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

안티 룰. 패자한테서 보상을 뜯어오는 다소 호불호 갈리는 시스템.

원래는 시작 전에 미리 서로 판돈을 걸어야 하는데.

내가 몬스터라는 점과, 개인 특성을 응용. 몹에게 죽었을 시의 페널티를 일부 수정하여 여기 부여하였다.

[상대로부터 얻을 보상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택 2)

– 소지한 랜덤 아이템

– 전체 경험치의 10%

– 전체 HP의 10%

– 전체 MP의 10%

– 전체 STR의 10%

– 전체 INT의 10%

– 전체 VIT의 10%

·

·

·

‘경험치는 어차피 직접 (자동) 사냥하면 되는 거고.’

고르는 건 단연 스탯 중에서.

두 가지를 고르는 거고 하니 아이템에도 눈길은 가지만. 직업 제한 장비가 걸릴 확률이 높고,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훔친 거라 사용도 처분도 까다롭다.

인벤토리 창에서 썩어만 가겠지. 사실상 선택지 하나 버리는 거다.

“이거, 왜···안 끝나는 거냐···?”

‘아.’

즐거운 고민에 빠지다 보니 바로 옆에 데릭이 쓰러져 있는 것도 까먹었었다.

구경꾼들도 다 끝났는데 왜 안 아직도 나오나 하는 반응. 더 끌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

‘MP랑 AGI(이동속도)로 선택.’

고민은 했지만서도, 답은 처음부터 거의 정해진 셈.

INT는 내가 안 쓰는 마법사들 전용 스탯이니 배제. 그다음으로 높은 MP와, 그나마 많이 빨아 먹힐 이속을 골랐다.

‘다음 피해자는 전사 계열이었으면 좋겠네.’

소문이 퍼지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 * *

굉장히 알찬 행사였다.

기존 스탯이 워낙 처참했던 터라 STR의 경우엔 세 배 이상으로 뛰었고. 나머지도 골고루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단순히 내가 성장하고 마는 게 아니라, 먼저 밉보인 애들한테서 거두는 방식이라 더 즐겁다. 죽었던 게이머의 영혼이 되살아나는 감각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이 님···!”

“아, 네. 안녕하세요. S급 승급 시험에 참가하려고 하는데요.”

행사가 끝나고. 뒷정리까지 마무리된 다음 날, 참가 신청을 넣기 위해 길드에 방문했다.

S급 모험가라는 직책은 황실을 개인적 용무로 드나들 권리뿐만 아니라, 새로 생긴 던전의 우선권을 비롯한 특혜 꿀단지.

마침 곧이라니, 시기도 좋았다. 빙의 시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추측이 점차 확실시 되어갔다.

“오오···A급으로만 이루어진 3인 파티 전원이 동시에 S급 시험을.”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 않아?”

최근의 행보가 파급력이 워낙 상당하기는 했는지. S급 승급 시험이라는 소재를 차치하고서라도 관심들이 뜨거웠다.

마리아가 웬 수상한 남정네랑 동행한다는 소문이 나돌 때에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ㄴ, 네! 여기, 신청서를 작성해 주시면 되세요.”

반면에 지금 우리를 맞아주는 접수원, 샐리는 영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였다.

모험가가 아닌 그녀는 아카데미 교수를 패든, 시비 건 모험가를 참교육하든 별 관심 없을 테고.

게다가 저번에 내가 사물이 됐음을 알려준 장본인이다 보니 어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마침 표정도 미안함 가득이고.

“아, 아이 님.”

“네?”

“S급 승급 시험은 100년 전과 거의 다르지 않아요···!”

“어어···. 감사, 합니다···?”

안 그래도 확인해 두고 싶은 부분이기는 했는데, 갑자기 뭐지.

설마 내가 옛날 문제만 나오는 퀴즈쇼를 찢어놔서 그런가? 지식이 그 시절에서 멈춘 줄 알고?

잘은 모르겠지만 감사할 따름의 고객 응대 서비스다.

“그보다 샐리 씨. 긴히 나눌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귀 좀···”

“둘이, 너무 붙지 마아···!”

“아해야. 주인은 입구멍이 없어서 귀에 바람도 못 부는 것이니라.”

기세를 몰아 은밀히 부탁 하나 찔러넣으려 했건만. 미리 언질을 해 둘걸, 어그로가 더 끌렸다.

하는 수 없이 마리아를 들어다 앞에 껴안은 채로 귓속말을 진행해야만 했다.

“흐흥.”

“샐리 씨. 이쪽 지부는 시험 예선전 종목 담당 맞죠?”

“네, 맞아요. 하나는 저희가 골라요.”

“마스터랑 같이 참석하러 가시는 것도 샐리 씨 맞고요? 접수원 중에는 최고참급이신 거 같던데.”

“네. 제가 가요.”

역시. 마스터와의 대화 도중 무단 난입을 때리거나, 행사 때 몰래 짱박혀서 쉬는 장소 선정력 보고 일찍이 알아봤다.

그건 절대로 불성실하다고 해서 마냥 나오는 바이브가 아니다. 오랜 시간을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다행이네요. 그럼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넵. 물론이죠···!”

“샐리 씨 차례 때, 아직 8번이 안 골라져 있다면 그걸 골라주실 수 있으실까요?”

“8번···이요? 10번이 아니라요?”

즉시 그러겠다고 답할 예정이었던 샐리는 놀라 되물었다.

예선전 종목 8번은 S급 승급 시험에서 입구컷으로 악명이 자자했으니까.

“네. 8번이요.”

하지만 S급 승급 시험은 그저 다 통과했다고 따내는 자격증 같은 개념이 아니다.

