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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렌까에게서 받은 돈봉투는 생각보다 두꺼웠다.

       

       ‘지금 마석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더 많이 준 것 같은데……’

       

       아무튼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동소문 마문으로 향하기 전, 돈봉투도 꿍쳐놓고 가방도 두고갈 겸 하숙집에 먼저 들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쪽마루에 앉아 있던 함서주가 일어나며 나를 맞았다.

       

       “손님, 오셨어요.”

       “응.”

       

       그런데 내가 내 방에 들어가려고 하니, 함서주는 뭔가 쭈뼛거리며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손님, 저어……”

       

       그러더니, 부녀(父女)가 지내는 방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이 아부지가 불르시는데요.”

       “아버지가? 왜?”

       “저두 몰라요……”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시침은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대낮인데. 평소의 함원삼이라면 아직 인력거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 아닌가?

       

       함서주가 가리키는대로 부녀가 지내는 방에 구두를 벗고 올라서니, 아침에 일을 나갔던 함원삼이 벌써 돌아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앉은뱅이 소반을 펴 놓고 김치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학생양반 왔구만! 거 잠깐 앉어보우.”

       

       벌써 어느정도 벌겋게 취기가 든 함원삼이 앉기를 권하자, 나는 무슨 영문인가 하면서도 소반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함원삼은 문가에 서있는 딸 함서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서주 넌 거기 섰지 말구, 잠시 나가서 놀다 와라.”

       “갑자기 어딜요?”

       “으응, 이년! 학생양반이랑 헐 얘기가 있으니깐 잠깐 나가있으래두!”

       “피! 내가 들으면 안될 얘기라두 하나봐……”

       “그래, 이것아! 아비가 말하면은 그저 예, 하구-”

       “머, 그럼 놀다 오지요! 그래 아부지야말루, 일두 안하구 낮부터 술만 자시면 제일인가!……”

       

       결국 함서주가 문을 닫고 나가고 대문 여닫는 소리까지 들리자, 함원삼은 끄응, 하고 한참을 앓는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학생양반, 내가 뭘 하나 주웠는데 말이지! 으응, 그래…… 주웠지! 주웠구 말구……”

       

       투박한 손바닥 안쪽의 허공에서, 사과만한 돌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마석과 비슷하지만, 일반적인 마석이 푸르스름한 빛을 낸다면 이것은 은은하게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레드스톤?’

       

       아니, 저게 왜 여기서 나와?

       

       “그래 일본 놈들이 하는 말루다가는 아까이시, 아까이시 뭐라구 하던데…… 학생양반 놀래는 눈치를 보니깐 이게 뭔지 똑바로 아는가보이, 으응?”

       

       알지. 당연히 알지. 21세기에서도 희귀광물로 익히 알고있던 레드스톤이었다. 그걸 지금은 아까이시(赤石), 그러니까 ‘적석’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물론, 저 정도의 사이즈를 레드스톤을 실물로 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21세기에서 저런 레드스톤은 대부분 거대 기업이나 대형 길드가 소유하고 있었고, 일반 헌터들은 평생 볼 기회도 없는 이계 광물이었는데……

       

       저런 것을 왜 인력거꾼 함원삼이 가지고 있단 말인가?

       

       “아니, 이걸 어디서 났어요?”

       “글쎄, 주웠다니까는……”

       “이계 광물인데 이걸 어디서 주워요? 뭐, 마문 안에서 인력거에 마수 태워주고 삯으로 받았어요?”

       

       내가 꼬치꼬치 캐묻자, 결국 함원삼은 동소문 마문의 금고에서 슬쩍했다고 털어놓고 말았다.

       

       ‘어지럽네.’

       

       이 양반, 옛날에 절도행각 때문에 형무소도 왔다갔다 했다며? 그래서 아직도 형사가 집에 찾아온다며?

       

       “아니, 어쩌자고 이걸 훔쳤어요?”

       “그게, 나두 홀린듯이……”

       

       함원삼도 겸연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하긴, 레드스톤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눈 돌아갈만한 물건이긴 했으니까……

       함원삼은 다시 초조한 듯이 물어왔다.

