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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나와 프란체는 저택을 나왔다. 이번에는 몰래 나가기 위해 개구멍을 이용하거나 창문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정식적인 외출이었다.

         

       “뭔가 이렇게 나가니 어색하네요.”

       “이게 정상이야.”

         

       저택의 입구에 준비된 마차에 탑승했다. 공작가의 마부가 말했다.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의류점, 프리다로.”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덜컹. 마차가 움직였다.

         

       “여기서 의류점 프리다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아. 공작령에서 황도까지 직선으로 가는 길이 있거든.”

         

       고속도로 같은 건가. 그런 편리한 게 있네. 근데 뭔가 잊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카자르를 데려가야 하는데 안 데려왔네. 공장의 내부를 걔가 직접 볼 필요가 있는데. 나는 프란체에게 말했다.

         

       “카자르를 데려가야 합니다.”

       “어째서?”

       “공장의 내부를 설명해줘도 괜찮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할 테니까요.”

       “흐음.”

         

       톡. 톡. 프란체는 검지로 마차의 소파를 두드렸다.

         

       “그래, 가는 도중에 데리고 가자꾸나.”

       “그럼 마부에게 말해놓겠습니다.”

         

       나는 마차의 앞창을 열고 마부에게 주소지를 전했다.

         

       “공녀님께서 여기에 잠깐 들리자고 하신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얼마나 이동했을까. 익숙한 저택 앞에 서게 되었다.

         

       “도착했습니다.”

       “잠시 기다리게.”

         

       나는 마차에 내려 카자르가 살고 있는 집 문을 두드렸다.

         

       “카자르. 나다. 문 열어.”

         

       벌컥. 문이 열리며 검은색 긴 머리가 휘날린다. 카자르였다.

         

       “어, 무슨 일이세요? 공녀님 과외 시간인가?”

       “그건 아니고. 전에 말했던 해줘야 할 일이다.”

       “아, 네.”

         

       카자르는 “잠시만요.” 하더니 안쪽으로 들어가 나갈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가시죠.”

         

       그렇게 카자르까지 마차에 탑승하고, 프란체는 건너편에 혼자. 그리고 나와 카자르는 나란히 같이 앉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프란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꼭 둘이 같이 앉아야겠니?”

       “그럼 일어나서 가겠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프란체는 고개를 휘젓곤 한숨을 내쉬었다.

         

       “됐단다.”

       “뭐예요? 사람 궁금하게 하시네.”

         

       카자르는 저런 프란체가 이해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카자르. 혹시 성별 전환 마법을 사용하면 성격도 바뀌나?”

       “네. 갑작스러운 호르몬 변화로 인해 정반대의 성격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게임에서 그렇게 딱딱하고 무뚝뚝한 캐릭터였군. 지금 모습은 그냥 맹랑한 소녀인데.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그냥 궁금해져서.”

       “저번부터 성별 바꾸기 마법에 관심이 있으신 거 같은데. 혹시…?”

         

       얘가 뭔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쉽네요. 남한테도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무서운 소리를. 물론, 환영하는 사람은 있을 거다. 현대에서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은근 많았거든…….

         

       나와 카자르가 분위기 좋게 대화하고 있자 프란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둘이 사이가 좋구나.”

       “네? 그냥 평범하지 않나요?”

       “흐응.”

         

       왠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내가 뭐 잘못했나?

         

       “그렇게 잡담을 할 시간이 있으면 이 틈에 마법이나 알려주렴.”

       “아, 그럴까요? 어차피 할 것도 없었는데.”

         

       카자르는 자리를 옮겨 프란체의 옆에 앉았다.

         

       “자, 그럼 마법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마법 과외를 시작한 카자르. 프란체가 마법을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해서 그런지 카자르도 가르치는 맛이 있나 보다.

         

       ‘즐거워 보이네.’

         

       프란체가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것도 모자라 나중에 있을 계획에서 엄청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거다.

         

       ‘뭐, 사업을 다 성공시켜야 가능한 일이라 머나먼 얘기지만.’

         

       그래도 내가 마음먹은 이상 그때가 오긴 하겠지.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프란체는 카자르의 가르침을 대부분 이해하고 흡수했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카자르였다.

         

       “공녀님, 사실 어디서 마법 배우신 거 아니에요?”

