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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서준은 기가 흐트러진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춘봉이가 자꾸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는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하루이틀 일도 아니라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잘난 걸 어떡해.’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푸르른 숲에서 이질적인 붉은색이 눈에 띄었다.

   

    전부 산적들의 시체다.

   

    도망치는 걸 쫓아가며 죽인 듯 길을 따라 늘어진 시체들의 모습에 서준이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눈이 돌아가긴 했었나 보네.”

   

    당연한 일이긴 하다.

   

    내 딸이 산적들에게 납치당했다?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춘봉이가 납치당했으면 당장 자신도 칼을 뽑아들고 전부 죽여버렸겠지.

   

    “실력이 꽤 있긴 했나 봐.”

   

    춘봉이가 산적들의 시체에 남은 도흔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부분 일격에 죽였어. 이름이 없는 무인은 아니겠는데?”

    “근데 내가 이겼죠?”

    “어, 너 잘났다 인마.”

   

    서준이 낄낄대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서준의 기감 끄트머리에 사람의 기척이 걸려들었다.

   

    “찾았다.”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 쳐들어가는 거지.”

   

    서준이 늘어진 가지에서 나뭇잎 하나를 떼어 들었다. 그의 손에 푸른 기운이 감돈다 싶더니 이내 나뭇잎이 꽁꽁 얼어붙었다.

   

    “보자….”

   

    툭, 그의 신형이 가볍게 치솟았다. 단숨에 나무 꼭대기에 올라선 채 먼곳을 내다보니 산적들의 소굴이 보인다.

   

    왕…, 뭐 였더라? 아무튼 사내의 소식이 전해졌는지 내부가 소란스럽다.

   

    산적들이 윽박지르며 여인들을 어느 한 건물에 몰아넣고 있다. 행색을 보아하니 저들도 납치당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한 여자 아이. 울며불며 난리 치는 아이를 한 손으로 들어올린 사내가 무어라 소리 치는 모습이 보인다.

   

    “쟨가?”

    “꼬맹인데?”

   

    마찬가지로 나무 위에 올라선 춘봉의 말에 서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니랑 나이 차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내가 씨발 저 정도라고?”

    “어.”

   

    저 여자 아이는 누가 봐도 초딩쯤 되는 나이로 보인다. 춘봉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얘가 딱 저 정도였다.

   

    지금은 쑥쑥 자라 중딩 정도는 돼 보이지만.

   

    “하아…. 내 볼살….”

    “또 지랄이지, 또.”

    “아니 진짜 중대사항인데.”

   

    서준이 툴툴대며 산적들을 관찰했다. 보아하니 저 꼬맹이를 인질로 써먹을 작정 같은데, 그 왕 씨는 저 상황에서 어쩌려고 그렇게 무지성으로 다 죽이고 다닌 건지 모르겠다. 잠입이라도 하든가.

   

    “뭐 일단….”

   

    파삭-, 서준이 손에 쥐고 있던 나뭇잎을 부쉈다. 

   

    혼원일월지 한 번 박고 시작하려 했더니 저래서야 무리다.

   

    대신 그의 손가락 끝에 막대한 양의 기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후우….”

   

    그가 숨을 내쉬자 뿌연 입김이 뿜어져나온다.

   

    춘봉이 그 모습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저러면 내공이 부족할 텐데.’

   

    가끔 그녀 자신도 까먹고는 하지만 서준은 무공을 배운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됐다.

   

    내공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 괜히 노고수들이 무서운 게 아니다.

   

    무림인에게는 쌓아온 시간이 곧 힘이었다.

   

    일단은 방해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있으니 서준이 산적 소굴을 향해 손을 쭉 내밀었다.

   

    “공군 병장의 사격 솜씨를 보여주지.”

    “병장?”

   

    이 새끼 군인이었나? 춘봉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퓻-!

   

    응축된 지탄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쏘아졌다.

   

    쐐액-!

   

    눈을 한 번 깜빡거릴 찰나, 여자 아이를 들고 있던 산적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머리가 얼어붙은 산적이 쓰러지며 산적 소굴에 비상이 걸렸다.

   

    “가자!”

   

    서준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춘봉 역시 검을 뽑아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펄럭-

   

    순식간에 여자 아이의 곁에 내려앉은 서준이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자자, 산적 여러분. 다들 뒤져도 억울할 거 없죠?”

    “저, 저놈은…!”

   

    산적 중 하나가 그를 알아보았다. 도망치던 중 서준에게 잡혔던 그 산적이었다.

   

    “앗, 하이요.”

   

    서준이 씩 웃으며 발을 크게 내리찍었다.

   

    쿠웅-!

   

    땅이 뒤흔들리며 불꽃이 치솟는다.

   

    “부, 불…!”

    “아이고 괜찮아.”

   

    서준이 놀란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양기는 활발하다. 그만큼 음기에 비해 확산하는 성질이 강하다.

   

    서준이 작정하고 양기를 퍼뜨리자 순식간에 산적 소굴이 불길에 휩싸였다.

   

    “부, 불이야…!”

    “뜨겁…! 어? 안 뜨거운데?”

    “별거 아니다! 당장 저놈을 쳐죽여!”

   

    산적들이 달려든다. 여인들이 몰려있는 건물을 확인한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양반전陰陽反轉

   

    땅에 손을 짚고 주변에 퍼진 자신의 양기를 음기로 치환했다.

   

   

    쩌저적────────!!!

   

   

    산채에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서준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토닥토닥, 품에 안은 아이의 등을 두드리고 있으니 춘봉이 뚜방뚜방 다가왔다.

   

    “애는 괜찮아?”

    “어. 아마도?”

   

    아이를 슬쩍 품에서 떼어내 얼굴을 확인했다. 

