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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레몬과 애플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되, 상체는 흔들거리는 기분 나쁨과 껄렁함의 중간쯤 되는 기묘한 자세로 골목길에 들어섰다.

       

       “어엉?”

       

       “쯧. 못 보던 얼굴이군.”

       

       옹기종기 모여 연초를 피우던 거친 인상의 여자들이 동업자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레몬과 애플의 귀를 확인하고는 흠칫 놀랐다.

       

       “엘프? 엘프가 어째서….”

       

       “야이 멍청한 년아! 엘프가 이런 뒷골목까지 와서 우리 같은 놈을 찾으러 온 이유가 뭐겠어!”

       

       그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녀석이 피던 담배를 밟아 끄며 물었다.

       

       “어디서 나온 분들이십니까?”

       

       음음. 타당한 반응이다. 아무리 레몬과 애플이 삼류 양아치처럼 보여도 엘프는 엘프.

       

       그리고 엘프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어중간한 범죄자가 없는 종족으로도 유명하다.

       

       즉, 레몬과 애플 자체는 별거 아니더라도 그 뒤에는 어마무시한 거물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머리 회전은 빠르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겠지.

       

       빠른 태세 전환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저런 동네 양아치 미만인 두 엘프가 낄낄 웃으며 납작한 가슴을 쭉 폈다.

       

       “흐흐. 누가 우리를 보낸 건지 궁금한 검까?”

       “듣고 놀라지마는 검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학살자, 한번 떼인 돈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받아내는 수전노.”

       “그 이름도 두려운 요나란 바로 이분을 말하는 검다!”

       “다들 고개를 조아리는 검다!”

       

       ……?

       

       그게 무슨 개소리니?

       

       갑자기 으스대며 숨어있던 내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레몬과 애플. 큰 소리로 떠들며 달려갈 때 알아 챘어야 했는데….

       

       시선이 마주친 양아치들이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갑자기 전국구 조직의 간부랍시고 하와와 여중생쟝이 나오면 저런 표정을 지었을 테니까.

       

       그래도 나보다 더 놀란 양아치들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본래는 레몬과 애플이 시비를 걸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말리는 척 끼어들며 슬쩍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양아치들이라도 싸움을 말리러 온 미소년을 다짜고짜 줘패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쉽고, 간단한데 빠르기까지 한 소매치기 공식이 완성되는 건데….

       

       “에에잇! 나도 모르겠다! 일단 뒈져라…!”

       

       이미 들켰다면 남은 방법이라고는 선빵필승 하나뿐.

       

       그런 이유로 가장 앞에서 용건을 묻던 양아치 년들의 대표를 향해 냅다 달려들었다.

       

       “어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녀석의 목을 향해 어제 뽑은 튼튼한 로프로 만든 올가미를 던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하다 여긴 녀석이 올가미를 벗으려 했으나….

       

       “늦었어!”

       

       좁은 골목을 순식간에 주파하여, 양아치 대장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강하게 올가미를 휘감아 목을 졸랐다.

       

       “끄윽….”

       

       녀석이 목에 감긴 밧줄을 풀어내려는 사이. 단검의 손잡이로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퍽!

       

       다만 아쉽게도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한방에 기절하진 않길래, 기절할 때까지 내리쳤다.

       

       퍽! 퍽! 퍽!

       

       “악! 끅! 께엑.”

       

       어쩌다 한 방 제대로 들어간 걸까. 파르르 떨더니, 눈을 까뒤집고 그대로 엎어진 대장 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머지 양아치들을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

       

       “네놈들의 나와바리는 망했어! 이제부터 여긴 이 요나 님이 지배한다!”

       

       불만인 녀석부터 와 바 랏!

       

       ***

       

       미궁도시는 거친 모험가들이 어슬렁거리는 동네치고 치안이 괜찮은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무서운 놈들은 지상이 아닌 미궁에 짱박혀 있거나, 기업형 마피아 같은 놈들이라 사소한 범죄에 관심이 없기 때문.

