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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 * *

       

       

       

       

       

       모스크바

       

       

       이 무렵, 모스크바는 이미 피난 행렬로 난리가 났다.

       

       볼셰비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피난을 떠나면 반동이라며 총으로 으름장을 놓고 총살까지 해서 본보기를 보이고 있지만, 피난은 멈출 줄 몰랐다.

       

       

       “이.이 반동들 같으니!”

       “지랄하고 자빠졌네.”

       

       

       장교들이 몇 번이나 위협을 해도 코웃음 치며 피난 행렬은 멈출 줄 몰랐다.

       

       이제는 대놓고 볼셰비키를 욕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물론 그들은 그 자리에서 보통 총살당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볼셰비키에 대한 반발심만 일으킬 뿐이었다.

       

       그리고.

       

       레닌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당으로 복귀한 트로츠키는 씩씩거리며 스탈린을 노려봤다.

       

       

       “스탈린. 무슨 일인가! 레닌 동지께서 의식을 잃으셨다니!”

       “과로로 인해 쓰러지신 것 같네.”

       

       

       물론 과로는 아니었다.

       

       스탈린은 아내를 통해 레닌에게 약을 먹였다.

       

       스탈린의 계획은 두 가지였다.

       

       레닌이 죽는다면, 오흐라나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선전하고 비열한 백군이라 선전하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지 않았을 경우에는 과로로 쓰러진 것으로 하고 레닌이 쓰러져 혼란스러우니, 레닌을 지키고 또 시간을 끌기 위해 페트로그라드로 도망간다.

       

       하여 판을 짜기 위해 미하일 프룬제에게도 백군을 한 번은 공격하라고 했다.

       

       당연히 스탈린의 계획을 알 리 없는 트로츠키는 눈을 굴리면서 허탈해했다.

       

       지금 상황에서 소비에트의 상징인 레닌이 쓰러져 버렸다.

       

       이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 전황에 트로츠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하필 이럴 때 쓰러지시다니.”

       “전황은 어떤가?”

       

       

       어차피 물어 봤자 뻔하지만 스탈린은 차가운 물을 내어주면서 트로츠키에게 물었다.

       

       트로츠키는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병을 책상에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안톤 데니킨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네. 하지만 황녀와 검은 남작의 군대는 무리야. 더군다나 미하일 프룬제도 공세를 펼치다 실패했던데.”

       “그들을 움직인 건 나일세.”

       “무슨 소린가? 방어도 모자랄 판에 들이받게 했다고?”

       

       

       그 정신 나간 짓을 벌이게 한 것이 스탈린이라는 사실에 트로츠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런 자살 같은 짓을 벌였나.

       

       안 그래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방어조차 힘들게 만들면 어쩌자는 건가.

       

       

       “레닌 동지가 쓰러진 사실이 퍼지면 안 되네.”

       “대체 무슨 생각인가.”

       “발트에 가 있는 붉은 군대를 불러 올리고 페트로그라드까지 가지.”

       “지금 반동의 수괴 황녀가 눈을 새빨갛게 뜨고 모스크바를 점령하려 하는데, 이대로 도망이나 치자고?”

       

       

       모스크바에서 볼셰비키 수뇌부가 떠난다는 것은 저 아나스타샤란 백군 수괴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꼴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애초에 모스크바는 아직 비공식 수도가 아닌가.”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은가!”

       

       

       그래. 그렇지.

       

       하지만 스탈린은 갈 때는 가더라도 일단 명분을 만들어둘 생각이었다.

       

       절대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 나도 알지. 그럼 다 죽을 참인가?”

       “뭐?”

       “저 복수심에 미친 황녀가 반동군을 끌고 모스크바를 집어삼키려 하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전투 중에 죽으면 모를까. 잡히면 황녀는 우리를 처참하게 죽이겠지.”

       “죽음이 겁이 나는가?”

       

       

       죽음이 겁이 나냐?

       

       암, 겁이 나고말고. 스탈린 본인은 여기서 죽어야 할 인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공산주의를 이룩한 나라를 만들어. 레닌보다 더 잘난 꿈을 꾸고 싶었다.

       

       

       “레닌 동지가 쓰러지고 공산주의가 흔들리고 있네. 우리가 죽으면 공산주의는 정말로 끝이야.”

       “끄응.”

       

       

       트로츠키도 부정할 수 없었다.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이 내전을 지켜보고 있다.

