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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 아…… 이, 이게 뭔가요?! ]

       

        해설자의 당황스러운 음색이 스타디움 내를 울렸다.

       

        10전 10승. 내가 D등급, 혹은 C등급 능력자를 상대하며 쌓은 전적이다.

       

        [ 또다시 <현상거절> 임혜성이 간단히 승리를 얻었습니다! ]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능력을 개방하고 간단한 진언을 읊는 것만으로 모든 상대가 무력화된 까닭이다.

       

        [ 언뜻 싱거운 결투였으나, 그가 ‘본선’ 진출 티켓을 확보한 것은 확실합니다! ]

       

        해설자의 열띤 목소리를 들으며 결투장에서 내려왔다.

       

        첫날에 비교하면 사람도 제법 많아졌다. 이제 나를 제외하면 D등급 중에서 생존한 능력자가 없는 덕분일 수도 있겠다.

       

        “이래서 언제 본선에 나가냐.”

       

        간단한 짐을 챙긴 나는 경기장 바깥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이따금씩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오!’ 같은 감탄사를 뱉었지만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보통 대화란 것이 물꼬를 한번 트면 끝도 없는 법이니까.

       

        거기다.

       

        스윽.

       

        핸드폰을 꺼낸 나는 무의식적으로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히어로 아카데미’ 소속 학생들만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만큼, 저마다 다른 시야로 이번 승천전을 바라보는 것이 퍽 재밌게 느껴졌다.

       

        [님들 이번 예선 봄?(41)]

       

        무표정한 얼굴로 게시글과 댓글을 읽는데, 한 게시글이 눈에 밟혔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글 제목이다. 헌데 이상한 것이 댓글이 무려 41개나 달려있었다.

       

        “누가 또 싸우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다. 물론 인터넷 상에서는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법이지만, 그래도 꽤나 재밌다고.

       

       

        –

       

        님들 이번 예선 봄?

       

       

        이번 승천전 예선 중계 보는데 이상한 놈 발견함.

        <현상거절>인가 뭔가. 걔 냄새 좀 나는데? 상대 매수한 거 아님???

       

        –

       

        “…….”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온 게시글이 나를 저격하는 글일 확률이 몇이나 될까?

       

        참 슬픈 일이다. 

       

        D등급의 능력자가 예선전에서 전승우승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온갖 분탕을 몰고 올 것이라는 사실은 예상하긴 했다만…….

       

        “음?”

       

        허탈하게 웃으며 핸드폰 화면을 죽 내렸다. 그래, 애당초 이 게시글을 열람한 이유도 글의 내용보다는 댓글이 궁금해서였다.

       

        –

        오직신앙 : 매수는 아닐 것입니다. 그는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강력한 능력자입니다.

       

        ㅇㅇ(118.235) : 뭔 개소리? 나 S급 히어로인데 걍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름인데?

       

        오직신앙 : 본래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무언가를 지적하기 이전에 먼저 나무가 아닌 숲이 보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ㅇㅇ(118.235) : 지랄.

        –

       

        “엄청 싸우네.”

       

        예상대로 댓글 창은 소위 말하는 곱창이 나 있었다.

       

        대강 보아도 주제는 간단했다. 한명은 열심히 나를 변호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온갖 모욕적인 언사로 상대방을 긁어대고 있었다.

       

        –

        ㅇㅇ(106.102) : 그냥 쟤랑 대화하지 마세요. 저 사람 히어로즈 오브 아카데미 게시판에서도 분탕으로 밴 먹음.

       

        오직신앙 :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ㅇㅇ(106.102) : 아니 당신 말고.

        –

       

        이어지는 내용도 위와 흡사했다.

       

        얼굴 없는 인터넷 세계의 누군가가 제법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던 모양인지, 다른 회원들이 줄기차게 한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

       

        “흠.”

       

        애당초 커뮤니티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뒤로가기 버튼을 눌렀다. 나를 두고 싸운다는 게 영 민망하긴 했지만, 거기서 내 정체를 밝힐 수도 없는 일이니까.

       

        [예선전 그 사람 정체 알아냈다!]

       

        “……?”

       

        예선전 그 사람? 설마 나를 말하는 건가?