       

       물론 가끔씩 연쇄 살인마, 악질적인 약쟁이 혹은 전문적인 인신매매범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런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의 토벌 의뢰에 정수리가 오목해졌거나, 물을 흐린다며 진짜 거물들의 손에 박살 난다.

       

       나를 납치했던 쌍단검 클랜도 그런 느낌이었지. 인신매매를 너무 열정적으로 한 나머지 길드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일부러 암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정말로 위험한 놈들은 얼마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리디아를 만나기 전까지 여기저기서 마구 소매치기 하고 다녔던 것도 그래서고.

       

       하지만 아무리 멀쩡한 사업체 건드리기는 무서워서 고아나 거지들한테 상납금 뜯는 게 주 수입이며, 노점상에서 외상이랍시고 무전취식 좀 하고, 어디서 자기 애들이 맞고 오면 피의 복수(아무도 안 죽음)를 몸소 실천하는 미묘한 양아치 녀석들이라고 해도 나보다는 강할 터.

       

       괜히 레몬과 애플을 앞세워 몰래 슬쩍할 생각이었던 게 아니다. 직접적인 충돌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사, 살려주시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

       

       내 앞에 무릎 꿇은 대여섯 명의 양아치들을 내려다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옷, 전신에서 풍겨오는 알콜과 담배의 냄새, 군데군데 흉터가 난 판 대륙 기준으로는 험상궂지만 내 눈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외모.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무시무시해 보이던 건달 놈들이 내 앞에 조아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게 처음도 아니다. 벌써 세 번째 그룹이니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레몬과 애플이 멍청하게도 내 위치를 밝히고, 아차 싶어서 일단 가장 강해 보이는 녀석을 제압했다.

       

       그랬더니 다른 떨거지들이 바로 항복하길래 지갑만 받고 풀어줬다. 이게 문제였던 걸까.

       

       처음에는 그렇게 무서워하던 녀석들이 눈에 띄게 안심하더니, 그대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꺼지라고 해도 멀리 잠깐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졸졸 따라오는 걸 멈추진 않았고.

       

       계속 저렇게 놔두는 것도 뭐 하다 싶어, 주변에 털만한 괜찮은 놈들 없냐고 하니까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다른 골목을 안내해 줬지.

       

       …그리고 레몬과 애플이 그러했듯 당당하게 나를 소개했다.

       

       미친년들.

       

       똘마니(아님)를 데리고 있는 탓인지 안 그래도 험악한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며, 먼저 공격당하고 말았으나…역으로 이겨버렸다.

       

       미궁에서의 경험. 특히 혼 래빗을 상대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거든.

       

       그 잽싼 녀석의 속도에도 대응했는데, 제대로 된 모험가가 되지도 못한 허접한 양아치들의 주먹이 닿을 리가 있겠는가.

       

       두목으로 보이는 년이 가장 먼저 나섰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허우적대다 제압당했다.

       

       대가리가 맥없이 붙잡히자 망설임없이 항복하는 부하 년들. 이번에도 지갑을 전부 뺏고 풀어줬건만, 똑같이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지.

       

       어이가 없어서 왜 그러냐고 물어도 자기를 부하로 받아달라며 끈질기게 달라붙길래 조금 귀찮아져서 레몬과 애플에게 넘겼다.

       

       그렇게 똘마니(진짜 아님)가 2배로 늘었다.

       

       반쯤 포기한 채, 이번에는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며 신신당부하고 다음 타겟을 물어봤는데….

       

       레몬과 애플이 신참들에게 질 수 없다며, 내가 말리기도 전에 뛰쳐나가 외쳤다.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 하니 알아서 처신 잘하라고.

       

       그렇게 지금으로 이어진다.

       

       이 녀석은 나랑 싸워볼 생각조차 없는지 바로 무릎부터 꿇더라.

       

       …아니, 과정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

       

       진짜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양옆에 선 레몬과 애플이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감히! 요나 님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검까!”

       “그런 말뿐인 충성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검까?”

       

       그리 외치며 노골적으로 검지와 엄지를 비비적대는 두 쌍둥이.

