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

       파스텔은 하수도를 달렸다.

         

       후다다닥.

         

       기름 랜턴이 달그락대고 광원이 출렁였다.

         

       거대쥐 떼가 해일처럼 뒤따랐다.

         

       소란이 하수도를 채웠다.

         

       으아아.

         

       “붙잡히면 어떻게 돼요?!”

       『칼질 몇 번 하다가 몰려드는 질량에 밀려 엎어질 테지. 그리고 산 채로 뜯어 먹힐 거다.』

       “으아아!”

         

       공포! 충격!

         

       “찍찍이 친구들! 이러지 마아! 우리 친구잖아!”

       『쟤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헉.

         

       낯가림이 심한 애들이구나!

         

       완전 역상성.

         

       저런 애들은 조심스러운 관찰과 접근이 필요한데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갔나 봐.

         

       나의 실수, 헤헷.

         

       『운명 나침반을 살펴봐라. 유산이 있는 방향은 어디지?』

         

       헛, 맞아.

         

       파스텔은 들고 다니던 운명 나침반을 살폈다. 나침이 뒷방향을 가리켰다.

         

       이잉.

         

       달리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짐승 눈동자가 무수히 몰려왔다.

         

       으잉.

         

       “악마님! 악마님! 찍찍이 친구들과 화해해야 할 거 같은데요! 미안 친구들! 우리 화해하자!”

         

       별 효과가 없었다.

         

       완전 낯가림이 심한 듯!

         

       『하수도를 빙 돌아서 갈 수밖에 없겠군.』

       “그러게요!”

         

       파스텔은 그대로 계속 달렸다. 통로를 지나치고 교차로에서 돌고 다시 통로를 지나치며 각양각색의 물비린내를 맡았다.

         

       쥐 떼는 지치지도 않고 쫓아왔다.

         

       “친구들! 집착이 심하지 않아?! 아무리 나라도 이건 곤란해!”

         

       으아아.

         

       이러다가 고백이라도 하는 거 아니야? 찍찍이 친구들 정말 좋아하지만 집착과 고백은 곤란해! 우리 친구로만 지내자!

         

       어디선가 뱀 소리가 들렸다. 정면 어둠에 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오잉.

         

       어둠을 뚫고 뱀이 달려들었다. 길이는 몇 미터에 굵기는 머리만 했다.

         

       거대뱀이 솟구쳐 파스텔을 노렸다. 주둥이가 벌어지고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송곳니를 타고 침방울이 흘렀다.

         

       뱀 친구?

         

       파스텔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슬쩍 몸을 틀었다. 탁월한 반사 신경과 운동 신경이 뱀의 공격을 피해냈다.

         

       거대뱀은 그대로 스쳐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몰려오는 쥐 떼에 추락했다. 굶주린 짐승들이 순식간에 거대뱀을 뒤덮었다. 살점이 갈려 나가고 핏물이 연달아 튀었다. 저항하던 뱀이 찰나에 고깃조각으로 변해 사라졌다.

         

       으아아!

         

       “뱀 친구우!”

         

       방금 사귄 뱀 친구가 산 채로 뜯겨 죽었어!

         

       슬쩍 돌아본 파스텔은 소름이 돋았다.

         

       “악마님 말이 맞았어요! 저 친구들은 자연재해예요!”

         

       쥐 떼는 뱀을 먹는 앞쪽 무리를 뒤쪽 무리가 앞지르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바로 쫓아왔다.

         

       으아아.

         

       파스텔은 질주했다.

         

       뱀 영역에 들어왔는지 뱀 소리가 다시 들렸다.

         

       정면 어둠에서 노란 눈동자가 여러 개 등장했다.

         

       오잉.

         

       뱀 친구들?

         

       날 도와주러 온 거야?

         

       거대뱀들이 솟구쳤다. 동시다발적으로 파스텔을 노리며 주둥이가 벌어졌다.

         

       소녀는 양손에 든 나침반과 랜턴을 천장으로 던졌다. 빈손을 만들고 주먹을 쥐었다.

         

       주먹이 정면을 연달아 가격했다. 타격음이 울렸다. 뱀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잔해가 흩날렸다.

