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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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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뭣?! 그놈이 자살했다고? 누구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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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투 경기, 검을 든 전사와 마물이 치열하게 전투하며 관객들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잔혹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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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자살해버린 15살의 노예는 검투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제물로 쓰일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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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가 죽었다면 다른 노예를 대용으로 쓰면 되지만, 이번에는 그러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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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귀한 손님이 오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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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흑 상인이라 불리는 토토겐이 검투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올 예정이었다. 그는 굉장히 변태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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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상처 입는 걸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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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아하는 건 언제 죽을지 모를 아이들이 마물을 죽여, 순수한 모습을 버리고 타락해 가는 모습이지만 토토겐이 좋아할 법한 여리여리하면서도 귀여운 아이 중 마물을 찢어 죽일 만한 피지컬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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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그가 좋아할 법한 야들야들한 아이들이 마물에 찢기는 걸 쇼처럼 보여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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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외모 기준은 굉장히 엄격했기에, 이번에 자살한 노예도 겨우겨우 준비한 노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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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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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노예가 죽고 말았다. 당장 다른 노예를 구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 말은 곧, 큰 손님을 하나 잃는다는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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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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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을 만족시켜 받았던 돈을 떠올리며 오뚜기가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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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모 기준에 부합한 노예 분명 하나쯤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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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는 며칠전에 지하에 가둬둔 노예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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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녀석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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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지소가 내린 명령을 떠올렸다. 이벤트를 위해 사용될 것이니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던 그의 충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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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지소님이라면 이쪽이 더 재미있겠다고 말씀하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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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는 히죽 웃으며 후다닥 재빨리 편지지를 펴 지소에게 두 노예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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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리릭 적은 편지를 까마귀의 다리에 묶어 보냈다.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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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엔 ‘마음대로 해’라고 적혀있었다. 오뚜기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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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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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밥 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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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아있어야 할 감옥 안은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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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과 바닥이 전부 새카만 암석으로 되어있는 건 똑같았지만 천장에 조명이 달려있었고 방 가운데엔 쓸만한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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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위에는 주먹밥이 두 개 올려져 있었다. 조난 상태가 되었을경우(또는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주변에 생존을 위한 것들이 생성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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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예쁜’,‘여동생’을 챙겨야 하는 경우 식량과 물건을 구하기 굉장히 쉬워진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굶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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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생활하다 보면 방 크기도 넓어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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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방 한쪽 벽은 기계 장치로 바뀐 상태다. 딱히 내가 뭘 한 건 아니다. 그저 아이리스가 볼 일을 바닥에 보려 하자 제멋대로 벽이 돌아가더니 화장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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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자 예쁜 여자아이에겐 너무나 착한 개그 필터였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일반 가정집까지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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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자,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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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완전히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음식도 내가 직접 한입 크기로 입에 넣어줘야 겨우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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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키고 나면 다시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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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이유식 먹이듯 아이리스 입에 밥을 전부 먹인 후, 내 주먹밥의 반을 아이리스에게 더 먹였다. 깡마른 몸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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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반을 입에 넣어 씹어 삼킨 후 아이리스의 옆에 앉았다. 엉킨 머리를 빗겨주자 아이리스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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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손을 잡아주자 아이리스가 가만히 손을 꼭 잡아 온다. 며칠 챙겨줬더니 어느 순간부터 옷자락이나 손을 잡고 가만히 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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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챙겨주면 상태가 좀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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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변화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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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오늘 먹은 주먹밥 나중에 직접 만들어볼래? 내가 있던 곳에선 아이들이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우거든. 아, 만드는 법은 내가 가르쳤어. 아이리스도 배우면 분명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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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아이리스가 노아 일행과 만나게 되었을 때 거부감이 없도록 아이들과 생활했던 이야기를 계속 읊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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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았기에 계속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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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 얘기를 하다 보니 노아가 떠올랐다. 난 딱히 노아나 아이들이 걱정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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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인물이기도 하고, 줄리아나라는 ‘어른’이 곁에 있으니 어떻게든 잘 버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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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내 믿음의 근원은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원작 주인공, 아이리스 덕분에 생겼다. 역시 주연은 안 죽는구나, 원작대로 아이리스와 리안은 만나게 되는구나 싶어서 안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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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그런 여러 이유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옅은 편이다. 그보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아이리스가 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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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면 피아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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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왜 갑자기 날 밀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 덕분에 아이리스를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나중에 쿠키라도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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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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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갑작스럽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연 건 제스와 달리 얼굴이 동물과 굉장히 닮은 남자였다. 