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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마리아의 계획은 간단했다.

        ​

        이미 욤을 필두로 파벌 간의 정쟁은 시작됐다. 상호 간의 탄핵과 협잡질은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지위가 낮거나, 방어가 철저하지 않은 이들은 벌써 약점을 잡히고 중립으로 돌아서거나 아예 이번 정쟁에서 빠질 것을 표방하고 있었다.

        ​

        마리아는 이런 상황을 이용할 것을 주문했다.

        ​

        “…궁정백의 저택을 치자고요?”

        ​

        “무슨 그런 흉흉한 말을 하는 거냐.”

        ​

        그래서 이 흐름을 타고 궁정백의 저택에 돌입하자는 꺼냈더니 돌아온 욤의 반응이 이 모양이었다.

        ​

        내가 무슨 깡패도 아니고, 나를 무턱대고 다른 사람의 집을 쳐들어가는 불한당 취급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

        “하지만, 결국 궁정백의 서고를 뒤지자는 건 힘으로 정문을 뚫고 들어가자는 것 아닙니까?”

        ​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

        궁정백이 순순히 문을 열어줄 리가 없으니 결국 강제로 밀고 들어갈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뷔르템부르크 후작을 찾아온 거였으니 좀 억울하긴 했다.

        ​

        “그게 그거 아닙니까. 물론 지금 여기저기서 감찰을 명목으로 사병들이 활개 치고 다니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결국 그걸 막을 힘이 없는 약소 귀족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궁정백쯤 되는 귀족의 저택을 밀고 들어가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

        이건 욤의 말이 맞았다.

        ​

        분명 지금 서로 저택을 급습하며 수색하는 일이 팔츠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명분상으로는 각자 파벌의 윗사람들이 내어준 감찰권을 가지고 움직이는 일이었다.

        ​

        성내의 치안유지병력도 여러 조직으로 갈려 사병화된 상황이었기에 철저하게 자기네 병력만을 동원하고 있기도 했다.

        ​

        물론 그렇다고 이런 일이 다 그렇듯 치안유지병력이라는 이름으로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를 미지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거야 어차피 이쪽도 하는 일이니 상관없었다.

        ​

        “특히 궁정백이 고용하는 사병들은 나름 정예입니다. 황실 기사단에 지원했다 떨어진 이들로 꾸려진 이들입니다. 기사는 아닐지언정 어디 가서 밀릴 이들은 아닌데, 어지간한 병력으로 그들을 뚫을 수 있겠습니까?”

        ​

        “어려운 건 아니지.”

        ​

        나는 내 허리춤에 매인 검을 톡톡 두드렸다. 이런 자리에 태도를 들고 올 수는 없었기에 임시방편으로 차고 온 의장용 검이었다.

        ​

        “…설마 직접 돌입하겠다는 겁니까?”

        ​

        “그렇지.”

        ​

        “마리아 전하의 기사단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

        “기사단은 황녀님의 호위에 힘써야 하는 이들이야. 이런 일에 동원할 순 없지.”

        ​

        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마음껏 동원할 순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호위를 위해 고용된 이들이지, 사병처럼 활용하기 위해 계약한 이들이 아니었다.

        ​

        무엇보다, 그들이 황실 기사단 정도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마리아를 지키는 데 무리가 없다고는 해도 제대로 된 전투가 아니라 몸으로 들이미는 싸움에서는 압도적이진 않았다.

        ​

        하지만 소드 익스퍼트가 참가한다면 어떨까.

        ​

        “…뒷감당이 가능하겠습니까?”

        ​

        욤도 그게 가능하겠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드 익스퍼트 한 명은 숙련된 기사 여러 명이 붙어도 이기기 쉽지 않았다. 하물며 서로 죽이기보다 제압을 우선해야 하는 싸움에서라면 더더욱.

        ​

        대신 그는 정치적 후폭풍을 걱정했다.

        ​

        하지만, 그 문제는 마리아가 이미 고려해둔 바가 있었다.

        ​

        “요컨대, 궁정백이나 황후 파벌이 내가 끼어든 걸 건수 삼아 항의하면 어쩔 거냐는 거지?”

