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

       꿀벌 게시판의 암약세력, 속칭 ‘꿀벌들’의 계획은 비나와 크리스티나가 타고 있는 칸을 통째로 폭파시키는 것이었다.

        순혈 마법사 둘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는 없으니 아예 중간에 떨어뜨려 버리려는 심산이었다.

        나의 역할은 정해진 시간까지 두 사람 중 최소 한 명을 폭탄이 설치된 식당칸까지 유인하는 것.

        허나 식당칸은 열차의 중간 지점으로, 그곳에서 폭발이 발생하면 많은 이들이 휘말릴 게 분명했다.

       

        “화물칸으로 장소를 바꾸죠. 공수한 폭약은 모두 그곳에 있으니 굳이 식당칸까지 옮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쯧, 멍청하긴.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귀족이 화물칸까지 들어오겠어?”

        “설마 이제 와서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도 불러 드릴까요?”

       

        내가 위치노트를 꺼내들자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갤러리를 확인하니 복잡했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설마 다른 고닉도 아니고 나를 사칭하는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이건 확실히 기분이 나쁘군.’

       

        나는 본래 관리자 계정으로는 잘 활동하지 않기에 사칭이 쉬운 편이었다.

        처음 보는 누군가가 주딱인 척을 하면 그게 관종끼가 있는 가짜인 건지 아니면 MK.114까지 있는 부계정 중 하나인 건지 유저들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갤러리 내에서 가면을 쓰는 것과 내 이름을 빌어 갤질에 무지한 녀석들을 모아 테러조직을 만드는 것은 경중이 다르다.

       

        작전회의를 끝내고 꿀벌들의 리더 ‘메테오는물마법’의 게시글을 확인하던 나는 뒤늦게 한쪽 몸이 무거운 것을 깨달았다.

       

        “너 뭐하냐?”

        “응? 아! 이제 화 풀렸구나?”

       

        내게 반쯤 매달리듯이 딱 붙어있던 시엔은 화색이 되어 호다닥 떨어졌다.

        손바닥에는 조금 전까지 무의식 중 잡고 있던 골반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영문 모를 이유로 내게 몇 차례 사과한 그녀는 돌연 새침한 표정으로 왜 작전을 방해하느냐 핀잔을 주었다.

       

        “다들 잡아넣을 계획을 세워뒀었단 말이야. 이미 차장을 통해 타겟에게도 정보를 전달해 놨는데 네가 갑자기 끼어들면 어떡해.”

       

        본래 정보부의 계획은 33층에서 잠시 열차를 멈춰세운 뒤, 조금 전 객실에서 봤던 녀석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식당칸에 요원들을 배치해놓고 비나와 크리스티나를 대체할 대역 역시 준비해뒀다.

        하지만 내가 돌연 화물칸으로 위치를 바꾸어 버리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녀 입장에선 답답한 일이겠지만 나는 이 급행이 멈추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열차가 멈추었다는 것은 꿀벌들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고, 그러면 저들의 배후 역시 몸을 감추거나 도망가 버릴 테니까.

       

        “정보부는 본래 가문끼리의 분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응?”

        “그러니까 무고한 인명 피해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안타깝게도, 녀석들이 게시판의 글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나는 위치노트를 통해 꿀벌 게시판의 삭제되었던 모든 글들의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

       

        ====

        마린이583

        [남들 삼등석에 낑겨서 옆자리 냄새나는 하위 서열들이랑 어깨 부딪힐 때 본인 특]

       

        (사진)

       

        열차 한 량 전세내고 편하게 올라감

        이게 인생이지~ 한 잔 해~

        ====

       

        늦은 밤. 평화로웠던 갤러리에는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현재 마탑의 30층을 가로지르고 있는 급행에 타고 있는 사진이 포함된 글이었다.

        본래라면 지옥행 편도 인증, 혹은 공역에 들어갈 배경이 된다는 자기자랑에 불과한 뻘글은 곧바로 묻힐 만한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갤러리 내에서 해당 글의 진위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응 주작이야~]

       

        뭔 하다하다 저런 걸로 주작을 하냐

        VIP룸도 아니고 급행에 저런 공간이 있는 게 말이 됨?

        거기다 문에 적힌 차량 번호가 314도 아니고 314.5가 뭐냐

       

        어디 벽에 끼여 계세요? ㅋㅋㅋ

       

        — 주작 맞는 듯 내가 지금 315혼데 저런 방 없음

        — 근데 차창에 비치는 환영 마법은 이번에 출력한 게 맞는 거 같은데?

        — 일등석에 포함된 라운지 아니야?

