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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31 – 야외요리의 가치>

     

    동료들이 한 명씩 모자를 쓴 오크노디를 터치했다.

    급해지는 사람은 유이뿐이었다.

     

    “안 돼!”

     

    [응시생 <지젤>이 술래잡기를 탈출했습니다.]

     

    “도, 돈은 얼마든지 더 줄 테니까!”

     

    [응시생 <손오천>이 술래잡기를 탈출했습니다.]

     

    “저만 두고 가지 말아요!”

     

    [응시생 <이사벨>이 술래잡기를 탈출했습니다.]

     

    줄줄이 탈출한 동료들.

    그 옆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NTR호구남 록펠이 내 어깨를 가볍게 터치했다.

     

    [응시생 <록펠>이 술래잡기를 탈출했습니다.]

     

    마비가 풀려 뒤늦게 달려오는 NTR녀 유이.

    그녀를 비웃으며 나 자신을 터치했다.

     

    [응시생 <오크노디>가 술래잡기를 탈출했습니다.]

     

    “기다려!”

    “싫어요~”

     

    [검은모자를 벗었습니다.]

    [검은모자 교관 자격(1회용)을 상실합니다.]

     

    파사삭

    모자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유이의 못된 심보와 합격의 꿈 또한 함께 흩어졌다.

     

    “이건 도로시 씨의 복수에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희한테 피해를 끼친 건 하나도 없었는데. 그런 시골의 촌뜨기 따위, 그냥 눈감고 돈을 받을 수도 있었잖아!”

    “저는요. 이왕 들어가는 아카데미라면 동급생이 못된 아이보다는 착한 아이였으면 좋겠거든요.”

     

    요컨대 정의구현이다.

     

    [배신자 이벤트를 완료했습니다.]

    [유이에게 매수당하지 않았습니다.]

    [보상으로 록펠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대충 그런 보상이겠거니 예상했다.

    그렇지만 19세도 아닌 꼬꼬마 여자아이가 남캐의 호감도 따윌 쌓아서 뭘 하겠나?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다.

    아무리 몸이 여자아이라도 남자와 호감을 쌓고 그렇고 그런 일을 하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도와줘서 고마웠다. 그렇지만 나는…”

    “도로시 씨를 구하려고요?”

     

    록펠이 고개를 숙였다.

     

    “도움 받은 처지에 이런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뻔뻔하게 들리겠지만 은혜갚기는 조금만 더 뒤로 미루어주면…”

    “괜찮아요.”

    “…진심이냐? 고향 숲에서는 <질풍의 맹수> 록웰이라 불리던 내 도움이라면…”

    “자기 여자도 지키지 못했으면서 무슨 헛소리에요? 여기서 아저씨가 제일 약한데.”

    “…그렇군. 친구조차 지키지 못한 내가 강함을 논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알았으면 얼른 가요.”

    “고맙다. 이 은혜를 잊지 않으마.”

     

    도로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가는 길에 다른 응시생들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다.

    록펠이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고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상황.

     

    “쥐방울아. 마음을 너무 크게 쓴 거 아니냐?”

    “괜찮아요. 어차피 용서할지 말지는 도로시가 정하는 건데.”

     

    록펠은 혼자 내버려둬도 알아서 땅 파고 우울해하며 절망에 빠질 인간이다.

    원작에서라면 인과응보는커녕 취집에 성공했을 유이를 록펠을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괴롭게 만들 수 있다면 저 정도는 풀어줄 수 있다.

    록펠 NTR루트를 탄 기분도 들지만 내가 호감을 안 주면 그만이잖아?

     

    ‘나든 도로시든 저런 놈을 받아줄 생각은 없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어차피 저희는 점수도 많잖아요?”

     

    [티켓시계 점수]

    <오크노디 82점>

    <지젤 72점>

    <손오천 72점>

    <이사벨 72점>

     

    합격최소점수 50점은 모두 넘겼다.

    술래잡기의 제약도 모두 탈출했다.

    굳이 잡범들과 씨름할 필요가 없는 상황!

     

    “저녁은 뭐 먹어요?”

    “버섯구이.”

    “버터를 곁들인.”

     

    지젤이 마법배낭에서 버터를 꺼냈다.

    결심했어.

    남자랑 사귄다면 지젤이 1순위다.

     

     

    * *

     

     

    북부대공녀 아이린.

    그녀는 널리고 널린 귀족영애들과는 급이 다르다.

     

    “앗 따가. 힝힝. 바닥에 가시가 너무 따가워.”

    “나무에 기대지도 말아요. 나무껍질도 따가운데다가 옷이 걸려서 찢어지기까지 해요.”

    “엉엉. 상급반 들어가기 싫어. 그냥 기권하고 하급반 가면 안 돼?”

     

    걷고 뛰고 쉬고 숨쉬고.

    그 정도만 했는데도 앓는 소리를 내는 영애들.

    철없는 꼬락서니에 한숨이 앞섰다.

    이러니 여성할당제가 있는 건 아니냐는 음모론이 매해마다 돌아다니지.

    티켓은 가문에서 사주기라도 했나?

    돈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 돈이면 북부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장병들에게 입혀줄 모피와 이 빠진 낡은 검 대신 들려줄 잘빠진 신상 장검이 얼마나 될까.

     

    “아, 아이린 공녀님. 공녀님은 배고프지 않으신가요?”

    “…저는 신경 쓰지 말아요.”

     

    그나마 눈치가 있는 영애 한 명이 망토를 깔고 바위 위에 앉은 그녀를 흉내내듯이 담요를 깔아 근처 바위 위에서 쉬다가 말을 걸어본다.