끝까지 살아남았어도 보여준 게 없으면 불합격이고, 앞서 탈락했어도 자질을 증명하면 합격이다.

물론 예선전에서 떨어지면 죽도 밥도 안 될 테니, 쉬운 10번을 원할 거라 예상했겠고. 실제로 많이들 10번이 선정되기를 바라지만.

어차피 통과할 게 확정이라면, 조금이라도 임팩트를 챙겨가는 게 정답일 터다.

“네···8번으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최고참급 접수원이 편의를 봐주니 이토록 편하다.

마리아도 이건 인정이었는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아, 맞다. 아이 님.”

“네?”

“어제부터 몇몇 모험가분들의 스탯이 내려가는 이상 현상을 겪었다고 하는데···”

“이런. 그거참 큰일이네요. 밥줄이랑도 직관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일 텐데.”

“그게, 다들 아이 님이랑 대련을 한 후에 그렇게들 됐다는 증언이···”

“글쎄요. 마리아나 아스트레아랑은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응. 마리아 팔팔해.”

“그놈들이 뭘 잘못 먹은 것 아니더냐?”

“어음···.”

샐리의 추궁이 더 이어지지 않자 당당히 길드 건물을 나섰다. 커다란 문제로 불거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다 나한테 꼽주려다 된통 당한 애들뿐이고. 그에 반해 현재 내 평판은 좋은 편이니까.

앙심을 품었다느니, 지고 나서 추하다느니. 주위에서 알아서 조용히 시켜줄 거다. 집에나 가자.

* * *

이로써 설계는 다 되었다.

예선전은 샐리가 뽑아준 말 많고 탈 많은 종목을 화려하게 격파하며 이목을 집중.

그로 인해 1라운드인 토벌전에서 단체로 견제가 들어온다면 추가 활약상을 보여줄 찬스라서 좋고. 아니라면 프리패스라서 좋다.

그리고 마지막 2라운드의 개인무투전에서는 일행들이 잘 해줄 거라 믿는다. 우려한다손 쳐도 나부터 하는 게 맞으리라.

‘셋 중에 한 명만 승급해도 괜찮아.’

필요한 건 지위 자체가 아니라 따라붙는 부산물들이니까.

나를 믿고 따라주는 일행들이라 시험 참가도 당연하다는 듯 따라줬지만. 더한 부담은 주지 말자.

“드디어 마리아랑, 오빠랑. 단둘이서 알콩달콩···”

“이 몸은 인원수에 쳐주지도 않는 것이더냐?”

“언니는 밖에서 잡초나 뽑아.”

그래서 곧장 스펙업에 달려들기보단 잠시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바로 직전에 행사로 놀았지만, 지금처럼 느긋하게 쉬는 거랑은 또 다르니까.

띵동- 띵동-

“우우···”

“올 사람이 있던가?”

“몰라. 잡상인은 마리아가 못 오게 해놨어.”

“말로 잘 타이른 거지?”

“오빠. 마리아랑 가보자.”

“말로 잘 타이른 거지···?”

이 세계엔 딱히 촉법 소년 같은 제도는 없으니, 마리아를 믿어보기로 하며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음? 저 사람은?’

현관을 나서 정원을 걸으니, 정문의 철창 사이사이로 눈에 익은 분홍색 포니테일이 보였다.

방문 목적은 짐작 가는 바가 없다. 혼자서, 그것도 부수고 들어오지 않는 걸로 보아 책잡으러 온 건 아닌데. 그래서 더욱이 미지수였다.

끼이익-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방문해서 죄송해요. 찾아갈 곳이 마땅찮아서···”

“···누구, 세요?”

내가 아무래도 사람을 착각한 모양이다. 하긴, 그 기사뽕에 취한 애가 사복 차림인 것부터가 이상했다.

아스트레아와 가슴 크기를 견줄 저 나이 또래의 분홍 머리 여자애가 세상 어딘가에 또 있었나 보지.

여동생이나 언니일 가능성도 있다. 편견과 지성을 버린다면 남자 형제일 수도.

“저예요 저, 이즈리. 황실의 4기사단장! 우리 저번에 한 번 봤잖아요.”

“기사단장 사칭은 최대 처형으로까지 이어지는 중죄입니다. 지금이라면 못 들은 척해드릴 테니 솔직하게···”

“저 맞아요! 여기, 단장만 소지 가능한 황실기사단 인장도 있다구요!”

반쯤 진지하게 세운 가설은 확실한 물증에 의해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다만 동시에 내 눈초리는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얘가 걔라고? 나도 다 못 외운 황실 예법을 FM으로 딱딱 지키던 천성 기사?

“저번과는 이미지가 조금···아니 많이 다르시네요.”

“그때는 업무 중이었으니까요···헤헤.”

실실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이즈리를 보자니, 인지부조화가 오다 못해 살짝 어지러워졌다.

아스트레아는 컨셉충도 아니었다. 여기 진짜 컨셉충이 따로 있었다.

아니 이게 공과 사 구분으로 설명이 될 그런 갭이 맞나? 아예 사람이 바뀌었잖아, 사람이.

“···일단,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차마 안 들일 수가 없었다.

쫓아냈다가 기사 이즈리 모드로 돌변하면 도저히 대처할 엄두가 안 났다.

“오랜만이야, 마리아!”

“응. 오랜만.”

그 와중에 마리아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네. 초면인 아스트레아도 마찬가지겠지.

오늘도 묘하게 외로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이 회차가 딱 토요일에 올라온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없어요. 마치 일부러 끼워 맞춘 것도 아닌데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크리스마스에 업로드하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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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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