       

       백군 반동. 제국주의자 수괴 아나스타샤 황녀와 싸우는 볼셰비키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 내전은 공산주의, 볼셰비키의 패배로 향하고 있었다.

       

       이 전투가 끝나고 이 자리에 있는 볼셰비키가 모조리 죽게 된다면.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순교자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볼셰비키 같은 무력투쟁은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현실을 깨달은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보다 위축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살아남기라도 해야 했다.

       

       스탈린은 자상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트로츠키의 어깨에 올렸다.

       

       

       “이보게 트로츠키. 우리는 잠시 물러나는 것뿐이야. 공산주의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 아직 유데니치는 페트로그라드를 넘지 못했네. 그쪽으로 일단 가세.”

       

       

       페트로그라드 공략을 맡았던 유데니치는 당장 페트로그라드를 넘지 못했다.

       

       아나스타샤의 생존으로 핀란드의 독립 문제로 핀란드는 당장에 백군 편을 들지 않은 탓에 유데니치 혼자서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아직 페트로그라드가 안정권이라는 사실은 트로츠키도 부정할 수 없었다.

       

       굳이 이곳에서 계속 반동과 싸울 이유가 없다.

       

       

       “모스크바는 어찌하나.”

       “미하일 프룬제에게 맡기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네.”

       

       

       트로츠키도 현 상황을 냉정히 파악했다.

       

       미하일 프룬제가 오래 버티고는 있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나스타샤에게는 별 위협도 되지 않은, 프룬제 공세도 실패했고,결국 모스크바는 백군 반동에게 넘어갈 것이 뻔했다.

       

       

       “공산당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지. 자네는 레닌 동지를 맡게.”

       “그럼 코바 자네는?”

       “누구 하나는 저 악귀가 된 황녀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이대로 나는 나대로 놈들의 눈을 속이고 페트로그라드로 가지.”

       “무운을 빌지.”

       

       

       트로츠키는 처음으로 감동한 듯 스탈린의 양손을 잡았다.

       

       설마 하니 이처럼 희생정신이 있을 줄이야.

       

       스탈린은 당장 케렌스키 공화국 시절에 차르 일가의 처형을 주장했다.

       

       그리고 차르 일가의 처형, 아나스타샤의 생존으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바로 입장을 바꿔 처형을 명령한 트로츠키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것만으로도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권력에 미친놈으로만 여겼다.

       

       트로츠키는 처음으로 한때 스탈린이 제국주의자들처럼 권력욕에 미친놈이라고 여겼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만 했다.

       

       물론 스탈린의 속은 달랐다.

       

       

       ‘멍청한 놈, 이대로 트로츠키의 위치를 제국주의자 놈들에게 흘리고 이쪽은 도망치면 된다.’

       

       

       스탈린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스크바 시내를 정찰하는 오흐라나에게 은근히 소문을 흘리고 본인은 미리 아내, 보로실로프, 불류헤르, 투하쳅스키 등과 함께 모스크바를 나왔다.

       

       본래 이 셋은 미하일 프룬제 아래에서 백군과 싸웠으나, 스탈린은 이들을 주요 인물로 취급해서 함께 탈출하려 한 것이다.

       

       

       “이거 우리끼리만 나와도 되는 건가?”

       “어차피 페트로그라드로 가게 되면 백군을 방비해야 하네. 자네들이라도 있어야 하겠지.”

       “부됸늬가 없는 것이 아쉽군. 알겠네. 따르지.”

       

       

       이 무렵, 수상하게 독일어만 잘하는 백군의 일부가 모스크바를 한참 우회하면서 겉돌고 있었다.

       

       미군이 아시아 기마사단을 도와 모스크바에서 도망치는 볼셰비키의 뒤를 친다는 소식을 들은 독일군이 미군의 뒤를 따라오다가 하필이면 미군을 놓쳐 버린 것이다.

       

       

       “이런 슬라브의 땅에서 뭐하는 건지.”

       

       

       모스크바 근처인 거 같기는 한데, 어디인지 모를 붕 떠버린 장소에서 한 독일의 병사는 불만을 내뱉고 있었다.

       

       

       “젠장. 우리가 왜 슬라브 놈들을 위해 싸워야 하냐 이 말이야. 심지어 그놈들 군복까지 입고.”

       

       

       불만이 많은 독일의 상병이 미군을 찾으며 불만을 내뱉을 무렵. 일단의 붉은 군대가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그래. 이게 다 저 볼셰비키 놈들 때문이다.