        ​

        “그렇습니다.”

        ​

        그리고 그에 대한 해법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

        “그럼 궁정백이 일어나기 전에 쓰러뜨려 버리면 되는 거잖아.”

        ​

        “네?”

        ​

        마리아도, 나도 동의하는 것이 있었다.

        ​

        우린 이번 기회에 완전히 이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

        ――

        ​

        “…허.”

        ​

        궁정백, 안토니우스 비텔스바흐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코웃음을 쳤다.

        ​

        물론 요 근래 성내가 소란스러운 건 분명했지만, 감히 자신에게 칼날을 들이미는 간 큰 놈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

        아니, 담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애초에 어떻게 그의 집까지 밀고 들어올 생각인지부터가 의문이었다.

        ​

        설령 황제가 파견한 황실 감찰단이라 할지라도 직위가 높은 귀족이 직접 나서 문을 틀어막으면 감히 함부로 저택에 들어서지 못했다. 귀족의 권리는 그만큼이나 귀하게 다뤄지는 것이었다.

        ​

        그런데, 황실은커녕 권위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인 사병집단, 팔츠 치안유지대를 동원해 자신의 저택을 수색하겠다니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

        “경비병들에게 대응을 맡기거라. 그들이라면 설령 기사가 온다 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테지.”

        ​

        “예, 각하.”

        ​

        황제가 직접 이 일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건 황제가 후계 구도를 둘러싼 정쟁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는 태자를 임명하며 이미 후계 구도에 간섭한 적 있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가 황제에게 주어진 권리였다.

        ​

        어차피 제대로 된 황제 선출은 선거가 이뤄지는 그날까지 후계자들이 보여준 능력을 보고 선제후들이 고르는 것. 설령 황제라 할지라도 황제 후보들이 제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빼앗을 자격은 없었다.

        ​

        그게 전통이었다.

        ​

        그리고 황후파는, 황후가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그녀의 아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아마 셋째 황자가 성인이 되어 전면에 나설 때가 되면, 이 파벌은 자연스레 삼황자 파벌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

        그걸 누구나 다 알고 있기에, 황제도 함부로 이들을 제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

        그렇기에 울름 남작의 경우는 예외적이라 할 수 있었다. 남작이 없는 틈을 타 감찰단이 들이쳤으니까.

        ​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

        궁정백은 이내 자신의 본업에 집중했다. 이번에 털리는 이들 중 구명해야 할 이들과 쳐내야 할 이들을 구분하는 데 열두하는 와중,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

        “드디어 치안유지대가 온 건가.”

        ​

        “그런 것 같습니다.”

        ​

        다들 병장기를 꺼내든 듯 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어련히 조심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날붙이가 나온 이상 부상자가 나오는 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

        돈이 좀 깨지겠다며 궁정백이 한숨을 내쉬는 때였다.

        ​

        쾅!

        ​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한순간 소란이 멈췄다.

        ​

        “무슨 일이지?”

        ​

        궁정백이 의자를 뒤로 돌렸다. 정문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에 집무실이 있었기에 바로 상황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

        그리고, 정문에는 거대한 검을 들고 있는 병사 한 명이 서 있었다.

        ​

        아니, 그건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컸다.

        ​

        ――

        ​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

        치안유지대의 병사들은, 아쉽게도 질적인 측면에서는 궁정백의 저택을 지키는 경비대에 비하면 많이 밀렸다.

        ​

        나름 숫자가 조금 더 많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정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겨루다 보니 그걸 살리기도 영 쉽지 않았다. 정문에서만 거의 10분 가까이 시간이 끌리고 있었다.

        ​

        “이 정도면 충분하네.”

        ​

        다만, 이건 의도된 일이었다.

        ​

        “내가 신호를 내리면 비키라고 말은 다 전해놨겠지?”

        ​

        “예!”

        ​

        욤이 빌려준, 지방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귀족파의 말을 따르는 치안유지대 대장(隊長)이 우렁차게 답했다.

        ​

        뒷칸에서 태도를 꺼내 들고 마차에서 내렸다.