       

       노골적이다 못해 참 없어 보이는 요구였지만, 오히려 이런 게 잘 먹히는지 벌벌 떨던 양아치들의 눈이 땡그래졌다.

       

       황급히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는 녀석들. 공손하게 지갑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레몬과 애플이 이를 전부 회수해 내게 넘겼다.

       

       “흠….”

       

       일단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지갑을 받아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큰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두둑한 두목 년의 지갑조차 겨우 2실버를 좀 넘는 금액이 들어있을 뿐이니.

       

       그래도 전부 모으고 나니 4실버는 되는 것 같네. 앞선 그룹에서 뜯은 것까지 다 합치면 무려 13실버에 육박한다.

       

       원래는 레몬과 애플과 드잡이질하던 한둘의 지갑만 슬쩍할 예정이었기에 2~3실버만 벌어도 잘 벌었다 싶었을 텐데….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면 찝찝함보다 이득이 더 크다. 약간의 망설임을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충분하네. 일어서도 괜찮아.”

       

       “요나 님의 아량에 감사하는 검다!”

       “이제 너희도 우리 패밀리인 검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의기양양하기 밑으로 들어오란 소리를 하는 레몬과 애플. 그리고 진심으로 안도하는 3번째 두목.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양아치들을 바라보다 쌍둥이 엘프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흐읏.”

       “하앙….”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잠깐 나 좀 보자. 볼일이 있어서.”

       

       “무슨 일임까? 볼일이라면…화장실이라도 급한 검까?”

       “레몬. 남자는 화장실 같은 거 안 감다.”

       

       “무슨 개소리야. 화장실 가는데 너를 왜 부르겠어. 그리고 애플애플아. 남자도 화장실은 가거든?”

       

       진짜 모르겠다는 듯 멍청하니 눈만 끔뻑이는 레몬과,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애플.

       

       둘의 모습에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뒤쪽에서 신입을 반기는 양아치들…아니, 이젠 내 똘마니가 된 녀석들을 가리켰다.

       

       “저것들 뭐냐. 왜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내 부하가 되려고 해?”

       

       “예? 애초에 이 구역을 접수하려던 거 아니었슴까?.”

       “설마 전부 모르고 저지른 일임까? 이건 이것대로 놀람슴다.”

       

       “그런 적 없거든? 지갑만 슬쩍하고 튈 생각이었거든? 아무튼 진짜 모르겠으니까 빨리 설명이나 해봐.”

       

       서로를 한차례 마주 본 레몬과 애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일임다. 요나는 최소한의 피해로 저들을 제압하려 들지 않았슴까.”

       “죽이려 한다거나, 반병신으로 만들 시도조차 안했슴다. 이쪽 업계에서는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뜻을 그렇게 전달하곤 함다.”

       

       “그냥 말로 하면…아니, 말로 해선 안 듣는 놈들이니까 미궁에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애들 삥이나 뜯고 있는 거겠지.”

       

       “거기에 다른 이유도 있슴다. 요나는 어리고 외모도 귀엽지 않슴까?”

       “그런 요나에게 탈탈 털린 것들은 체면이 어떻게 되겠슴까. 주변 년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순식간임다.”

       

       “…설마 어차피 진 거 다른 년들도 전부 엿 먹으라는 심보인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름다.”

       “요나에게 전부 당하면 자기들만 쪽팔린 게 아니게 되잖슴까. 요나가 강했을 뿐이니.”

       

       “…….”

       

       “뭣보다 이 바닥에서 요나 정도로 잘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빌붙어야 함다.”

       “아니면 절대 척지지 않도록 아예 손 털고 건실히 살아가던가 말임다.”

       

       “강약약강에 너무 충실하잖아 이 자식들….”

       

       그런 이유였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너네는 나 같은 어린 남자한테 복종하는 게 쪽팔리지도 않아?”

       

       “그게 무슨 소림까. 오히려 흥분됨다.”

       “여자 보스를 모시면 평범한 일이지만 남자 보스를 모시는 건 꼴리는 일임다.”

       

       “…아.”

       

       납득했다.

