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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0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화물 열차에 짐을 모두 실어놓은 우리는 텅 빈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우리가 이렇게 역마다 정차해가며 공연을 해 나가는 이유는 6번째 예선전 때문이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치를 예정인 시험은 서커스단이 가지고 있는 인기와 명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연히 그것은 특훈이나 전략으로 보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 지금부터 꾸준히 크고 작은 공연을 누적시켜 나가기로 한 것이다.

         

       마침 시작된 기차 여행은 그런 수련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기차역의 유동 인구가 대도시 급으로 많았고, 근처에 설치된 공연장들 역시 규모만큼은 대도시의 극장들에 밀리지 않았다.

         

       불과 반년 전만 해면 우리는 감히 이렇게 관객들이 많은 무대는 빌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들 괴물 서커스라는 얘기만 꺼내면 바로 고개를 젓거나 심한 곳은 재수 없다고 욕을 하며 내쫓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개의 예선전을 거치면서 우리는 업계에서 제법 유명해졌다. 여전히 좋지 않은 소문이 따라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긍정적으로 봐주는 데가 늘었다. 엘라, 클라라, 도스빌 3명은 우리가 공연하는 동안 미리 한두 역을 앞질러 가서 공연할 장소를 물색하고 계약을 맺고 돌아왔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공연장마다 그들을 모셔가려고 난리라고 했다.

         

       고작 시골 장터 상인회 사람들에게 사정해야 했던 옛날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나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 서커스단의 명성을 객관적인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서커스단의 명성은 316.

       매일 밤 자정이면 명성 수치만으로 데볼루트가 30개 넘게 들어왔다.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명성에 따른 보상으로 새로운 능력이 해금되기도 했다.

         

       

       <서커스단의 명성에 따른 보상>

       : [의상실: 50에 해금]

       : [음향실: 150에 해금]

       : [소품실: 300에 해금]

       : [500에 해금]

       : [800에 해금]

         

         

       세 번째 서커스단 관리 능력인 소품실은 물건을 ‘수리’하거나 ‘복제’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 물건이나 되는 것은 아니고 오직 서커스단이 소유한 물건에 한했고, 특별한 힘이 깃든 마도구는 복제할 수 없었지만, 상당히 유용한 능력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덕분에 망가졌던 마야의 스케치북도 복구할 수 있었고, 지금 단원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놀 수 있는 것도 소품실의 힘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이 요즘 푹 빠져 있는 카드 게임의 이름은 ‘원더월드’로 하늘도시 히포드롬에서 서커스 그랑프리를 기념하여 1년 전에 발매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겨우 즐기는 수준이었으나,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더니, 최근 들어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해 어딜 가도 원더월드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급증하는 수요 덕분에 카드 생산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며칠 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구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것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는 베르그송 상회 덕분에 겨우 한 벌 챙긴 것이었다.

         

       상회에 부탁할 때까지만 해도 다들 이 게임에 별로 관심 없어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서 나와 클라라와 마야와 도스빌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더니 너도나도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가진 카드 세트는 하나였고, 하나로 즐길 수 있는 인원은 4명이 최대였기에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카드 세트를 소품실의 힘으로 복사해서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원더월드의 구성품은 13장의 역할 카드, 188장의 공연 카드, 15장의 극장 카드, 수백 개의 보조 금화, 그리고 인기도 말 하나와 사분할 된 명성 보드, 마지막으로 눈알만 한 크기의 가짜 보석-트릴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번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4명. 게임은 공연 카드 188장이 모두 소모되었을 때, 혹은 누군가가 승리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종료되었다.

         

       승리 조건은 크게 2가지.

       7가지 마술 도구가 그려진 공연 카드를 모두 모으든가, 혹은 명성 보드의 모서리까지 인기도 말을 전진시키든가.

         

       만약, 아무도 승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공연 카드가 모두 소모되었을 때는 종료 시점에서 플레이어가 보유한 점수로 승리자가 결정되었다.

         

       각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게임 동안 사용할 극장 카드를 2장씩 골랐다. 극장은 그랑프리의 예선전 장소인 6곳을 포함하여 예선전 후보에 올랐던 곳까지 해서 15종류나 있었다. 극장 카드들은 각각 개성적인 강력한 특수효과를 지니고 있었고, 어떤 극장을 고르냐에 따라 게임의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졌기에, 신중하게 그 조합을 결정해야 했다.

