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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만약 아제르나 전기의 제작진이 나서서 ‘이 게임의 시리즈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굉장히 아쉬울 것이다.

        

       꽤 오랜 기간 플레이해왔고, 처음 친구가 추천해줘서 할 때는 뭐 이런 게임이 다 있나 욕하면서 하다가도 결국 뒤가 궁금해 계속 쫓아갔던 게임이니까.

        

       사실 비슷한 일은 이미 한 번 겪어봤다. 이전 시리즈에서 세계관이 바뀌면서 캐릭터들의 스토리가 완결 나는 것.

        

       처음에는 씁쓸했다. 후유증은 의외로 오래가서 몇 개월 동안은 그 마지막 편이 발매된 휴대용 게임기를 볼 때마다 자꾸 엔딩이 생각났다.

        

       이제 이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못 보겠구나. 뒷이야기가 나와도 짤막한 단편 소설이나 만화 정도겠지. 혹시 애니메이션이 되어도 내가 플레이하며 정을 줬던 캐릭터들은 아닐 거고.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결국 괜찮아지긴 했다.

        

       아무리 후유증이 있어도 결국 게임이었고, 그런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괜찮아지는 법이니까. 차올랐던 감정이 빠지고, 게임기를 들어도 게임이 눈에 밟히지 않을 때쯤이 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의 시리즈가 나오고, 나는 그 시리즈 게임들을 예약했다.

        

       결국 인생이 게임이 아니지 않은가.

        

       어떤 작품을 아무리 좋아했다고 해도 그 작품만 평생 감상하며 살 수는 없다.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바쁘게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도 가끔 생각나면 이제는 새로운 게임도 나오지 않는 옛날 게임기가 되어버린 그 게임기를 다시 켜서 표지가 빛에 바래버린 타이틀을 넣고 로딩을 기다리리라.

        

       그리고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가면서,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내가 왜 그 게임을 그렇게 좋아했고, 왜 그렇게 열심히 플레이했는지 다시 하나하나 알아가며 추억에 잠기겠지.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하던 게임들도 똑같은 과정을 밟았을 거다.

        

       밀레니엄 사 사장은 은퇴 전에 그 시리즈를 완결 내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쨌거나 그 끝이 있긴 한다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에게 그 게임이 발매되는 날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말이 많고, 까일 곳도 많아도 나는 그 후속작을 기다렸을 거고, 매년 게임이 나올 때마다 기꺼이 사서 플레이했을 거다.

        

       세계관의 처음부터 끝까지, 십 년 넘게 발매해온 게임 시리즈를 끝까지 쭉 따라가 끝을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가 이전 세계관 시리즈에서 느꼈던 감정보다 훨씬 더 큰 감정이 기다리고 있겠지—

        

       *

        

       —뭐, 지금은 그런 식의 ‘결말’은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사람의 삶의 끝이 그 삶의 완결이라고 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에필로그일까. 어디서 어디까지가 프롤로그고, 어디까지가 본편일까.

        

       십 대는 너무 어리다. 십 대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 쓰게 되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오 년만을 자기 전성기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따지자면 여기까지는 프롤로그라고 치는 게 합당할 거다.

        

       하지만 그렇다면 본편은?

        

       그 십 대의 끝에 겨우 뭘 하고 싶은지 정한 이십 대의 기간을 본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사실 이때 심어진 복선이 뒤에 터지는 일도 흔했으니 사실 본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앞부분밖에 없다.

        

       삼십 대는 이제야 막 자리를 잡은 시기다. 사실 이때부터는 일거리가 너무 많아서 바빠서 뭔가 대단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다. 솔직히, 어떤 이야기의 본편으로 쓰기에는 너무 시시껄렁한 내용이다.

        

       그 뒤는…… 음,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뒤를 미처 겪어보지 못한 채 이쪽으로 넘어왔으니까.

        

       사실 내 기준으로, 본편은 이미 끝났다. 황제의 야욕도, 여신의 음모도, 법국의 망상도 이미 죄다 처리해버렸으니까.

        

       그러고도 여기서 나는 열여섯.

        

       내일이 되어도 여전히 열여섯이다. 여기서는 세는 나이를 쓰지 않으니까.

        

       솔직히 ‘본편이 끝났다’라기에는 너무 억울한 나이가 아닐까?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전부 후일담이라고 한다면 그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후일담이 무슨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인 내 방 상태라면 더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데.

        

       “홍차에 술을 타 마시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아…….”

        

       앨리스가 테이블에 이마를 박은 채 말했다.

        

       솔직히 별로 황태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십 대 중반이라 얼굴이 앳된 것을 빼면 누가 봐도 전날에 회식 달린 신입사원의 모습이다. 오랜만에 대학교 다니듯 술 마셔서 거의 기절했다가 겨우 일어나 출근한.

        

       어린아이들에게는 술을 먹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샤를로트는 이미 술에 내성이 있었다. 과연 와인의 나라 벨부르라고 해야 할지, 술 자체를 마신다는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제니퍼가 가져온 요리용 와인은 처음 한 모금 이후로 한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검성이 가져온 동방주에 대해서는 꽤 호평했다.