남자는 쥐처럼 생긴 얼굴에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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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너희 둘 나…뭐야,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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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감옥 내부를 살펴보았다. 왠지 입으로 ‘따라 따라 딴.’하는 효과음을 불러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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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님이 특별히 챙기라고 해서 이렇게 해둔 건가..? 에이, 모르겠다. 늦으면 또 지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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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던 쥐 수인은 손을 맞잡고 있는 나와 아이리스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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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나를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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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반항 해봤자 좋은 꼴 못 보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아이리스를 일으키려 했는데, 내가 일어나자 아이리스도 따라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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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나오자 쥐 수인이 감옥 문을 잠그고는 먼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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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로 내려올 때 사용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쭉쭉 올라갔다. 그들이 내린 곳은 아이리스가 처음 갇혀있던 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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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앞으로 쭉쭉 걸어가기 시작했다. 쥐 수인은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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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벽 쪽으로 다가가 길게 늘어진 줄을 당겼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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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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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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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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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환호성 소리와 무어라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귓가에 웅웅 울렸다.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낼까 고민하다가 눈에 띌 것 같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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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안쪽은 짧은 통로였다. 통로 끝에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못해도 30칸은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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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 끝에선 밝은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는데, 밖과 연결된 듯했다. 다만 철창으로 막혀 나갈 순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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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서 대기하다가 앞에 철창이 열리면 나가.”
    “그거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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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질문에 쥐 수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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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나 본데. 노예는 질문하는 게 아니야.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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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혀를 차더니 열린 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문이 쿠궁하고 닫혔다. 밖과 연결된 공간에 아이리스와 나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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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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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 낡은 무기들이 놓여있었다. 굳이 흉흉한 무기를 구경할 이유는 없었기에 계단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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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잠시 두고 다녀올까 싶어 손을 놓으려 했지만, 아이리스가 놓아주지 않아 그냥 손잡고 같이 계단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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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진짜 검투 경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우오오오오!”
   “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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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글고 커다란 공간, 열광하는 관중들,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의 과장된 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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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여기…광란의 투기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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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운영하는 투기장으로 마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마물과 마물의 피 터지는 싸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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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그 싸움이 공정하지 않으며 그저 보기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규칙이 있어 인간들이 장난감처럼 찢어발겨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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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자,잠깐! 분명 이거 철창이 열리면 나가라고 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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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야 별문제 없지만, 아이리스, 그녀는 죽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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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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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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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와중에 철창이 위로 열려버렸다. 나는 곧바로 아이리스와 함께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철창 바깥쪽에 서 있던 거대한 근육질의 남자가 나와 아이리스를 번쩍 들어 투기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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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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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히 아이리스를 품에 안고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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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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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내 앞에 검 한 자루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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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죽으면 재미없으니까 최대한 발악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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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내동댕이쳤던 남자가 히죽 웃으며 우리가 나왔던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남자가 검을 던져준 듯했다. 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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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광하는 관중과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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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마기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빛이 투기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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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저 가여운 남매와 싸우게 될 마물은…?! 스네이크라이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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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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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서 있는 곳 반대쪽에서 철창이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꼬리에 성인 남자 팔뚝만 한 뱀이 달린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철창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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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급히 검을 챙겼다. 꽤 묵직해서 검 끝이 아래로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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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달려서 벽 타고 탈출할까? 아니면 그 말들을 사용해서 어떻게 잘 넘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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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머리를 굴려 위기를 모면할 만한 말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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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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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내 손에 들린 검을 뺏어 들었다. 화들짝 놀라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새하얀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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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의 자질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반짝임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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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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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말없이 내 손을 놓더니 앞으로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말려보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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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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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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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김김어예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리스는 무려 표지에도 있고, 원작 주인공이고, 리안에게 의지까지 하네요.
= 가장 잘 구를 거라는 말.

