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

       게임 본편에서 캐릭터들의 모든 일상을 전부 세세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물론 게임에 그 일상 파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업을 듣거나, 공부하러 도서실에 가거나, 교내를 돌아다니며 다른 학생한테 말을 걸거나 하는 부분도 있긴 했으니까. 퀘스트 중에서는 교사의 심부름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캐릭터한테 어떻게 말을 걸었는지에 따라 인연 게이지가 쌓이고, 인연 게이지에 따라서 특정한 시기에 그 캐릭터와 특정한 이벤트를 겪을 수 있다. 데이트한다거나,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친다거나…… 마지막에는 키스하기도 하고.

        

       1회차 기준으로는 ‘시간이 한정되어있다’라는 설정으로 모두에게 말을 거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2회차에서는 그런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말을 걸 수 있게 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그냥 모든 히로인과 남자 캐릭터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남자 캐릭터를 선택한다고 뭐 BL루트가 나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우정엔딩 비슷하게 끝난다. 물론 그걸로 열심히 착즙하는 특정 플레이어들도 있긴 했지만.

        

       사실 스토리적인 엔딩 자체는 정해져 있기에, 그 전에 누군가와 연인이 되거나 절친이 되는 이벤트를 겪는 수준으로만 묘사되기에, 그렇게까지 중요한 내용이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히로인과 연애할 기회를 준 게임사 차원의 서비스 비슷한 거라고 하면 될까.

        

       후속작에서는 전작과 데이터를 연동하면 전작의 히로인과 사귀고 있었다는 설정으로 스토리가 이어지게 되고, 세이브 파일이 없다면 시작 시점에서 누구와 이어졌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사실 게임 스토리가 연애와 크게 연관이 없기에 누굴 선택해도 스토리는 비슷하게 흘러가게 된다. 스토리 진행 와중에 연애도 흐지부지 잊혀서 결국 마지막에는 다른 캐릭터로 갈아탈 수도 있게 되고.

        

       하지만…… 스토리상 연애를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결국 게임적인 허용일 뿐이고, 여기서는 다를 거다. 애초에 연애하다가 그만둔다고 그렇게 평범하게 대화하는 친구로 확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 캐릭터끼리 마찰이 없는 것도 이상하니까.

        

       거기다가 등장 인물 간의 관계도 내 존재 하나 때문에 확 바뀌어버렸고.

        

       ……이거 원작대로 굴러가긴 할까? 사실 이미 다 틀어진 거 아냐? 원작 내용 알고 있는 게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실비아.”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옆자리의 앨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네.”

        

       “학생회는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대답하자마자 앨리스는 굳이 기다리지 않고 곧장 그렇게 물어왔다.

        

       ……맞네.

        

       학생회도 있었지.

        

       앨리스는 원작에서도 학생회였으니까.

        

       학생회는 백 퍼센트 학생회장의 추천으로 뽑힌다. 순수하게 투표로 뽑히는 건 오로지 학생회장 한 명뿐. 당연히 학생회장은 인망이 좋거나 인맥이 넓거나, 둘 다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평민이 학생회장이 되는 것은 무리다. 당연히 학생회에도 평민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나라의 정치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평민 대부분은 일하느라 투표하러 갈 시간도 없으니까. 가도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황제가 행정부 수반이니 임명되는 장관들도 대부분 귀족이고, 의회에 출마하고 선거운동을 할 자금과 시간이 있는 것도 다 귀족들이다. 귀족의 수가 평민보다 압도적으로 적지만 투표율은 귀족이 압도적이고. 그런 정치판은 그 자식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에서도 유효했다.

        

       평민 학생들이 평민을 학생회장으로 올리려고 해도…… 여기 올 정도의 평민 집안이면 높은 확률로 귀족과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큰 애들이니까. ‘애초에’ 시험 보기 전에 한 번, 시험 본 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걸러져 들어오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학생회였기에, 일단 높은 집안의 아이가 입학하면 학생회장이 학생회 임원으로 추천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다고 관례만으로 예의상 추천하는 것도 아니다. 하겠다고 하면 진짜로 시켜준다. 하기 싫다고 하는 사람 억지로 시키지도 않지만.

