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1

       몸의 자유가 돌아오자마자 여자가 주변으로 냉기를 내뿜었다.

       

       무공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내기 자체가 냉의 성질을 띄고 있었다.

       

       이전의 녀석들처럼 만들어낸 힘도 아니었다. 진짜로 빙궁에서 나고 자란 녀석이라는 것인가.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살려두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버리지 않았느냐.

       

       물론 이 녀석이 내가 알던 빙궁과 관련이 없는 자라는 것을 알지만 빙궁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겐 가벼울 수 없는 것인지라.

       

       살리려면 일단 내기가 폭주하는 것을 막아야 할 터인데.

       

       처음에는 단전을 폐할 생각이었다마는 빙궁의 아이라는 걸 안 이상 그런 거친 수단을 쓸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약의 기운을 빼냄으로써 내기의 폭주를 막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저 아이가 사용한 약이 어떤 종류인지 모른다는 것이지.

       

       본인은 천마이지 신의가 아니다. 약을 보는 것만으로 그 성분을 분석할 수는 없다.

       

       최소한 그녀가 쓴 약이 이로운 종류인지 해로운 종류인지만이라도 안다면 방법을 정해볼 터인데.

       

       “하린. 이전에 이 게임을 해보았다고 했었지?”

       <네.>

       “저 아이에 관해. 아니지. 저 아이가 쓴 약물에 관해 아는 바가 있느냐?”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의지할 곳이 마땅찮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말을 꺼내보았을 뿐이다.

       

       허나 세상일이라는 것은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인지라.

       

       <사람을 강시로 만드는 약물일 거에요.>

       

       하린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회광반조라고 아시죠?>

       

       알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단전이 생명을 태워가며 내기를 생성해내는 것 아닌가.

       

       실력 있는 무인을 죽이는 것이 까다로운 이유이기도 하지.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연료삼아 피워내는 불꽃은 무척이나 뜨거우니까.

       

       <강시는 죽지 않지만 죽은 상태잖아요? 그래서 항상 회광반조가 일어나요.>

       

       내 강시를 여러 번 보았지만 그건 몰랐구나. 본인은 강시를 처 죽일 생각만 했지 그들에 대해 알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죽음에서 살아나며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을 얻는 게 강시다. 생명을 불태우면서도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할 터.

       

       어쩐지 거 녀석들의 내기가 마르지를 않는다 싶었어.

       

       하린의 말을 종합해 보면 빙궁의 아해는 점차 강시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라는 이야기겠구나.

       

       “고맙구나. 하린. 도움이 되었다.”

       <뭘 하시려고요?>

       “저 처자를 살려 봐야지.”

       

       내가 빙궁에 진 업보가 워낙에 많아서 말이다. 저 아이를 살리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못할 듯 싶구나.

       

       <저기 화령님.>

       “무어냐.”

       <아마… 안 될 거에요.>

       

       이 구획의 보스를 살려서 제압하는 방법은 없다고 하린은 이야기했다.

       

       약물이 들어간 순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무슨 수를 써도 강시가 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어 가며 고민했으나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그녀는 확신에 찬 어투로 부정을 반복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본인이 외신을 쓰러트리겠다 말했을 때 믿는 이가 얼마나 되더냐.”

       <그건.>

       “기다려보거라. 본인에게 불가능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적의에 찬 여자의 눈이 나에게 꽂힌다. 슬슬 잡담을 나눌 시간은 끝난 모양이군.

       

       해결책은 대충이나마 나왔다.

       

       의도적으로 회광반조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그 약물이 독으로써 작용하고 있단 소리잖느냐.

       

       그럼 이야기가 쉽지. 몸을 해치는 독을 바깥으로 빼어내면 그만이니까.

       

       이래 뵈도 난 독에 당한 경험도 수두룩하거든.

       

       당가의 녀석들이 정성 들여 제조한 독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절로 독의 대처법이 몸에 익더구나.

       

       후일 만독불침이라는 것을 습득하긴 했다만 그 때는 이미 당가를 멸망시킨 후였다. 그래서 정작 습득한 것을 써먹어 볼 일이 없었지. 

