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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오오, 여기구나!”

       

       

       부장이 잔뜩 흥분한 채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이 커다란 장난감을 보고 흥분한 강아지같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와아. 멋있네.”

       

       “그러게. 예쁘다.”

       

       

       아멜리아와 유시우가 산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예쁘긴 하네.

       

       원래 세계에 있었을 무렵에는 방에서 온종일 컴퓨터나 하거나 휴대폰만 들여다보느라 풍경 같은 건 잘 안 봤는데.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풍경이라는 건 생각보다 아름답구나.

       

       ···뭐,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지만.

       

       저기 안에 범죄조직의 지부가 숨어있으니까.

       

       

       [재밌겠다···! 엄청나게 기대되네요!]

       

       “정말 기대되네요. ···그렇죠?”

       

       “그러게! 기대된다!”

       

       

       역시 아카데미 학생들이라도 학생이라는 걸까?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시간에 산장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들떠 보였다.

       

       특히 아멜리아와 유시우.

       

       저 둘, 아까부터 계속 붙어있단 말이지.

       

       ···뭐 하는 걸까?

       

       

       “아멜리아 양?”

       

       “히익?! 어, 어. 아르테. 왜 그래?”

       

       “아뇨, 그냥. ···뭘 하고 계시나 궁금해서요.”

       

       “으,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미, 미안해! 금방 떨어질게!”

       

       

       누가 봐도 사이 좋아 보여서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에게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벌렸다.

       

       ···아아, 그렇구나.

       

       부끄러운 거네!

       

       

       “미안해하실 건 없는데.”

       

       

       오히려 내가 미안해야지.

       

       으, 역시 연애를 못 해봐서 그런가.

       

       핑크빛 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끼어들어서 당황한 모양이지.

       

       라이트노벨에서 그런 장면 많이 봤어.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키스를 하려던 찰나, 눈치 없이 끼어든 누군가 때문에 당황하며 거리를 벌리는 장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을 보며 분통이 터졌었는데.

       

       도대체 눈치 없이 왜 저런 장면 사이에 끼어드냐고 화를 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그런데 내가 그 눈치 없는 녀석 포지션이었다니.

       

       뭔가 미안해지는걸.

       

       어느새 혼자 신나서 저 앞으로 달려간 부장.

       

       다시 무언가를 소곤거리고 있는 아멜리아와 유시우가 보였다.

       

       ···으음, 아무도 안 보니까 괜찮겠지.

       

       살짝 목걸이 내부의 실을 움직였다.

       

       

       “케엑?!”

       

       “앗, 실수. ···괜찮아요?”

       

       “켁, 커흑. 괘, 괜찮아.”

       

       

       으음, 역시 익숙해지질 않네. 조금 더 사용해봐야겠는데.

       

       작가님이 내게 부여해 준 능력은 내가 의복이라고 인식한 옷의 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조건은 입고 있을 것.

       

       이 능력은 다루다 보니 익숙해져서 손발을 움직이듯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지만, 응용은 조금 어렵단 말이야.

       

       응용이라고 해도 별다를 건 없었다.

       

       실에 담긴 마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조종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마나를 잔뜩 담아두면 미리 풀어둔 옷의 실을 사용할 수 있다 이거지.

       

       ···그걸로 실뭉치 잔뜩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작가님이 그건 막아놨더라.

       

       페널티를 준 대신 능력을 강하게 만들어놨는데 페널티를 없애면 그냥 사기라고.

       

       웹소설 주인공이랑 다를 바 없다고 하던데.

       

       그럴 때만 단호하다니까.

       

       ···뭐, 어쨌든.

       

       그런 이유로 미리 풀어둔 실들은 다루기 어렵단 말이지.

       

       너무 세게 당겨버려서 라이라가 목줄 걸린 개처럼 헐떡이잖아.

       

       힘 잘못 줬으면 머리가 두 동강 날 뻔했을 수도 있겠다.

       

       반성해야지.

