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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EP.31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은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의외로 싸움을 구경하는 게 항상 재밌을 수는 없다. 싸움이 벌어진 상황이나 환경, 또는 그 대상에 따라 그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학교에서 학생들이 싸움을 일으키면 일단은 관객들이 몰린다.

   당연하게도 갑자기 만들어진 이 경기장의 참가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웅성웅성-

     

   “뭐야? 무슨 일 났어?”

   “싸움난 거 같은데?”

   “누군데? 누가 싸우는데?”

     

   언제부턴가 주변에 나타난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이 들려왔다.

   때마침 수업이 끝났던 것인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새끼가! 운 좋게 한 번 피한 거 가지고!”

     

   그리고 혈기 왕성한 사내라면 이렇게 판이 벌어졌을 때, 결코 꼬리를 먼저 내릴 수는 없다.

   게다가 상대가 나의 공격을 피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압!”

     

   펼쳐진 놈의 손이 나의 안면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무협지에서 소위 말하는 금나수라는 수법.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무공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일반적인 주먹질과는 그 결이 달랐다.

     

   물론 피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스윽.

     

   “이 쥐새끼 같은…!”

     

   이어진 놈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쳤다. 느리지만 꽤 까다로운 방향에서 손이 날아드니 괜히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거… 성장이라는 개념이 이런 거였나?’

     

   2층의 주제는 성장이었다. 게다가 클리어 조건이 고수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으니 무언가를 그들로부터 배우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상황이 다 정리가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

   게다가 임무 조건 중에 정무학관에서 쫓겨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으니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는 건 지양하는 게 좋았다.

     

   덥썩!

     

   나는 반복적으로 날아오는 놈의 손을 가볍게 낚아챘다. 애초에 민첩의 격차 때문인지 공격이 훤히 보였기에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딱히 어렵지 않았다.

     

   “오오? 저걸 잡았어.”

   “1학년으로 보이는데 재주도 좋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색다른 반응을 보이며 우리의 마찰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싸움에 대한 흥미는 금방 식는 듯 보였다.

   조금 전에 들려온 말처럼 고작 1학년끼리 벌어진 다툼은 그들에게 소소한 유희일 뿐, 그렇게 재미난 구경거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익…! 이거 놔!”

     

   손목을 제압당한 녀석이 몸을 꿈틀대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기초적인 근력에서 차이가 나는 탓에 놈이 내 손아귀를 벗어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아…”

     

   가만히 상황에 빠져들고 있자니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학창 시절… 기분이 언짢아진 나는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드득.

     

   “끄악!”

     

   나는 잡은 손목을 잡아당겨 놈의 얼굴을 코앞까지 가져왔다. 당황하는 놈의 동공이 확장되며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린다.

     

   “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대만 맞자.”

     

   나는 비어 있는 왼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체감 상 지금 내가 주먹으로 이놈 아구창을 돌려 버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기에 나는 이번 응징은 ‘따귀’ 선에서 끝내기로 했다.

     

   까놓고 말해 화풀이지만 내 트라우마를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지.

     

   “어금니 깨물어 새꺄.”

     

   내가 입을 열자 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놈과 같이 있었던 다른 두 놈도 자신의 친구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나에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한 듯했다.

   하지만 친구를 구하긴 늦었다.

     

   쐐애애액!

     

   펼쳐진 손바닥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전달된다.

   위협적인 소리와 너무 강하게 잡혀 핏기가 없어진 놈의 왼손…

     

   그리고 나의 손바닥이 놈의 뺨을 가격하기 직전, 나는 내려치던 따귀를 놈의 코앞에서 멈췄다.

     

   후우우웅!

     

   손바닥이 허공에 정지하며 만든 풍압이 녀석의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흩트린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뺨을 내주고 있던 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옆에 있던 두 놈은 검이라도 뽑으려 했던지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 버렸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나는 손을 거둔 다음 놈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정확히는 언제부턴가 이 세 놈의 뒤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녹색 무복의 무인을 향한 것이었지만.

     

   “지금 뭐하고 있었느냐?”

   “우왁!”

     

   나는 나에게 조곤조곤 말하는 녹색 무복의 무인의 말에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두 놈이 기겁을 하며 부랴부랴 포권을 취했다.

   행색으로 보나 이놈들의 행동으로 보나 나름 학관 내에서 지위가 있는 양반인 것 같다.

     

   “유…유화검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의 등장에 주변에 몰려있던 학생들이 포권을 취하고는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를 벗어났다.

     

   가능하면 나도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사건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이라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저건 네가 그런 것이냐?”

     

   유화검이라 불린 남자가 짧게 곁눈질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그곳에는 손목이 벌겋게 멍이 든 채, 인상을 구기고 있는 똘마니가 있었다.

     

   “네.”