       

       유대인과 볼셰비키. 저 두 존재 때문에 독일군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유대인 때문에 독일은 패배했고, 자신은 볼셰비키 때문에 이 슬라브 놈들이 사는 땅에 있다.

       

       

       “화풀이라도 해야지.”

       

       

       이 독일어를 매우 잘하는 러시아의 상병은 붉은 군대의 복장을 한 무리를 향해 총을 쐈다.

       

       이 울분을 저놈들에게라도 토해내야 했다.

       

       

       “볼셰비키다! 놈들을 잡아라!”

       

       

       타앙!

       

       갈 곳 없는 분노를 저 도망치는 볼셰비키를 향해 흩뿌렸고, 마침내 이 독일 백군의 총탄은 그의 소원이라도 들어 주듯 도망치는 남자의 고간을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악!”

       

       

       스탈린은 시베리아를 전전할 때보다,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될 때보다 훨씬 더 큰 고통에 그만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다리 사이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스탈린은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고간에서는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으니까.

       

       

       “꺄아악! 당신, 다리 사이에서 피가!”

       “스탈린! 스탈린!”

       “이런 제길. 고간이 붉게 물들고 있지 않은가!”

       “아.안 되네. 어서, 페트로그라드로 도망을. 크흑.”

       

       

       모스크바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탈린과 그 친구들은 수상하게 독일어를 잘하는 백군들에게 생포되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속이 시원한데. 뭐지?”

       

       

       스탈린의 고간을 총으로 맞춘 독일군은 독일이 패전한 사실에 대한 충격에서 잠시 헤어 나올 만큼, 이상하리만큼 속이 시원했다.

       

       마치 전생의 원수를 처치한 것처럼.

       

       굉장히 속이 시원했다.

       

       

       * * *

       

       

       그 단단했던 모스크바가 무너져 내렸다.

       

       아니, 애초에 그리 단단하지도 않았지. 깨진 항아리에 물을 계속 들이붓는 형국이었으니. 내부에서는 페트로그라드로 협조를 하지 않고, 외부에서는 우리가 계속 두들기니 방법이 없었다.

       

       

       “항복하겠습니다.”

       

       

       모스크바 방어를 맡은 붉은 군대 동부 사령관인 미하일 프룬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그 피 말리는 전투가 언제 있었냐는 듯, 백군은 눈에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고요한, 침묵만이 자리 잡은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참고로 항복한 볼셰비키들은 당연히 전부 무장 해제였다.

       

       

       “드디어 제3의 로마를 탈환했습니다!”

       

       

       나는 러시아 장성 군복처럼 개조한 루이제 황녀의 군복을 입고, 말 위에 오른 모습으로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갔다.

       

       먼저 입성한 백군 병사들이 길을 열고 대로의 양옆에서 길게 늘어서 나를 맞이한다.

       

       그 백군의 뒤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이 이쪽 눈치를 살살 보고 있다.

       

       어린아이를 안고 부들부들 떠는 부모가 있고.

       

       영혼 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노인도 있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가 소련 군복을 입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어쨌든 볼셰비키를 지지하거나 지원하고 협조했으니까.

       

       볼셰비키가 한 것처럼 자기네들을 죽일까 두렵겠지.

       

       나는 그들 앞에 나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

       “황녀님?”

       “흑사병 이후, 최악의 역병이 잠시 창궐했을 뿐. 동족상잔도 그 무엇도 없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숨죽이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인간이란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우리 러시아는 그저 잠시 시련을 겪은 것뿐이다. 우린 그런데도 러시아인이며, 유럽을 호령했던 동로마제국의 후계자다. 이 시련을 딛고 일어나자.”

       

       

       잠시 병이 퍼졌던 것뿐이다.

       

       그런데도 우린 같은 러시아인이며, 강력했던 로마제국의 계승자로서 지금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자.

       

       

       “역병으로 죽은 이들의 장례는 모스크바를 수습하고 치르마.”

       

       

       이 모든 것은 붉은 역병 탓이다.

       

       너희에게도 우리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전부 다 잊으면 된다.

       

       

       “자. 이제 모스크바 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라.”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면 되었다.

       

       자, 마무리를 위해서 남은 볼셰비키를 정리하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적백내전 이후, 러시아인들은 자긍심을 위해 로마의 후계자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고….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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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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