         

       양손이 추락하는 나침반과 랜턴을 잡아챘다.

         

       직후 거대뱀이 뒤늦게 덮쳐왔다.

         

       몸을 회전했다. 분홍 머리가 휘날리고 돌려차기가 뱀을 가격했다. 타격음이 울렸다. 뱀이 날아가 벽에 충돌했다. 충격이 일고 살점이 터졌다.

         

       파스텔은 숨을 내쉬고 다시 달렸다. 남겨진 뱀 사체를 쥐 떼가 덮쳤다. 핏물이 튀었다.

         

       미안, 뱀 친구들!

         

       너희 희생은 꼭 기억할게!

         

       통로를 한참 달리고 걸음을 멈췄다. 먹느라 바쁜지 쥐 떼가 더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벽에 손을 짚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으에에.

         

       “죽는 줄 알았다아.”

       『잘 도망쳤다.』

       “어우, 약한 친구들이 뭉치니 완전 무섭네요.”

         

       다시 걸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원래 자연재해급의 생물을 만나면 도망치는 게 맞다. 저 정도면 적은 개체수지만 좁은 통로에선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지.』

         

       거대쥐 수백 마리가 적은 개체수?

         

       “그렇게 많으면 굶어 죽지 않아요? 방금 걔네도 뭘 먹고 사는 거지?”

         

       여기 하수도에 먹을 게 많나?

         

       우리 친구들 이끼 먹고 살아?

         

       『반대로 생각해 봐라. 넌 뭘 먹고 살지?』

         

       악마님의 요리라고 대답하면 안 될 기분.

         

       “마석이요?”

       『마찬가지다. 대기에 퍼진 마기를 먹고 살지. 의외로 쏠쏠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나머지는 평범하게 먹이로 보충하는 식이다.』

         

       우왕.

         

       파스텔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저도 대기 냠냠하고 살래요!”

         

       찍찍이 친구를 본받겠어!

         

       『한번 해봐라.』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푸우~.”

         

       대기 에너지를 냠냠한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오오!”

         

       배가! 배가!

         

       불러지는 기분이……!

         

       안 드넹.

         

       그냥 숨만 쉰 기분.

         

       파스텔은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나만 못해.

         

       『자연스럽게 안 되면 그냥 넌 안 되는 거다. 되는 게 이상한 거니 실망하지 마라.』

       “찍찍이는 다 하는 숨쉬기도 못 하다니. 전 이대로 찍찍이들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걸까요?”

       『걔네도 너와 친구 할 생각은 없을 거다.』

         

       허억.

         

       너무한 소리.

         

       『그보다 방향을 살펴봐라.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파스텔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운명 나침반을 살펴봤다. 나침이 걷는 정면 방향을 가리켰다.

         

       “친구 없는 칙칙한 악마님. 나침 친구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답하네요.”

         

       은근한 핀잔을 악마가 무시했다.

         

       『유적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군. 지난번엔 마법 퀴즈와 화살 함정에 골렘이었지. 첫 유적답게 초심자용이었다.』

       “그래요? 골렘은 초심자가 잡을 수준은 아니었잖아요.”

         

       대저택에서 생존한 경험이 아니었으면 으아아! 퍽! 꽥! 했을 거다.

         

       『골렘은 잡으라고 있던 게 아니야. 아마 다른 의도가 있었을 거다. 못 이길 강적이면 보물만 훔치고 도망치라는 가르침이라거나. 느린 골렘을 따돌려서 상자만 챙기는 건 쉬웠을 테니.』

       “하긴 악마님도 검술을 가르쳐주실 때 마지막 파트에선 도주의 미학을 알려주셨죠.”

       『잘 싸우는 것보다 잘 도망치는 게 중요하다. 음유시인이 듣기 좋게 윤색한 영웅담은 실제 영웅의 일대기와는 전혀 달라. 그들도 필요할 땐 도망쳤으니 살아남아 영웅이 된 거다.』

       “오.”

         

       파스텔은 괜히 뿌듯해졌다. 스스로를 툭툭 쳤다.

         

       “강약약강의 표본! 강자 앞에선 언제나 도망칠 준비가 돼 있어요!”

         

       진짜임.

