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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에파니아 제국 무도 대회 본선전.

   어느새 본선은 무르익은 끝에 최종전에 도달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본래 가장 집중되어야 할 성인 부문 대신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소년 부문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밤까마귀 소속이라는 소문의 주인공 크라드 때문이었다.

     

   까마귀를 어깨에 올린 실눈의 소년.

   그는 의미심장한 모습만큼이나 그 무력이 뛰어났다.

     

   지금까지 허리춤에 찬 검을 단 한 번도 뽑지 않은 채 모두 주먹의 일격으로 제압했던 것이다.

   그 탓에 사람들은 검은 사실 페이크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의문을 모은 채 마지막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소년 부문 경기장이 터져나가라 울려 퍼졌다.

   제국에서 가장 큰 실내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번 결승전을 기대했다.

     

   “이번 무도 대회 소년 부문, 마지막 경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는 그리 외치며 왼쪽 팔을 번쩍 들었다.

     

   “결승전의 두 주인공 중 첫 번째를 소개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자라 언젠가 세계 침식을 막아 세계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지닌 소년! 펠레이!”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경기장에 소년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쭈뼛거리는 자세로 나온 그는 올해 열넷에 평범한 인상의 소년이었다.

     

   “펠레이, 힘내라!”

   “인마, 밤 까마귀 같은 거에 지지마!”

     

   그러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그를 응원했다.

   왜냐하면 그는 일반 평민들의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자였기 때문이다.

     

   귀족과는 다르게 평범한 시골 마을에서 검을 단련해 무도 대회의 결승전까지 오른 소년.

   평민들은 그에게 감화되어 그를 보다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그 상대는…… 이름만 말해도 모두가 겁을 먹고 마는 악명 높은 뒷세계의 명가, 밤 까마귀 소속! 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사회자는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씩하니 웃었다.

     

   “크라드!”

     

   그리고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갑자기 참가자 입장 통로에서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까악!”

     

   거세게 소리 내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까마귀는 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

   불길함의 상징인 까마귀.

     

   그런 까마귀의 등장에 아주 잠시 소란이 그친 순간.

     

   뚜벅뚜벅-

     

   입구 쪽에서 한 소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새까만 검은색 머리 아래 곱게 감겨 있는 눈은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소년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묘한 압박감을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가 경기장 위로 오르자 하늘을 날던 까마귀가 그의 어깨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알았어. 다음부터 이런 거 안 시킨다니까.”

     

   그러곤 혼잣말을 내뱉은 그가 고개를 들자 일순간 사람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터져라 울려 퍼졌다.

     

   “밤 까마귀!!!”

   “난 네가 일등 하는 데 걸었다! 이겨라!!!”

   “암살 명가가 뭔지 제대로 보여줘라!!!!”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환호성 사이로 크라슈가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펠레이가 비추었다.

     

   다시 봐도 평범한 인상인 그.

   하지만 저래 보여도 라헬른 아카데미는 물론 창공의 세대에 속했던 녀석이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

     

   저 희망찬 눈동자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모양이다.

   그러니 그의 눈동자에 희망이 꺼지던 날을 크라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를 상대하는 것보다 다른 일이 먼저다.

   어차피 소정의 목적은 이뤘고, 말이다.

     

   “크라드.”

     

   그러는 순간 펠레이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너 정말로 밤 까마귀 소속이야?”

     

   순진한 녀석 같으니.

   크라슈는 대답하는 대신 목을 가볍게 풀었다.

     

   어차피 이쪽 일은 사실상 마쳤다.

   그러니 남은 건 저쪽이 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날뛰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 거라면 바로 나오는 게 좋아.”

     

   그러는 순간 펠레이 녀석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이번 무도 대회는 에파니아 황실이 라헬른 아카데미의 추가 입학생을 모으고자 치른 대회라고 했어. 너와 난 결승전까지 올라왔으니 분명 라헬른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을 거야.”

     

   이미 일파만파 알려진 정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펠레이는 생색내듯 말했다.

     

   “라헬른 아카데미는 어느 나라도 간섭하지 못하는 독자적인 아카데미래. 거기서라면 너도 밤 까마귀에서 벗어 날 수 있어.”

