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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사실 조금 걱정하고 있기는 했다.

        

       보통 주인공과 히로인이 엮여서 옷을 사러 오면, 주인공은 히로인에게 하늘하늘하고 귀여운 옷을 권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보통 그런 옷을 입는 히로인은 평소에 그런 옷을 입어본 적 없는 캐릭터고, 옷을 입고 거울을 본 뒤 ‘앗, 이게 정말로 나?’ 같은 이벤트가 딸려오게 된다.

        

       하지만 나는 여자 캐릭터의 몸속에 들어온 20대 남성이란 말이지.

        

       그래, 사실 지금까지 교복은 잘만 입어놓고 인제 와서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하긴 하다. 그건 인정하겠지만……

        

       교복은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녀야 했던 옷이고, 이런 옷은 선택해서 입는 옷이라는 것이 다르다.

        

       친구가 골라 준 여러 벌의 옷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입게 되었는데, 그게 하늘하늘한 원피스라면 자괴감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 비록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여장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예사라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그 몸을 내가 움직이고 있는 이상 결국 그 옷을 선택해서 입은 사람은 ‘나’라는 것이 너무 확실하게 느껴질 테니까.

        

       그래도 유하늘한테 대놓고 ‘이런 옷은 못 입겠어’라고 할 수는 없다. 평범한 여자애들 눈으로 보기에 예사라가 그런 옷을 입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히 그런 옷을 추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괜히 거절했다가 분위기만 어색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들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정말 의외로, 유하늘이 골라준 옷은 대부분 치마가 아니라 바지였으니까.

        

       물론 내가 평소에 입는 바지보다는 훨씬 달라붙는 형태였지만, 그래도 다리의 맨살이 보일 일이 없다는 것이 어디인가?

        

       나는 적당히 짙은 색의 청바지, 검은 티셔츠, 그리고 카키색 점퍼를 입고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커튼을 걷고 나가는 소리에,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유하늘의 얼굴이 휙 올라왔다.

        

       “어때?”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

        

       유하늘은 잠깐 침묵했다.

        

       이상한가?

        

       하긴, 생각해보면 나는 패션 감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사실 옷을 신경 써서 입고 다닌 적이 별로 없으니까.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옷을, 그냥 손이 닿는 대로 막 꺼내다가 입고 다녔으니까. 애초에 옷 잘 입어서 딱히 잘 보일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잘 보여야 하는 곳은 직장 정도뿐이었으므로, 중요한 일을 할 때 정장을 입는 것이 내 패션 감각의 전부였다.

        

       그 많은 옷가지 중 내가 직접 선택해서 입은 옷이니,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안 어울리면—”

        

       “어울려!”

        

       내가 다시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유하늘이 달려들어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걸로 사자!”

        

       “어, 어어…….”

        

       내 시야를 향해 압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그리고 그 빛 아래의 미소.

        

       나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그렇게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

        

       나는 모자 같은 것은 살 생각이 없었지만, 유하늘의 취향인지, 아니면 내 머리카락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 건지, 엄청나게 열심히 추천해서, 결국 나는 모자까지 하나 고르고 말았다. 별다른 특색은 없는 캡이었다.

        

       “자, 어때?”

        

       그리고, 유하늘이 가지고 있던 예비용 머리 끈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포니테일을 만들었다. 머리카락 끝이 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는 유하늘과는 다르게, 예사라의 머리카락은 그것보다 더 길었다. 머리를 뒤로 묶었는데도 어깨 아래까지 올 정도였다.

        

       바로 아까 전까지만 해도 땀에 젖어서 번들거리던 머리카락은 어느 정도 말랐지만, 여전히 조금 축축했기에 이렇게 끈으로 묶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늘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목이 드러나서 시원하게 느껴졌다.

        

       “좋네. 편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하늘은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어울려!”

        

       뭐, 그거야 당연하긴 하지. 예사라라는 인물의 미모가 워낙 예쁘게 생겼으니까. 막말로 머리카락을 짧게 쳐버려도 어울렸을 것이다. 아까워서 그런 짓은 못하겠지만.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그냥 자뻑하는 인물로 보일 테니까. 나는 그냥 말없이 어깨를 으쓱이는 정도로만 끝냈다.

        

       “그럼…… 이걸로 된 건가?”

        

       처음에는 옷을 한 아름 사자고 주장하던 유하늘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손에 짐을 왕창 들고 다니기는 싫어서 “그냥 다음에 또 오자”라고 했더니 엄청나게 좋아했다. 뭐지, 골든 리트리버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유하늘의 머리 뒤에서 쉴새 없이 흔들리는 포니테일이 강아지 꼬리 같이 보이기도 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망아지 꼬리려나.

        

       “응. 이 정도면 문제없겠다!”

        

       내가 들겠다고 했던 쇼핑백은 이미 유하늘에게 빼앗겼다. 당연히 안에는 내가 여기까지 입고 온 학교 체육복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일상복으로 갈아입어서 다행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뭔가 내 옆구리 쪽으로 불쑥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가온 유하늘이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뭔가 몽실몽실한 것이 팔에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가자.”

        

       그렇게 내 옆에 선 유하늘의 얼굴은 예상보다 훨씬 가까웠다. 후, 하고 불면 입김이 와닿는 것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순간 당황해서 굳어버린 나를 눈치챘는지, 채지 못했는지, 유하늘은 바로 내 팔을 끌고 걷기 시작했다.

        

       아까 뛰어갔을 때와는 다른, 부드럽게 당기는 감각.

        

       하지만 확실하게 내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힘.

        

       아, 이래서 주인공이구나.

        

       앞장서는 그녀를 보고서, 나는 속으로 그렇게 혼자 납득하고 말았다.