        

       앨리스라면 원작뿐만이 아니라 여기서도 똑같이 추천받게 될 것이다.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1교시 수업 교재를 꺼내며 그렇게 대답했다.

        

       원작에서는 학생회는 들어갈 수도 있고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들어갔을 때 앨리스의 인연 게이지에 추가치가 들어가는 소소한 이득이 있었고, 학생회에서만 겪게 되는 이벤트나 아이템도 있고, 무엇보다 인물 카드 작성을 하려면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게다가 학생회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히든 퀘스트 취급이라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실버 메달을 따려면 학생회 가입은 필수. 게다가 앨리스의 호감도를 추가로 올린다는 소소한 이득도, 초회차에선 다른 캐릭터 호감도를 올릴 행동력이 추가로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퀘스트 보상도 초회차에서는 그럭저럭 도움이 되는 편이고.

        

       바꿔 말하자면 학생회 가입 시 얻게 되는 것은 그냥 일상 파트에 소소한 이벤트가 추가되고, 학생회실이라는 장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뿐이라서 2회차에서는 그냥 안 들어가게 된다. 행동력이 무한인 2회차에선 메인 이벤트 사이사이에 있는 인연 이벤트만으로도 앨리스 인연 게이지를 끝까지 채우는 것도 가능했고.

        

       그리고 나는 여기서까지 플래티넘 메달을 딸 이유가 없었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럼 일단 네 이름도 같이 넣는다?”

        

       “…….”

        

       하지만 앨리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앨리스를 빤히 바라보자, 앨리스는 뭘 그러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뭐야, 안 하려고?”

        

       앨리스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사실 그다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설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 아카데미의 학생회는 귀족 사회가 얼마나 강력한 기득권인지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었으니까. 게임 내적으로나, 게임 외적으로나 말이다.

        

       레오가 가입할 때도 남작가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무시를 당하는 이벤트가 종종 있었다. 물론 앨리스가 ‘황제가 직접 하사한 귀족 작위에 감히?’라는 이유를 들어 애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물론 황녀인 내가 가서 무시당할 일은 없다. 종종 판타지 배경의 소설에서 ‘왕가보다 더 오래된 공작 가문’ 같은 게 나오기도 하지만, 이 게임을 기준으로 제국 건국은 사실상 ‘창세’ 시절이나 다름없는 신화시대의 이야기였으니까. 적어도 이 세계에서 팬그리폰이라는 이름보다 더 오래된 이름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별로 가고 싶은 곳은 아닌데.

        

       단순 퀘스트로 표현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할 일이 엄청 많은 곳이니까.

        

       게다가 안에는 진짜 높은 귀족가 자제들 뿐이라 표정 연기하기도 힘들 것 같고.

        

       “……싫어?”

        

       내가 그냥 빤히 바라보고만 있자, 앨리스가 조금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원작에서야 어느 순간 학생회에 포함되어있던 앨리스였지만, 하긴, 그 원작에서조차 앨리스가 학생회에 가서 가입하게 되는 순간 자체는 존재했겠지.

        

       그리고 앨리스는 평소에 친교를 다져 둔 귀족가 친구도 없었고.

        

       뭐, 상관없으려나.

        

       정 안 되겠으면 그냥 시간을 돌려버리지, 뭐.

        

       “알겠습니다. 방과 후에 함께 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역시 그렇게 나왔어야지. 어차피 너한테도 초대장이 갈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초대장이야 오겠지. 어쩌면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 내 기숙사 방 앞으로.

        

       “실비아!”

        

       그리고 내가 그 생각을 앨리스에게 말해주기도 전에,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안녕?”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클레어였다.

