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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처음 줄넘기를 돌리란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생도들은 ‘이게 뭐야?’ 하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장난이 아닌가 싶었으며,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싶었다.

       특히 기사 지망생들은 반항심이 심했다.

         

       한데 붉은색 표시가 된 줄넘기를 보는 순간.

         

       “뭐, 뭐야, 이거!?”

         

       이게 줄넘기라고?

         

       …철근이 아니라?

         

       쇠를 엮어 만든 쇠줄.

       이걸 들라고 만든 것인가?

         

       혹시 겉모양만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생도들은 쇠줄을 들었으나.

         

       우둑!

         

       무거웠다.

       얼마나 무거운지 방심하다가 손목이 나가버릴 뻔했다.

       그 정도로 묵직했다.

         

       손잡이부터 줄까지.

         

       ……이걸 들고 줄넘기를 하라고?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휙휙!

         

       “이거, 재밌다!”

         

       쿤타가 재미난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줄넘기를 시작했고, 이를 보며 생도들은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줄을 돌렸다.

       지레 겁먹을 게 아니라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허나 역시.

         

       “아, 안 들려!”

       “이걸 어떻게 돌리란 거야!”

         

       드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걸 대체 어떻게 돌리란 말인가!

         

       “끄으으윽!”

         

       그나마 투기법을 익혔으니 망정이지, 체내의 흐름을 전력으로 가용하니 그제야 줄이 돌아간다.

         

       처음엔 장난이라고 무시한 줄넘기였으니, 이제는 아예 목숨을 걸고 돌리는 것이었다.

       까딱하다간 손목이나 팔꿈치가 빠질 우려가 있다.

         

       휙! 휘익!

         

       그러나 그들은 점차 자신감을 내었다.

       투기법이라면, 아니 ‘자신’이라면 이를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

       횟수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어억!

         

       털썩…….

         

       “…….”

         

       …아무래도 횟수 채우다가 사달 날 것 같다.

         

       줄넘기, 아니 ‘쇠줄 넘기’를 돌리던 한 생도가 줄에 맞아 그대로 실신했다.

         

       털썩, 털썩….

         

       하나가 그렇게 되니,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차례대로 줄에 맞아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생도들은 오싹했고, 저도 모르게 쇠줄 돌리던 것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 머리에 맞았다간 진짜로 큰일 날 것 같아서.

         

       “허약한 놈들, 겨우 그거 좀 맞았다가 뻗어? 쯧쯧, 허약하다 허약해.”

         

       -…….

         

       이건 허약함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도들이었으나 차마 그들은 그에게 따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휙휙휙휙!

         

       “이 쉬운 걸 왜 그리 어렵게 돌리고 자빠졌을까, 응?”

         

       …교관은 그들이 아찔하게 여기는 쇠줄 넘기를 수월하다 못해 정말 쉽게 회전시켰다.

         

       그러던 도중.

         

       퍼어엉!

         

       그의 머리에 쇠줄 강타했다.

         

       …분명 강타했는데.

         

       “아, 실수.”

         

       그의 머리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무척이나 멀쩡했다.

       그저 자신만만해 하다가 실수한 것에 민망해할 뿐.

         

       저게 사람인가?

         

       “아, 안 아프십니까?”

         

       “아프지. 그래도 인내력으로 참는 거다. 기사라면 이 정도는 가능해야지.”

         

       “아닌 것 같은데요….”

         

       당신만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뒷말을 애써 숨기는 생도 일동이었다.

         

       * * *

         

       이한은 마냥 자신에게 대입하여 무식하게 무게가 높은 쇠줄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나름 상식이 있고, 그의 몸뚱어리가 특별하단 자각이 있으니까.

       다만 그렇기에 그는 안다.

       저들은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이미 눈치 챈 생도도 있겠지만, 색깔별로 줄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 노란색은 평균적인 가벼운 줄넘기이며, 녹색은 3kg이다. 붉은색은 모두 10kg이고.”

         

       -시, 십 키로!?

         

       한차례 웅성거림이 들렸다.

       특히 노란색 줄과 녹색 줄을 가진 이들은 대경실색하며 (피로 물든)붉은 쇠줄을 가진 이들을 보았다.

       저걸 지금까지 돌리고 있었단 말인가?

         

       허나 웅성거림에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이한은 설명을 이었다.

         

       “본 교관은 첫날 있었던 대련을 기억하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다 본 교관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하는 놈들이 대다수였지. 아, 혹시 기억이 안 난다면 말해라, 다시 생각나게 해줄 테니까.”

         

       …자존심은 상하지만 반박하는 이들은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한은 딱히 그들을 모욕하거나 창피하게 할 셈으로 어제 일을 상기시키는 게 아니었다.

         

       “어제 느낀 거지만, 검술학부 생도들은 기본이 무척이나 부실하더군. 특히 기사 지망 생도들. 너희는 기사를 지망한다고 하면서 기본기가 하나도 없더군. 하여 묻겠다, ─너희들은 정말 진지하게 기사가 되고 싶은 건가, 겨우 그 실력으로?”