       

       다음에는 연습 좀 하고 써볼까.

       

       

       “자아, 라이라 양. ···부탁드릴게요?”

       

       “으, 응. 알겠어.”

       

       

       그녀를 향해 한번 웃어주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는 듯 그녀가 사라졌다.

       

       ···좋아. 이제 대강의 변수는 차단했고.

       

       꼭꼭 숨겨뒀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었다.

       

       

       “작가님, 슬슬 이야기해주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후, 후후···. 그래요. 지금이라면 이야기해도 되겠죠···!]

       

       

       궁금해 죽는 줄 알았네.

       

       제발 좀 알려달라고 해도 절대 말 못하겠다면서 작가님은 말을 아꼈다.

       

       드디어 들어볼 수 있구나.

       

       작가님이 대박 설정 하나 생각했다고 했거든!

       

       도대체 얼마나 성장했을까?

       

       좋은 설정이었으면 좋겠다.

       

       

       [그게요, 위버멘쉬는 모티브가 동물이잖아요?]

       

       “···그렇죠?”

       

       

       동물의 인자를 몸에 집어넣어 인간을 초월한다는 설정이니까, 당연하지.

       

       

       [그러니까, 간부들은 유명한 동물들이어야 해요! 저는 그렇게 판단했어요!]

       

       

       작가님이 당연한 말을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늘어놓았다.

       

       그걸 이제 알았다고···?

       

       위버멘쉬의 간부···! 주입받은 인자는 피그미호그! 라고 말하면 독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피그미호그가 뭔데 이 씹덕아.

       

       라는 반응이 나오겠지.

       

       그에 반해 유명한 동물이다? 그러면 훨씬 쉽다고.

       

       위버멘쉬의 간부···! 주입받은 인자는 호랑이!

       

       이렇게 부르면 훨씬 이해하기 쉽잖아.

       

       설명 안 해도 되고, 강해 보이고.

       

       아니, 아니다.

       

       아직 작가님의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했으니까!

       

       나는 작가님 믿어!

       

       

       [그런데 그냥 유명한 녀석들 집어넣기에는 뭔가 아쉬워서요. ···상징성이 있다면 어떨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오, 상징성. 좋네요.”

       

       

       환희를 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래, 우리 작가님이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야.

       

       하면 할 수 있잖아.

       

       

       [그렇죠?! 그래서, 엄청 유명한 상징! 십이지에서 따오기로 했어요! 간부는 총 열두 명이에요!]

       

       “···네?”

       

       

       촤아악.

       

       마음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들불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바,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십이지? 간부가 열두 명?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히히, 소재가 잔뜩!]

       

       

       아.

       

       소재가 넘쳐난다며 실실 웃고 있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아까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였다.

       

       전혀 성장하지 않았구나.

       

       

       “저기, 작가님. 혹시 그거 이미 설정으로 넣으셨나요···?”

       

       [? 네. 넣었는데요?]

       

       

       순간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육두문자를 어떻게든 집어삼켰다.

       

       참자, 참는 거야. 아르테 이시스.

       

       작가는 개복치···. 작가는 개복치···.

       

       죽지 않으려면 나데나데···!

       

       

       “그, 열두 명 전부 내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아시죠···?”

       

       [어?]

       

       “한 에피소드에 세 명씩 낸다고 쳐도 에피소드 네 개는 고스란히 써야 하는데.”

       

       [···어?!]

       

       “그렇다고 초반에 세 명 잡아버리면 다음에 세 명 나와도 긴장감 하나도 없고?”

       

       [···.]

       

       “처음에는 한두 명씩 내다가 나중에 잔뜩 내면 파워 인플레니, 뭐니 이야기 나올 텐데. 감당할 수 있으세요···?”

       

       

       한참을 기다려보았다.

       

       ···대답이 없네.

       

       인내심을 가지며 작가님을 기다리자,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살며시 반박했다.

       

       

       [그, 그래도. 열두 명 전부 등장시키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다른 등장인물도 아니고, 주인공 대립 세력의 간부를 등장도 안 시킨다고요?”