        

       “…….”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사실 나는 평소에 인사에 굉장히 인색한 편이었다. 내가 평소에 인사하는 상대는 황제 정도뿐이었고, 그나마도 ‘기체후 일향 만강 하셨습니까’ 아니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처럼 인간미 없는 인사들이었으니까.

        

       컨셉도 컨셉이었고, 사실 나는 굳이 인사를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제이든이나 루카스가 바로 옆에서 소란을 피워도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이 내 캐릭터였고, 사실 황제의 아이들, 그리고 앨리스는 내가 딱히 아침 인사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옆에서 알아서 말을 걸고 떠드는 일이 많았으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첫인사도 굳이 인사로 안 하고 내 이름을 소개하는 것을 대신했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인사를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어색했다. 차라리 옆에 아무도 없으면 또 몰라. 평소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 보고 있는 앨리스가 바로 옆에 있으니 어떻게 얼버무리기도 어렵다.

        

       “아, 안녕……?”

        

       그래도 내가 했던 말을 지키겠다는 듯 언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클레어가 기특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인사를 여러 번 해도 소용없을 거야.”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앨리스가 턱을 괴고 앉은 채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실비아는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거든. 본인이 먼저 하는 일도 잘 없고.”

        

       나이스, 앨리스.

        

       그렇다. 내가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는 쿨……뷰티 캐릭터다. 음, 확실히 내가 ‘데레’할 일은 없으니 쿨데레보다는 쿨뷰티가 맞겠다.

        

       그런 캐릭터가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는 건 이후에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뒤.

        

       사실 이미 만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고, 나름대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상대는 그걸 모르는 처지다. 그러니 당장은 이 캐릭터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언젠가 뭐 그런 날이 올지 모르지.

        

       최종전을 끝내고 나한테 말을 거는 애들한테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말을 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누가 보면 에●게리온이냐고 물어볼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쪽에 그 애니메이션이 있지도 않잖아?

        

       “그, 그랬던 거였어?”

        

       내가 자기를 미워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지, 앨리스의 말을 들은 클레어는 숨을 푹 내쉬었다.

        

       “어머, 그러면 곤란하죠.”

        

       그리고 그런 대화 사이에 또 끼어드는 한 사람.

        

       굳이 목소리로 듣지 않고 말투만 글로 옮겨 써놔도 누구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이 사람은 바로 샤를로트였다.

        

       끝부분이 살짝 말려 올라간 아름다운 백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앨리스 옆자리에 앉는 샤를로트의 동작은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것 같았다.

        

       일본 서브컬쳐에서 자주 나오는 서류 가방 같은 학생용 가방을 책상 옆에 걸면서, 샤를로트가 말했다.

        

       “황족 정도 되는 분이시라면 인사성은 밝은 편이 좋답니다. 설령 작위가 낮은 사람이라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분이시니까요.”

        

       “안녕, 샬럿.”

        

       “평안하셨는지요, 알리스.”

        

       그런 샬럿에게 앨리스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샤를로트 역시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사실 앨리스는 1편…… 그러니까 시리즈 전체로는 1편이 아니지만, 이 아제르나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의 1편 초중반까지는 언제나 딱딱하게 긴장한 표정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자신감을 열심히 불어넣어 준 것이 꽤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자기 아빠 앞에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던 나에게도 똑같은 태도를 보이는 샤를로트도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그리고, 맞아, 실비아.”

        

       샤를로트에게 인사한 뒤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앨리스가 말했다.

        

       “아버지도 먼저 인사하실 때가 있잖아. 특히 옛 왕족이었던 공작가를 만날 때라던가.”

        

       그래도 고개는 숙이지 않지만 말이지.

        

       게다가 그 공작들은 죄다 숙청 대기자 명단에 올라가 있다. 아무리 왕국들이 제국 일부가 된 지 몇백 년이 지났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은 특유의 강렬한 지역색을 가지고 있으니까. 심지어 제도 사람들이나 북부 사람들한테 강렬한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저는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존댓말을 쓴다고 다 예의 차린 게 아니라고…….”

        

       나의 대답에 앨리스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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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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