    먹을 것도 따라서 채집하고 싶은 의지가 엿보이지만 애석하게도 아이린은 이미 식량을 챙겨왔다.

     

    <A형 군용식량>

     

    맛이라고는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작은 크기에 최대한의 열량을 몰아넣는 것에만 목적을 둔 식량의 형태를 지닌 미각파괴병기.

    겉보기에도 맛없는 식량을 침으로 녹였다가 더는 못 견디겠다 싶을 때 와그작와그작 부셔먹는다.

     

    “으아아아! 제, 제 비상식량을 드릴 테니까, 제발 그런 끔찍한 식사는 하지 마세요!”

    “호의만 받아둘게요.”

    “그러지 말고 부디 받아주세요!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표정으로 식사를 드시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괴로운 걸요!”

     

    친절을 가장해서 독살을 시도하려고 드는지는 어떻게 아는가.

    아이린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았다.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노스랜드의 개척민 마을에서 식사대접을 했던 마을사람들의 정체가 더러운 마교의 앞잡이였던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운이 좋아 목숨은 건졌지만 부하의 절반을 잃었던 경험 탓에 그 뒤로는 타인이 건네는 호의는 함부로 믿지 않았다.

    세상에는 맛없는 A형 군용식량이 독이 든 맛있는 잔치요리보다 낫다는 사실을 몸소 깨우친 것이다.

    물론 이 순해빠진 귀족영애들에게 그만한 머리가 있다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탓에 남이 주는 음식은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맛없는 음식도 익숙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아니니까.’

     

    귀족가의 자제들이야 다들 비상식량으로 가문의 이름을 본딴 요리 정도는 가지고 다니겠지만, 그 귀한 걸 벌써 다 먹을 리가 없다.

    최대한 아끼고 싶어서 어설프게 숲에서 주운 이름 모를 풀떼기나 열매나 뜯어먹겠지.

     

    쓴맛이 나는 민들레 잎.

    잎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쐐기풀 잎.

    설사를 유발하는 갈매나무 열매.

    미치도록 떫은 육두구 열매.

     

    하나같이 맛없기로 유명한 녀석들만 쏙쏙 골라모아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모습이 참 황당했다.

    북부에서는 자라지 않는 종들도 혹여나 몰라서 외워두었던 노력이 대견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저 영애들도 이달의 봄패션이나 사교장의 유행하는 춤을 공부할 시간에 맛있는 잎과 열매를 알아보는 법이라도 공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만하면 군용식량도 선방했지.’

     

    그렇게 위안을 삼던 아이린의 콧가에 무시하기 힘든 자극적인 냄새가 맡아졌다.

     

    킁킁

     

    소리나지 않게 냄새를 맡으며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겨보니 굽는 소리가 들렸다.

     

    치이익

     

    버섯이다.

    그것도 고소한 버터 냄새까지 더해진.

     

    ‘이건 반칙이잖아!’

     

    누구는 이렇게 맛없는 군용식량을 먹는데, 누구는 냄새부터 기깔나는 버섯요리를 먹다니!

    억울함에 눈물까지 차오를 것 같았지만 눈에 힘을 주며 애써 꾹 참았다.

    북부대공녀 체면에 음식구걸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린 공녀님…? 혹시 버섯이 드시고 싶으셔서 오신 건가요?”

     

    아이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던 귀족영애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남의 시선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이런 모습을 들키기는 부끄럽다는 생각에 시치미를 떼고 말았다.

     

    “어떤 경쟁자가 식량확보에 성공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했을 뿐이에요.”

    “아아… 역시 공녀님은 대단하시네요.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배가 고파서 쫓아왔을 뿐인데. 타성에 젖은 사람들과 이성적인 공녀님은 정말 비교가 되어요!”

     

    이 아이, 간신의 자질이라도 있는 걸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재주가 있다.

     

    “그럼 공녀님은 안 드셔도 되겠네요!”

    “…무슨 뜻이죠?”

    “저기 저분들은 돈을 주고 버섯구이를 사먹는다고 했거든요.”

    “!!”

    “귀족아가씨도 있는 팀이 돈이 없어서 파는 건 아닐 테고 같은 귀족 응시생들을 배려해서 적선을 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대가를 받는 거겠죠?”

    “그런 일이…”

    “아무튼 공녀님은 드시지 않을 거니까 상관없지만요!”

    “…이거 드세요.”

     

    아이린은 마법배낭에서 A형 비상식량을 하나 더 꺼내어 건네주었다.

     

    “고, 공녀님…! 저를 위해서 먹을 것까지 챙겨주시다니, 정말 감동이에요!”

     

    버섯구이를 먹지 못하게 말로 쐐기를 박아버린 못된 아이에게 같은 고통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아이린이 얼마나 맛없게 비상식량을 먹었는지 옆에서 관찰했던 영애는 비상식량을 개봉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조난당하고 일주일 쯤 굶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그때쯤에는 먹어볼 용기가 나리라.

     

    “어라? 저기, 버섯을 굽던 팀의 아이가 다가오네요.”

     

    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없다면 A형 군용식량의 악명은 들어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어떻게 사람이 그런 끔찍한 걸 먹을 수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작은 키의 최연소 응시생 오크노디.

    금발이 귀여운 아이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덥썩.

     

    그리고 일행으로 보였던 여자와 원숭이수인이 기겁하며 달려와서는 오크노디의 팔과 입을 붙잡고는 급히 끌고 갔다.

     

    “너무해… 애가 기껏 사탕을 주겠다는데…”

    ‘정말 치사하네.’

     

    아이린은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남이 주는 음식은 먹지 않는 주의지만.

    꼭 받았다가 뺏긴 기분에 마음이 언짢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리사 동료가 1티어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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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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