         

       -!!!?

         

       충분히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그들이 비록 형편없이 지긴 했으나, 그들은 기사 가문의 자제였다.

       한데 그런 그들에게 진지함을 묻는다니…!

         

       이는 큰 모독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그들의 불손한 시선에 코웃음 쳤다.

         

       “내 말을 모독으로 느낀 놈들은 귓구멍 열고 잘 들어라, 너희는 머저리다. 스스로가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르며, 마냥 남에게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살았겠지. 아부 떠는 인간들만 곁에 있으니 기본기가 그따위인 거다. 네놈들이 전쟁터에 나간다면 너흰 필시 가장 먼저 죽거나 오래 살 거다, 오래 사는 이유? 전쟁터에 나가기도 전에 다쳐서 빌빌거리며 물 좋고 공기 좋은 별장에서 쉴 테니까,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한심한 놈을 출정시킬 정도로 군부가 머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한심한 천치들아.”

         

       “…….”

         

       불편한 침묵이 발생했다.

       줄넘기 좀 못했다고, 아니 저 무식한 줄넘기에 맞아 아파하는 게 그토록 잘못된 일인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또한 기본기가 부족하다니.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고, 이한은 그럴 줄 알았다며 콧방귀를 꼈다.

         

       역시 뭐라고 좀 한다고 해서 알아먹을 놈들은 없는 바.

         

       그렇기에 백번 입 아프게 말하는 게 소용없는 일일 테지.

         

       “교관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수긍하지 못할 놈들이 있을 테지, 괜히 천치일까. 교관도 너희한테 기대는 안 했다. 그러니 이해하기 쉽도록 교본을 보여주지. 쿤타, 아르노, 가란드 생도는 앞으로 나오도록.”

         

       쿵.

         

       “쿤타, 나왔다!”

       “무얼 하면 될지 대충 예상은 가는군요.”

       “으음, 우리 영감이랑 하는 짓이 너무 똑같은데, 혹시 숨겨둔 아들은 아니겠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오는 세 사람이었고, 이한은 만족했다.

       그래, 저게 올바른 배움의 자세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거다. 너희 중 가장 실력자인 놈들은 불만 하나 없이 수행하는데, 실력도 평균 미만인 놈들이 불평만 많다는 걸.”

         

       이한이 눈짓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으나, 그들은 충분히 알아먹었고, 묵묵히 일을 수행했다.

         

       후웅, 후우웅-!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움직이는 쇠줄.

         

       쿤타의 경우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다루듯이 쇠줄을 자유분방하게 다루었고, 아르노는 교과서에 실릴 만한 모범적이고도 안정적인 자세로 줄넘기를 실행했다.

       가란드의 경우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아르노 못지않은 안정적인 자세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쇠줄이 넘어갔고, 속도에는 차이가 있고, 땀을 비처럼 흘리고 있을지언정 그들 지친 기색 없이 쇠줄을 돌리고 또 돌렸다.

         

       열 개가 넘어 스무 개, 이를 넘어 서른 개.

       느리지만 차근차근 채워간다.

         

       저게 저토록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냐며 의심마저 드는 모습.

         

       세 개도 못 하고 부상만 당하는 놈들과는 딴판이 아닐 수 없었다.

       불만을 내보이던 몇몇 생도가 할 말을 잃으며 얼굴을 붉힐 때쯤, 이한은.

         

       툭!

         

       갑작스레 쿤타의 줄을 툭 하고 건드렸고, 줄넘기의 리듬이 깨지며 그의 등짝에 작렬했다.

         

       찰싹!

         

       하는 소리에 이어 파아앗! 하고 터지는 소리가 어찌나 강한지, 채찍과 망치로 동시에 맞은 것 같은 소리였다.

       저건 아픈 걸 넘어 뼈를 걱정해야 하는 전치 3개월을 걱정해야 판이다.

         

       한데.

         

       “으음, 교, 교관 나쁘다. 쿤타 아프다….”

       “엄설 부리지 마. 충분히 참을만하면서.”

       “아픈 건 아픈 거다.”

       “구시렁거리지 마. …쩝, 나중에 맛있는 거 사주마.”

       “교관은 좋은 사람이다!”

         

       그는 멀쩡해 보였다.

         

       물론 마냥 멀쩡하다는 건 아니다.

       살갗이 붉어진 것이 충격은 있어 보였으니까.

       그래도 저만한 충격을 맞고도 버틴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다.

         

       혹시-.

         

       “‘혹시 바바리안의 능력인가?’ 같은, 같잖은 생각을 하는 생도가 있다면 당장 눈알을 뽑아라. 특히 투기법을 익힌 놈은 더욱 뽑아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이어지는 독설 앞에 조금 전과 별개의 수치심이 피어오른다.

         

       바바리안의 능력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제법 있었다는 뜻.