     

   그리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쉽게도 라헬른 아카데미는 그 정도로 훌륭한 아카데미가 아니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만큼 라헬른 아카데미의 힘은 적다.

   그 때문에 초창기를 제외하면 얼마 안 가 결국 제국과 왕국들의 기 싸움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라헬른 아카데미가 그렇게 휘둘리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었지만.

   그건 당장 해결할 것도 아니었고, 크라슈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펠레이.”

     

   그러니 크라슈는 처음으로 이번 대회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을 보고, 관객들이 또다시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크라슈는 그 검을 펠레이에게 겨누었다.

     

   “너무 희망에만 차 있으면 들이닥친 절망을 이겨내지 못할 거다.”

   “뭐?”

   “경기 시작!”

     

   지금의 그는 이해 못할 충고와 함께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투의 포문을 연 것은 펠레이였다.

   그는 신기하게도 바닥을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이 녀석이 직접 개발한 보법이지.’

     

   펠레이가 살던 곳은 북쪽에 가까운 제국에서도 가장 위인 장소다.

   사시사철 눈이 오는 장소.

     

   그곳에서 자라난 펠레이는 미끄러운 얼음과 눈 위를 다녔고, 그 결과, 더욱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 보법을 개발했다.

     

   본인은 아직 이름을 붙이기 전이겠지만 크라슈는 그 이름을 안다.

     

   천리십보(千里十步)

     

   천리를 열 번의 발걸음으로 도달한다는 이름의 보법이었다.

     

   ‘처음 보는 상대는 당황하겠지.’

     

   분명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오니까.

   그 증거로 펠레이는 단 한 순간에 크라슈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평민 중 유일하게 재능과 노력으로 창공의 세대에 오른 펠레이다.

   그는 이맘때에도 아닉스만큼 강했다.

     

   챙!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엇?!”

     

   허초를 섞어 허리를 노렸던 펠레이의 검이 크라슈의 검에 틀어 막혔다.

   마치, 자신의 검이 어디로 갈지 아는 듯한 그 모습의 펠레이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남에게 충고할 수준은 아니라 보는데.”

     

   크라슈가 도발하자 펠레이는 입술을 깨물곤 바로 검의 연격을 이었다.

   만 번을 휘둘러 나무를 베고, 십만 번을 휘둘러 암석을 벤 검이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굳은살만 봐도 그가 어찌나 검을 단련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펠레이를 이루는 건 분명 평생 쌓아온 훈련이었다.

     

   그러나 그 훈련보다도 더한 것이 존재했다.

     

   ‘상대를 아는 경험.’

     

   누구보다 뒤에 있어야 했기에 누구 보다 창공의 세대를 가장 관찰할 수 있었던 사람.

   그것이 자신이었다.

     

   ‘제 육감.’

     

   크라슈의 몸 위에 둘러진 오러가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그에 따라 펠레이의 검이 날아드는 모든 장소에 크라슈의 검은 이미 자리했다.

     

   허초, 실초, 그런 개념 이전에 그가 지닌 자잘한 버릇부터 시작해 펠레이의 필살기까지.

     

   크라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깨닫지 못한 유일한 재능이었다.

   자신이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남들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기억하는 재능.

     

   분명 그것은 과거에는 쓸모없는 재능이었다.

   남을 잘 관찰하고, 눈치가 빨라 봤자 돌아오는 건 기분 나쁘다는 반응뿐이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재능이 처음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챙! 챙! 챙! 챙! 챙! 챙!

     

   펠레이가 휘두르는 모든 검이 크라슈의 앞에 무로 돌아갔다.

   그 광경을 보고 관객들조차 무심코 넋이 나갔다.

     

   쾌를 다루는 펠레이의 검은 눈을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그 나이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실력에 제국 기사들도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펠레이가 이어가는 모든 연격이 마치, 크라슈의 손아귀에 놀아나기라도 하듯.

     

   그의 공격은 크라슈의 앞에 단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하고 막혔다.

     

   둔검(鈍劍)

     

   분명 상대보다 느리게 움직이지만, 상대보다 먼저 그의 공간에 도달해 있는 검술.

   그 영역에 크라슈는 이 순간 기어코 완전히 발을 들이고 만 것이다.

     

   “닿지 않아.”

