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

       

       온 몸이 아프다.

       

       눈두덩이가 화끈거리는게 눈을 떴다가는 지옥을 맛볼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반동이었다.

       

       팔을 살짝 움직여 봤다.

       

       부스럭 –

       

       “….?”

       

       이게 무슨 소리지?

       

       무언가 몸에 닿아 있었다.

       

       푹신하기도 하고 촉촉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반대쪽 팔을 움직였다.

       

       부스럭 –

       

       향기가 스멀스멀 콧속으로 파고 들었다.

       

       짙은 꽃향기였다.

       

       영안으로 무언가를 느껴보려던 나는 곧 그만두고 말았다.

       

       숙취라도 있는 것 마냥 머리가 지끈거렸던 것이다.

       

       “….”

       

       목소리도 안나왔다.

       

       옆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머리만 울릴 뿐.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 들리지도 않았다.

       

       온 몸이 만신창이를 넘어서서 중환자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엉망이 되어있었다.

       

       절실하게 이 몸뚱이를 단련 시켜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네크로맨서들이 해 놓은 짓거리를 보면 이것으로 끝이 아닐게 분명한데 매번 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문제는 눈이다.

       

       역살을 날렸는데 피를 토하는 것 쯤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두번 연속으로 피눈물을 쏟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반동 역시 눈이 제일 오래가기도 했고···.

       

       주변이 부쩍 소란스러워지는걸 느끼며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

       

       가지가 넓게 드리운 세계수의 아래.

       

       엘프들에게는 가장 신성한 장소.

       

       그곳에 곱게 쌓인 풀과 꽃 위로 크리스가 누워 있었다.

       

       “벌써 삼일째로군.”

       

       걱정스럽게 크리스를 바라보던 파라몬이 팔짱을 풀었다.

       

       그의 시선은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는 엘프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음식에 정성을 들여야 하네.”

       

       크리스가 무언가를 기원할 때 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봐왔다.

       

       산자와 망자의 행복을 기원할 때는 꼭 이렇게 정성을 들여 음식을 차리곤 했었다.

       

       손에 굳게 벤 굳은살을 비비던 파라몬이 손가락을 멈췄다.

       

       머릿속에 크리스가 만들던 제단이 떠오른 것이다.

       

       음식들 양 옆으로 초를 밝힌 모습.

       

       그 앞에 앉은 크리스가 신을 향해 간절히 빌곤 했었다.

       

       “초도 밝히는게 좋겠군. 음식들 양 옆으로 초를 하나씩 세워 주시게.”

       

       파라몬의 말을 들은 엘프 한명이 더 없이 경건한 몸짓으로 초를 올렸다.

       

       그 엘프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엘프의 몸짓이 경건했다.

       

       그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세계수에 있던 정체모를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피를 토하는 크리스의 모습을.

       

       또한, 감히 세계수의 흉내를 냈던 사악한 존재를 소멸시키는 모습 또한 보았다.

       

       크리스는 엘프들의 신인 세계수를 위해 몸을 희생한 인간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게 아닐세.”

       

       대답은 파라몬이 아닌 그의 옆에 서 있던 클로셀에게서 나왔다.

       

       “내 기억으론 적색계열의 음식이 오른쪽이었던것 같군. 이유는 모르겠으나 과일은 윗부분만 잘라서 놓아야 하네.”

       

       “크리스님께 도움이 된다면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클로셀의 말을 들은 엘프들이 너도나도 단검을 꺼내 과일의 윗부분을 자르기 시작했다.

       

       지시에 따라 빨간 과육은 오른쪽으로, 또 하얀 과육은 왼쪽으로 배치되었다.

       

       인원이 많아서 일까.

       

       엘프들이 몇번씩 움직이자 금세 음식들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파라몬의 고개가 흡족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크리스가 만들던 것과 제법 비슷한 상이 차려진 것이다.

       

       “로셀, 이 다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 하는가?”

       

       “테이블에 술을 올려야 하네.”

       

       “아, 분명 그랬었군.”

       

       멀리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엘프가 부리나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이는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호오, 이 귀한 술을 보게 되는군.”

       

       엘프들만의 방법으로 담근다는 최고급 명주였다.

       

       ‘나무의 속삭임’이라 불리는 이 술은 애주가들이라면 침을 질질흘릴만한 귀한 술이었다.

       

       투명한 빛깔을 보니 그 중에서도 최상품이 틀림없었다.

       

       술을 가져온 엘프가 조심스럽게 술병을 들어 올렸다.

       

       “이 술은 어디에다 놓으면 되겠습니까?”

       

       굳은살을 매만지던 파라몬의 손이 다시 정지했다.

       

       파라몬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아스테르 영지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술을 올렸을때와 신당이라는 곳에서 했던 크리스의 행동.

       

       파라몬의 고개가 두번 끄덕여졌다.

       

       “술은 특별한 방식으로 올려야 하네. 크리스는 이 방법을 항상 사용했었지.”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 사람이 올릴 수록 좋다고 하더군. 내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다들 따라하시게. 혹시 잔이 있는가?”

       

       엘프에게 잔을 청하는 파라몬의 태도 역시 경건했다.

       

       크리스는 항상 말했다.

