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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

       1.

       

       사실 루드릭이 처음에 축제라서 사람이 많다고 툴툴거릴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지만, 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실피아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옆을 힐끔거릴 때마다 루드릭은 말만 그렇게 해 놓고 신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원래 이랬었죠. 그것도 늘.’

       

       실피아가 상념에 잠겼다.

       

       다과회라든가, 티 타임이라든가. 간단한 사교 모임이 있어 루드릭을 데리고 가려고 하면 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발을 빼던 모습이 떠올랐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오면 입이 댓발로 삐죽 튀어나와서는 싫다는 티를 팍팍 내다가도,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싫다는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즐기고 있던 모습이 떠올라 무심코.

       

       “후후.”

       “……?”

       

       나직이 새어 나온 웃음소리에 옆에서 솜사탕을 우물거리던 루드릭이 의아한 시선을 보냈지만.

       

       이렇게 벤치에 앉아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썩 나쁜 게 아니라 아주 좋았다. 어쨌든 단둘이 축제를 즐기는 이 행위를 데이트라는 단어가 아니면 다른 어떤 단어로도 정의할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 이 자리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의 연적이자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엘레나 황녀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몸소 차려준 판이 아니던가.

       

       경쟁자가 제 손으로 밥상을 차려준 꼴이다. 이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리지 않으면 그것 또한 예의가 아니겠지.

       

       “루드릭, 이제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요? 구경하고 싶은 거라든가.”

       “으음……. 잘 모르겠는데요.”

       “에헴, 그럼 어쩔 수 없죠.”

       

       짐짓 쾌활하게 말한 실피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으쓱거렸다.

       

       이럴 때는 능숙하게 리드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는 계산이 빠르게 도출됐다.

       

       기본적으로 종이 다른 하등한 생물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 진정한 친교를 나눈 적은 없어도, 인간 속에서 섞여 살아 온 수백 년의 세월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닐 테니.

       

       그런 계산을 깔고 의도한 행동이었건만.

       

       슬슬 다시 움직일 분위기가 되자 자연스럽게 다시 손을 잡는 루드릭의 모습에 의도했던 어른스럽고 능숙한 모습은 곧장 깨어졌다.

       

       “……앗.”

       “그럼 우리 저쪽으로 가볼래요?”

       

       순식간에 다시 홍조를 띤 볼.

       

       방금 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손을 뻗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가리키는 루드릭에게, 실피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2.

       

       오늘은 제법 만족도가 높은 하루였다.

       

       사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불편했던 것도 잠깐이지, 내가 바이스 백작령에서 보냈던 세월이 무려 이십 년이다.

       

       가끔은 전생의 기억을 회상하다가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어? 라며 놀랄 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게 한참 전의 과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즉, 다시 말해 이렇게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곳을 다닌 건 거의 이십 년 만이라는 의미였다.

       

       ‘축제라서 사람이 진짜 많긴 하네.’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불꽃놀이까지 전부 다 보고 돌아오는 길.

       

       거의 뭐 전생의 번화가 거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북적거리던 거리도, 축제가 끝나고 밤 늦은 시간이 되자 인파가 슬슬 빠지며 눈에 띄게 한산해진 참이었다.

       

       뭔가 처음에는 말이 많았던 실피아의 말수도 줄어든 인파처럼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처음에 지나쳤던 산책로를 다시 걷고 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 건지 옆에서 한참이나 우물쭈물하던 실피아가 입을 열었다.

       

       “저기, 루드릭…….”

       “네?”

       “그……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었으니까, 이제 손은 슬슬 놓아주셔도…….”

       “아.”

       

       이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혹시 놓칠까봐 줄곧 붙잡고 있던 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잖아. 어디 확성 마법으로 미아 찾기 방송처럼 ‘실피아를 찾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루드릭이 애타게 찾고 있어요~’ 라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생각해 보니까 무슨 데이트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손 꼭 붙잡고 걷고 있었네.

       

       쓰읍.

       

       계속 이렇게 손 붙잡고 있으면 슬슬 부담스러울 만도 하지.

       

       내 실수였다고 생각하며 잡은 손을 놔주자 실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의미인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피아.”

       “네?”

       “덕분에 오늘 재밌었어요.”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나 데리고 다닌다고 오늘 하루종일 고생했을 텐데,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지. 안 하면 그게 짐승 새끼지 사람이야?

       

       마침 세상도 이 모양 이 꼴이니 당당하게 “해줘”라고 요구하기에는 아직 내 안의 남성성이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

       

       그런데 이 눈 앞의 사람 탈을 쓴 드래곤은 사람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으면 예의상 천만에요- 라고 화답하는 동방예의지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불만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고맙다는 말을 한 나는 뭐가 돼? 내가 뻘쭘하잖아.

       

       내심 투덜거리고 있자니 드디어 실피아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에요, 저도 좋았으니까.”

       “좋았다고요?”

       “그! 그!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요! 그냥 저도 오랜만에 바깥 구경 하니까 좋았다구요!”

       

       딱히 그런 의미로 물어본 건 아니긴 했는데.

       

       갑자기 혼자서 호들감을 떠는 모습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아무튼! 그러니까 오늘은 저도 재밌었어요!”

       “저도 재밌었어요. 축제라고 해도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그래도 불꽃놀이까지 나올 줄은 몰랐고.”

       

       확실히 중세인데 불꽃놀이까지 나올 줄은 몰랐지. 마법으로 대충 떼우면 이론상 비슷하게 할 수는 있긴 한데.