       “이번이 처음이란다. 수학을 배운 것도 진이 전에 알려준 게 전부야.”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저 사람이 수학을 알려줬다고요? 근육만 우락부락해서 검만 잡고 살아온 줄 알았는데?”

         

       쟤는 나를 뭐로 보는 거지.

         

       “지금은 이래도 예전에는 왕족이었어. 이 정도 교육은 기본적으로 받는다.”

       “아, 왕족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요.”

         

       쟤는 진짜 나를 뭐로 보는 거지? 근데 뭐. 나도 사실 사기를 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원래의 진 바렌베르크가 왕족인 거지, 안에 있는 사람은 100만 뮤튜버 김공략이니까.

         

       나는 프란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녀님. 새로 배운 마법 한번 사용해보시죠.”

       “마차에서 사용할만한 게 있나?”

       “제가 알려드린 것 중에 그거 있잖아요?”

       “아, 그거.”

         

       그게 뭔데. 나만 빼놓고 자기들만 재밌는 얘기 하네. 프란체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보여줄게. 아직 불완전해서 제대로 될진 모르겠지만.”

         

       프란체의 손끝에 마력이 응집되며 주변 공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흑색의 안개가 피어오른다. 역시나. 프란체의 속성은 암흑이었다.

       

       “이것 봐! 처음으로 마법을 사용했어!”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짓는 프란체. 그녀를 보니 나도 모르게 뿌듯함의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입을 열려던 그 순간.

       

       [플레이어의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동기화가 심화합니다.]

       

       아차 싶었다. 분명 조심한다고 했는데.

       

       [인물 – 진 바렌베르크]

       

       [인물의 기억을 일부 계승합니다.]

       

       찌릿! 이번에도 두개골이 깨질 것 같은 두통. 표정이 구겨지는 걸 애써 참으며, 나는 두 손가락을 세워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번에도 실패했나. 이 기나긴 여행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대체 어떻게 해야…….」

       

       진 바렌베르크의 일부 기억이 또 나에게 스며들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이 기억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둘은 내가 두통을 느낀 걸 알아채지 못했다.

       

       카자르는 프란체의 손에서 일렁이는 흑색 연기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내 손뼉을 마주하며 감탄했다.

         

       “오, 암흑이 맞네요! 희귀한 속성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러니?”

       “네! 신성 속성이랑 암흑 속성은 희귀해서 잘 찾아볼 수 없어요. 그 전에 마법사부터 희귀하지만요.”

         

       프란체가 흑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고. 카자르는 신성 속성인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카자르. 너는 신성 속성을 주로 사용하나?”

       “아니요? 저는 암흑이랑 대지를 제외한 모든 속성을 사용할 수 있어요.”

         

       뭐야, 그 먼치킨 캐릭터는. 게임에서도 그렇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마지막 챕터에서 발로도 깰 수 있었겠다.

         

       ‘저런 능력을 남자로 바꾸는 바람에 잃었다니.’

         

       이제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안타까울 따름이다.

         

       카자르가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생각보다 더 대단한 마법사라 놀라셨나?”

       “그래. 우리 프란체 코퍼레이션에 유능한 마법사가 있다는 건 든든할 수밖에 없지.”

         

       내 말을 들은 카자르와 프란체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번부터 말하던데, 그 이상한 이름은 뭐니? 내 이름이 들어가서 좀 기분 나쁜데.”

         

       아니,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어때서.

         

       “그러게요. 이상한 싸구려 상단 같잖아요.”

       “…….”

         

       당신들이 뭐라 해도 프란체 코퍼레이션은 포기할 수 없어…….

         

       나는 그냥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언젠가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제국의 상단을 모조리 지배하게 되면 저런 말도 사라지겠지…….

         

       그때. 마차가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이 울려 퍼지고, 나는 가장 먼저 내려 구두를 신은 그녀들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카자르가 의외라는 듯 오묘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오, 저까지 배려를 해주시네요.”

       “그럼 너만 안 해줄 수 없잖아.”

         

       이 모습을 본 프란체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시가 돋친 것처럼 까칠했다.

         

       “언제까지 둘이서 노닥거릴 거니?”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아니고. 어서 가자꾸나.”

         

       나와 카자르는 황도를 구경하며 프란체를 따라갔다. 황도에 오니 내가 정말 게임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로판소’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 황도였으니까.

         

       ‘이 풍경을 실제로 보게 되니 뭔가 기분이 묘하네.’