       

       

       

       

         

       극장 카드를 모두 고른 플레이어들은 이제 188장의 공연 카드들을 잘 섞어서 테이블 중앙에 마름모 형태로 배치해야 했다. 이 게임은 카드를 뽑을 때, 보통의 게임처럼 카드 뭉치의 맨 위에 있는 카드를 집어 오지 않았다.

         

       마름모로 배치된 카드들을 바깥쪽부터 순서대로 개방하면서 가져와야 했다. 블록쌓기에서 위의 블록을 제거해야 아래에 있는 블록을 뺄 수 있는 것처럼 카드 역시 피라미드 위층에 자기를 누르고 있는 카드가 치워져야 아래에 있는 카드를 집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피라미드식 카드의 배치는 한 줄이 뒷면이라면, 다음 줄은 앞면으로 둬야 했다. 즉, 사람들은 앞면으로 보이는 카드를 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면서도, 뒷면에서 기습적으로 튀어나올 카드 역시 경계해야 했다.

         

       188종의 공연 카드에는 서커스 백과에 나오는 유명한 공연들이 실려 있었다. 플레이어는 매 턴 중앙의 카드 중에서 한 장을 집어 올 수 있었고, 필요한 자원과 금화가 있다면, 공연을 설치할 수 있었다.

         

       설치된 공연 카드는 각자 고유의 능력을 발휘했다.

         

       공연 카드가 ‘곡예’ 계열일 경우 보통 자원을 제공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이라는 인적 자원으로 다섯 종류의 곡예사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불타는 바퀴’ 공연 카드의 경우, 땅재주 자원과 줄타기 자원을 각각 하나씩 제공했고, ‘해머 링’ 공연 카드의 경우, 힘자랑 자원을 하나 제공했다.

         

       그리고 공연 카드가 ‘마술’ 계열일 경우, 게임 마지막에 점수 합산에 필요한 소정의 점수와 7가지 마술 도구 중 하나를 제공했다. 마술 도구 카드의 경우 같은 것 2개를 모을 경우, 마술 도구의 강력한 특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7가지 마술 도구를 종류별로 모두 모으면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승리로 게임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공연 카드가 ‘음악’ 계열일 경우, 명성 보드의 ‘인기도’ 말을 칸을 따라 전진시킬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인기도를 자신 쪽으로 일정 칸만큼 당길 때마다 상대 플레이어에게 자잘한 페널티를 줄 수 있었는데, 자원과 점수를 주지 않는 음악 계열 카드를 무시하고 자기 그림만 그리다가 이렇게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인기도는 명성 보드 4개의 모서리 중 한 플레이어의 모서리에 닿는 순간, 게임이 그 사람의 승리로 종료되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했다.

         

       그 외에 순수하게 높은 점수만을 제공하는 ‘연극’ 계열 카드가 있었고 무료로 설치하는 대신 특수효과를 발휘할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광대’ 계열 카드가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을 모아 처음에 골랐던 극장을 건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경우 5종류의 곡예 자원이 모두 하나씩 필요했는데, 이 게임은 4명이 번갈아 가며 카드를 집었기 때문에, 자원 5개를 모두 갖추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장미 풍차 카바레의 경우 요구하는 자원은 없었지만, 휘발성 높은 인기도와 금화를 요구했기에 건설 타이밍을 잡기 쉽지 않았다.

         

       거기다 플레이어들은 매 턴 13종류의 역할 카드 중 2장을 골라야 했는데, 플레이어가 매 턴마다 쓸 일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었다. 각각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에 역할 카드를 고를 때는 서로의 마음을 읽는 치열한 수 싸움이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역할 카드 중에 ‘후원자’는 금화 수급 능력이 강력한 대신 공연을 설치할 수 없다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고, ‘광대’는 역할 카드 하나를 지정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로 만들 수 있는 대신 본인은 별다른 이점이 없었다. 무난한 다섯 곡예사의 경우 자기 계열에 해당하는 자원 하나를 대체할 수 있는 소소한 장점이 있었지만, 큰 변수를 창출하지는 못했다.

         

       “났네, 났어! 짠, 7종의 마술 도구 다 모았네요!”

         

       단원 중에 제일 강력한 실력자는 클라라였다. 마야를 제외하면 그녀의 수읽기를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점수 차에 따라 돈내기를 하면, 도스빌이 신들린 직감을 발휘해서 그녀와 근소한 실력 차이를 보이곤 했다.

