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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울펜슈타인 백작>의 제2막이 올랐다.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멎고, 막이 오르고, 합주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공주 역할을 맡은 샤일라의 발랄한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백작의 편지를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천진난만한 모습.

         

       그녀는 과연 뛰어난 연기자였다.

       쉬는 시간에 무용수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던 모습은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나는 최상층 관람석보다 더 높은, 철제 프레임 사이를 걷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판에서 삐걱대는 소음이 났지만, 배우들의 목소리와 합주단의 악기 소리에 묻혀 다른 곳까지 소리가 닿지는 않았다.

         

       심지어 몇 미터 아래, 난간에 기대어 있는 직원의 머리 위를 지나는데도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장미 풍차 카바레의 구조는 복잡했다.

       상급 좌석과 하급 좌석의 구역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고, 직원용 통로는 둘 사이를 비대칭적인 패턴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헤매지 않았다.

       게임에서 지겹게 드나들었던 곳이니까.

         

       안내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샛길도 척척 찾아냈다.

       덕분에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이곳까지 오를 수 있었다.

         

       홀의 천장부터는 조명과 리프트 등 장비를 관리하는 기술자들이 종종 지나갔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빙 둘러 갔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가장 높은 프레임까지 닿을 수 있었다.

         

       저 아래 무대를 내려다봤다.

       연극의 배경은 공주의 성에서 백작의 저택으로 바뀌었다.

       백작과 흑마법사가 사악한 주술에 필요한 게 뭔지 이야기를 나누고, 멀리서 하녀가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그 장면으로…….

       백작이 하녀를 벽으로 몰아붙이고, 그녀의 사랑을 비웃으며…….

       그리고 백작이 하녀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입맞춤을…….

         

       쿵!

         

       장면이 전환될 때 사용되는 합주단의 크고 낮은 울림.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백작이 하녀가 구석에서 자신의 비밀을 듣고 있었음을 알아챘다.

       그가 칼을 찾았다.

       하녀는 무릎을 꿇었다.

         

       -저도 아가씨가 돌아오길 원해요. 누구에게도 주인님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그 칼을 저에게 겨누지 말아요. 그런 눈으로 저를 바라보지 말아요.

         

       엘라는 이렇게 큰 무대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떨지도 않고 잘 연기했다.

       아니, 떠는 연기를 하고 있으니 안 떨지 않고 잘한다고 해야 하나?

         

       이 연극을 하기로 한 것은 불과 30분 전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배우들의 아우라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래. 나는 수도로 갈 것이다. 가서 공주를…….

         

       아니, 내가 뭐 하는 거지?

       연극이나 살펴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고개를 들어 철제 프레임 사이를 살폈다.

         

       나는 이곳까지 올라오면서 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어디에 유령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간쯤 왔을까.

       천장의 조명을 지탱하는 쇠사슬 하나가 휙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불이 들어오지 않은 조명이었기에 그것이 흔들리는 모습은 나밖에 보지 못했다.

       유령이 있는 곳은 거기가 확실했다.

         

       그는 조명을 떨어트려 백작 역의 배우를 죽일 생각인 것이다.

       자신의 ‘작은 새’의 몸에 손을 댄 파렴치한이니까.

         

       그렇게 주위를 살핀 나는 쇠사슬 하나가 또 휙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저기군.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내 눈은 약간의 변화를 잡아낼 수 있었다.

         

       아이 트래커.

       현실에서 내가 컴퓨터를 사용할 때 이용했던 물건이다.

       말 그대로 안구의 위치와 움직임, 즉, 시선을 추적하여 마우스를 대신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장비였다.

         

       그것은 나에게 정신적인 팔과 다리를 달아주는 기술이었다.

       눈으로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고,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게임을 했다.

         

       몇 년간의 부단한 노력 끝에 나는 트레커의 감도를 ‘1픽셀’로 두고 쓸 수 있었다.

       즉, 시선의 움직임을 4K-800만 화소 위에서 한 칸 단위로 통제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보고 분석하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시야에 들어온 장면에서 한 픽셀의 변화라도 나는 감지할 수 있었다.