         

       고개가 꺾일 듯이 두리번거리던 카자르가 말했다.

         

       “저 황도는 처음 와보는데 진짜 화려하긴 하네요.”

       “그러게.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죄다 화려해.”

       “제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땅이 좋아서.”

         

       카자르가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좀 더 상세한 이유를 알고 싶단 거죠. 제국 땅이 넓고 좋은 걸 누가 몰라요?”

         

       상세한 이유라, 예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던 거 같은데. 강대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땅이 좋아서’가 정석인 답변이지만, 그거에는 의외로 간단한 비밀이 있다. 나는 그걸 카자르에게 설명해주었다.

         

       “밥이야.”

       “밥이요?”

         

       카자르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량 문제가 해결됐으니 다른 거에 투자할 수 있었던 거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의, 식, 주 중에 식이야. 식량만 있다면 인구가 늘어날 거고, 인구가 늘어남으로써 의와 주가 자연스레 해결된 거지.”

         

       과연, 하면서 카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의식주가 자연스레 해결됐으니 다른 거에 투자할 수 있었겠네요? 군사력이라던가, 문화생활이라던가, 기술력이라던가.”

         

       나는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는 귀족이면서 이런 것도 몰랐냐?”

       “수업 다 빼먹고 마법 공부에 열중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에는 문외한이에요.”

         

       소위 말하는 마법 덕후구나. 그래, 그런 사람들이 있지. 자기가 좋아하는 거에 열중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사람들. 문제는 그것 말고는 문외한이라는 거지만.

         

       그때. 앞장섰던 프란체가 멈췄다.

         

       “도착했단다. 프리다 의류점.”

         

       황도의 그 어떤 건물보다 높고 커다란 건물. 입구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 기사들이 서 있었고, 유리창 너머엔 화려한 드레스들이 진열되어 있다. 장신구까지 판매하는지 보석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확실히. 겉보기에도 보통 의류점은 아니네요.”

       “웬만한 영애들과 귀부인들은 이곳을 이용해. 의류와 장식품에 관해서는 여기가 꽉 잡고 있거든.”

         

       프란체가 오른손에 들린 부채로 왼손을 탁탁 치며 말을 이었다.

         

       “제국 곳곳에 프리다 의류점이 퍼져있어. 여기서 취급하지 않는 상품은 없지. 그래서 의복 사업이 힘든 거야.”

         

       일종의 프랜차이즈 개념인가 보군. 내가 먼저 써먹으려고 했는데 이미 누군가 써먹었다니. 사업에 있어서 도가 튼 놈이겠어.

         

       “들어가자꾸나. 자세한 건 안에서 보여줄 테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자르는 처음 보는 압도적인 규모의 의류점을 보곤 침을 꼴깍 삼켰다.

         

       딸랑- 프리다 의류점의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이 달려왔다.

         

       “어서오세요, 고객님.”

       “환영합니다, 고객님.”

         

       반듯한 자세. 예의 바른 인사. 하나로 공통된 유니폼. 진짜 프랜차이즈네. 프란체는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데카르트 공녀다. 오늘은 예약하지 않고 왔는데, 문제없겠지?”

         

       데카르트라는 말에 종업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시만요! 마담을 불러오겠습니다!”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가는 접수원들. 우리는 진열된 드레스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최고의 의류점답게 기본적인 드레스들도 굉장히 질이 좋네요.”

       “알아보겠냐?”

       “그럼요! 저 이래 보여도 레이디 유플레인이라고요?”

         

       아, 그러고 보니 얘 귀족이었지. 하는 짓에 전혀 기품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다. 프란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위층에는 더 굉장한 드레스가 있단다. 주문 제작은 더 뛰어나지.”

       “오오……. 이것보다 좋은 드레스가 있다고요?”

       “그래. 디자인도 그렇고, 질감도 그렇고. 단점은 찾아볼 수 없는 드레스들이 많단다.”

         

       그건 다 ‘비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을 착취해서 나온 결과다. 자세한 건 그녀들이 직접 두 눈으로 공장을 확인하는 게 빠르겠지.

         

       그러던 그때였다.

         

       “데카르트 공녀님! 오랜만에 직접 찾아오셨군요!”

         

       제국 최고의 의류점, 프리다의 마담이 등장했다.

         

       이제 저 마담을 털어먹을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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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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