        

       *

        

       요즘 애들은 뭐 하고 놀더라, 라는 고민은 사실 별로 필요가 없었다.

        

       여자나 남자나, 사실 십대들이 할만한 것은 별로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여자라고 해서 피시방에 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남자라고 해서 카페에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빈도수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피시방이 재미있고 카페에서 시간 때우기 좋다고 줄곧 거기에만 앉아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면 이 십대 청소년과 내가 제일 많이 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걷기’였다.

        

       나야 애인은 둘째치고 이성 친구도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가끔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간 블로그 같은 곳에 ‘데이트 코스’같은 식으로 쓰여있는 곳을 보면 애인과 걷기 좋은 길이라던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어떤 거리가 소개되어있다거나. 뭐, 남자끼리 걷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여자들은 종종 그런 데이트 코스 같은 곳을 몰려다니기도 하는 법이니까.

        

       ……아닌가? 사실 잘 모르겠다. 생전에 여자친구가 있어 봤어야 알지.

        

       아니, 사실 그보다, 이쪽 세계에서의 성 관념을 나는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 그러니까, 동성애가 ‘일반적이다’라는 인식까지는 없는 세계에서는, 동성끼리 걷는다고 전부 동성애자 취급하지는 않았다. 아, 물론 그렇다고 남자 둘이 이렇게 팔짱을 끼고 다닌다면 누가 봐도 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원래 여자들끼리의 신체접촉은 정말 대놓고 성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냥저냥 ‘그만큼 친하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꽤 있었다.

        

       여자끼리 팔짱 끼고 다니는 걸 보고 ‘레즈비언이냐’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유별난 취급을 받을 테니까. 외국에서야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내가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 그런 방면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원래 살던 세계는 그랬다고 치고.

        

       문제는 이쪽 세계의 경우다.

        

       물론 이쪽 세계에서도 남녀가 함께 팔짱을 끼고 있으면 ‘둘이 사귄다’라고 생각할만한 수준의 공감대는 있다. 이쪽에서도 제일 일반적인 성애는 이성애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가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성애만큼 일반적이지는 않고,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것을 자각한 사람이 정체성을 고민할 정도의 특이성은 있지만, 세계적으로 동성 간 결혼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 결혼을 극도로 반대하는 예도 거의 없으니까. 게임상의 묘사에서는 교내에 남남 커플이나 여여 커플이 한두 쌍씩 보이는 경우는 흔하다고 하기도 했고.

        

       그거 보고 스트리머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세상이냐’라며 빵 터졌기 때문에 그 내용은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조금 헷갈리는 것이다.

        

       남자와 너무 접촉하면 괜한 오해를 살 거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애초에 내가 남자와 접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으니 큰 문제가 될 것도 없긴 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여자와의 접촉’은 어디까지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인가?

        

       어느 정도의 신체접촉까지가 오해를 사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당연히 그 선은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선보다 훨씬 더 좁게 설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동성애가 그렇게 대놓고 드러나도 되는 세상인 만큼, ‘얘가 나를 좋아하나?’라고 생각하는 빈도수도 훨씬 많고, 또 그 기준도 낮을 테니까. 적어도 동성인 상대를 보며 ‘얘는 나랑 동성이니까 절대로 나를 좋아할 일은 없어’라고 철석같이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세상이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와, 여기 벚꽃 피면 참 예쁘겠다, 그치? 그때 되면 다시 올까?”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벚꽃길을 걸으며 그렇게 물어보는 여자애를 보고 ‘나 좋아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인지 아닌지 고민이 된다는 소리다.

        

       아, 물론, 유하늘이 나를 그…… 성애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 그렇게 관계가 깊어지기에는 만난 시간이 너무 짧다. 이건 정말로 친구로서 호의에서 나오는 말이리라.

        

       아직도 나와 팔짱을 끼고 있긴 했지만…… 이건 내가 의식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질 뿐이고.

        

       문제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관계가 변해가는 것을 어떻게 캐치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처음 만난 여자애가 말을 거는 것은 그냥 볼 일이 있어서, 같은 반이 되어서, 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그 여자애가 쉬는 시간마다 말을 걸고, 주말에도 찾아오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나와서 누가 봐도 데이트 코스가 명백한 길을 함께 걸어 다니는 것을 몇 개월 동안 반복한다면, 그때쯤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도 될 것인가, 아닌가에 문제다.

        

       게다가 유하늘과 나의 관계는 다소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반 내에서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두 사람 간의 관계였으니까. 애초에 유하늘은 우리 반 안에서 친근하게 말을 걸 대상이 나로 한정되어있으니, 아마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헷갈리게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 유하늘은 게임상에서 대놓고 예사라를 꼬시는 루트가 있다. 대체 어떻게 일이 굴러가서 예사라와 이어지게 되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긴 하다만.

        

       “어, 싫어……?”

        

       내가 대답도 없이 고뇌에 빠져있자, 유하늘이 그렇게 물어왔다. 기분 탓이기는 했지만, 얼굴의 광량이 조금 떨어져 보일 정도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반 안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상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러게. 예쁘겠네. 다시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얼굴에 묻어나오려는 쑥스러움을 어떻게든 참고, 그렇게 말을 짜냈다.

        

       “그렇지!?”

        

       유하늘의 표정이 바로 펴졌다. 다시 광량이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문자 그대로 기분 탓이긴 하겠지만.

        

       뭐, 아무렴 어때.

        

       그런 것들을 지금 고민해봐야 아무 쓸모 없다.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될 일이다.

        

       그리고, 뭐.

        

       유하늘이 진짜로 좋아한다고 고백한다면 뭐 어떤가.

        

       그때 가서 사귀지 못 할 일도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니, 역시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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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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