        

       그리고 레나. 레나는 와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다른 술은 마셔봤다는 말이다.

        

       제국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독일까지 섞어 만들어진 나라다. 당연히 맥주라면 껌벅 죽는 지역도 있다.

        

       그리고 제국 북부를 포함한 곳은 그 독일 문화권의 영역이었다. 자치국에서는 어린아이도 맥주 정도는 마실 수 있다는 모양이었다.

        

       제이크와 로티는 중간부터 방에서 보이지 않았다. 들어보니 손님방으로 갔다는 모양인데…… 어, 굳이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둘이서 알아서 선이 안 넘는 한에서 시간을 보냈겠지.

        

       애초에 처음부터 술을 잘 마실 거라고 예상했던 제니퍼는 술을 거의 병째로 들이마셨다. 정말 의외였던 점은 캐롤린도 술에 굉장히 강했다는 것이다. 제니퍼처럼 와인으로 병나발을 불지는 않았지만, 잔에 술을 담아 연신 마셨다.

        

       “노스우드도 술로 유명한 곳이니까요.”

        

       “정확히는 질 좋은 참나무가 많지.”

        

       캐롤린의 설명을 제니퍼가 옆에서 보충했다.

        

       그러니까, 그 질 좋은 오크통에서 럼주를 숙성시켜 술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소리였다.

        

       제니퍼가 가져온 궤짝이 순식간에 비어버리고, 그 뒤에는 럼주가 들어왔다.

        

       제국 황궁에 보관되어있던 아주 비싼 술이.

        

       대체 누가 찾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황태녀가 직접 부른 손님들을 위해 어울리는 술을 찾다 보니 찾아온 것이 아닐까.

        

       심지어 그 이름 모를 동방주를 가지고 온 검성까지도 눈이 휘둥그레 뜰 정도로 비싼 위스키라는 모양이다.

        

       그때까지도 술을 마시지 않고 버티던 앨리스나, 그래도 전생에 조금씩이라도 술을 즐기던 나도 흥미가 갈 정도의.

        

       “……술 같은 걸 왜 마시나 몰라…….”

        

       그 결과가 이거다.

        

       “몇 잔 마시더니 신나서 ‘마시는 법’을 물어보던 분이 바로 황태녀님이십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테이블에 볼을 댄 채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면 너는 어땠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앨리스가 기절하기 전까지는 기억이 있었다.

        

       아마 앨리스가 미아 품에 안겨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던 때까지는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저는 상대적으로 멀쩡—”

        

       “아, 언니 사진은 다 찍어 놨어!”

        

       엥?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클레어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에는 커다란…… 전구? 전구처럼 생기긴 했지만, 녹아내린 유리 안쪽에 있는 것은 필라멘트가 아니라 작은 마력석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밝은 빛을 내는 식으로 조정된 마력석인 모양이다.

        

       아예 그 구체의 유리가 녹아내릴 정도였으니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분명히 나도 나와 있었으리라.

        

       ……설마 어제 눈앞이 번쩍이던 것이 술 때문이 아니라 플래시 때문이었나?

        

       “……그 필름을 내놓으라고 황녀로서 명령한다고 주실 생각은 없으시겠죠?”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내 말에 클레어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게다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잡힐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레오, 클레어를 붙잡으세요.”

        

       “……죄송합니다, 누님.”

        

       “레오 사진도 잔뜩 찍었거든? 그리고 레오 사진이 담긴 필름은 이미 뽑아서 숨겼고. 언니가 이걸 뺏는다고 해서 언니 사진이 전부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필름 한 롤에 스물네 장이라니, 확실히 저거 하나 빼앗는다고 다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싸울 거라면 방과 후에 싸우지, 그래.”

        

       내 침대에 당당하게 퍼질러져서 자고 일어난 제니퍼가 끼어들었다.

        

       “오늘 등교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텐데? 아무리 수업이 없는 날이라도 문화제는 참석해야 하니까.”

        

       “…….”

        

       아, 맞네.

        

       오늘은 쉬는 날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날이었지만, 우리가 빠진 수업을 보충해야 할 날은 아직도 꽤 남아있었다.

        

       “……새해 첫날치고는 최악이네…….”

        

       앨리스가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

        

       음.

        

       뭐랄까.

        

       에필로그니 뭐니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이 상황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큰 사건이 있고 없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어떻고.

        

       삶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오늘이 있으면 내일도 이어지는 법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쭉 살아가겠지.

        

       사건 뒤에 사건을 계속 만들어 붙이면서.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남은 부분은 언제나 에필로그다. 그리고 새로운 사건의 프롤로그이기도 했고.

        

       “선생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괜히 혼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슬슬 준비하기로 하죠. 오늘도 일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나에게, 클레어가 말했다.

        

       “응, 언니 진짜로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아까부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쳐서 사자 갈기 같거든.”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는 천천히 남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후일담의 후일담 같은 느낌이 될 수도 있고, 본편과는 다소 상관 없는 내용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공지에서 독자 여러분들께서 적어주신 내용 중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뽑아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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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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