         

       유령이 있는 곳.

       그곳으로 다가가면서 나는 그를 공략할 방법에 대해 궁리했다.

         

       그는 애초에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땅히 정석적인 공략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나 나는 트릴 트릴로라는 게임을 한계까지 파고 들어간 사람.

       비호감 서포터나 조력자를 죽여버리는 꼼수 찾기는 내 주요 콘텐츠 중 하나였다.

         

       유령 데릭을 없애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여기서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일단 쫓아내는 것만 하자.

       엘라의 단원 퀘스트만 지켜내는 걸 목표로.

         

       -백작 역과 입맞춤을 할까 봐 데리고 나간 것 아니었나요?

         

       ……그녀가 자신의 배역을 모두 완수해낼 수 있도록.

         

       나는 1번 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저기 멀리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쇠사슬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만두시죠.”

         

       그가 재빨리 나를 돌아봤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놀란 것은 확실했다.

         

       “데릭.”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서 그를 한 번 더 동요시켰다.

       동시에 나는 망토를 펼쳤다.

         

       “쇼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현재 단원들의 평균 호감도는 7이 조금 넘고, 서커스단의 명성도 20이 조금 넘었다.

       덕분에 매일 자정, 10의 데볼루트가 내게 제공됐다.

       거기다 단원 퀘스트나 가끔 제공되는 서브 퀘스트를 달성하니, 일주일 만에 100개의 데볼루트를 모을 수 있었다.

         

         

       이름: 프랑크 원더스타인

       나이: 27

       직업: 바이오맨서

       -데볼루트: (67/80)

       -근육 강도: 3.0 (헬린이)

       -조직 경도: 3.0 (사슬갑옷)

       -세포 재생력: 3.0 (뛰어감)

       특성

       : [웃는 남자]

         

         

       나는 이제 슬슬 전투능력을 하나 개발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특성은 위급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개발한 게 많았다.

         

       급속경직, 아가미, 물갈퀴, 판초 나뭇잎 제조, 빵나무 제조, 숟가락 가지 등이 그랬다.

         

       하지만 전투능력을 그렇게 개발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다.

       촉수, 날개, 꼬리 등 기존에 없던 부위를 몸에 달고 사용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몸에 없던 새로운 부위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했다.

       나는 그걸 누구보다 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당장 내 몸에 달린 팔과 다리들이 그랬으니까.

         

         

       특성: 맨튤라의 칼날

       적용 부위: 등판

       효과: 1m 길이의 사마귀 칼날을 2m의 타란튤라 다리 끝에 부착합니다.

       비용: [유동적-데볼루트 33]

         

         

       특성의 개발에는 2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나의 3대 기초능력치에 비례한 힘을 부여하는 ‘유동적’과 일정한 힘을 부여하는 ‘고정적’.

         

       고정적 비용을 사용하면 같은 비용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능력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 맨튤라의 칼날에 탄환 같은 속도의 힘과 강철 이상의 단단함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동적으로 하면, 다리의 힘은 나의 ‘근육 강도’에 비례하고 칼날의 강도는 나의 ‘조직 경도’에 비례했다.

       즉, ‘헬린이’ 정도의 근육 강도를 지닌 힘에 ‘사슬갑옷’ 정도의 단단함을 지닌 칼날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당장을 쓰기에는 ‘고정적’이 좋지만, 앞으로 3개 기초능력치를 상승시켜 갈 것을 생각하면, ‘유동적’이 좋았다.

         

       나는 장기적으로 생각해서 ‘유동적’을 선택했다.

       게임이 시작된 지 1달 조금 넘었는데, 근시안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개발한 맨튤라의 칼날.

       이것은 원더스타인의 대표적인 특기 중 하나였다.

         

       등에서 거미 다리처럼 생긴 것이 뚫고 나와 사마귀의 낫처럼 생긴 칼날을 휘둘렀다.

       비록 지금 만든 것은 2개에 불과했지만, 어제 위력을 시험해 본 결과,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 한 개 분대가 몰려와도 3분 안에 몰살시킬 자신이 있었다.

         

       “괴물…….”