       

        거리를 걷던 다리를 멈췄다. 이어서 손가락을 들어 게시글을 누르니.

       

        –

       

        예선전 그 사람 정체 알아냈다!

       

       

        <비를 내리는> 송수아 남친이래!!!(이모티콘)

       

        –

       

        “이건 뭔.”

       

        이게 그 가짜뉴스가 유포되는 과정인가?

       

        당연히 익명 커뮤니티인 만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억측 아닌가?

       

        “……?”

       

        그리 생각하면서 화면을 죽 내리는데, 댓글창에 아까 보았던 익숙한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

        오직신앙 : 지랄하지 마십시오.

       

        ㅇㅇ(211.234) : 이거 꾸준글임.

        –

       

        욕을 하면서도 존댓말이라. 그거 참 예의바른 녀석이네. 아니면 한국말이 서투른 녀석인가? 십만 명에 달하는 아카데미 학생 중에서 외국인도 제법 많으니까.

       

        “나랑 상관은 없겠지.”

       

        핸드폰 화면을 잠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오늘따라 뭔가 피곤한 느낌이다. 비가 오려나?

       

        “맥주나 마셔야겠다.”

       

        본선의 시작은 내일. 예선부터 뚫고 올라온 사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한 이들이 먼저 출전하니, 자연히 내 본선 첫 출전은 이틀 뒤로 밀려났다.

       

        행사를 맞이한 덕에 학교도 모든 학생들에게 ‘공가’ 처리를 했다. 그러니 이럴때 놀아야겠지.

       

        * * *

       

        “아우우.”

       

        호화로운 Z급 히어로, 랭커의 독채.

       

        그 커다란 집 중에서도 안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던 송수아가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최근, 그녀에겐 제법 신선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떻게 이렇게 심한 말을 하는 거야?!”

       

        그 신선한 변화란 간단했다. 

       

        스마트폰.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계, 그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소문난 ‘인터넷’이라는 걸 접속한 그녀에게 신선한 재미가 찾아온 것이다.

       

        인터넷 중에서도 송수아가 택한 사이트는 ‘히어로타임’ 이었다. 

       

        듣기로는 온갖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인 덕분에, 어마어마한 정보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된 곳이라고.

       

        오늘도 평소처럼, 매일매일 써온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 오직신앙 : 지랄하지 마십시오. ]

       

        그녀의 마음을 심하게 긁는 존재가 등장했다. 본 적 없는 닉네임이 그녀의 화를 이리 돋굴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야. 이건 인내의 싸움이야.”

       

        배시시 웃은 송수아는 손가락을 열심히 놀렸다.

       

        그녀가 이런, 무의미한 작업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몇 주가 지났다.

       

        ‘찌라시부터 시작하는 연애계획.’

       

        그게 송수아가 직접 붙인 계획의 이름이었다. 친구에서 연인, 연인에서 부부가 되는 건 아주 예전부터 존재하던 말이 아닌가?

       

        그렇기에.

       

        수많은 비난 앞에서도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가끔씩 ‘혜성아 글 지워라……’ 라던가, ‘<비를 내리는>본인에게 고소 자료 첨부하겠습니다.’ 같은 댓글이 달리면 저도 모르게 움찔 했으나, 그리 간단히 포기할만큼 나약한 그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헤헤.”

       

        커다란 침대 위에서 몇바퀴 뒹군 송수아가 웃음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토도독 눌렀다.

       

        –

        <현상거절>이 송수아를 좋아하는 이유.txt

       

        몸매가 이뻐서.

        –

       

        본인이 알았다면 깜짝 놀랄 이야기를 작성한다. 곧장 ‘미친놈’, ‘혜성아 넌 나가라’ 같은 댓글이 달리지만…….

       

        어차피 상관 없지 않나? 사람들이 말하는 본인… 송수아는 그를 고소할 생각따위 전혀 없는 걸?

       

        * * *

       

        ‘승천전’은 큰 행사이다. 

       

        자연히 수많은 기업들의 스폰이 함께하며, 그중에서 가장 큰 금액을 지원하는 곳은 자연히 세계를 주름잡는 ‘일성’ 그룹이었다.