         

       반면,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유라크네였다. 그녀는 예전부터 머리 쓰는 게임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그녀는 클라라의 견제에 연달아 원했던 카드를 놓치고, 기껏 전진시킨 인기도를 마야의 ‘비평가’ 역할 카드에 저격당해 후퇴 당하고, 극장 건립을 코앞에 두고 모아왔던 금화를 도스빌이 건설한 극장의 특수 능력에 따라 몰수당하자 폭발하고 말았다.

         

       “이익!”

       “유라 씨, 카드 구기지 마세요!”

         

       결국 나는 속상해서 울음까지 터트린 그녀를 주방으로 데려가서 달래줘야 했다. 다행히 그녀는 금방 기운을 차렸고, 나는 그녀가 내일 기차에서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그런데……왠지 클라라, 마야, 도스빌 세 사람의 도시락이 다른 사람들 것보다 부실해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한편, 우몬과 루엘로는 금방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들은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것을 더 좋아할 나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숙소 안에서 뛰는 것은 물론이고 가볍게 팔씨름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부숴 먹은 가구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까부터 발코니 근처에 앉아 시끌벅적한 거리를 내려다보며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밖에 나가서 야시장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몬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루엘로도 그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는지 눈치만 볼 뿐, 나가고 싶다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나는 한 달 동안 쌓아둔 데볼루트를 그들을 위해 조금 베풀어주기로 했다.

         

       “우몬 군, 그러면 잠시 밖에서 바람 좀 쐬다가 오겠습니까?”

       “네? 어떻게요? 지금은 할로윈도 아닌데……. 거기다 적혈귀는 이 근방에서 너무 유명해졌잖아요……. 피에 굶주린 학살자로…….”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나는 얼마 전에 새로 얻은 아이템을 내밀어 보였다.

         

         

       <단원들의 평균 호감도에 따른 보상>

       : [15에 해금: 스킬북]

       : [25에 해금: 배역 이름표]

       : [40에 해금]

       : [60에 해금]

       : [80에 해금]

         

         

       비록 샛별 출신 세 사람이 들어왔지만, 다른 단원들의 호감도가 크게 오른 덕분에 평균 호감도는 25를 넘겼다. 그렇게 보상으로 얻은 ‘배역 이름표’는 말 그대로 이름표를 목에 건 대상을 배역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즉, 우몬의 목에 엘라의 이름을 적은 이름표를 건다면,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엘라로 인식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배역과 물리적인 차이가 너무 나면, 위화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 미노바 씨로 배역을 설정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우리 단원들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아빠를 못 알아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루엘로 양.”

         

       내 말에 구석에서 가스통 영감과 함께 술 마시고 뻗어 있는 아빠의 눈치를 살피던 루엘로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게 정말 그런 효과가 있다고요……?”

         

       우몬은 내가 내민 이름표를 목에 걸고는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했지만, 루엘로가 계속 잡아당기는 통에 더는 지체하지 못하고 끌려 나갔다.

         

       “가자, 가자, 오빠!”

         

       그녀는 우몬 앞에서 제일 활발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커스단 안에서 유일하게 비슷한 또래인데다가 자신이 조심하지 않고 힘을 마구 발산해도 감당할 수 있는 상대라서 그런 것 같았다.

         

       혹시나 숙소 밖에서 비명이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던 단원들은 뿔 달린 거대한 덩치의 붉은 악마가 별다른 소란 없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마야는 그것을 보고 강력한 인식 장애 마법이라고 평가했다.

         

       “핫핫, 엄청 신기한 물건이군요. 혹시 배역은 우리 단원 중에서만 가능한가요?”

       “아뇨. 원한다면 잡지에서 본 모델로도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어릴 적이나 나이 들었을 때의 설정 같은 것도 가능하죠.”

         

       단원들은 다음에는 자신도 한번 사용해보자고 법석을 떨어댔다. 특히 괴물 단원들의 요란스러움이 심했다.

         

       한 번쯤은 평범한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를 거닐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 덕에 얻은 데볼루트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베풀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화젯거리를 안주 삼아 우리는 카드 게임과 술로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중 등장하는 카드 게임 원더월드의 게임 규칙은 7원더스와 시타델을 조합한 것입니다.

    이해에 도움될 만한 카드 몇 장을 더 일러스트로 만들어 볼까 하다가 제게 벅찬 작업이라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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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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