         

       호르몬 친구도 찬성한 사안.

         

       악마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그 정도로 당당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잉.

         

       깐깐하시긴.

         

       하수도를 걸은 끝에 나침반이 진동하는 벽에 당도했다. 나침반을 벽에 대자 나침이 으에엥 거리며 요동쳤다.

         

       으에엥.

         

       “여기 같아요!”

         

       평범한 하수도 벽이네.

         

       더럽다는 얘기다.

         

       만지면 비밀 문이 열리려나.

         

       파스텔은 손을 내밀다가 거무튀튀한 찌든 얼룩을 보고 머뭇거렸다. 얼룩이 얼마나 찌들었는지 입체감이 있었다.

         

       우와, 더러워.

         

       손으로 만지긴 좀 그런데.

         

       손대신 슬쩍 마검을 들었다.

         

       “악마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열려도 바로 적이 달려든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 후계를 위한 안배니.』

       “아뇨, 그런 악마님이나 걱정하는 문제 말고요. 똑똑한 전 다른 걸 생각하고 있거든요!”

       『뭐지?』

       “혹시 마검을 만지면 악마님이 막막 뭐랄까.”

         

       파스텔은 머뭇거리다가 그냥 방긋 웃었다.

         

       “모르겠다! 그냥 노골적으로 물어볼게요!”

         

       해맑게 말을 이었다.

         

       “검 만지면 느끼시나요?!”

         

       으헹으헹?

         

       악마의 말문이 막혔다.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난 검에 봉인된 거지 내가 검인 건 아니다.』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였다.

         

       “아하! 그럼 막막!”

         

       파스텔은 검을 손으로 문질렀다.

         

       “이래도 감촉은 없다는 거죠?!”

         

       그동안 생명체를 얼마나 벴는데 너무 당연한 질문인가?

         

       『그래. 그런데 도대체 왜 묻는 거지?』

       “제가 필요할 때마다 악마님과 마검을 별개로 대해도 되겠네요?”

       『어느정돈 맞다.』

         

       오예.

         

       “알겠어요!”

         

       파스텔은 안도하곤 하수도 벽에서 살짝 떨어졌다.

         

       마검을 들어 올렸다.

         

       “악마님 아닌 마검!”

         

       그리고 날 끝을 벽에 들이댔다. 비밀 문을 찾듯이 하수도 벽을 슥슥 긁었다. 찌든 얼룩이 긁히고 끈적한 잔해가 후두둑 떨어졌다.

         

       으아아.

         

       완전 더러워.

         

       손으로 안 만져서 다행이야.

         

       파스텔은 질색팔색 하며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고개를 돌리고 질끈 감은 눈으로 마검만 벽에 끄적였다.

         

       으으.

         

       슥슥슥.

         

       후두둑후두둑.

         

       으아아.

         

       얼마간 그러고 있으니 악마가 떨떠름해했다.

         

       『좀……, 복잡한 기분이긴 하군.』

         

       파스텔은 움찔했다.

         

       “역시 검과 일체감을 느끼시는 거죠?!”

         

       나 지금 격렬한 하극상 중?

         

       『아니 뭐 그냥…….』

         

       악마가 고심하듯이 침음을 냈다.

         

       『맘대로 해라. 네 손을 더럽히는 것보단 낫겠지.』

         

       오예.

         

       “그럼 사양 않고!”

         

       파스텔은 아까보다 더 열심히 마검으로 벽을 긁었다. 물론 자신은 벽에서 멀찍이 떨어진 상태였다.

         

       마검을 슥슥슥.

         

       얼룩이 후두둑후두둑.

         

       으와아.

         

       파스텔은 작업을 멈추고 슬쩍 마검을 살펴봤다. 날 끝에 더러운 찌꺼기가 묻어 있었다.

         

       으에에.

         

       더러운 걸 보는 시선으로 마검을 바라봤다.

         

       경멸.

         

       경멸 빔~.

         

       악마님 경멸~.

         

       은근슬쩍 하극상을 즐기니 악마가 말해왔다.

         

       『……그렇게까지 사양하지 말라는 건 아니었다.』

         

       앗.

         

       민감하시긴.

