문지르며 휴식을 취했다. 그 뒤로 버멜은 내가 잠들 때까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좋아하는 영화나 게임, 자신이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알바했었던 호프집, 지구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 등등. 대부분이 마왕을 잡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일 외에 타인과 이야기를 나눈 게 얼마 만이던가. 덕분에 하루가 심심하지는 않았다.

       

       

       **

       

       

       –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예요.

       

       문 너머로 들었던 수군(水君)의 경고.

       

       버멜은 그 상태에서 병문안을 들어갈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저 가만히 벽에 기대서 시큐엘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4개월….’

       

       딱 그만한 시간이 남았다.

       

       버멜의 입이 다물어졌다.

       

       버멜은 밤이 늦을 때까지 에테르를 간병했다. 사실 말이 간병이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 것에 가까웠다.

       

       피곤에 겨워 색색 잠이 든 그녀를 내버려 두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도 먼지가 빠지지 않았는지 하늘은 여전히 거뭇했다.

       

       섬의 산책로를 따라 걷던 중의 일이었다. 버멜의 시야에 자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들어왔다. 로즈마리였다.

       

       “이봐, 너. 생각보다 꽤 오래 버티는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로즈마리는 간드러진 콧소리를 내며 말을 걸어왔다.

       

       “언니를 위해 움직이는 것 말이야. 다른 엘프랑 똑같이 뒤통수치고 도망칠 줄 알았는데.”

       

       에테르가 타락했던 시절. 버멜은 로즈마리와 한 가지 약속을 나누었다.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협력하자는 약속이었다.

       

       약속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 로즈마리가 더 이상 버멜의 우군으로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은 솔직히 보기 좋아. 칭찬해 줄게.”

       

       로즈마리는 폴짝 뛰어서 버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살다 살다 챕터 보스한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날도 오는군.’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미안하기도 했다. 로즈마리는 에테르에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모른다. 버멜이 이를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큰 사달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대신 버멜은 다른 말을 남기기로 했다.

       

       “타르케닐 왕녀, 이것 하나만 알아두길 바란다. 너희 금안족은 앞으로 축복받을 거야. 내가 보증하지.”

       “그거 말만이라도 고맙네.”

       

       로즈마리는 모른다. 아니, 에테르조차도 모른다.

       

       자신은 이미 대가를 지불했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로즈마리와의 짤막한 대화를 마친 뒤 버멜은 숙소로 돌아왔다.

       

       등받이 의자에 머리와 등을 기대고는 손을 깍지 꼈다. 멍한 표정으로 창가를 바라보다가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

       

       “…에어리얼 님.”

       

       바람과도 같은 소녀가 버멜의 머리 위로 현현했다.

       

       버멜은 깍지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왼손 검지에는 우정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정령의 가호 능력을 대폭 늘려주는 ‘창공의 반지’였다.

       

       “저는 당신과 계약하고 싶습니다.”

       

       에어리얼이 말을 듣고는 책상 아래로 사라락 내려왔다. 녹주석을 닮은 눈동자에는 호기심과 대견함이 반씩 담겨있었다.

       

       “당신이 그동안 저를 시험하고 계셨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제 동향 사람을 지키고 싶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온갖 모진 일을 겪었던 그녀를 살피고 싶습니다.”

       

       에어리얼의 눈동자가 버멜에 맞닿는다. 버멜은 초점을 흩뜨리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설령 저의 결말이 좋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다른 모두와 행복하길 바랍니다.”

       

       에어리얼이 피식 웃었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로 책상 위에 내려앉는다. 그녀의 주위에 은은한 민트 빛 오오라가 나타났다.

       

       버멜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본디 정령왕은 경건한 자세로 영접해야 한다. 팔을 곧게 펴고, 두 눈을 그녀의 존안에 고정했다.

       

       “제게 그녀를 웃게 할 힘을 빌려주십시오.”

       

       이윽고 에어리얼의 나신이 밝게 빛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연재시간을 12시 자정으로 맞춘 건 수면패턴을 정상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자다가 일어나서도 글쓰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뭔가 중독된 듯해요…!

    아무래도 무접점 키보드 때문인 거 같아요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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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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