절망집착하게 될 아이리스 생각하니 너무 행복합니다. ^0^

아무리 굴러도 엔딩은 해피입니다!

+

저번편 댓글에 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있었는데요.
제가 댓글보고 피아의 엔딩을 바꾼건…

피아가 어린 아이이며 트라우마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고, 나쁜 행동은 했어도 환경이 피아를 그렇게 만든 거라는 말에 확실히 폭사 엔딩은 불쌍한 것 같아 바꿔주었습니다.(나쁘지 않다는 건 아님 폭사 엔딩만 바꿔준 것)피아같은 캐가 구르는게 맛있다고 영업해주신 분들의 말에 혹한 것도 있습니다. 0ㅠ0
대신 열심히 굴릴 거라 재미있게 봐주세요…^^
메인스토리엔 별 영향을 안주는 거라 바꾼거니 댓글에 끌려다니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하렘이더라도 히로인의 숫자가 너무 늘어나면 기억도 안나고 매력도 겹쳐서 아주 엄격한 기준(얼마나 굴렀는가,예쁜가)으로 판단하여 늘어날 예정입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뭣?! 그놈이 자살했다고? 누구 맘대로!”

검투 경기, 검을 든 전사와 마물이 치열하게 전투하며 관객들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잔혹한 경기.

오늘 자살해버린 15살의 노예는 검투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제물로 쓰일 예정이었다.

노예가 죽었다면 다른 노예를 대용으로 쓰면 되지만, 이번에는 그러기 힘들었다.

‘망할, 귀한 손님이 오실 텐데!’

암흑 상인이라 불리는 토토겐이 검투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올 예정이었다. 그는 굉장히 변태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상처 입는 걸 즐겼다.

가장 좋아하는 건 언제 죽을지 모를 아이들이 마물을 죽여, 순수한 모습을 버리고 타락해 가는 모습이지만 토토겐이 좋아할 법한 여리여리하면서도 귀여운 아이 중 마물을 찢어 죽일 만한 피지컬을 가진 아이는 없었다.

대신 그가 좋아할 법한 야들야들한 아이들이 마물에 찢기는 걸 쇼처럼 보여줄 예정이었다.

그의 외모 기준은 굉장히 엄격했기에, 이번에 자살한 노예도 겨우겨우 준비한 노예였다.

“젠장!”

그런데 그 노예가 죽고 말았다. 당장 다른 노예를 구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 말은 곧, 큰 손님을 하나 잃는다는 말과 같았다.

‘어떻게든 해야 해..!’

토토겐을 만족시켜 받았던 돈을 떠올리며 오뚜기가 눈을 번뜩였다.

‘외모 기준에 부합한 노예 분명 하나쯤은…아!’

오뚜기는 며칠전에 지하에 가둬둔 노예를 떠올렸다.

‘그 녀석들이라면..’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지소가 내린 명령을 떠올렸다. 이벤트를 위해 사용될 것이니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던 그의 충고를.

‘분명 지소님이라면 이쪽이 더 재미있겠다고 말씀하실 거야.’

오뚜기는 히죽 웃으며 후다닥 재빨리 편지지를 펴 지소에게 두 노예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휘리릭 적은 편지를 까마귀의 다리에 묶어 보냈다.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편지엔 ‘마음대로 해’라고 적혀있었다. 오뚜기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

“아이리스 밥 먹자.”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아있어야 할 감옥 안은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전부 새카만 암석으로 되어있는 건 똑같았지만 천장에 조명이 달려있었고 방 가운데엔 쓸만한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주먹밥이 두 개 올려져 있었다. 조난 상태가 되었을경우(또는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주변에 생존을 위한 것들이 생성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규칙이었다.

특히 ‘예쁜’,‘여동생’을 챙겨야 하는 경우 식량과 물건을 구하기 굉장히 쉬워진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굶지 않고 생활할 수 있었다.

‘이대로 생활하다 보면 방 크기도 넓어질 것 같은데.’

이미 방 한쪽 벽은 기계 장치로 바뀐 상태다. 딱히 내가 뭘 한 건 아니다. 그저 아이리스가 볼 일을 바닥에 보려 하자 제멋대로 벽이 돌아가더니 화장실이 생겼다.

미성년자 예쁜 여자아이에겐 너무나 착한 개그 필터였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일반 가정집까지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리스 자, 먹어.”

아이리스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완전히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음식도 내가 직접 한입 크기로 입에 넣어줘야 겨우 씹어 삼켰다.

삼키고 나면 다시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아기 이유식 먹이듯 아이리스 입에 밥을 전부 먹인 후, 내 주먹밥의 반을 아이리스에게 더 먹였다. 깡마른 몸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은 반을 입에 넣어 씹어 삼킨 후 아이리스의 옆에 앉았다. 엉킨 머리를 빗겨주자 아이리스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먼저 손을 잡아주자 아이리스가 가만히 손을 꼭 잡아 온다. 며칠 챙겨줬더니 어느 순간부터 옷자락이나 손을 잡고 가만히 있곤 했다.

‘잘 챙겨주면 상태가 좀 나아지겠지?’

작은 변화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이리스 오늘 먹은 주먹밥 나중에 직접 만들어볼래? 내가 있던 곳에선 아이들이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우거든. 아, 만드는 법은 내가 가르쳤어. 아이리스도 배우면 분명 잘할 거야.”

나중에 아이리스가 노아 일행과 만나게 되었을 때 거부감이 없도록 아이들과 생활했던 이야기를 계속 읊어주었다.

듣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았기에 계속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애들 얘기를 하다 보니 노아가 떠올랐다. 난 딱히 노아나 아이들이 걱정되진 않았다.

원작 인물이기도 하고, 줄리아나라는 ‘어른’이 곁에 있으니 어떻게든 잘 버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내 믿음의 근원은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원작 주인공, 아이리스 덕분에 생겼다. 역시 주연은 안 죽는구나, 원작대로 아이리스와 리안은 만나게 되는구나 싶어서 안심되었다.