       

       농쭉 보스는 인정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캬퍄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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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EP.31





       레몬과 애플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되, 상체는 흔들거리는 기분 나쁨과 껄렁함의 중간쯤 되는 기묘한 자세로 골목길에 들어섰다.


       


       “어엉?”


       


       “쯧. 못 보던 얼굴이군.”


       


       옹기종기 모여 연초를 피우던 거친 인상의 여자들이 동업자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레몬과 애플의 귀를 확인하고는 흠칫 놀랐다.


       


       “엘프? 엘프가 어째서….”


       


       “야이 멍청한 년아! 엘프가 이런 뒷골목까지 와서 우리 같은 놈을 찾으러 온 이유가 뭐겠어!”


       


       그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녀석이 피던 담배를 밟아 끄며 물었다.


       


       “어디서 나온 분들이십니까?”


       


       음음. 타당한 반응이다. 아무리 레몬과 애플이 삼류 양아치처럼 보여도 엘프는 엘프.


       


       그리고 엘프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어중간한 범죄자가 없는 종족으로도 유명하다.


       


       즉, 레몬과 애플 자체는 별거 아니더라도 그 뒤에는 어마무시한 거물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머리 회전은 빠르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겠지.


       


       빠른 태세 전환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저런 동네 양아치 미만인 두 엘프가 낄낄 웃으며 납작한 가슴을 쭉 폈다.


       


       “흐흐. 누가 우리를 보낸 건지 궁금한 검까?”


       “듣고 놀라지마는 검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학살자, 한번 떼인 돈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받아내는 수전노.”


       “그 이름도 두려운 요나란 바로 이분을 말하는 검다!”


       “다들 고개를 조아리는 검다!”


       


       ……?


       


       그게 무슨 개소리니?


       


       갑자기 으스대며 숨어있던 내가 있는 곳을 가리키는 레몬과 애플. 큰 소리로 떠들며 달려갈 때 알아 챘어야 했는데….


       


       시선이 마주친 양아치들이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해한다. 나도 갑자기 전국구 조직의 간부랍시고 하와와 여중생쟝이 나오면 저런 표정을 지었을 테니까.


       


       그래도 나보다 더 놀란 양아치들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본래는 레몬과 애플이 시비를 걸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말리는 척 끼어들며 슬쩍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양아치들이라도 싸움을 말리러 온 미소년을 다짜고짜 줘패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쉽고, 간단한데 빠르기까지 한 소매치기 공식이 완성되는 건데….


       


       “에에잇! 나도 모르겠다! 일단 뒈져라…!”


       


       이미 들켰다면 남은 방법이라고는 선빵필승 하나뿐.


       


       그런 이유로 가장 앞에서 용건을 묻던 양아치 년들의 대표를 향해 냅다 달려들었다.


       


       “어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녀석의 목을 향해 어제 뽑은 튼튼한 로프로 만든 올가미를 던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위험하다 여긴 녀석이 올가미를 벗으려 했으나….


       


       “늦었어!”


       


       좁은 골목을 순식간에 주파하여, 양아치 대장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강하게 올가미를 휘감아 목을 졸랐다.


       


       “끄윽….”


       


       녀석이 목에 감긴 밧줄을 풀어내려는 사이. 단검의 손잡이로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퍽!


       


       다만 아쉽게도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한방에 기절하진 않길래, 기절할 때까지 내리쳤다.


       


       퍽! 퍽! 퍽!


       


       “악! 끅! 께엑.”


       


       어쩌다 한 방 제대로 들어간 걸까. 파르르 떨더니, 눈을 까뒤집고 그대로 엎어진 대장 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머지 양아치들을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


       


       “네놈들의 나와바리는 망했어! 이제부터 여긴 이 요나 님이 지배한다!”


       


       불만인 녀석부터 와 바 랏!


       


       ***


       


       미궁도시는 거친 모험가들이 어슬렁거리는 동네치고 치안이 괜찮은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무서운 놈들은 지상이 아닌 미궁에 짱박혀 있거나, 기업형 마피아 같은 놈들이라 사소한 범죄에 관심이 없기 때문.