       

       [히, 히이잉···.]

       

       

       골때리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지?

       

       

       “작가님, 혹시 애들 다 없던 걸로는···?”

       

       [한두 명도 아니고 열두 명 다 없애야 하는데···. 히, 힘들어요.]

       

       

       하, 좋아.

       

       작가님이 없앨 수도 없다니 어쩔 수 없네.

       

       이미 짜인 설정으로 어떻게든 비벼볼 수밖에.

       

       머리에 달아오른 열을 식혔다.

       

       여기서 작가님을 추궁해봤자 좋은 거 없으니까.

       

       연중하면 어떡하라고.

       

       세계가 멸망하는 것만은 안 돼.

       

       

       “그러면 여기 산장에 있는 녀석들은 얼마나 되나요?”

       

       [그, 그게···. 간부 한 명에 부하 200명이요···.]

       

       “···200? 저기, 혹시 아카데미 일 년 입학 인원수가 몇 명이었죠?”

       

       [···300.]

       

       

       더 이상 화낼 기력도 없었다.

       

       간부 한 명이 200명이라.

       

       보통 간부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편차가 크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다른 녀석들도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지.

       

       그럼 12명이면 2,400명이네?

       

       아카데미 학생들 전원 졸업과 동시에 빌런이 되어도 8년이나 걸리네?

       

       설정 오류잖아.

       

       ···어쩔 수 없지. 진짜로 싫지만.

       

       정말로 본의가 아니지만, 할 수밖에 없나.

       

       

       “작가님, 교복 한 벌만 챙겨주실 수 있나요?”

       

       [네, 네···? 교복이요?]

       

       “네에. 아무래도 한 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능력을 잔뜩 쓰는 건 하기 싫었는데.

       

       대낮에 마구 쓰는 건 미친 짓이고, 밤에 쓰더라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여기는 산속.

       

       그것도 위버멘쉬를 제외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장소다.

       

       어차피 죽어버릴 놈들한테 눈 호강 시켜주는 거야, 뭐.

       

       죽은 자는 말이 없다잖아.

       

       같이 동아리 활동 온 사람들에게만 안 들킨다면 괜찮겠지.

       

       

       “다 죽여버리면, 괜찮겠죠.”

       

       [저, 정말요···?]

       

       “네에. 어떻게든 수습은 가능하답니다.”

       

       

       너무 많은 빌런의 인원수는···.

       

       음, 해외에서 도망쳐 나온 빌런들이 이곳에 정착한 결과물이라고 하자.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개체수가 줄어들었어야 했지만, 모종의 사유로 싸우지 않고 합체.

       

       잔뜩 불어난 결과물이 위버멘쉬.

       

       이렇게 짜면 괜찮겠지.

       

       ···진짜 억지로 끼워 넣은 설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2,400명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후우, 오늘 저녁은 바쁘겠네요.”

       

       

       간부를 포함한 201명을 다 죽여서는 안 된다.

       

       적당히 사람을 남겨놔야 유시우 일행을 습격할 테니까.

       

       ···어디, 한 열 다섯 명 정도면 괜찮으려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도 아니고, 아르테와 2,400마리의 동물들인가.

       

       너무 많다고.

       

       이쯤 되면 독자님이 아니라 편집자님이라고 불려야 하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으응 아르테 눈나

    나 죽어(진짜 죽음)

    아, 그리고 호불호 갈리는 소재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공지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공지 안할거에요.

    저도 지쳐요 진짜. 입, 아니. 손 아파요.

    노맨스 아니고, 백합 아니에요.

    남자주인공이랑 ts한 주인공이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이만큼 얘기했으면 충분하겠죠?

    ***

    닉네이이임 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즐겨주시니 저도 즐겁네요!

    바르나전투 님, 18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으음, 181에 무슨 의도가 있는건가요···? 잘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Navel 님, 14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이게 참 맛있는 소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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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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