   “뭐야, 저게.”

     

   그 모습을 보며 어느새 사람들이 침묵하기 시작했다.

   은연중 펠레이를 응원하던 이들도 차츰차츰 그 목소리를 줄여 나갔다.

     

   그건 압도였다.

   펠레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크라슈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압도.

     

   그 압도감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두 눈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

     

   [ 하하하핫. ]

     

   어느새 하늘로 치솟은 크림슨가든의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 그래, 아이야. ]

     

   지금 상황이 즐겁다는 듯 그녀는 하늘 위 까마귀 날개를 펼쳤다.

     

   [ 그게, 네가 지닌 유일한 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 상대가 가진 것을 전부 빼앗아라. 네 탐욕스러움의 장기를 전부 보여라. ]

     

   둔검은 상대의 공간을 빼앗아 나가는 검술이다.

   상대의 검이 어디로 향한다 한들 그 검이 먼저 공간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둔검은 누구보다 크라슈에게 잘 어울리는 검술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빼앗아야만 위에 설 수 있으니까.

     

   “윽, 흐윽!”

     

   펠레이의 침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공격을 하는 것은 자신이다.

     

   그런데도 그는 점점 더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크라슈의 검이 그가 가진 모든 공간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키가 조금 작은 크라슈였다.

     

   그러나 어째서인가 검이 막히면 막힐 때마다 그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펠레이는 암석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감각을 크라슈에게서 받았다.

     

   이 암석을 자신이 벨 수 있을까.

   그 막막함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펠레이.”

     

   그 순간 크라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펠레이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그의 검은 목 앞에 와있었다.

     

   “하악, 하.”

     

   몰아쉰 숨소리가 펠레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펠레이가 휘둘렀던 검은 고작해야 그의 목에서 1cm 정도 나아가 있을 뿐이었다.

   분명 검을 휘두른 것은 펠레이었는데도 말이다.

     

   펠레이의 볼을 타고 흐른 식은땀이 크라슈의 검에 닿았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강해져.”

     

   그리고 그런 펠레이를 향해 크라슈가 입을 열었다.

     

   “네 희망이 끝내 무너지더라도 불씨를 남겨둘 수 있게.”

     

   의미 모를 말을 남긴 크라슈는 그걸 끝으로 펠레이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촌경(寸勁)

     

   울려 퍼진 두 번의 충격과 함께 펠레이가 침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그것을 끝으로 크라슈가 몸을 돌렸다.

     

   크라슈도 둔검을 사용한 여파로 입안 가득 차오른 숨이 폐부를 마구잡이로 찔렀지만,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전에 없던 환성이 경기장이 터져라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둔검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없었다.

     

   “아, 우승은!”

     

   그리고 뒤늦게 정신 차린 사회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크라드!”

     

   크라슈를 가리킨 그가 승리 선언을 한순간 경기장이 또 한 번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크, 라드!”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설마 촌경을 맞고도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릴 줄은 몰랐다.

     

   “또, 만날 수 있을까?”

     

   과연, 창공의 세대에 괜히 들어 온 게 아니라 이건가.

   악착같이 정신을 유지 중인 그를 보고 크라슈는 말했다.

     

   “그래, 아카데미라면.”

   “그, 렇구나.”

     

   그는 그걸 끝으로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다시 보게 되긴 할 거다.

     

   비록, 이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이겠지만 말이다.

     

   「고마워. 크라슈, 네가 가져가 준 저주 이상으로 내가 노력할게. 세상을 지켜 보일게.」

     

   아주 잠시 예전 일이 떠올랐다.

   세계 침식의 저주에 당하고 돌아온 펠레이의 저주를 훔쳐줬을 때 녀석이 해준 말이었다.

     

   오랜만에 들었던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펠레이는 그로부터 한 달 뒤.

   세계 침식의 주인에게 팔다리가 뜯어 먹히며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크라슈의 주먹이 꽈득 쥐어졌다.

     

   ‘걱정하지 마라. 펠레이.’

     

   그리고 크라슈의 고개가 천천히 올려졌다.

     

   “이번에 지키는 건 나야.”

     

   다른 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 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시그린.’

     

   그 여자의 계획을 망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생각보다 강할지도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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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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