         ㄴ 뭐야 또 비틱이냐

         ㄴ 아닐 걸 차체 디자인이나 사용된 가구들 보면 기껏해야 이등석으로 보임

        ====

        ====

        [본인 매년 급행 탈려고 마탑 오르는 철덕인데 팩트체크 해줌]

       

        해당 객실은 연구부에서 정식으로 제작된 건 아니고 차량은 지금 운행하고 있는 거랑 같은 종류가 맞음

        특히 창문에 찍힌 풍경 오른쪽에 일그러진 부분이 살짝 보이는데 저건 146형 특유의 열차 제어 동작음이 차체에 퍼질 때 만들어지는 왜곡현상임

       

        아마 누가 마법으로 객실 사이에 독립된 공간을 만든 모양인데 이거 걸리면 최소 10년은 대학원 형벌임

        바보같이 위치도 떡하니 적어놓은 거 보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당장 간다

       

        — ㄷㄷ 진짜였냐

        — 누가 만들었지?

        — 314호랑 315호 사이라고? 바로 옆 칸이네

        — 아니 이 쇳덩어리가 뭔데 목숨 걸고 마탑 오르냐고 ㅋㅋㅋㅋ

         ㄴ 매년 급행 타려고 등반 ㅋㅋ 제정신임?

         ㄴ 부상률 제로인 익스트림 스포츠 그 자체라고 ㅋㅋㅋ

        ====

       

        숨겨진 칸이 존재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객실에 앉아있던 호기심 많은 마법사들이 몰려들었다.

        은신처가 발각될 위기에 놓인 26번, 41번, 78번 세 사람은 화물칸에 모였다.

        꿀벌들은 공역에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이번 작전에 참여한 것이기에 티켓과 지정된 좌석이 없었다.

       

        조금 전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것뿐인데, 서로가 서로를 보는 시선에는 경계의 눈빛이 담겨 있었다.

       

        “너희…… 설마 배신한 거냐?”

        “내가 왜 내 등에 칼을 꽂아?”

        “혹시 모르지. 78번이면 정령학파 소속 가문이니 같은 13번에게 억하심정이라도 있었을 수도.”

        “지랄하네! 내가 셀루시아의 정령사 새끼한테 열등감을 왜 느껴!?”

        “잠깐. 근데 너희는 여기 왜 온 거야?”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26번이 둘에게 물었다.

        자신들은 분명 13번이 순혈 마법사를 유인해 오면 이곳을 통째로 폭파시키는 역할이었다.

        지금은 아직 작전 시작 시간보다 한참 이를 뿐더러 화물칸 안에 들어올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도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당연히 41번 네가 메시지를 보내서잖아. 기폭장치에 문제가 있으니 나보고 점검하라고…….”

        “내가? 난 보낸 적 없다. 오히려 네가 폭탄 위치가 들켰으니 빨리 오라고 했잖아!”

        “너희 둘 다 리더에게 연락을 받고 온 게 아니었어?”

        “뭐?”

        “당신들이었군요.”

        “누, 누구냐!!”

       

        혼란스러운 상황 속.

        어두운 화물칸 안에서 서로를 의심하던 세 사람의 귓가에 투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그들의 앞에는 위치노트를 손에 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서 있었다.

        무감한 음성 속에 가득 눌러담은 분노가 하얀 입김과 함께 뿜어질 때마다 차체가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빛 한 점 없는 암흑 속에서도 새하얗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극한의 서릿발.

        마탑에서 그 정체를 모르는 사람은 감히 마법사의 자격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 비나 네타니아……!”

        “드디어 잡았어요. 갤러리에서 항상 저를 비방하던 세력을.”

        “뭐? 우린 그런 적 없어! ”

        “변명해도 소용 없어요. 여기 증거가 다 남아 있으니까.”

       

        비나의 말에 위치노트를 확인한 셋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꿀벌 게시판의 이름과 자신들의 아이디가 모두 처음보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글레시아 학파 게시판 신설 반대 게시판

       

        작성 게시글 목록 :

       

        [메테오가 얼음마법이 아닌 103가지 이유]

        [솔직히 이번 극마법 강의 존나 별 거 없지 않음?]

        [난 악질이야~ 난 도배를 할 거야~ 난 악질이야~ 난 도배를 할 거야~ 난 악질이야~ 난 도배를 할 거야~]

        [엡실론 관 자판기에서 얼음물 다 뽑아 버린거 인증]

        [맞아맞아 글레시아는 단 한 번도 마법제에서 우승한 적이 없어]

        ====

        ====

        [저희 화물칸에서 정모나 할까요?]