하여튼 그런 여러 이유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옅은 편이다. 그보다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아이리스가 더 걱정이었다.

‘돌아가면 피아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다.’

피아가 왜 갑자기 날 밀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 덕분에 아이리스를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나중에 쿠키라도 줄 생각이다.

철컹.

그때, 갑작스럽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연 건 제스와 달리 얼굴이 동물과 굉장히 닮은 남자였다. 남자는 쥐처럼 생긴 얼굴에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이, 너희 둘 나…뭐야,이거?”

쥐 수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감옥 내부를 살펴보았다. 왠지 입으로 ‘따라 따라 딴.’하는 효과음을 불러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소님이 특별히 챙기라고 해서 이렇게 해둔 건가..? 에이, 모르겠다. 늦으면 또 지랄할 테니까…”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던 쥐 수인은 손을 맞잡고 있는 나와 아이리스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너희 나를 따라와라.”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반항 해봤자 좋은 꼴 못 보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아이리스를 일으키려 했는데, 내가 일어나자 아이리스도 따라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쥐 수인이 감옥 문을 잠그고는 먼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올 때 사용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쭉쭉 올라갔다. 그들이 내린 곳은 아이리스가 처음 갇혀있던 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앞으로 쭉쭉 걸어가기 시작했다. 쥐 수인은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벽 쪽으로 다가가 길게 늘어진 줄을 당겼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궁.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문이 열렸다.

와아아아 -..!

커다란 환호성 소리와 무어라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귓가에 웅웅 울렸다.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낼까 고민하다가 눈에 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문 안쪽은 짧은 통로였다. 통로 끝에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못해도 30칸은 되어 보였다.

계단 끝에선 밝은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는데, 밖과 연결된 듯했다. 다만 철창으로 막혀 나갈 순 없어 보였다.

“안에서 대기하다가 앞에 철창이 열리면 나가.”

“그거면 되나요?”

내가 질문에 쥐 수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나 본데. 노예는 질문하는 게 아니야. 알겠냐?”

쥐 수인은 혀를 차더니 열린 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문이 쿠궁하고 닫혔다. 밖과 연결된 공간에 아이리스와 나만 남게 되었다.

‘뭐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 낡은 무기들이 놓여있었다. 굳이 흉흉한 무기를 구경할 이유는 없었기에 계단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아이리스는 잠시 두고 다녀올까 싶어 손을 놓으려 했지만, 아이리스가 놓아주지 않아 그냥 손잡고 같이 계단 위로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진짜 검투 경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우오오오오!”

“휘이익!”

둥글고 커다란 공간, 열광하는 관중들,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의 과장된 어조.

‘설마 여기…광란의 투기장이야?!’

지소가 운영하는 투기장으로 마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마물과 마물의 피 터지는 싸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다만, 그 싸움이 공정하지 않으며 그저 보기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규칙이 있어 인간들이 장난감처럼 찢어발겨지는 곳이었다.

‘자,자,잠깐! 분명 이거 철창이 열리면 나가라고 했었잖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야 별문제 없지만, 아이리스, 그녀는 죽을지도 몰랐다.

철컹,촤르륵!

“…!”

그 와중에 철창이 위로 열려버렸다. 나는 곧바로 아이리스와 함께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철창 바깥쪽에 서 있던 거대한 근육질의 남자가 나와 아이리스를 번쩍 들어 투기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으아앗!”

간신히 아이리스를 품에 안고 바닥을 굴렀다.

챙그랑.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내 앞에 검 한 자루가 떨어졌다.

“가만히 죽으면 재미없으니까 최대한 발악해보라고.”

날 내동댕이쳤던 남자가 히죽 웃으며 우리가 나왔던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남자가 검을 던져준 듯했다. 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바라보았다.

열광하는 관중과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

지소가 마기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빛이 투기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자, 저 가여운 남매와 싸우게 될 마물은…?! 스네이크라이온 입니다!”

철컹,촤르륵!

내가 서 있는 곳 반대쪽에서 철창이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꼬리에 성인 남자 팔뚝만 한 뱀이 달린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철창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검을 챙겼다. 꽤 묵직해서 검 끝이 아래로 쳐졌다.

‘씁,달려서 벽 타고 탈출할까? 아니면 그 말들을 사용해서 어떻게 잘 넘겨볼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 위기를 모면할 만한 말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어..?”

아이리스가 내 손에 들린 검을 뺏어 들었다. 화들짝 놀라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새하얀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용사의 자질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반짝임이 그곳에 있었다.

“…”

아이리스는 말없이 내 손을 놓더니 앞으로 척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말려보기도 전에.

탓!

그녀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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