       

       “그래 아무튼지간에, 학생양반 뵈기에 이놈이 얼마나 하는 물건 같은가? 거 엽사학교 댕기는 양반이면 이런 것두 잘 알 것 아닌가……”

       “잠깐 줘 봐요.”

       

       나는 레드스톤, 아니 적석을 받아들고, 마력 감응을 통해 적석에 새겨진 마력 패턴을 살펴보았다.

       

       ‘으음…… 복잡하네.’

       

       적석에 새겨진 것은 21세기의 마력공학 아티팩트에서 주로 보이는 마력술식 문법과는 전혀 다른, 처음 보는 체계의 술식이었다. 또 그것이 생각보다 복잡했기에 어떤 구조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문법 구조는 달라도 얼핏 보기에도 좌표로 추정되는 패턴이 있는 점이라든가 공간왜곡 계열로 추정되는 패턴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기능적으로 게이트의 열쇠 역할을 한다는 것은 동일해 보였다.

       

       ‘이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마하긴 했는데 정말로 인위적으로 열어놓은 마문이었다니. 나는 함원삼에게 말했다.

       

       “이거, 제가 사죠.”

       “무어? 학생양반이 산다구? 허면, 얼마에……”

       

       나는 렌까가 준 돈봉투를 소반 위에 올려놓았다.

       

       “섭섭하지 않게 넣었어요.”

       

       돈봉투의 두께에 함원삼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뭐, 렌까가 넉넉하게 넣어준 모양이니 적게잡아도 수백 원은 될 터. 어지간한 직장인의 반년치 봉급은 될 거다.

       

       하지만, 어렵게 마수 잡아서 번 돈을 이렇게 쉽게 줘버리면 아깝지 않느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레드스톤, 그러니까 적석은 그렇잖아도 희귀광물인데다가 마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고작 일반 마석 수십 개 어치의 돈으로 이 정도 크기의 레드스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저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1세기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물론 내가 이걸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그러니까 이걸로 나만 들어갈 수 있는 새 마문을 연다든가 하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했다. 마력 패턴을 새로 구축해서 새겨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장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지금 내가 하려는 일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현재 동소문 마문은 이 적석에 의해서 열려있는 상태란 거지.’

       

       한 번 새겨진 마력 패턴을 새로 구축하기는 어렵지만, 부수기는 쉽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이 적석을 통해서 동소문 마문을 붕괴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좋아…….’

       

       

       

       ***

       

       

       

       『흐흐! 꽤나 어울리는군! 시라바야시 녀석……! 조선인이라면 역시 짐꾼이 분수에 맞지!』

       

       이번에도 함원삼의 옷을 빌려입고 동소문 마문에 도착하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무라사끼가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됐고. 빨리 들어가기나 하자고.』

       『흥! 그렇잖아도 그럴 셈이었다……. 곧 패배한 개가 될 녀석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군.』

       

       무라사끼는 마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마문 앞에서 엽사 면허증을 검사하던 동척 직원이 우리를 막아세웠다.

       

       『저, 면허증을……』

       『종로경찰서장 무라사끼의 아들, 무라사끼 겐지다.』

       

       무라사끼는 당당하게 동척 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동척 직원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는 것이다.

       

       『에에, 그래도 곤란합니다. 면허증이 없으시면……』

       『나닛? 에잇, 고라(이놈)!』

       

       짝! 무라사끼는 직원의 뺨을 때리고는 목청을 높이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너, 직책과 성명을 말해라! 동척 직원이면 일번이냐? 감히 종로경찰서장의 아들을 바보로 하는 것이냐? 좋아, 내가 아버지에게 말하면 너 같은 말단은-』

       『이야이야(아뇨아뇨), 들어가십시오!』

       

       무라사끼가 폭력과 막무가내를 쓰며 반 협박을 행하자, 면허증 검사를 하던 직원은 마지못해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생각했다.

        

       ‘입장권 역할로써는 확실히 렌까보다 성능이 떨어지는군.’

       

       아버지의 권위와 폭력을 빌려와서 윽박을 질러야 겨우 통과된다니. 렌까는 얼굴만 비춰도 바로 하이패스였다고.

       

       ‘그냥 렌까 데려올 걸 그랬나.’

       

       

       

       ***

       

       

       

       ‘시라바야시 상.’