       

        지금 급행에 계신 분들이랑 만나서 글레시아 학파의 열등함에 대해 논하고 싶어요~

       

        정모 계획표

        12:30 – 자기 소개

        1:00 – 화생방 훈련

        2:00 – 갤러리에서 도배하는 ‘그 고닉’ 뒷담화

        3:00 – 극마법 강의평 별점 낮추기

        4:00 – 메테오가 얼음 마법이 아닌 이유 200개 채우기

       

        많은 참여 바래요~

       

        — 소통해요~

        — 지금 가요~

        ====

       

        “오, 오지 마! 이걸 터뜨리면 여긴 다 죽어!”

        “해보세요.”

        “뭐?”

        “깨닫게 해 드릴 테니. 어째서 메테오가 얼음 마법인지.”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태에 당황하던 이들의 발밑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차량의 삐걱거림은 더욱 심해지더니, 이젠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미친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벽도, 천장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세 사람의 마력마저도 순식간에 새하얗게 물들었다.

       

        78번의 얼어붙은 손가락이 기폭장치의 점화 스위치를 누르기 직전.

        그 모든 백색이 순식간에 끓어 오르더니 이윽고 엄청난 충격과 함께 하강하기 시작했다.

       

        콰앙—!!

       

        “31층이라, 조금 부족하지만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메테오라 불리기엔 손색이 없겠죠.”

       

        얼어붙은 열차의 마지막 칸이 마탑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본 비나는 미련없이 뒤돌아 객실로 향했다.

        그 후, 글레시아 학파 게시판 신설 반대 게시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꿀벌 게시판으로 돌아갔다.

       

       

       

        *

       

        “무슨 일이야? 지금 열차가 흔들리지 않았어?”

        “화물칸에서 사고가 있었대.”

        “어떡해! 그럼 내 짐들은?”

        “글레시아 학파에서 전부 보상해 준다는데? 우선 도착하면 역무원에게 물어보자.”

       

        소식을 들은 토비는 13번을 만났던 일등석의 통로에 몸을 숨긴 채 위치노트를 붙잡고 있었다.

        은신처도, 폭약이 있던 차량도 날아가버렸는데 나머지 인원들은 너무나 태평해 보였다.

       

        ====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꿀벌들을 관찰하기 좋은 날이에요~

       

        — 맞아요 맞아요~

        — 제 프로필도 보실래요? 꽃가루 묻은 꿀벌 엉덩이에요!

         ㄴ 와, 우연히 왔는데 저 여기 정착해도 되나요? 보면 볼 수록 허억, 허어어어억……!

         ㄴ ?

         ㄴ 넌 나가라

        ====

       

        “제정신이야!? 이 새끼들은 대체 왜 연락을 안 받는 거야!”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내 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아무 영양가 없는 게시글만 반복해 쓰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젠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리더 뿐이었다.

       

        스스로를 갤러리의 관리자라 칭한 그는 급행에 무임승차 할 수 있도록 경비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루트를 알려주었다.

        열차 내부에 은신처를 마련해둔 것도 그였다.

        대신 글레시아 학파와 악연이 있다며 테러를 사주했지만, 공역에 가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었다.

        마지막 희망을 갖고 메시지를 보내려던 토비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위치노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소용 없습니다. 그 계정은 정지시켜 놨거든요.”

        “뭐, 뭐!?”

        “게시판의 글을 모든 사람에게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건 제게도 여간 어려운 일이라서요. 그냥 둘 다 차단하는 게 마음이 편했답니다.”

        “누, 누구야 당신! 윽, 이건…… 헉!?”

       

        노트를 주으려던 토비는 발 밑에 이상한 안개가 낀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들자 열린 통로의 끝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극강의 공포에 그대로 다리가 풀려 버렸다.

       

        사슴, 늑대, 부엉이…… 아니,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짐승을 합친 기괴한 얼굴의 남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에겐 세 사람에 대해 나중에 잘 설명해야겠어요. 설마 열차를 통째로 날려버릴 줄은 몰랐는데.”

        “설마 리더야? 개, 갤러리의 주딱 맞지? 안 그래도 찾고 있었어!”

        “리더?”

       

        카앙!!

       

        그가 위치노트에서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창 한 자루가 다리 사이게 꽂혔다.

        눈동자에는 절제된 광기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증오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니지. 나는 너희 리더 따위가 아니야.”

        “히익!!”

        “그거 알아? 갤러리엔 원칙이 없어. 너희 같은 놈들이 우리 셋의 추억이 담긴 공간을 더럽히는 꼴을 내가 멋대로 용납 못하기에, 원칙이 필요가 없는 거지.”

       

        천천히 가까워진 그는 창을 빼내더니, 졸도 직전에 몰린 토비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나와서까지 묻고 싶은 건 하나야.”

        “끄, 끄윽……!”

        “이 리더라는 작자에 대해 뭘 알고 있지?”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