         

       데릭이 나를 보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단원들에게 그런 시선을 받으면 조금 억울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인데 하고.

         

       하지만 드디어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 나는 괴물이다.

         

       “손에 든 것부터 내려놓으실까요?”

       “웃기지 마라!”

         

       휙.

         

       나는 칼날을 움직였다.

       은빛의 칼날이 공중을 가르며 그에게 날아갔다.

       고작해야 ‘헬린이’의 근육 강도.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데릭은 전등 뒤로 재빨리 피했다.

       하나 남은 쇠사슬 뒤에 몸을 숨겨, 내가 함부로 칼날을 휘두르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

         

       조금 위험한데.

         

       원래의 원더스타인이라면 저런 어설픈 방패막이는 무시하고 정확히 그의 몸을 찔러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정도로 능숙하게 칼날을 다루지 못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걸음에 익숙해지는 데는 하루, 젓가락질에 익숙해지는 데는 나흘이 걸렸다. 그나마도 몸이 기억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이 능력을 만든 것은 어제였다.

       단원들이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을 보고 나도 자극을 받아서 시도한 일이었으니까.

         

       데릭은 내 눈치를 살폈다.

       그가 무엇을 노리는지는 짐작이 갔다.

         

       나는 그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물질투과.

       그는 말 그대로 유령처럼 벽과 바닥을 뚫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옷이나 마스크 정도는 몰라도, 펜치 같은 무거운 것을 들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쇠사슬을 끊고, 도망칠 때만 물질 투과 능력을 사용할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맨튤라의 칼날로 그가 쇠사슬을 끊지 못하게 견제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나의 미숙한 조작 덕에 실수로 쇠사슬을 자르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그렇게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저 아래 무대에서 들리는 목소리.

         

       -증명할 수 있어? 네 사랑을 증명할 수 있겠나?

         

       멍하니 아까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천천히 엘라에게 다가가는 백작.

       겁먹은 듯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엘라.

       백작의 얼굴이 그녀에게……

         

       아.

       잠시 정신을 놓았다.

         

       유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든 펜치로 재빨리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휘익.

         

       전등이 아래로 추락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령은 벽을 통과해 도망쳐버렸다.

         

       나는 서둘러 전등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이게 놈의 계획이었나?

       정말 여기에 떨어트리려는 거였나?

         

       혹시나, 그냥, 다짜고짜 자르고 본 거라면?

       혹시나 다른 사람이 맞은 거라면?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

         

         

       2막이 시작되고 무대에 오른 엘라.

         

       객석에서 지켜보고 있겠다고 한 원더스타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녀는 시선을 똑바로 앞으로 향하고 객석을 살피지 않으려고 애썼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민망할 거 같았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흘끗거렸고, 텅 비어 있는 객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긴장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황당한 인간이네. 말이나 꺼내지 말지.

         

       그래도 서커스 그랑프리를 향한 마음이나 대본을 쓰는 능력만은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라면 자신의 연기가 어땠는지 어색한 점은 없었는지 평을 들려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엘라는 더 이상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연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연극은 계속 진행되었고, 원더스타인이 아까 끊어버렸던 파트까지 왔다.

         

       “증명할 수 있어? 네 사랑을 증명할 수 있겠나?”

         

       백작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의 눈빛이 어딘가 대기실에서와는 달라 보였다.

         

       능글맞고,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그런 눈빛.

         

       뭔가 불쾌한 감정이 솟으려는 그때, 한 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콰광. 으지직.

         

       천장에서 떨어진 전등.

       그것이 백작의 머리를 으깨버린 것이다.

         

       피와 살점이 엘라의 하녀복에 한가득 튀었다.

         

       관객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약 1년 전이라면, 엘라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이상의 지옥도를 경험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전등이 떨어져 내린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오직 그녀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 각도로만 그 틈 사이를 볼 수 있었다.

         

       천장의 어둠, 강철 프레임 사이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눈을 한 번 깜빡이니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엘라는 멍하니 그가 사라진 자리만 바라봤다.

       무대 위로 다른 배우들과 직원들이 뛰어 올라올 때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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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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