       

       모든 것은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고.

       

       그래야 기원하는 것들이 제대로 된 방향을 찾는다고 했었다.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정갈하게 고친 파라몬이 상 앞에 섰다.

       

       조르륵.

       

       찰랑이며 잔으로 옮겨지는 술.

       

       파라몬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어느 방향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로셀, 왼쪽이었나? 오른쪽이었던것 같기도 하군.”

       

       “방향은 상관이 없다고 했네.”

       

       “아, 기억이 나는군.”

       

       파라몬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을 담았다.

       

       크리스의 몸이 씻은듯이 깨끗하게 낫기를.

       

       망자를 위로한다며 온갖 슬픔을 받아내는 이 청년에게 행복이 있기를.

       

       저주에 담긴 나쁜 감정들이 이 청년을 더럽히지 않기를.

       

       술잔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정성을 들인 그 동작이 끝나고서야 술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몸을 일으킨 파라몬이 클로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절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 않았나?”

       

       “술을 따르고는 항상 하곤 했었지.”

       

       파라몬이 잠시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엇인지 모를 해괴한 행동이었다.

       

       두 무릎을 가지런히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행위.

       

       어찌보면 기사로써 수치스러운 행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가 절이라는 행동을 할때는 그런것은 상관이 없어 보였다.

       

       한 없이 겸손하고 신성해 보이는 자세였으니까.

       

       아마도 그 경건한 몸짓이 이 의식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리라.

       

       “하는것이 좋겠군.”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네. 크리스의 의식은 신비한 구석이 있으니, 절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파라몬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무려 소드마스터가 아니겠는가.

       

       고난이도의 검술마저도 슬쩍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그에게 이런 동작쯤은 무리도 아니었다.

       

       파라몬이 엘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절이라는 행동일세. 크리스가 항상 정성을 기울이던 절차 중 하나이지. 이번에도 시범을 보일테니 다들 따라 해보게나.”

       

       파라몬이 보인 시범은 완벽한 절 그 자체였다.

       

       절도 있는 동작과 흘러넘치는 품위.

       

       기사의 정신이 그대로 녹아든 그 자세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번 절을 하고 일어난 파라몬이 잠시 뜸을 들였다.

       

       크리스가 하는 절은 매번 횟수가 달랐지만, 보통은 두번씩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래 검술도 기본이 되는 동작들을 제일 많이 사용하지 않던가.

       

       절이라는 것도 두번 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일 터. 

       

       파라몬이 다시한번 몸을 움직여 절을 했다.

       

       크리스가 쾌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며.

       

       “이렇게 하고 물러나면 되네.”

       

       파라몬과 클로셀의 두 눈이 뿌듯함을 안고 서로 마주쳤다.

       

       이 정도면 크리스가 봐도 훌륭하다 할 만한 진행이었다.

       

       그가 하던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비록 그들이 무당이 아니더라도 조금은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파라몬의 시범을 본 엘프가 말했다.

       

       “세계수께 기원을 하는 것입니까?”

       

       “자네들이 기원을 하면 세계수께 닿을지도 모르지. 그렇기 때문에 세계수의 방향을 향해 상을 차린 것이네. 중간에 크리스가 누워 있으니 효과가 더 높지 않겠는가?”

       

       엘프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세계수라면 반드시 들어 줄 것이다.

       

       그들의 기원이 크리스를 거쳐 세계수로 갈 것만 같았다.

       

       “크리스님께서는 신비한 의식을 행하시는군요.”

       

       파라몬이 엄숙하게 대답했다.

       

       “이 의식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네.”

       

       주위로 많은 수의 엘프들이 모여 있었다.

       

       작은 마음이더라도 다 모인다면 그 양이 어마어마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원들이 술을 따르려면 양이 부족하겠군.”

       

       술잔도 한두개가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올리려면 테이블에 자리도 부족했다.

       

       그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엘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마음이 중요하다 했으니, 저희들이 키운 꽃을 올리는건 어떨까요?”

       

       “호오…!”

       

       “좋은 생각입니다.”

       

       곳곳에서 긍정적인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애지중지 키우는 꽃들이니 정성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엘프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당장 해봅시다. 자리가 부족하니 다들 적당히 들고 와야 합니다.”

       

       꽃을 한 송이씩 꺾어온 엘프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잘 차려진 상 앞으로 늘어선 줄은 끝을 모르고 뻗어 있었다.

       

       꽃들이 쌓이며 자리가 없어지자 남은 꽃들은 크리스의 주변에 놓여졌다.

       

       그렇게 하나둘 순서가 지나고, 크리스의 근처에 꽃밭이 탄생할때 즈음.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부스럭 –

       

       “…..음?”

       

       “…크리스님?”

       

       모두가 입을 다물며 침묵이 내려앉았다.

       

       분명히 크리스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이윽고 크리스의 반대쪽 팔이 움찔거렸다.

       

       부스럭 –

       

       엘프들의 눈이 커지며 맑은 빛을 토해냈다.

       

       “효…효과가 있다!”

       

       “크리스님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어!”

       

       “얼른 꽃을 더 꺾어와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pia******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행복******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타***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e check love fortune, career fortune, financial fortune, compatibility, physiognomy, and points of intere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