       

       어쨌든 오늘 하루도 알찼다고 생각하면서 황궁 앞까지 다다른 찰나.

       

       야옹.

       

       작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익숙한 모습의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와 실피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은색 털에 보라색 눈동자.

       

       저 특이한 조합의 고양이는 내가 알기로 분명히 딱 한 마리 뿐.

       

       사실 내 옆의 사람 탈을 쓴 드래곤처럼 고양이 탈을 쓰고 있을 뿐이라 한 마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고양이, 아니 아르웬은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서 앞발을 들었다.

       

       “……손?”

       야옹.

       

       그게 아니라는 것처럼 낮게 깔린 울음소리. 대체 어떤 의도로 하는 행동인지 짐작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와중에, 아르웬이 실피아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하아악!

       “……아하, 한 번 정도는 보고 싶기는 했는데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요.”

       

       방금 전까지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차가운 표정. 싸늘하게 뇌까린 실피아가 덧붙였다.

       

       “루드릭, 먼저 들어가세요. 아무래도 이 고양이가 제게 볼일이 있는 것 같네요. 적당히 놀아주고 보낼게요.”

       “……어, 그러니까 그 고양이는.”

       “알겠죠?”

       “……네.”

       

       사실 드래곤 쯤 되면 저게 이미 진짜 고양이가 아니라 아르웬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다.

       

       실피아의 단호한 모습에,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일단 걸음을 옮겼다.

       

       둘이 알아서 원만하게 합의하겠지, 뭐.

       

       

       3.

       

       사람 없이 으슥한 황궁의 후원.

       

       낮에야 관리하는 정원사가 상주하지만, 이렇게 늦은 밤에는 지금처럼 종종 밀회를 위한 장소로 애용되곤 했다.

       

       그리고 주변의 인적이 아예 없는 곳까지 와서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온 아르웬이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입을 열었다.

       

       “좋았느냐?”

       “그렇게 맥락 없이 대뜸 좋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죠?”

       “네 정체를 숨기고 그렇게 루드릭을 속이고 있으면, 즐겁냐고 물었다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하구나.”

       “하.”

       

       아르웬의 힐난에 실피아가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진조로서의 프라이드는 어디에 버린 건지 고양이 흉내나 내면서 빌붙고 있는 주제에.”

       “후우…….”

       “다른 박쥐년들이 보면 통탄하겠어요. 아, 저런 게 우리 시조구나. 우리가 저런 시조 때문에 뱀파이어가 되었구나. 이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건 아시죠?”

       “미안하지만 루드릭은 내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느니라.”

       “그거야 그렇겠죠. 고양이 밥 줄 시간이라면서 자리를 비울 때마다 피 냄새가 나는데 제가 모르겠어요?”

       “그리고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 역시…… 루드릭은 이미 알고 있느니라.”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아르웬의 폭탄 선언에 실피아의 눈이 등잔처럼 휘둥그레 커졌다.

       

       당황으로 얼룩진 표정을 차분히 응시하며, 아르웬이 조용히 덧붙였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 않았지만…… 루드릭도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겠느냐?”

       “…….”

       “루드릭은 인간의 다른 귀족 영식들과는 다르니라. 생각하는 것부터가 다르고, 그 사고가 범인과는 궤를 달리 하지. 이미 겪었으니 그가 얼마나 총명한지는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면 대충 짐작은 하고 있겠죠. 정확하게는 모르더라도.”

       

       넋두리에 가까운 실피아의 중얼거림.

       

       아르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는 이미 루드릭이 모든 사실을 훤히 알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를 다섯 명이었지만, 주어진 정보만으로 추리했을 때는 그러했다.

       

       아르웬 말고도 회귀자는 더 있다는 사실을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나머지 회귀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짐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

       

       초조한 듯이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짓씹고 있던 실피아의 화살이 다시 아르웬에게 돌아갔다.

       

       “……그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다 말한 거예요?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 있다면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말에 어폐가 있구나.”

       “당신이 무책임하게 행동한 걸로 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적어도 너처럼 모든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보단 낫지 않겠느냐?”

       

       실피아의 말문이 막혔다.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던 사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미묘하게 자리잡고 있던, 루드릭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

       

       그녀가 루드릭에게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릴 이유는 없었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건 숨길 이유도 없다는 의미와 동일했다.

       

       그 사실을 감추고 있다고 해서 루드릭이 어떠한 피해를 본 건 아니다. 오히려 실피아가 회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루드릭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면 베풀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

       

       다만 모든 사실을 알릴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드래곤이 인간 마법사의 제자가 된다라……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구나. 오히려 마법사로 명성을 날렸으면 날렸지, 내 평생 마탑에 들어가 마법사의 제자가 되는 유희를 즐겼다는 드래곤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

       “자신의 종족에 대해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너희 용이라는 족속들 아니더냐. 하물며 그런 자부심까지 버리고 빌붙고 있는 게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조곤조곤한 어조와는 대조적으로, 날카로운 힐난이 송곳이 되어서 가슴을 쑤시는 듯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정론이라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적어도 아르웬이 없는 사실을 지어내 그녀를 비하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문이 막힌 실피아의 모습을 지켜보는 보라색 눈동자에 경멸이 깃들었다.

       

       “직접 대면할 용기도 없는 주제에.”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요.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까드득.

       

       실피아가 이를 악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휴가 시작되니까 바쁘네용…

    모두 즐거운 설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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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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