       

        “아버지!”

        “오오! 우리 돼지야!”

       

        그 일성의 금지옥엽, <재창조>의 한유리가 한 중년 남성에게 달려가 안겼다.

       

        일성 그룹 회장의 친손녀인 그녀가 ‘아버지’라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성의 부회장이자, 한유리의 친아버지. 한석구다.

       

        “돼, 돼지라니! 그 별명은 이제 그만 불러달라고 했잖아요!”

        “허허! 우리 이쁜 돼지를 돼지라고 부르지 못하면, 뭐라고 부를까?”

        “저, 저는 아카데미 안에서는 ‘회장님’이라고 불린다고요. 그런 별명을 다른사람이 듣기라도 하면……!”

       

        만약 그런 미래가 벌어진다면 아주 두렵다는 듯, 한유리가 몸서리쳤다.

       

        그런 딸의 반응에 한석구는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대견하구나. 역시 내 딸이라니까.”

        “그보다, 오늘은 집에서 아버지만 오시는 거 맞죠?”

        “그래. 네 엄마가 요즘따라 엄청 바쁘더구나. 아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고.”

       

        한석구의 목소리에 한유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을 볼 수 없는 게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학생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격무에 시달리는 만큼, 그녀의 가족들도 저마다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테니까.

       

        “우리 사랑하는 딸아.”

        “……네?”

        “궁금한게 있구나.”

       

        한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한 것?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다. 일성 그룹의 수장인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 그들이 알고싶다면 세상 모든 정보가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게… 뭔데요?”

       

        천진난만한 얼굴의 한유리가 한석구에게 물었다.

       

        “너 남자 생겼니?”

        “……!”

       

        한유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걸 어떻게? 그 의문이 피어났다.

       

        제아무리 천하의 ‘일성’의 황태자라 할지라도, 현실적인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한유리가 마음 속에 임혜성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를 뒤집어 봐도 채 세 사람이 안될 텐데!

       

        “오, 그냥 농담을 던진 건데,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는구나.”

        “……아, 아니요? 전혀요? 진짠데요?”

       

        한유리는 몰랐다. 그녀의 반응이, 아버지의 의심에 확신을 더하고 있다는 걸.

       

        공항에서 벗어난 두 부녀는 호텔로 이동했다.

       

        히어로 아카데미 내에 몇 없는 5성급 호텔인 그곳은 역시나 ‘일성’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궁금하구나.”

       

        따듯하고 정갈한 식사를 앞에 두고, 한석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가요?”

        “허허! 그리 긴장하진 마라. 네 아빠가 궁금하다고 한 건 다른 일이니까.”

        “다른 일이요?”

        “그래. 재미있는 정보를 입수했다. <현상거절>이라는 학생. 그에게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고, 우리 그룹으로 스카웃하고 싶어.”

        “……!”

       

        목적이 확실한 아버지의 목소리에 한유리의 입이 벌어졌다.

       

        오늘 아버지를 만나고나서 하루종일 놀라는 것 같다. 그의 가족이 이끄는 그룹 일성…… 거기에 임혜성을 데려가고 싶다고?

       

        “좋은…… 생각인데요, 문제는 그 사람이 워낙 독특한 사람이라.”

        “으음? 가진 능력에 비해 아카데미에서 저평가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 제안을 거부할 것 같아?”

        “……적어도 제가 볼 때는요. 그 사람은 돈과 명예, 권력. 그 어느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허! 오히려 더 마음에 드는군!”

       

        그녀의 아버지와 달리 한유리는 임혜성을 잘 안다.

       

        매사에 무뚝뚝하고, 정감 없는 그 남자는 애당초 ‘돈’따위에 연연할 그릇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랭커에 비견되는 힘을 갖고서 D등급에 머무르는 거겠지.

       

        하지만.

       

        슬픈 사실은 그 한유리조차 아직 임혜성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D등급의 기숙사. 컴퓨터를 켠 채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임혜성이 귀를 후볐다.

       

        “젠장. 돈이 없으니까 귀까지 간지럽네.”

       

        누군가가 들었으면 자신의 카드를 슥 내밀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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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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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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