       


       물론 가끔씩 연쇄 살인마, 악질적인 약쟁이 혹은 전문적인 인신매매범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런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의 토벌 의뢰에 정수리가 오목해졌거나, 물을 흐린다며 진짜 거물들의 손에 박살 난다.


       


       나를 납치했던 쌍단검 클랜도 그런 느낌이었지. 인신매매를 너무 열정적으로 한 나머지 길드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일부러 암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정말로 위험한 놈들은 얼마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리디아를 만나기 전까지 여기저기서 마구 소매치기 하고 다녔던 것도 그래서고.


       


       하지만 아무리 멀쩡한 사업체 건드리기는 무서워서 고아나 거지들한테 상납금 뜯는 게 주 수입이며, 노점상에서 외상이랍시고 무전취식 좀 하고, 어디서 자기 애들이 맞고 오면 피의 복수(아무도 안 죽음)를 몸소 실천하는 미묘한 양아치 녀석들이라고 해도 나보다는 강할 터.


       


       괜히 레몬과 애플을 앞세워 몰래 슬쩍할 생각이었던 게 아니다. 직접적인 충돌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사, 살려주시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


       


       내 앞에 무릎 꿇은 대여섯 명의 양아치들을 내려다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옷, 전신에서 풍겨오는 알콜과 담배의 냄새, 군데군데 흉터가 난 판 대륙 기준으로는 험상궂지만 내 눈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외모.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무시무시해 보이던 건달 놈들이 내 앞에 조아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게 처음도 아니다. 벌써 세 번째 그룹이니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레몬과 애플이 멍청하게도 내 위치를 밝히고, 아차 싶어서 일단 가장 강해 보이는 녀석을 제압했다.


       


       그랬더니 다른 떨거지들이 바로 항복하길래 지갑만 받고 풀어줬다. 이게 문제였던 걸까.


       


       처음에는 그렇게 무서워하던 녀석들이 눈에 띄게 안심하더니, 그대로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꺼지라고 해도 멀리 잠깐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졸졸 따라오는 걸 멈추진 않았고.


       


       계속 저렇게 놔두는 것도 뭐 하다 싶어, 주변에 털만한 괜찮은 놈들 없냐고 하니까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다른 골목을 안내해 줬지.


       


       …그리고 레몬과 애플이 그러했듯 당당하게 나를 소개했다.


       


       미친년들.


       


       똘마니(아님)를 데리고 있는 탓인지 안 그래도 험악한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며, 먼저 공격당하고 말았으나…역으로 이겨버렸다.


       


       미궁에서의 경험. 특히 혼 래빗을 상대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거든.


       


       그 잽싼 녀석의 속도에도 대응했는데, 제대로 된 모험가가 되지도 못한 허접한 양아치들의 주먹이 닿을 리가 있겠는가.


       


       두목으로 보이는 년이 가장 먼저 나섰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허우적대다 제압당했다.


       


       대가리가 맥없이 붙잡히자 망설임없이 항복하는 부하 년들. 이번에도 지갑을 전부 뺏고 풀어줬건만, 똑같이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지.


       


       어이가 없어서 왜 그러냐고 물어도 자기를 부하로 받아달라며 끈질기게 달라붙길래 조금 귀찮아져서 레몬과 애플에게 넘겼다.


       


       그렇게 똘마니(진짜 아님)가 2배로 늘었다.


       


       반쯤 포기한 채, 이번에는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며 신신당부하고 다음 타겟을 물어봤는데….


       


       레몬과 애플이 신참들에게 질 수 없다며, 내가 말리기도 전에 뛰쳐나가 외쳤다.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 하니 알아서 처신 잘하라고.


       


       그렇게 지금으로 이어진다.


       


       이 녀석은 나랑 싸워볼 생각조차 없는지 바로 무릎부터 꿇더라.


       


       …아니, 과정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


       


       진짜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양옆에 선 레몬과 애플이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감히! 요나 님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검까!”


       “그런 말뿐인 충성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검까?”


       


       그리 외치며 노골적으로 검지와 엄지를 비비적대는 두 쌍둥이.