   

    산적들에게 맞았는지 조금 멍이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흐극…!”

   

    대신 서준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허어엉…. 아빠아….”

   

    아이가 서준을 꽉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흘린다. 서준은 그런 아이를 안은 채 여인들이 갇혀있던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너 내공은 괜찮아? 무리하는 거 아니지?”

   

    옷자락을 쭉쭉 잡아당기는 춘봉. 서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완전 멀쩡한데? 내공이야 뭐, 운기하면서 채우면 되잖아.”

   

    애초에 쓸 때부터 효율적으로 잘 쓰면 부족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래? 그럼 지금 잠깐 운기 할래? 내가 호법 서줄 테니까.”

    “하고 있는데?”

    “응? 뭔 개소리야?”

   

    춘봉이 멍하니 서준을 바라보다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자, 잠시만…! 진짜로!?”

    “어. 되더라고.”

   

    원래라면 미친짓이긴 한데, 저번에 호신공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됐다.

   

    호신공보다는 태극에 대한 깨달음이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아니 씨발 말이 돼? 황….”

   

    품에 안긴 아이를 흘끗거린 춘봉이 말을 이었다.

   

    “내가 알려준 무공은 동공動功이 아닌데!?”

    “거 집중하면 다 되더라고.”

    “아니! 안 된다니까!?”

    “되잖아.”

    “아오 씨발!”

   

    춘봉이 날뛰었다. 그 모습에 아이가 겁을 먹었는지 서준에게 조금 더 꼭 달라붙었다.

   

    “오, 오빠…. 서령이 무서워….”

    “오구 그랬어?”

    “응…. 헤헤.”

   

    어쩐지 춘봉이의 시선이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

   

   

    여인들이 들어갔던 건물로 다가간 서준은 얼어붙은 문에 손을 올렸다.

   

    카챵-!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 서준이 낸 소리가 아니었다.

   

    “한 놈 살아있었네.”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수염이 중구난방으로 자라난 사내 하나가 이를 갈며 다가온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용감한 친구네. 도망이라도 치지.”

    “니미럴. 사내에게 도망 같은 선택지는 없다.”

    “흠.”

   

    그런 마인드로 선택한 게 왜 산적질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새끼다.

   

    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서려는데, 그보다 먼저 춘봉이 검을 뽑아들었다.

   

    “너 같은 게 사내? 웃기는 소리. 헛소리 하지 말고 덤벼.”

    “…이젠 별 같잖은 애새끼까지.”

   

    아마도 이 산채의 채주일 사내가 크게 발을 구르며 앞으로 쏘아지듯 날아온다. 사내의 박도에 탁한 녹빛 도기가 어렸다. 

   

    그에 반해 춘봉은 산책이라도 하듯 가볍게 발을 옮겼다.

   

    춤을 추듯 부드럽게 올라간 검이 거칠게 떨어지는 검을 휘감는다.

   

    씨잉-!

   

    금속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박도가 위로 크게 떠올랐다.

   

    “무슨…!”

   

    사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춘봉이 여상하게 한 걸음 걸어 그런 사내를 스쳐지나갔다.

   

    툭-

   

    사내의 목이 떨어졌다.

   

    춘봉은 어느새 검에 휘감긴 백금빛 검기를 털어내며 비소를 흘렸다.

   

    “같잖은 게.”

   

    그동안 스트레스라도 쌓였나? 춘봉이가 거칠어졌다.

   

    “어허, 춘봉이 착하지? 그런 나쁜 말 쓰면 안 돼요.”

    “지랄.”

   

    춘봉이가 툴툴대며 납검했다.

   

    서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보여준 검을 되새겼다.

   

    청운신공을 운용하며 음기에 가까운 기운을 다루지만, 차갑다기 보다는 고요함에 가깝던 기세.

   

    ‘확실히…, 음기가 차갑다는 건 편견이지.’

   

    물론 그런 성질을 띠는 것은 맞지만, 음기라고 얼음을 생각하면 안 된다.

   

    굳이 따지면 얼음은 오행의 수水에 속하지 않을까?

   

    방금 자신만 해도 양기를 불처럼 퍼뜨렸을 뿐 실제 불처럼 뜨겁지는 않았잖은가.

   

    “오행이라….”

   

    오행은 결국 이극, 음과 양에서 파생된 산물이니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건 뭐 나중 가면 원소 마법이라도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멍하니 상념에 잠겨있다 정신을 차리니 춘봉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끝났어?”

    “엉.”

    

    고개를 끄덕이자 춘봉이 타박타박 걸어 건물의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여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다 춘봉이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한 여인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 혹시….”

    “산적들은 다 처리했으니까 나오셔도 돼요.”

    “아,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인이 주저앉아 운다. 주변의 여인들 또한 마치 전염이라도 되는 듯 하나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처음 입을 열었던 여인은 울음도 그치지 못한 채 서준의 발치로 기어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춘봉이 자신들을 구했으리라는 생각은 못 한듯 싶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아, 네. 그러지 말고 일어나시지….”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산적 새끼들이 얼마나 좆같이 굴었으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여인들의 행색을 보니 바로 납득이 됐다. 말 못 할 짓들을 당한 흔적이 적나라했다.

   

    그나마 어린애는 안 건드린 것 같긴 한데, 그러면 도대체 얘는 왜 납치한 거지? 미친 페도 새끼들이 아닌 이상 납치할 이유가 없는데. 

   

    반대로 미친 페도 새끼들이라면 아이를 건드리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서준이 품속의 아이를 고쳐 안으며 눈썹을 까딱였다.

   

    “일단 가자.”

   

    우선 그 왕 뭐시기한테 애를 데려다주는 게 좋겠다. 산채는 나중에 털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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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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