         

       『차라리 벽을 긁지 말고 찔러라. 그럼 수고는 들어도 일단 덜 더러울 거 아니냐.』

         

       허억, 천재인가?

         

       “알겠어요! 전 전혀 하극상을 즐긴 게 아니니까요!”

       『너……?』

         

       헛.

         

       입이 괜한 소리를.

         

       “우, 우와우와 바쁘다!”

         

       너무너무 바쁜 파스텔!

         

       파스텔은 괜히 열심히 비밀문을 찾았다.

         

       바쁘다, 바빠!

         

       얼마간 벽을 들쑤시니 그럴싸한 곳이 푹 찔렸다. 하수도 벽이 흔들리고 밀리며 공간이 열렸다.

         

       우왕.

         

       “좋아요! 유적 탐사 시작~!”

         

       더러운 걸 털 듯이 마검을 털고 발랄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슬쩍 마검의 냄새를 맡아보고 으잉 하는 표정으로 검을 멀찍이 떨어트려 들었다.

         

       『너 일부러 이러는-』

       “유적 탐사 시작~!”

         

       야호.

         

       파스텔은 첫 방에 들어섰다. 지난번처럼 마법학 서적과 마법 퀴즈가 있었다. 퍼즐을 풀면 문이 열리는 구조다.

         

       “쉬워 보여요!”

         

       막대 장치로 맞추는 퀴즈를 살펴보다가 그렇게 외쳤다.

         

       『호오? 한번 풀어 봐라. 저번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문제다. 마왕이 후계자의 지성을 중시하나 보군. 서적을 꼼꼼히 공부해야 할 거야.』

         

       지성?

         

       “단번에 풀어 보죠!”

         

       파스텔은 똑똑한 모범생 표정을 지었다.

         

       전투 보고서는 제출도 안 하고 연구 보고서만으로 연구 수석을 차지한 지성이 담긴 표정이었다.

         

       격렬한 두뇌 회전이 이어졌다.

         

       머릿속에서 정답이 파지직.

         

       난제는 풀렸다.

         

       “으랴아!”

         

       퀴즈 장치를 검으로 후려쳤다. 굉음이 났다. 장치가 빛을 뿜다가 폭발했다.

         

       퍼엉-!

         

       닫힌 문이 열렸다.

         

       파스텔은 만세 했다.

         

       “정답~!”

         

       오예.

         

       『아니.』

         

       파스텔은 뿌듯해졌다.

         

       “겨우 장치 고장으로 후계자에게 유산을 안 줄 수는 없다! 고장 나면 문이 그냥 열리게 설계됐다는 약점!”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한 완벽한 해답.

         

       전대 마왕이 원하던 지성이란 이런 거 아닐까?

         

       『이상한 것만 배우지 마라.』

       “네에.”

         

       파스텔은 당당히 두 번째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멈칫했다.

         

       함정 복도였을 법한 곳은 난장판이었다. 거대한 생명체가 요동친 듯 바닥엔 균열이 가고 양쪽 벽은 부서졌다. 양쪽 벽을 채운 각종 함정이 망가진 채 방치됐다.

         

       잉.

         

       『선객이 있군. 흔적을 보아하니 뱀이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

         

       아마 자신 키만큼의 굵기를 가진 뱀이었다. 길이가 얼마인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우왕?

         

       파스텔은 실감이 안 되는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서진 문밖으로 나갔다.

         

       공동이 펼쳐졌다.

         

       한복판엔 하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얼마나 크고 거대한지 공동을 절반은 차지한 듯했다.

         

       파스텔은 눈을 비볐다.

         

       어라아.

         

       꿈인가아.

         

       왜 열차만 한 뱀이 존재하지이.

         

       백사가 공동 구석에 머리를 대고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갈라진 혓바닥이 유일한 보물 상자를 할짝였다.

         

       오잉.

         

       뱀의 주둥이가 벌어졌다.

         

       보물 상자가 삼켜졌다.

         

       냠냠.

         

       꿀꺽.

         

       오이잉?

         

       백사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입을 작게 벌렸다.

         

       꺼억.

         

       트림 소리가 울렸다.

         

       으아아.

         

       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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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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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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