       

       여자가 사용하는 무공은 장법이었다.

       

       손을 뻗을 때마다 냉기가 쏘아지는 것이 빙궁의 절기인 빙백신장인 것 같았다.

       

       저것은 빙궁의 직계나 배울 수 있는 무공일 터인데, 그런 인물이 왜 이런 곳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무한한 내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빙백신장은 분명 위협적이었으나 문제는 여자의 실력이었다.

       

       그녀는 싸움에 익숙하지 못했다.

       

       한 수 한 수가 웃음이 샐 정도로 정직하지 않으냐.

       

       차라리 회사에서 만났던 노인이 더 낫겠어. 그 녀석은 투쟁을 할 줄은 알았는데 말이다.

       

       “왜. 왜 안 맞는 거야!”

       

       흘리고, 피하고, 걷어내고.

         

       상대의 공격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춤 상대가 좋지는 않구나. 몸치인데다 난폭한 여성이라니.

         

       이래서야 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내 역할이 되지 않느냐.

         

       점차 발밑에 깔리는 빙판을 무대 삼고, 여자가 분노에 차 지르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서.

         

       한 수. 그리고 또 다시 한 수.

         

       수려한 발놀림으로 상대를 이끌며 여자의 몸 속 혈을 살폈다.

         

       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이 되었다.

         

       그것은 중단전에 스며들어 있었다.

       

       심장에 박혀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느냐.

       

       잘 되었다.

       

       거기라면 빼내기도 간편하지.

       

       여자가 내미는 팔을 쳐내며 그녀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권을 내지를 필요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독을 퍼 올릴 충격 뿐.

       

       심장의 바로 앞에다 주먹을 가져다 대고서 발경을 박아 넣었다.

       

       타격에 당한 여성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다 몇 번이고 기침을 반복했다.

       

        그 때마다 입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입가에 묻은 피의 색은 붉은 색이 아니라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독을 빼내는 데 성공했나.

       

       심장을 갉아먹던 독이 빠져나오자 인위적으로 발생되던 회광반조도 멈췄다. 

       

       이걸로 하나는 해결한 셈이고.

       

       내가 다가서자 여자가 다급히 무공을 펼치려 했다. 허나 그녀의 몸은 삐그덕 거릴 뿐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혈맥이고 몸이고 한계치 이상으로 혹사를 시켰으니까.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무어라 소리치는 여자를 억지로 눕힌 후 흡기공으로 그녀의 단전에 머무르는 내기를 빼냈다.

       

       본인의 한계를 넘어선 내기는 독이 되니 말이다. 

       

       이걸로 그녀는 생명을 건졌다. 다시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선 오랜 재활이 필요하겠지만 거기까진 내 알바가 아니었다.

       

       자아. 그럼 이제 질문을 시작해볼까.

       

       여자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혼절해버린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어?

       

       “이건 아니지 않느냐. 내 물어볼 것이 한 두 개가 아니거늘!”

       

       이래서야 제압을 해버린 셈이 되지 않느냐.

       

       이 게임의 시스템은 융통성이 없어서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릴 터인데.

       

       어서 일어나거라. 내 목숨을 붙여 줬으니 보답을 해줘야 할 것 아니더냐!

       

       여자의 뺨을 때렸지만 그녀의 눈이 뜨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화령님! 대단해요!>

       

       이 자를 어떻게 깨워야 할지를 고민하던 중 하린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해내시다니!>

       “…내 말하지 않았느냐. 설마 믿지 않았던 게야?”

       <아뇨. 아니! 저 그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하린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얼. 불신 할 수도 잇지. 나와 그대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겠느냐.

       

       오히려 불신 해주어서 고맙구나. 광신은 무림에서 겪은 것으로 족하니까.

       

       <그보다! 빨리 다음 맵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이 맵에서 물건을 찾죠!>

       “흠? 이 곳은 다른 곳처럼 자동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더냐?”

       <네. 마지막 보스는 히든 보스라서요. 만나려면 여기서 뭘 좀 찾아야 해요.>

       

       그렇단 소리는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구나.