        ​

        우리가 뚫지 못한다는 인식을 안겨주고, 안일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

        이제는 직접 뚫고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

        꽈악.

        ​

        양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쥐고 검신을 몸 뒤로 넘겼다.

        ​

        “흡.”

        ​

        기합과 함께 검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

        “지금!”

        ​

        “다들 길을 열어라!”

        ​

        쾅!

        ​

        대장의 외침과 함께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공간이 뒤로 밀려 나갔다. 눈 깜빡할 시간도 지나기 전에 병사들이 좌우로 갈라섰고, 내 눈앞에는 칼을 든 궁정백의 사병들만이 얼을 타며 서 있을 뿐이었다.

        ​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

        콰지직!

        ​

        쨍그랑!

        ​

        검을 휘두르는 경로대로, 사병들의 검이 깨져나갔다. 일부러 검을 노리고 약간 뒤에서 검을 휘두른 만큼 사상자는 없었지만, 한순간에 십수 명의 병사들이 반절 이상 날아간 자신의 칼을 보며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

        “지금이다! 몰아붙여!”

        ​

        “와아아!”

        ​

        내 말과 함께, 치안유지대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미 검이 부러진 사병들이 서둘러 뒤로 물러나 다른 병사들과 교대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

        오히려 그들이 물러나며 생긴 틈으로 경비대 병사들이 파고들 뿐이었다.

        ​

        “밀어! 곧 뚫린다!”

        ​

        “안 돼! 막아!”

        ​

        “더 밀어붙여! 저들이 칼을 휘두르면 차라리 몸을 내줄 생각으로 달라붙어!”

        ​

        그러자 상황이 뒤집혔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라 할지라도 결국 상대방이 딱 달라붙으면 질척질척한 백병전을 치러야만 했다. 심지어 양측 다 대형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는 난전 속에서는 개개인의 무력도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

        하물며 오밤중도 아니고, 이런 대낮에, 최소한 서로가 서로를 식별할 정도로는 훈련이 된 이들끼리의 싸움이라면, 숫자가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

        문제는, 그렇게 되니 저택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를 지키기 위해 사병들이 치안유지대 병사들을 죽일 정도로 검을 휘두르게 된다는 점이었다.

        ​

        “크아악!”

        ​

        병사 몇 명이 그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다.

        ​

        그걸 본 사병들의 지휘관쯤 되는 자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

        “안 돼! 절대 저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

        급하게 병사들이 치명상을 본 이들을 뒤로 후송했다. 양측 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대비해 치유사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몇 명은 꽤 심하게 다쳤다.

        ​

        이곳에서 행하는 응급처치만으로는 살리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였다.

        ​

        수도에서 병사로 근무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까지 심하게 피를 보는 일은 잘 없었는지 치안유지대 대장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

        “대장, 이거, 쟤들이 먼저 피를 본 거 맞지?”

        ​

        “그, 그렇습니다.”

        ​

        물론 저들이 정말 죽지는 않을 거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대주교에게 부탁해 성당의 가장 실력 좋은 치유사들을 지원받았으니 흉터가 남을지언정 죽는 이는 없겠지.

        ​

        하지만,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

        그리고, 우리는 감찰이라는 정당한 목표를 위해 찾아온 일행이었다.

        ​

        애초에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렇게 절차를 거치고, 다들 서로 피볼 일 없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며, 귀족이 대놓고 버티는 집에 감찰이 들어가기 힘든 이유가 이것이었다.

        ​

        분명한 명분이 있다면, 먼저 선을 넘는 쪽이 비난을 받고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그리고, 저들은 선을 넘었다.

        ​

        “대장.”

        ​

        “예, 예.”

        ​

        “우리도 이대로 밀고 들어간다. 병사들 다 비키라고 해.”

        ​

        그다음 수순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

        그날 궁정백의 저택은 바람을 가르는 참격을 받아내었다.

        ​

        “증거를 폐기하기 전에 먼저 확보해야 한다! 움직여!”

        ​

        치안유지대의 병사들이 저택에 돌입하는 데 성공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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