   “오호… 같은 학급의 학우를 다치게 하고도 딱히 찔리는 게 없는 얼굴이구나.”

     

   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있었다.

   학관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 괜히 그런 것이 아닌 자신의 힘에 대한 자신감으로 느껴진다.

     

   ‘이 사람 정도면 시스템이 인정하는 고수의 범주일까?’

     

   나는 그런 의문을 가지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방위였기 때문입니다.”

   “정당방위?”

   “네 그렇습니다.”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봤습니다.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이 녀석이었고 저는 굳이 휘말리고 싶지 않아 계속 회피만 했습니다.”

   “그럴 리가. 마지막에 네가 공격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거늘.”

   “애초에 중도에 멈출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말에 유화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덤벼들었을 테니까요. 귀찮잖아요.”

   “뭐? 크하핫!”

     

   내 말은 자연스럽게 놈들을 깎아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나. 저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둘. 나는 굳이 하수들과 손을 섞고 싶지 않아 피하려고 했다.

     

   셋. 저 찐따들이 눈치 없이 계속 달려들어서 교육한다 생각하고 겁만 줬다.

     

   물론 유화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한 놈은 지금쯤 뺨따귀를 얻어맞고 의약당으로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 놈이 순간 뜨끔하며 나를 노려본다. 나의 발언에 자존심이 어지간히 상한 모양.

   하지만 약육강식 강자존이라는 말에 걸맞게 나의 말을 들은 유화검은 나를 혼내기는커녕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어깨에 슬쩍 손을 올렸다.

     

   “너. 이름이 무엇이냐?”

   “김시인입니다.”

   “김시인이라…… 음, 1학년이군. 기억해 두겠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기분이 드는데 혹시 내 수업을 듣느냐?”

     

   그의 말에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건 탑의 2층에 진입했기에 갑작스레 난입한 것일 뿐, 정말 정무학관의 학생으로 재학 중인 것은 아니었으니 대충 대답하기가 껄끄러웠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탑도 나름대로의 배려를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어깨에 올려진 유화검의 손을 슬쩍 바라보자 시스템 창이 하나 떠오르며 나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스승과 제자 – 유화검流化劍』

     

   주제 : 수업

   난이도 : C

     

   설명 : 유화검(맹서한)의 무공은 무당파의 속가 문파인 석림문의 검을 따릅니다. 외유내강外柔內剛. 그의 검은 무당파의 유지를 빌어 균형과 조화를 중시합니다. 그의 검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를 따르십시오.

     

   임무 : 유화검(맹서한)의 수업을 5회 이상 듣기

   제한 : 시간이 겹치는 수업이 있을 시, 수락 불가능한 임무. (단, 정무학관에서 쫓겨날 시 임무 실패로 간주됩니다.)

     

   보상 : 유화검의 인정 / 석림문의 무공

   실패 페널티 : 유화검이 실망합니다.

   —

     

   이런 거구나?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정무학관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나의 기술을 발전시킨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탑의 2층은 진지하게 나를 강하게 만드는 목적 하나만을 보고 임무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닙니다. 유화검 사부님의 수업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다.”

     

   [임무를 거절합니다.]

   [유화검이 아쉬워합니다.]

     

   “으음… 그렇구먼. 혹시나 내 수업에 관심이 있다면 찾아오도록 해. 매일 오시午時(11시~13시)에 진행되는 수업이니. 큰 부담은 없을 것이야.”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나를 마지막으로 한 번 스윽 훑어보고는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학생 셋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쩝…”

     

   나는 유화검이 떠난 자리를 보며 짧게 입맛을 다셨다.

     

   유화검은 강했다. 튜토리얼의 더미보다, 1층의 폰 그레고리나 가짜 성좌보다 훨씬.

   수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충분히 강해질 수 있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거슬리는 게 있었기에 나는 선뜻 그에게 가르침을 청할 수가 없었다.

     

   ‘……C 였지 아마?’

     

   떠오른 임무의 난이도가 C 였다는 사실.

     

   나는 처음 2층에 진입했을 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임무를 받았었다.

   그리고 그 임무의 난이도는 ‘개인 C~A’였고 그 말인 즉, 저 유화검의 가르침은 가장 낮은 단계의 가르침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이 좋은 기회를 그저 그런 사람에게 써먹을 수는 없지.’

     

   강해질 기회였다. 감히 지금까지 나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질 기회.

     

   “이거 시간을 좀 투자해야겠는데?”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게 나무를 벨 8시간이 주어진다면 그중 6시간은 도끼를 가는 데 쓰겠다.」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내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목표 의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어떤 방식으로 갈지, 그리고 나의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를 정확히 알아야 후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참에 하루를 투자해 정무학관 전체를 돌아보기로 했다.

   넓디넓은 학관…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A급 스승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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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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