         

       그런 이들에게 코웃음을 선사하며 이한은 설명을 이었다.

         

       “투기법을 자세히 배운 적 없는 나지만, 그래도 아는 기본적인 사항이 있다. 투기법이란 육체의 잠재력을 일순간 개방하는 기법이며, 그 잠재력은 노력과 수련에 의해 발전이 가능하다. -내 말이 맞나?”

       “정확합니다.”

       “성실한 답변 고맙다. 역시 다른 놈들과 다르게 싹수가 있어. 혹시 조교할 생각 없나?”

       “…사양하겠습니다.”

       “아쉽군.”

         

       아르노의 답변이었고, 그는 여전히 쇠줄을 돌리면서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벌써 쇠줄 넘기를 한 지 100회가 넘어갔을 때였다.

         

       “아르노 생도는 지금 무릎과 발목, 손목과 팔꿈치, 어깨 등에 투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격한 운동으로 다칠 우려가 있는 부분만 보호하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도 쓸데없이 힘을 흘리지도 않는다. 가벼운 동작으로만 줄을 넘기고 있는 거지. 그리고 이 외에는 투기법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아….”

         

       그제야 뭔가 알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술원 생도가 아니라, 유아원 생도를 가르치는 기분을 느낄 만큼 더럽게 느린 이해력이었고, 이한은 한심하다는 시선과 함께 그들도 알아챘을 답을 입에 담았다.

       

       “아르노 생도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곤 일체 투기법을 활용하지 않으며, 자신의 본래 근력과 체력만으로도 줄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교, 교관님은 투기법에 대해 모르신다면서, 그걸 다 어떻게 꿰뚫어보시는 겁니까?”

       “보면 알아.”

       “그, 그렇습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이거다. 아르노 생도도 그렇고, 가란드와 쿤타 생도도 그렇고, 하나같이 기본적인 근력과 체력을 확실하게 다져놨다는 의미다. 너희처럼 모든 활동에 투기법을 쓰면서 편하게 훈련하는 뺀질이가 아니란 거지.”

         

       투기법이 마냥 만능 같은 힘으로 불리지만, 사실 투기법보다 중요한 건 그 투기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명검이 있다 한들, 그 검을 다루는 이가 삼류이면 나무조차 제대로 못 베는 게 현실이다.

       그런 뜻에서 저것들은 틀렸다.

         

       ‘무공으로 따지면 내공만 수련하고, 외공수련은 하나도 안 한 거랑 같지.’

         

       물을 담아낼 그릇조차 못될 유리컵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이것도 높게 쳐준 거다.

         

       ‘유리컵도 아니고 그냥 종이컵이 딱 맞지.’

         

       저것들이 언제 사람이 될는지, 원.

         

       “하여 너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검술 수련이니 투기법 수련이니 하는 게 아니다. 너희는 그냥 체력과 근력, 지구력과 내구력 따위부터 쌓아야 하는 게 순서란 거다, 허접한 놈들.”

         

       “…그냥 전부 처음부터 다시 전부 단련해야 한다는 말을 길게도 하십니다그려.”

         

       가란드의 촌철살인과 같은 직언.

       이한의 일장연설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200회를 채운 가란드였고, 생도들의 표정은 거무죽죽하게 변해갔다.

         

       기초수련이라니, 그걸 이제 와서….

         

       “참고로 기사단 입단시험에서 가장 많이 탈락하는 구간은 체력 테스트다. 이상하게 제일 쉬운 구간에서 탈락하더군. 아아, 맞다. 너희는 어차피 가문 기사단에 들어가면 그만일 테니, 체력 테스트는 상관없으려나? 시험 없이 자동 입단일 테니까. 흐, 역시 핏줄이 좋아, 안 그래? 하하!”

         

       “…….”

         

       가문의 기사단에 들어가란 건 대놓고 ‘너 낙하산이네’ 소리 듣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명예를 목숨처럼 중요시 여기는 귀족들에게 그건 혀 깨물고 죽으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그들의 반발은 사라졌고, 이한은 드디어 잡음이 사라진 것에 만족했다.

       주제 파악하는 얼굴이 마음에 든다.

         

       “뭐, 걱정 마라. 나도 이 지루한 걸 언제까지고 할 마음은 없으니까.”

         

       1학기만 통으로 쓰면 되려나?

         

       “본 교관이 장담하마. 이번 학기 동안 잘 따라오기만 한다면 여기 자리한 생도들 모두의 신체능력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올라갈 것이다. 물론….”

         

       그가 뒷말을 늘리며 생도 전원의 면면을 훑었다.

       마치 그 시선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가 잘 따라왔을 때 얘기지만.”

         

       너희 중 따라올 놈이 있을지 모르겠다, 라는 조소 섞인 시선.

         

       생도들은 그의 비웃는 시선을 몸소 느끼며 생각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한 대만 때릴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아직 멀고도 먼, 한참 훗날의 얘기일 테지만.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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