       

       노을지는 경성의 하늘 아래, 남산 자락 어딘가의 화식 저택.

       

       정원에 우두커니 선 렌까는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 교복을 채 갈아입지도 않고, 오른쪽 손목을 감싼 소매 끝자락을 어루만지며 어떤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제는 위험한 마수를 찾아 싸워보겠다고 렌까까지 대동해서 나섰던 백철연이었는데, 왜 오늘은 손바닥 뒤집듯 마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 걸까?

       

       정체모를 위험한 마수가 갑자기 두려워진 걸까? 렌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어제 마수를 잡아 벌어들인 돈으로 만족한 것일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렌까는 조용히 읊조렸다.

       

       『오스에.』

       『예.』

       

       어느새 렌까의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소녀, 가쓰라이 오스에.

       

       앞머리를 한쪽으로 내려 얼굴의 반을 가린 그녀는 평범하고 음침한 보통의 소녀 같지만, 사실 렌까가 교내에 심어놓은 인자(忍者) 부대의 일원이었다.

       

       렌까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오늘, 교내에서 시라바야시 상의 행적은?』

       『졸자, 보고드리겠습니다.』

       

       입학 이후에 그녀가 받은 명령은, 교내에서 백철연의 행적을 낱낱이 감시하고 주군인 렌까에게 보고하는 것—. 오스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고, 보고를 들은 렌까는 홱, 몸을 돌려 오스에를 돌아보며 물었다.

       

       『시라바야시 상이, 무라사끼와 승부를?』

       『예. 마문에 들어가서 승부를 보자더군요.』

       『……마문에서?』

       

       백철연과 무라사끼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렌까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 뜬금없이, 그것도 왜 마문에 들어가서 승부를 보려는 것이지?

       

       곰곰히 생각하던 렌까는 백철연의 심산을 깨달았다.

       

       ‘마문에 들어가려는 속셈이야.’

       

       백철연이 시마즈 구미 경성분조 분조장인 자신을 통해 마문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종로경찰서장의 아들인 무라사끼를 통해 마문에 들어가려는 계획인 것이 뻔했다.

       

       ‘하지만, 왜?’

       

       나에게는 마문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해놓고, 어째서 뒤에서는 무라사끼를 통해 마문에 들어가려는 걸까? 왜? 다까히로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처럼, 조선인은 남을 잘 속이는 인종이라서? 걸핏하면 뒤에서 찌르는 민족이라서?

       

       ‘아니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백철연의 행동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터.

       

       하지만 렌까는 백철연의 속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의 목적이 조선인 구역에서 위험한 마수를 찾는 것이라면, 보잘것없는 무라사끼 따위보다는 자신이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아오끼 소좌를 마주치면 어떡할 셈인가? 

       

       아오끼 소좌는 분명 백철연의 얼굴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런 아오끼 소좌가 어제는 렌까의 짐꾼이던 백철연이 오늘은 무라사끼의 짐꾼인 것을 보면, 분명히 수상하게 생각하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또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어제와는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싸움을 막아줄 수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방어만 하는 백철연으로서는 절대로 아오끼 소좌를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렌까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아오끼 소좌가 지나(중국)와 만주 일대에서 수많은 중국인과 조선인을 학살해왔던 것을. 심지어 비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해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각성자 역시 많았다는 것도.

       

       심지어 아오끼 소좌는 그것을 단지 ‘사냥’이라고 말하곤 했다. 렌까가 아오끼 소좌에게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경멸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런 사람이 왜 경성까지 와서 조선인 실종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인을 그토록 혐오하며 조선인 살해를 ‘사냥’이라고 표현하던 아오끼 소좌가, 어째서 조선인을 위해 휴가까지 바쳐가며 조사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렌까는, 문득 그 틈을 비집고 떠오르는 지각(知覺)에,

       

       ‘설마.’

       

       하고 부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살이 붙으며 정황이 맞아떨어지는 그 추측에,

       

       렌까는 입술을 깨물었다.

       

       ‘소좌, 당신이.’

       

       조선인 엽사를 사냥하던 위험한 마수.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백철연의 목숨이 위험했다.

       

       ‘……시라바야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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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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