       

       기절한 저 여자가 깨어날 것 같지는 않으니 연구소를 뒤져 연구 일지라도 찾아봐야겠어.

         

       게임의 적들이 사용하던 기술에 관한 내용이나, 아니면 강시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하린의 도움을 받아 연구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 일지를 여럿 발견했으나 그 책은 하나같이 괴이한 언어로 필사되어 있었다.

       

       분명 해석이 되어 읽는 게 가능한 글자인데 어찌하야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일까.

       

       암호문인가?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가득할 리 없잖느냐.

       

       나는 어떻게든 서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머리만 아파졌을 뿐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에 난 서적을 읽는 걸 포기하고 얌전히 하린이 말하는 물건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러다 내게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구음절맥 치료에 관한 연구’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구음절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옛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난 아직도 그 날의 추억을 잊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서적이 있다는 것은 구음절맥에 관한 연구를 이 곳에서 하고 있었다는 소리일 텐데.

       

       그럴 필요가 있나? 구음절맥처럼 희귀한 병을 연구해봐야 성과를 내긴 어려울 터다만.

       

       아니지. 아니야. 이런 게임에서 나오는 정보는 보통 복선이다.

       

       다음에 나올 것에 구음절맥에 관련된 이가 있다 보는 게 옳지.

       

       생각이 뒤섞였다.

       

       “하린. 혹여나 해서 묻는 것이다만 말이다.”

       

       설마 이 게임의 주인공이 겪은 모든 일의 원흉은 빙궁이더냐?

       

       빙궁에서 구음절맥을 겪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모든 악행을 벌인 것이더냐?

       

       이 연구소의 주인이 빙궁의 직계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더냐?

       

       <맞아요.>

       

       차라리 아니라고 해주기를 바랐거늘.

       

       하필이면.

       

       옛 추억이 떠올라 미간을 주물렀다.

       

       이 곳의 빙궁이 내 기억 속 빙궁과 다른 장소라는 걸 안다. 닮은 부분보다 다른 부분이 더 많을 거라는 것도 말이다.

       

       그렇지만 빙궁이라는 단어 속에 남은 게 너무도 많아 단호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을 내 손으로 부수라고? 헛소리를.

       

       허나 게임이 나의 사정을 알아 줄 리 없었다. 얼마 안 가 모든 조건을 달성했다는 창이 떠오르더니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현기증이 올라왔다.

       

       *

       

       “왜 또 그런 옷을 입고 계십니까.”

       

       기다란 옷을 입었음에도 끄는 소리 하나 없이 나타난 여인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구박부터 내뱉었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을 대신한 후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내 낮에는 그대의 요구에 다 따라 주었으니 밤에는 내 멋대로 해도 되지 않느냐.

       

       “제가 드린 옷은 다 어디 두셨습니까?”

       “안에 모셔 두었다. 너무 귀중해서 말이지.”

       “꼴도 보기 싫은 건 아니십니까?”

       “그런 이유도 없잖아 있다.”

       

       부정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을 하니 여인이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따라 주셔야죠. 그런 조건이잖습니까.”

       “나는 꽤 성실히 그대의 인형이 되어 주었다 생각한다만.”

       “제 귀여운 인형은 담배 같은 거 안 핀답니다.”

       

       그건 좀 곤란하군. 이것마저 없으면 숨이 턱 틀어 막히는 빙궁에서의 생활을 어찌 보내란 말이더냐.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여인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미처 죽이지 못한 웃음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왜 잠도 안 자고 밤늦게 찾아와서는 나를 괴롭히느냐.”

       “낮에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합니까.”

       “하여간 게을러서는.”

       “소천마께서도 절맥을 앓아 보시지요. 그런 말이 나오는가.”

       

       그걸 꺼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

       

       나는 할 말이 없어져서 연신 곰방대를 물었다. 기가 죽은 내 모습에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를 괴롭혀서 그대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에피소드가 길어져서 게임 시작 부분부터 천마님 무쌍하신다로 갈 걸 그랬단 생각이 듭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