       


       노골적이다 못해 참 없어 보이는 요구였지만, 오히려 이런 게 잘 먹히는지 벌벌 떨던 양아치들의 눈이 땡그래졌다.


       


       황급히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는 녀석들. 공손하게 지갑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레몬과 애플이 이를 전부 회수해 내게 넘겼다.


       


       “흠….”


       


       일단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지갑을 받아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큰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두둑한 두목 년의 지갑조차 겨우 2실버를 좀 넘는 금액이 들어있을 뿐이니.


       


       그래도 전부 모으고 나니 4실버는 되는 것 같네. 앞선 그룹에서 뜯은 것까지 다 합치면 무려 13실버에 육박한다.


       


       원래는 레몬과 애플과 드잡이질하던 한둘의 지갑만 슬쩍할 예정이었기에 2~3실버만 벌어도 잘 벌었다 싶었을 텐데….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면 찝찝함보다 이득이 더 크다. 약간의 망설임을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충분하네. 일어서도 괜찮아.”


       


       “요나 님의 아량에 감사하는 검다!”


       “이제 너희도 우리 패밀리인 검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의기양양하기 밑으로 들어오란 소리를 하는 레몬과 애플. 그리고 진심으로 안도하는 3번째 두목.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양아치들을 바라보다 쌍둥이 엘프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흐읏.”


       “하앙….”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잠깐 나 좀 보자. 볼일이 있어서.”


       


       “무슨 일임까? 볼일이라면…화장실이라도 급한 검까?”


       “레몬. 남자는 화장실 같은 거 안 감다.”


       


       “무슨 개소리야. 화장실 가는데 너를 왜 부르겠어. 그리고 애플애플아. 남자도 화장실은 가거든?”


       


       진짜 모르겠다는 듯 멍청하니 눈만 끔뻑이는 레몬과,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애플.


       


       둘의 모습에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뒤쪽에서 신입을 반기는 양아치들…아니, 이젠 내 똘마니가 된 녀석들을 가리켰다.


       


       “저것들 뭐냐. 왜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내 부하가 되려고 해?”


       


       “예? 애초에 이 구역을 접수하려던 거 아니었슴까?.”


       “설마 전부 모르고 저지른 일임까? 이건 이것대로 놀람슴다.”


       


       “그런 적 없거든? 지갑만 슬쩍하고 튈 생각이었거든? 아무튼 진짜 모르겠으니까 빨리 설명이나 해봐.”


       


       서로를 한차례 마주 본 레몬과 애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일임다. 요나는 최소한의 피해로 저들을 제압하려 들지 않았슴까.”


       “죽이려 한다거나, 반병신으로 만들 시도조차 안했슴다. 이쪽 업계에서는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뜻을 그렇게 전달하곤 함다.”


       


       “그냥 말로 하면…아니, 말로 해선 안 듣는 놈들이니까 미궁에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애들 삥이나 뜯고 있는 거겠지.”


       


       “거기에 다른 이유도 있슴다. 요나는 어리고 외모도 귀엽지 않슴까?”


       “그런 요나에게 탈탈 털린 것들은 체면이 어떻게 되겠슴까. 주변 년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순식간임다.”


       


       “…설마 어차피 진 거 다른 년들도 전부 엿 먹으라는 심보인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름다.”


       “요나에게 전부 당하면 자기들만 쪽팔린 게 아니게 되잖슴까. 요나가 강했을 뿐이니.”


       


       “…….”


       


       “뭣보다 이 바닥에서 요나 정도로 잘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빌붙어야 함다.”


       “아니면 절대 척지지 않도록 아예 손 털고 건실히 살아가던가 말임다.”


       


       “강약약강에 너무 충실하잖아 이 자식들….”


       


       그런 이유였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너네는 나 같은 어린 남자한테 복종하는 게 쪽팔리지도 않아?”


       


       “그게 무슨 소림까. 오히려 흥분됨다.”


       “여자 보스를 모시면 평범한 일이지만 남자 보스를 모시는 건 꼴리는 일임다.”


       


       “…아.”


       


       납득했다.


       


       농쭉 보스는 인정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캬퍄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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